일본연합함대는 제17군의 공세를 지원하기 위하여,1942년 10월 10일경부터 트럭 섬에서 함대를 출격시켜 나름대로 열심히 지원하고 있었는데 트럭 섬에 비축된 함정용 연료가 모자라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는 해상급유를 해주고 트럭 섬에 돌아온 유조선이 전함 야마또와 무쓰의 연료를 빼내어서 싣고 나가야 할 정도로 연료 사정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10월 20일에 애당초 21일로 예정되었던 육군의 총공격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마모또 제독은 제17군 사령관 햐꾸다께 중장에게 전문을 보내어 지금 당장 비행장을 점령하지 않으면 연합함대는 육군을 지원할 연료가 없을 것이라고 육군의 공격연기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진주만 공습 때 태평양함대의 연료탱크를 날려버리지 않은 나구모 중장의 실수가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일본연합함대는 제17군의 공격과 호응하여 곤도 제독의 제2함대로 하여금 과달카날에 돌입, 함포로써 육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제2함대 사령관 곤도 노부다케 제독. 자세한 설명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45537215 )
그리고, 나구모 제독의 제3함대로 하여금 제2함대의 공중엄호를 담당하며 만일 미국의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나타나면 이를 격멸하라는 임무를 주어 과달카날 북방해상에 파견했다.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항공모함 중심의 제3함대에게 헨더슨 비행장에 대한 공격임무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나구모 제독이 최우선 목표인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격멸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곤도 제독이 총 지휘권을 쥐고 나구모 제독이 항공지휘권을 쥔 일본함대는 크게 4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선 공격력의 핵심인 제3함대는 나구모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제1항공전대와 아베 히로아끼 소장이 지휘하는 전위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1항공전대는 정규항모 2척(쇼가꾸, 즈이가꾸), 경항모 1척(즈이호), 중순양함 1척(구마노), 구축함 8으로 이루어져 함재기 158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위부대는 전함 2척(히에이, 기리시마), 중순양함 3척(도네, 치꾸마, 스즈야), 경순양함 1척(나가라),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2함대 또한 곤도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주력부대와 가꾸다 가꾸지 소장이 지휘하는 제2항공전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력부대는 중순양함 4척(아타고, 다까오, 묘꼬, 마야), 경순양함 1척(이스즈),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2항공전대는 정규항모 1척(준요),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져 54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원래 제2항공전대에는 정규항공모함 히요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20일에 엔진고장을 일으켜서 트럭 섬으로 회항했다.
일본함대 전체로 정규항모 3척, 경항모 1척, 전함 2척, 중순양함 8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23척의 세력으로서 함재기의 숫자는212대였다.
일본함대의 배치는 제2함대와 제3함대가 사실상 거의 따로 다녔는데 제3함대의 경우 제1항공전대 전방 180km 지점에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가 앞장섰고, 제2함대의 경우도 제2항공전대 전방에 곤도 제독의 주력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제2항공전대는 제2함대 소속이지만 항공세력이라는 점에서 전술적 지휘는 나구모 제독에게서 받았다.
여기에 맞서는 미국함대는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가 연합한 제61기동부대로서 제16기동부대 사령관인 킨케이드 제독이 지휘권을 쥐고 있었다.
(제61기동부대 사령관 토마스 킨케이드 제독.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48685432 )
제16기동부대는 정규항모 1척(엔터프라이즈), 고속전함 1척(사우스다코타), 중순양함 1척(포틀랜드), 대공경순양함 1척(산 후앙),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84대의 함재기를 보유했다.
머레이 제독이 지휘하는 제17기동부대는 정규항모 1척(호넷), 중순양함 2척(노댐턴, 펜사콜라), 대공경순양함 2척(샌디에고, 쥬노), 그리고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함재기 85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제61기동부대 전체로는 정규항모 2척, 고속전함 1척, 중순양함 3척, 대공경순양함 3척, 구축함 14척의 세력으로서 함재기의 숫자는 169대였다.
전반적으로 미국함대가 함대항공력이나 수상함 세력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비록 피치 소장의 제63기지비행단이 상당한 수의 항공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 해전에 개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육상기지의 카탈리나 기는 제61기동부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보통 제2차대전 때의 항공모함을 정규항공모함(CV), 경항공모함(CVL), 호위항공모함(CVE)으로 분류하는데 이 분류는 미국해군의 것이라서 다른 나라의 항공모함 분류에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항공모함들도 이런 식으로 분류하다 보면 특히 중간에 애매하게 걸리는 것이 바로 히요 급이다.
필자는 히요 급을 정규항공모함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경순양함 중에서 대공경순양함(CLAA)이라고 불리는 종류는 바로 애틀란타 급을 말한다.
애틀란타 급은 크기도 작고(6,700톤) 미해군에서 어뢰를 장비한 유일한 순양함이라는 점에서도 설계사상 자체가 순양함이라기 보다는 대형의 구축함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던 함이었다.
이 급은 또한 대공화력의 강화를 위하여 경순양함에서 일반적으로 채택하던 6인치(152mm) 주포 대신 우수한 대공사격능력을 가진 5인치(127mm)/L38 양용포를 주포로서 채택하여 비교적 작은 함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강력한 대공능력을 보유한 함이었다.
하지만 경순양함이면서도 구축함과 같은 5인치 주포를 채택함으로써 수상공격력은 확실히 약했기 때문에 후속함인 클리블랜드 급은 애틀란타 급의 2배 가까운 큰 함체에(11,800톤) 6인치 주포와 5인치 부포를 다 같이 탑재하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간다.
핼시 제독의 작전은 제61기동부대에게 남하하는 일본함대를 동쪽에서 덮치기 위하여 과달카날 섬의 북동쪽, 산타크루즈 제도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일본항공모함들이 나타나면 급습하겠다는 것으로 미드웨이 해전의 재판을 노린 것이었다.
1942년 10월 25일 정오경, 에스피리투산토에서 출발한 카탈리나 기가 제61기동부대로부터 580km 떨어진 곳에서 남동진하고 있는 나구모 제독의 함대를 발견하여 곧 핼시 제독과 킨케이드 제독에게 보고했다.
킨케이드 제독은 곧 그 방향으로 항진한 후 오후 2시 30분에 12대의 돈틀레스를 서쪽과 북쪽 320km에 걸친 수색폭격의 임무를 주어 내보냈고, 한시간 후인 오후 3시 30분에는 적함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 채로 돈틀레스 12대, 아벤저 6대, 와일드캣 11대로 이루어진 공격대를 내보냈다.
하지만 나구모 제독은 카탈리나 기에 발견되자마자 침로를 바꾸어 북상해버렸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의 항공기들은 목표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야간착함을 하는 도중 돈틀레스 3대와 아벤저 3대가 착함을 포기하고 승무원들이 탈출했는데, 그 과정에서 Frank Miller 중위가 사망했다.
엔터프라이즈에 새로 배치된 제10비행단은 아직까지는 확실히 기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26일 새벽 2시 30분, 2대의 카탈리나 기가 다시 나구모 제독의 제1항공전대를 발견하고 즈이가꾸를 겨냥하여 4발의 폭탄을 투하했으나 빗나갔다.
나구모 제독은 다시 제1항공전대를 북상시켰으나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는 계속 남진했다.
나구모 제독은 북상하면서 적의 항공모함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남동쪽을 향하여 22대의 케이트 뇌격기를 2단 수색법으로 날려 보냈다.
한편 카탈리나 기가 적 항공모함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들은 핼시 제독은 즉시 킨케이드 제독에게 ‘ATTACK-REPEAT-ATTACK’ 이라는 단 3단어로 이루어진 공격명령을 내렸다.
카탈리나 기의 접촉보고는 통신장애로 킨케이드 제독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
10월 26일 오전 6시, 22대의 돈틀레스가 수색폭격의 임무를 띠고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다.
오전 6시 30분, Vivian W. Welch 대위와 Bruce A. McGraw 중위의 수색조가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발견했다.
오전 6시 50분, James R. Lee와 그의 요기인 William E. Johnson 소위의 수색조가 제61기동부대의 북서쪽 460km 지점에서 나구모 제독의 제1항공전대를 발견했다.
동시에 일본의 케이트 뇌격기들도 제61기동부대를 발견했다.
오전 7시 25분, 제로기 21대, 발 급강하폭격기 21대, 케이트 뇌격기 20대로 이루어진 제1차 공격대가 무라다 소좌의 지휘 하에 미함대를 찾아서 떠났다.
8시 10분에는 발 급강하 폭격기 19대와 제로기 5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8시 45분에는 케이트 뇌격기 16대와 제로기 4대로 이루어진 제3차 공격대가 즈이가꾸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일본군의 제1차 공격대의 발진이 끝날 무렵, 제1항공전대 상공에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수색폭격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전 7시 40분에 수색폭격기 중에서 Stockton Strong 대위와 그의 요기 Charles Irvine 소위의 수색조가 경항공모함 즈이호의 후방 비행갑판에 2발의 225kg짜리 폭탄을 명중시켜 대파했다.
한편 제61기동부대도 공격대를 내보내기 시작하여 오전 7시 30분에 호넷에서 돈틀레스 15대, 아벤저 6대, 와일드캣 8대로 이루어진 제1차 공격대가, 8시에는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레스 3대, 아벤저 8대, 와일드캣 8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8시 15분에는 다시 호넷에서 돈틀레스 9대, 아벤저 9대, 와일드캣 7대로 이루어진 제3차 공격대가 출격했다.
(엔터프라이즈 함상에서 발진 준비 중인 제10뇌격비행대대 소속의 아벤저 뇌격기. 아벤저의 앞바퀴 뒷쪽에 보이는 수병이 들고있는 판에는 "PROCEED WITHOUT HORNET" 이라고 씌어져 있는데, 이건 호넷의 공격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기다리지 말고, 즉시 공격하러 가라는 뜻이다. 사진 왼쪽의 수병이 들고 있는 판에는 "JAP 'CV' SPEED 25 AT 0830" 이라고 씌어 있다.)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공격대는 100km 쯤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의 공격대와 만나서 교전에 들어갔다.
그들은 4대의 제로기를 격추했으나 아벤저 뇌격기 3대가 격추되었고 아벤저 1대는 피해를 입고 모함으로 돌아갔다.
오전 8시 40분,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서북쪽에서 접근하는 일본공격대를 발견했지만, 레이더 조작병들은 이 음영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해내지 못했다.
무려 17분이 지난 8시 57분에야 그들은 이 음영을 일본군이라고 확신했지만, 그때는 이미 일본공격대가 70km 까지 접근해 있었다.
오전 9시 6분, 일본공격대는 요격세력을 분산하고, 구름 속에 용이하게 숨을 수 있도록 각기 다른 방위와 고도를 비행하는 작은 그룹들로 갈라졌다.
당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상공에는 38대의 와일드캣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들의 고도는 6.600m 로 너무 낮았고, 함대에서의거리도 불과 16km 에 지나지 않아서 너무 가까웠다.
따라서, 와일드캣들이 충분히 시간을 두고 요격할 기회도 없이 일본공격대는 바로 함대의 대공포화 사정권 내에 진입해 버렸다.
일단 함대의 대공포화가 작렬하기 시작하면 요격기의 활동도 큰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15km 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각각 대공원형진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일본공격대가 제61기동함대 상공에 도달했을 때 엔터프라이즈는 스콜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공격은 호넷에게 집중되었다.
각각 20여대의 발 급강하 폭격기와 케이트 뇌격기가 접근고도 차를 이용하여 동시에 호넷에 육박했다.
순식간에 3발의 폭탄과 2발의 어뢰가 명중했고 2대의 일본기가 호넷에 뛰어들어 자폭했다.
오전 10시 20분, 호넷은 함수쪽 절반의 비행갑판이 불길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제17기동부대의 대공포화와 뒤늦게 달려든 와일드캣에 의하여 일본의 공격대도 제로기 5대, 발 급강하 폭격기 17대, 케이트 뇌격기 16대가 격추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공격당하는 호넷. 함수 쪽은 이미 피해를 입어 검은 연기에 싸여 있다. 급강하 폭격 중인 비행기는 사토 시게유키가 조종하는 발 급강하 폭격기. 호넷의 후갑판 상공에 이미 어뢰를 투하하고 이탈 중인 일본의 케이트 뇌격기가 보인다.)
일본군의 제1차 공격대가 귀환길에 오른 후 일본군의 제2차 정찰기 중 1대가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하고 보고했다.
이 보고를 들은 제2항공전대에서는 오전 10시 45분에 준요에서 발 급강하 폭격기 17대, 제로기 12대로 구성된 제4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출격했다.
또한 호넷을 향하던 즈이가꾸의 제2차 공격대가 즉시 방향을 바꾸어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했다.
전함 사우스다코타의 레이더가 90km 밖에서 일본공격대를 탐지했으나, 엔터프라이즈의 CAP 세력은 일본공격대가 함대 상공에 도달할 때까지 일본기의 진로를 가로막는데 실패했다.
일본의 제2차 공격대는 단 한 대도 잃지 않고 제16기동부대 상공에 도달했다.
오전 11시 15분, 제16기동부대의 대공화력이 불을 뿜었다.
엔터프라이즈의 사격통제 레이더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대 전체의 대공사격통제는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담당했다.
성능이 뛰어난 보포스 40mm 대공포와 5인치 양용포 및 20mm 기관포를 보유하고 사격통제 레이더의 관제를 받으면서 동부솔로몬 해전에서 이미 실전테스트를 거친 미국함대의 대공화력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빗발치는 대공화망을 뚫고 돌입한 일본의 발 급강하폭격기들은 엔터프라이즈에 250kg짜리 폭탄을 퍼부어서 2발의 명중탄과 1발의 지근탄을 기록하여1번과 2번 엘리베이터를 고장내고 40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11시 17분에 명중한 첫번째 명중탄은 좌현 선수 끝쪽 비행갑판에 명중하여 천만다행으로 그대로 갑판을 뚫고 지나가서 좌현쪽 뱃머리 앞의 허공에서 폭발했다.
파편이 날려서 좌현 선수쪽 함체에 직경 0.5cm 에서 30cm 에 이르는 160여개의 구멍이 뚫렸다.
불과 몇 초 후에 명중한 2번째 명중탄은450m 높이에서 45도 각도로 투하되었는데 전방 엘리베이터의 후방 좌현 쪽에 명중하여 비행갑판에 직경 35cm 짜리 구멍을 뚫으며 관통하였고 격납고 갑판을 관통하기 전에 꼬리 부분이 쑥 빠져서 2개로 분리되었다.
원추형의 꼬리 부분은 격납고 갑판에 격돌하여 직경 40cm 정도의 구멍을 만들면서 폭발했다.
폭탄의 몸체 부분은 직경 35cm 가량의 구멍을 내면서 격납고 갑판과 그 아래의 제2갑판까지 통과한 직후 폭발했다.
이 폭발로 인하여 제3갑판의 수선실과 피복실의 인원 40명이 사망했다.
11시 19분에 떨어진 지근탄은 우현에서 3m 떨어진 곳의 2.5m 물속에서 폭발했는데 엄청난 수압으로 인하여 리벳이 빠지면서 연료탱크 2개가 찢겨져 나갔고, 주변 철판이 35cm 나 안으로 우그러들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여전히 속도와 전투능력을 유지했다.
일본의 제2차공격대는 대공포화와 와일드캣에 의하여 2대의 제로기와 12대의 발 급강하폭격기를 상실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급회전 중인 엔터프라이즈. 이미 2발의 폭탄을 맞아서 함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오전 11시 44분, 16대의 케이트 뇌격기와 5대의 제로기로 이루어진 제3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를 덮쳤다.
이번에는 Stanley 'Swede' Vejtasa 대위를 비롯한 엔터프라이즈의 CAP 세력이 제대로 요격에 성공하여 9대의 케이트 뇌격기를 격추했다.
살아남은 케이트 뇌격기들이 어뢰를 발사하여 구축함 Smith의 함수에 명중했고 엔터프라이즈에게도 뇌격을 가했으나, 하디슨 함장은 교묘한 조함으로 이들을 전부 회피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의 제3차 공격대는 10대의 케이트 뇌격기를 상실했다.
한편 호넷을 떠난 미해군의 제1차 공격대는 오전 9시 18분에 일본제1항공함대를 발견했다.
9시 30분, 이미 상처를 입고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던 경항모 즈이호를 무시하고 나구모 제독의 기함 쇼가꾸에 달려든 돈틀레스들은 제로기의 방어와 대공포화로 폭탄을 투하하기도 전에 4대를 잃었으나 나머지 11대는 급강하폭격을 실시하여 그 중의 3발을 명중시켰다.
450kg 짜리 대형폭탄 3발에 직격당한 쇼가꾸는 곧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모든 기능을 상실했으나 미드웨이 해전과는 달리 함내에 유폭할만한 비행기도 없고, 연료파이프도 완전히 비어 있었으므로 침몰만은 면했다.
11시 40분, 나구모 제독은 상처입은 쇼가꾸를 떠나 구축함 아라시로 사령기를 옮겼는데 이때부터 항공작전의 지휘권이 준요 중심의 제2항공전대 사령관인 가꾸다 가꾸지 소장에게 넘어갔다.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미해군의 제2차 공격대는 중간에서 일본군 공격대와 조우하는 바람에 와일드캣의 연료가 모자라서 제1항공함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만난 아베제독의 전위부대를 공격했으나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했다.
호넷을 떠난 미해군의 제3차 공격대도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만나자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폭격을 가하여 중순양함 치꾸마에 450kg 짜리 대형폭탄 3개를 명중시켜 대파했으나 덕분에 사경을 헤매고 있던 쇼가꾸를 격침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2시 20분, 준요를 떠난 일본군의 제4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의 상공에 도달했다.
발 급강하 폭격기 한대가 엔터프라이즈의 우현쪽에 지근탄을 1발 기록했는데 함체에서 2.5m 떨어진 5m 깊이의 물속에서 폭발한 이 폭탄으로 인하여 함체가 70cm 정도 안으로 찌그러졌다.
이들은 또한 전함 사우스다코타의 1번 포탑에 1발을 명중시켜, 1명의 전사자를 기록했고, 대공경순양함 산 후앙에도 1 발의 명중탄이 떨어져 갑판을 뚫고 함저까지 도달했으나 천만다행으로 불발탄이었다.
일본군의 제4차 공격대도 제16기동부대의 대공화기에 심한 피해를 입어 11대의 발 급강하폭격기가 격추되었다.
3차에 걸친 일본군의 공습을 적은 피해로 무난히 막아낸 엔터프라이즈는 오후 12시 35분부터 제16기동부대 상공에 떠있던 57대에 이르는 자신과 호넷의 함재기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착륙한 함재기 수가 47대를 넘어가자 이미 함내에 수용되어 있던 38대와 더하여 엔터프라이즈의 적정 대수인 85대를 넘었고 곧 함재기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전해졌으나, 착함유도장교(Landing Signal Officer, LSO)인 Robin Lindsey 대위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착함을 유도했다.
피탄시의 충격으로 제1번과 제2번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전방비행갑판에서는 계속하여 함재기들이 착함하고 후방비행갑판에서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항공기들을 격납고에 내리거나 항공기 사이를 최대한 밀착하여 이리저리 꼭꼭 끼워맞추어 배열하여 전방비행갑판에 최대한의 착륙공간을 확보하려는 사투가 벌어졌다.
그리하여 마지막 10대의 아벤저들은 4개의 어레스팅 기어 중 2개만 사용하여 무사히 착함을 마쳤다.
이제 95대의 함재기들을 만재한 엔터프라이즈는 적의 공격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가 되었고, 이 상태로는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킨케이드 소장은 엔터프라이즈에게 남쪽으로 후퇴하여 전투지역을 이탈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전투가 끝난 후 엔터프라이즈를 위시한 제16기동부대의 함정들이 진형을 갖추어 항진하고 있다. 전함 사우스다코타에서 찍은 사진)
반대로 일본제2함대의 곤도 제독과 전위부대의 아베 제독은 자신들의 우세한 수상함 세력을 이용하여 야전을 벌일 생각으로 전속력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한편 제17기동부대는 호넷을 살리기 위하여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20분에 3발의 폭탄과 2발의 어뢰, 그리고 2대의 자폭기에 얻어맞은 호넷은 치명적인 화재가 발생하면서 모든 기능을 상실했으나 손상관리반의 기민한 활동으로 오전 11시에는 화재를 진압했다.
이후 제16기동부대가 일본공격대와 싸우는 동안 11시 30분부터 중순양함 노댐턴의 예인로프를 이용하여 4노트의 속력으로 예인을 시작했으나 10분 후에 예인로프가 끊어져 버렸다.
할 수 없이 더 굵은 호넷의 예인로프를 사용하여 오후 2시 50분경부터 예인을 시작했으나 이미 호넷을 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일본함대의 항공작전권을 인수받을 당시 이미 1척의 미국항공모함이 큰 상처를 입었으나, 아직 격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가꾸다 제독은 남아있던 준요의 함재기들을 닥닥 긁어서 오후 1시에 7대의 케이트 뇌격기와 8대의 제로기로 구성된 제5차 공격대를 내보내어 호넷을 끝장내려고 했다.
미일 양측으로부터 가장 공격적인 성향의 항공지휘관으로 꼽히는 가꾸다 제독은 산호해 해전의 요크타운처럼 치명상을 입은 호넷이 미해군의 놀라운 손상관리능력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후 1시 15분에는 제1항공전대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모면한 항모 즈이가꾸에서 발 급강하폭격기 2대, 케이트 뇌격기 6대, 제로기 5대로 이루어진 제6차 공격대가 이륙했다.
이때 케이트 뇌격기는 어뢰 대신 800kg 짜리 대형폭탄을 장비했다.
오후 3시 33분에 발 급강하 폭격기 4대, 제로기 6대로 이루어진 제7차 공격대가 마지막으로 준요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오후 3시 20분, 일본군의 제5차 공격대가 느릿느릿 예인 중인 호넷을 발견했다.
놀란 노댐턴이 급히 예인로프를 끊고 대공사격을 시작했고, 우현 쪽으로 접근하는 케이트 뇌격기들을 향해 호넷 우현의 20mm 기총들이 불을 뿜었다.
호넷은 아직 전기가 충분히 작동되지 않아서 오직 인력으로 사격이 가능한 20mm 기총만이 대공사격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이 대공사격으로 2대의 케이트 뇌격기가 격추되었고, 2대는 노댐턴을 노리고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나머지 3대의 케이트 뇌격기가 호넷을 노려 어뢰를 발사했는데 이중 1발이 오전에 어뢰에 피격되었던 부분 바로 근처를 직격, 기관실을 침수시킴으로써 사실상 호넷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잠시 후에는 즈이가꾸에서 날아온 제6차 공격대가 내습하여 800kg 짜리 폭탄 한 발을 명중시켰다.
준요를 출발한 제7차 공격대가 오후 4시 40분에 호넷을 공격하여 250kg 짜리 폭탄 1발을 추가로 명중시키자 호넷의 경사도는 무려 18도에 달했다.
이 시점에서 함장 Mason 대령은 호넷에 퇴함명령을 내렸다.
일본군에게 호넷이 넘어가지 않도록 격침하라는 핼시 제독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들이 나아가서 어뢰와 5인치 포탄을 퍼부었으나 격침에 실패했다.
이때 강력한 일본의 수상함정들이 남하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제17기동부대는 호넷을 남겨놓고 서둘러 후퇴했다.
오후 10시 30분에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가 모든 기능을 잃고 표류하던 호넷을 발견했는데 파손이 너무 심하여 예인이 불가능하자 구축함에서 어뢰를 쏘아 27일 새벽 1시 35분에 격침했다.
27일 오후, 곤도 제독이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고 변침, 북상함으로써 산타크루즈 해전은 끝났다.
산타크루즈 해전은 전과면에서 일본해군의 판정승이었다.
일본해군은 정규항모 호넷과 구축함 포터를 격침시키고 엔터프라이즈를 중파, 전함 사우스다코타, 대공경순양함 산 후앙, 그리고 구축함 스미스를 소파시킨 반면 자신들은 격침된 함정은 없고 정규항모 쇼가꾸, 경항모 즈이호, 중순양함 치꾸마가 대파되었고 구축함 4척이 중파 또는 소파되었다.
다만 함재기 손실은 미해군이 74대인데 비하여 92대로서 일본해군의 피해가 더 컸고 항공기 승무원의 전사자도 미해군이 33명인데 비하여 일본해군은 70명으로 2배 이상 많았다.
일본함대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미드웨이 해전의 전훈을 잘 살려서 비교적 뛰어난 전투를 했다.
우선 미드웨이 해전 때와는 달리 항공모함 중심의 제1. 제2항공전대에게 헨더슨 비행장 폭격임무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미국항공모함 기동부대의 격멸에만 집중시킬 수 있도록 작전단계에서부터 배려했다.
나구모 제독 또한 일본함대 주변에 미국항공모함 기동부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하에 충분한 수의 정찰기로 2단 수색법을 실시하여 적시에 제61기동부대를 발견하고 공격할 수 있었다.
또한 항공모함 함대의 전방에 유력한 수상함정들로 방어막을 펴는 진형 역시 호넷의 제3차 공격대를 유인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나름대로 그 유용성을 증명했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일본함대는 1944년의 필리핀 해전 때에도 정규항공모함들의 전방에 경항모를 중심으로 한 3개의 함대를 전진배치하는 진형을 채택했으나 상대방인 스프루언스 제독이 일본함대를 공격할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요격전만 실시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하지만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조종사의 기량이 저하되고 미함대 대공포화의 위력이 증대됨에 따라서 항공기 손실은 미국보다 더 많았고 항공기 승무원의 손실도 미국의 2배 이상이었다.
이런 조종사의 손실을 견디다 못한 일본해군은 이후 1944년의 필리핀 해전까지 함대항공전을 회피하게 된다.
엔터프라이즈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함정승무원 중 장교 3명, 사병 40명이 전사했고, 12대의 와일드캣, 10대의 돈틀레스, 7대의 아벤저를 상실했으며 16명의 항공기승무원이 전사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호넷이 격침되고 엔터프라이즈마저 누메아에서 긴급수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미국은 남태평양에서(아니 태평양을 통틀어)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이 단 한 척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일본 또한 쇼가꾸와 즈이호가 대파되고 즈이가꾸도 항공대를 재건하러 떠나버리자 히요가 엔진고장을 수리할 때까지 역시 남태평양에서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이 준요 한 척밖에 없었다.
과달카날 전투는 이렇듯 미일 양측에게 지상군 병력이든 항공기든 함정이든 가릴 것 없이 엄청난 소모전을 강요하고 있었다.
1942년 10월 30일, 엔터프라이즈는 긴급수리를 위하여 누메아에 입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