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를 떠난 아벤저 뇌격기들이 일본제1항공함대에 돌입하기 직전인 오전 7시, 일본제1항공함대로부터 250km 거리에 도달한 제16기동부대의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공격대를 발진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단 몇 분간의 시간차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긴박한 함대항공전의 경험이 전혀 없던 스프루언스 제독과 그 참모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즉 그들은 이함한 함재기들이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하여 공격지점으로 떠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 방식은 일단 이함한 함재기들이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 몇 분의 시간이 아쉬운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시간이 촉박할 때에는 가장 속력이 느린 뇌격기부터 이함하여 바로 목표지점으로 출발하고, 이어서 중간 속력인 급강하 폭격기가 그 뒤를 따르고, 마지막으로 가장 빠른 전투기들이 이함하여 그 뒤를 쫓음으로서 각 기종간의 속력 차이로 인하여 목표물을 향하여 비행하는 도중에 자연히 편대가 형성되도록 하는 '비행 중 집결(running rendezvous)' 방식을 쓴다.
이미 산호해 해전에서 피말리는 시간과의 전쟁인 함대항공전을 겪어본 요크타운에서는 편대 형성에 이 방식을 사용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는 7시부터 CAP 임무를 맡은 8대의 와일드캣이 이함하기 시작하여 제6정찰비행대와 제6폭격비행대 소속 37대의 돈틀레스들이 엔터프라이즈 비행단장 맥클러스키 소령의 인솔 하에 차례차례 비행갑판을 떠났다.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형성할 경우에는 비행중 집결 방식과 달리 체공시간이 긴 항공기부터 발진한다.
이들 중 갑판 앞쪽에 주기되어 활주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제6정찰비행대 소속 6대의 돈틀레스들은 225kg 짜리 폭탄을 한발 싣고 있었고, 나머지 제6정찰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 13대는 225kg 짜리 폭탄 한 발에 45kg 짜리 폭탄 2발을, 그리고 18대의 제6폭격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들은 450kg 짜리 대형폭탄 하나를 장비하고 있었다.
정찰비행대는 폭격비행대보다 고참인 조종사들이 집결하여 폭격임무에다가 정찰임무까지 더하여 수행하는 비행대로서 이들의 폭격실력은 전반적으로 폭격비행대보다 더 뛰어나다.
돈틀레스들의 발진이 진행중이던 오전 7시 20분, 스프루언스 제독은 일본군의 반격에 의하여 항공모함 2척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는 일을 막기 위하여 미처 제독에게 호넷을 분리하여 따로 행동하도록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호넷은 중순양함 2척(미네아폴리스, 뉴올리언스), 경순양함 1척(애틀란타), 구축함 4척과 함께 엔터프라이즈와 떨어져서 따로 진형을 형성했다.
오전 7시 25분, 마지막 돈틀레스가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으나 갑판 위에서는 말썽을 일으킨 4대의 돈틀레스 때문에 후속 함재기의 발진이 늦어지고 있었다.
결국 이 돈틀레스들을 발진시키기를 포기하고, 마지막 돈틀레스가 이함한지 20분이나 지난 7시 45분에 제6전투비행대 소속의 와일드캣 10대가 이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편대를 형성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스프루언스 소장은 함대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맥클러스키 소령 지휘 하의 돈틀레스 33대에게 즉시 일본함대를 찾아서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는 분산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각 함이 보유한 돈틀레스, 데버스테이터, 와일드캣을 가지고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하나씩 형성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이젠 불가능해졌다.
엔터프라이즈 공격대는 돈틀레스의 뒤를 이어 이함한 제6전투비행대가 호넷의 제8뇌격비행대를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제6뇌격비행대로 착각하여 따라가 버림으로써 기종별로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다.
따라서 제6전투비행대의 뒤를 이어 이함한 엔터프라이즈의 제6뇌격비행대는 와일드캣의 호위없이 일본항공모함을 찾아 나섰다.
(1942년 6월 4일 아침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하기 직전의 제6뇌격비행대 소속 데버스테이터 뇌격기들의 모습)
엔터프라이즈에서 출격한 공격대는 돈틀레스 33대, 데버스테이터 14대, 와일드캣 10대 등 총 57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넷 쪽은 사정이 좀 나아서 일단 돈틀레스 35대, 데버스테이터 15대, 그리고 와일드캣 10대로 이루어지는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형성하여 일본항모를 찾아서 출발하는데 성공했다.
호넷에서 출격한 공격대의 숫자는 합계 60대 였다.
따라서 제16기동함대로 보면 돈틀레스 68대, 데버스테이터 29대, 와일드캣 20대 등 총 117대였다.
뒤에 처져있던 제17기동부대의 요크타운에서는 오전 8시 38분에 공격대를 발진시켰는데 데버스테이터 12대, 돈틀레스 17대, 와일드캣 6대의 순서대로 발진시켜서 비행중 집결 방식으로 편대를 형성하여 일본항공모함을 공격했다.
요크타운을 출격한 공격대는 합계 35대였다.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를 합하여 돈틀레스 85대, 데버스테이터 41대, 와일드캣 26대로 총 152대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제17기동부대를 지휘하던 플레처 소장은 이미 발견된 2척의 일본항모 외에 추가로 적의 항모가 발견될 때를 대비하여 제3전투비행대의 와일드캣 중 6대와 제3폭격비행대, 제3뇌격비행대만으로 공격대를 편성하고 제3전투비행대의 절반과 제5정찰비행대는 예비로 보유했다.
오전 8시 20분경, William Brockman 소령이 지휘하는 미잠수함 SS-168 Nautilus 가 일본제1항공함대 진형의 한복판에서 잠망경을 올렸다.
노틸러스는 눈에 보이는 적의 대형함정을 향하여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고 곧 주변에 있던 경순양함 나가라와 구축함 아라시가 다가와서 폭뢰공격을 가했다.
20여분간의 치열한 폭뢰공격을 견뎌내고 해상이 잠잠해지자 노틸러스는 잠망경을 올렸다가 아직까지 주변에 있던 구축함 아라시에게 다시 발각되어 또다시 폭뢰공격을 받았다.
아라시는 20여분간 폭뢰공격을 퍼붓다가 9시 18분에 변침하여 북상하기 시작한 본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현장을 떠났다.
아라시는 해상에 일본제1항공함대로 향하는 길다란 항적을 남기면서 본대와 합류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 가느다란 항적이 잠시 후에 일본해군의 머리 위에 죽음의 사자를 불러들이게 된다.
제6정찰비행대와 제6폭격비행대 소속의 돈틀레스 32대를 이끌고 있던 엔터프라이즈 항공단장 맥클러스키 소령은 오전 7시 45분에 엔터프라이즈의 상공을 떠나서 방위 231도로 향했다.
그의 계산으로는 그 방위로 가면 9시 20분쯤에 일본제1항공함대의 상공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원래 엔터프라이즈를 떠날 때는 33대였으나 Eldor Rodenburg 소위가 조종하는 한 대는 엔진 고장으로 모함으로 돌아갔다.
(SBD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 승무원 : 2명, 길이 : 10.1m, 폭 : 12.7m, 최고속력 : 410km/hr, 항속거리 : 1,240km, 무장 : 동체 전면에 12.7mm 기관총 2정, 후방석에 7.62mm 기관총 1정, 폭장량 최대 1,020kg)
하지만 일본제1항공함대는 도모나가 공격대의 귀환이 끝난 9시 15분에 미드웨이를 향하여 남동쪽으로 오던 침로를 제17기동함대가 있는 방향인 북동쪽으로 바꾸었다.
한편 호넷을 떠난 공격대는 제대로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형성하여 일본항모가 있다고 보고된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제8뇌격비행대장인 John C. Waldron 소령이 적이 발견된 지점까지 가지말고 적의 예상침로를 따라서 남서쪽으로 침로를 바꾸자고 호넷 비행단장인 Stanhope C. Ring 중령에게 건의했다.
링 중령이 일단 적이 발견된 곳까지 서쪽으로 가자고 말하자 왈드론 소령은 링 중령과 무전기로 티격태격하다가 본대를 따르라는 링 중령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제8뇌격비행대를 이끌고 본대와 헤어져 남서쪽으로 향했다.
왈드론 소령의 추측은 때마침 변침을 실시했던 일본함대의 행동과 딱 맞아 떨어져서 제8뇌격비행대는 미국항모기동부대의 함재기들 중 가장 먼저 일본 제1항공함대를 찾아내어 공격하게 된다.
이때 호넷의 제8전투비행대는 링 중령의 명령에 따라 제8정찰/폭격비행대를 따라 계속 서쪽으로 감으로써 호넷 공격대도 흩어지게 되었다.
호넷의 돈틀레스들과 와일드캣들은 정찰기가 보고한 해상에 도달하여 보고된 일본함대의 침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비행하면서 주변을 수색하였으나, 이미 북동쪽으로 변침해버린 일본함대를 찾지 못한 채 연료가 떨어져 제8정찰비행대의 돈틀레스 21대는 호넷으로 돌아왔고, 제8폭격비행대 소속의 14대는 미드웨이로 향했는데 연료부족으로 도중에 3대가 추락했다.
그리고 제8전투비행대는 귀환 도중에 연료부족으로 10대의 와일드캣 모두가 해상에 불시착했다.
엔터프라이즈의 제6전투비행대장인 James S. Gray 대위는 이함 직후 호넷의 제8뇌격비행대를 엔터프라이즈의 제6뇌격비행대로 착각하여 따라왔는데 이때 제8뇌격비행대를 따라 남서쪽으로 변침했다.
하지만 제8뇌격비행대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접촉을 잃어버렸다.
할수없이 제6전투비행대는 일본함대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서 고도 6,000m를 유지하며 제6뇌격비행대로부터 지원요청이 오기를 기다렸다.
실제로 제6뇌격비행대는 일본함대에 대한 공격 도중 수차례 제6전투비행대에 지원요청을 하였으나 그 어느 것도 제6전투비행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데버스테이터 뇌격기들이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제로기에 의하여 거의 전멸하고 만 이유이다.
만일 각각 10대씩의 와일드캣을 보유한 제6전투비행대와 제8전투비행대가 예정대로 데버스테이터들을 호위했더라면 데버스테이터들의 희생은 훨씬 적었을 것이고, 어쩌면 일본항공모함 1-2척쯤은 잡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CAP 임무에 나선 제로기들에게 훨씬 큰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데버스테이터들 중에 가장 늦게 돌입한 요크타운의 제3뇌격비행대를 엄호하던 제3전투비행대가 와일드캣 6대라는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4대의 희생을 내면서 무려 10대의 제로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항공모함 보호가 우선인 제로기들로서는 공격력을 데버스테이터에 집중할 수 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와일드캣이 제로기를 잡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3전투비행대가 불과 6대의 와일드캣으로 10대의 제로기를 잡아냈으니, 만일 20대의 와일드캣을 보유했던 제6전투비행대와 제8전투비행대가 예정대로 데버스테이터들을 호위했더라면 단순계산으로도 30대 이상의 제로기들을 추가로 격추하여 당시 CAP 임무에 동원될 수 있었던 제로기 57대(총 보유 제로기 93대 - 미드웨이 공격대의 36대 = 57대)중의 거의 75% 가까이 격추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일본제1항공함대의 CAP 세력이 제8전투비행대와 제6전투비행대에 의하여 그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마지막에 돌입한 제3뇌격비행대의 데버스테이터들은 상당수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많다.
호넷의 제8뇌격비행대를 제6뇌격비행대와 혼동하고, 그나마도 중간에서 접촉을 잃어버려 아군의 뇌격기들이 처절한 희생을 치르는 동안 전투지역 바로 부근 상공에서 허송세월한 제6전투비행대장 그레이 대위의 실수야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호넷의 비행단장이었던 링 중령도 비록 왈드론 소령이 자기 명령을 어겼다고는 해도 그 즉시 제8전투비행대로 하여금 왈드론 소령의 제8뇌격비행대를 따라가도록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뇌격기는 공격방식의 차이 때문에 급강하폭격기에 비하여 적 전투기의 위협에 훨씬 더 쉽게 노출되므로 호위전투기가 뇌격기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은 대함공격전술의 상식이다.
호넷 공격대에서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은 직접적으로는 호넷의 비행단장인 링 중령의 잘못이고 좀더 위로 따지고 올라가면 사전에 수색코스나 호위의 우선순위 등에 대하여 정확한 지시를 하달하지 않은 미처 제독의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일어난 바탕에는 역시 일분일초가 소중한 함대항공전의 상황에서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형성하기로 결정한 스프루언스 제독의 실수가 깔려 있었다.
사실 미드웨이 해전 자체가 미해군이 열세한 세력으로 싸워서 대승한 해전이고, 게다가 그 과정이 마치 3점차로 뒤지고 있던 9회말 투아웃에서 기적적인 만루홈런 한방으로 일시에 전세를 뒤집어버린 듯이 아주 극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전사가들은 이런 전술적 실책에 대하여 대단히 관대하게 다루는 경향이 많다.
사실 대부분의 저작에서는 미해군의 뇌격비행대가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일일이 다 기술하면서도 정작 그 원인이 되었던 공격대 분산 문제에 대해서는 그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고 단지 일분일초가 아까울만큼 시간에 쫓기던 당시 상황에서 일본항모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식으로 간단히 처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호넷의 제8뇌격비행대가 일본제1항공함대를 발견하여 공격에 들어간 것은 일본항모들이 미드웨이 공격대를 수용한 직후인 오전 9시 20분이었다.
왈드론 소령은 일본함대의 북동쪽 15km 지점에서 모함인 호넷에 일본함대의 위치와 구성에 대하여 보고했지만 미처 제독은 호넷의 공격대가 모두 함께 있으려니 짐작하고 이 정보를 비행단장 링 중령에게 중계하지 않았다.
왈드론 소령은 원래 아까기를 사이에 놓고 양쪽에서 뇌격을 가하기 위하여 2개 편대에 분리를 명령했으나, 일단 분리되었던 공격대가 자신들을 발견하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제로기들을 보고는 기가 질려서 다시 왈드론 소령의 뒤로 따라붙었다.
할수 없이 제8뇌격비행대는 한덩어리가 되어 소류를 목표로 돌진했다.
하지만 Mk13 항공어뢰의 투하조건 때문에 돌입속도로 시속 약 180km 밖에 낼 수 없었던 데버스테이터들은 날렵한 제로기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승무원 : 3명, 길이 : 10.7m, 폭 : 15.2m, 최고속력 : 331 km/hr, 항속거리 : 마크13어뢰를 장비하고 700km, 무장 : 12.7mm 기관총 1정, 전방사격, 7.62mm 기관총 1정, 후방사수석, 544kg 짜리 마크13어뢰 1발 또는 453kg짜리 폭탄 1발)
제로기들은 해상에 닿을듯한 저공에까지 내려와서 데버스테이터들을 덮쳤다.
왈드론 소령의 탑승기를 비롯하여 몇 대가 순식간에 격추되었다.
왈드론 소령은 날개의 연료탱크가 피탄되어 불덩어리가 된 기체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칵핏에서 빠져나오다가 해상에 추락했다.
나머지 데버스테이터들도 차례로 격추되기 시작하여 결국 목표였던 소류에게 어뢰를 투하하는데 성공한 것은 George Gay 소위가 조종하던 단 한대였으나 이것마저 빗나갔다.
제8뇌격비행대의 유일한 생존자인 게이 소위는 어뢰를 투하하고, 소류의 상공을 통과하는 순간 격추되었으나 가라앉는 비행기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구명조끼를 입고 고무로 된 조종석 방석에 매달려 일본함대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는 이후 벌어진 이 역사적인 대해전의 전개를 현장에서 지켜본 유일한 미군이 되었다.
게이 소위는 다음날 오후 2시 30분에 카탈리나 비행정에 의하여 구조되었다.
제8뇌격비행대의 공격이 끝나갈 때쯤인 오전 9시 38분, 이번에는 Eugene Lindsey 소령이 이끄는 엔터프라이즈의 제6뇌격비행대가 남쪽으로부터 일본함대를 공격해 왔다.
원래 제6뇌격비행대는 일본함대를 찾지 못하고 남쪽을 통과하던 중이었는데 제8뇌격비행대의 공격을 받고 있던 일본함대의 호위함들이 내뿜는 연막을 보고 북쪽으로 변침하여 9시30분에 일본함대를 찾았다.
린지 소령도 일본항모 카가를 양쪽에서 공격하기 위하여 공격대를 둘로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카가가 북쪽으로 변침하는 바람에 Arthur V. Ely 대위가 이끌던 그룹은 카가의 고물쪽에서 공격을 해야할 상황이 되었고, 린지 소령이 직접 이끌던 그룹은 카가의 우현을 노리기 위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엘리 대위가 이끌던 그룹은 즉각 제로기들과 집중적인 대공포화의 표적이 되었다.
엘리 대위는 출격 전에 미리 약속되어 있던 신호를 통하여 제6전투비행대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실 당시 제6전투비행대는 그들이 따라오던 제8뇌격비행대를 놓치고 일본함대의 북동쪽 25km 지점의 6,000m 상공에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6뇌격비행대는 실제로 그후로도 몇 번씩이나 지원요청을 했으나 어쩐 일인지 제6전투비행대는 한번도 수신하지 못했다.
엘리 대위가 이끌던 그룹은 제로기와 대공포화에 의하여 총 7대중 5대가 어뢰를 투하해보기도 전에 격추당했다.
A. Walter Winchel 기관준위와 Stephen B. Smith 일등기관준위(Chief Machinist) 가 조종하던 데버스테이터 2기는 피해를 입으면서도 카가에서 900m 떨어진 지점까지 육박하여 어뢰를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두 대의 데버스테이터는 어뢰를 발사한 후 치열한 방어망을 뚫고 탈출하는데 성공하여 한대는 무사히 엔터프라이즈에 돌아왔다.
윈첼 기관준위가 조종하던 데버스테이터는 귀환 도중에 연료가 떨어져서 해상에 추락했으나 윈첼 기관준위와 후방사수였던 Douglas M. Cossit 일병은 무사히 탈출하여 구조용 고무보트를 타고 해상에서 무려 17일간을 버틴 끝에 6월 21일, 미드웨이의 카탈리나 기에 의하여 구조되었다.
린지 소령의 그룹도 카가를 향하여 돌진하면서 제로기들의 공격을 받아서 린지 소령 탑승기를 포함하여 4대가 어뢰를 발사해 보지도 못하고 격추되었다.
나머지 3대는 어뢰를 발사했으나 한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이 3대는 모두 무사히 엔터프라이즈로 돌아왔다.
당시 미국이 사용하던 마크13 항공어뢰는 작약량 262kg, 사정거리 5,760m 에 속력이 33.5 노트였는데 작약량과 사정거리는 그만하면 충분한 편이었고, 속력은 다소 느린 편이어서 한두발이 발사되었을 경우 미리 감지만 한다면 시속 30노트 이상을 낼 수 있는 일본의 항공모함들은 간단하게 회피할 수 있었다.
(마크13 항공어뢰)
하지만 사실 이 당시의 마크13항공어뢰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그 투하조건이었다.
즉 이 어뢰는 뇌격기의 비행속도가 시속 200km이하, 고도 15미터 이하에서 투하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는데 미드웨이 해전에서 보다시피 제대로 방어준비를 갖춘 적에 대하여 이런 속력, 이런 고도로 접근하여 어뢰를 투하한다는 건 사실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후 미국의 Mk13항공어뢰 개량노력도 속력의 증가보다는 이러한 투하조건의 완화에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1944년 2월의 트럭도 공습 때는 300m 높이에서 보다 고속으로 비행하면서도 투하할 수 있게 되었고, 종전에 즈음해서는 시속 760km 로 비행하면서 700m 높이에서 투하할 수 있을 정도로 투하조건이 완화되었다.
(후반기의 마크13항공어뢰. 착수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탄두부와 프로펠러 주변에 충격흡수용 나무를 부착하여, 보다 높은 고도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 투하할 수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해군이 사용하던 항공어뢰는 진주만 기습때 사용했던 91형 모드2 항공어뢰로서 작약량 200kg, 사정거리 2km, 속력 41노트에 시속 460km 로 비행하면서 투하할 수 있어서 Mk13 항공어뢰보다 작약량이나 사정거리는 좀 딸리지만 속력이나 투하조건 등 전반적인 성능이 훨씬 우수했다.
(91형 항공어뢰)
나구모 제독은 호넷에 이어 엔터프라이즈의 뇌격대가 공격해오자 상대방인 미국항모가 요크타운 1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머지 미국항모를 찾기 위하여 소류에서 함재기 한대를 급히 발진시켰다.
제6뇌격대의 공습이 끝난 오전 10시, 이번에는 Lance Edward Massey 소령이 지휘하는 요크타운의 제3뇌격비행대가 공격해 왔다.
앞의 두 뇌격비행대와는 달리 제3뇌격비행대에는 6대의 와일드캣으로 이루어진 제3전투비행대가 호위로서 따라왔다.
(F4F 와일드캣 전투기. 승무원 : 1명, 길이 : 8.8m, 폭 : 11.6m, 최고속력 : 515km/hr, 항속거리 : 1,240km, 무장 : 12.7mm 기관총 6정, 1정당 탄약 240발, 114kg 짜리 폭탄 2발)
곧 제로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John Smith Thach 소령이 지휘하는 제6전투비행대의 와일드캣들이 나름대로 활약했다.
항공모함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로기들은 데버스테이터에 공격력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었고, 와일드캣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로기들에게 공격을 퍼부어 마구 격추했다.
하지만 제로기들은 너무 많았고 와일드캣의 숫자는 너무 적었다.
결국 제3뇌격비행대도 마씨 소령을 비롯한 7대가 어뢰를 발사해보지도 못하고 격추되고 5대가 가까스로 어뢰를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이 4대 중의 3대도 이탈 중에 격추되었고, 겨우 1대가 요크타운까지 날아왔으나 파손정도가 심하여 착륙을 하지 못하고 부근 해상에 불시착했다.
즉각 구축함 Hamman 이 다가가서 구조하였지만, 후방사수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제3전투비행대도 10대의 제로기를 격추하며 분전했으나 절망적인 숫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4대가 격추되었다.
원래 요크타운의 비행단은 제5비행단인데 이 비행단의 항공기들이 산호해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자 태평양함대에서는 기존의 제5정찰비행대를 해체하고 대신 기존의 제5폭격비행대를 제5정찰비행대로 이름을 바꾸어 정찰임무를 맡기고 요크타운의 나머지 비행대들은 모두 하와이에 내려놓았다.
대신 원래 새러토가 항공단에 소속되어 있던 제3폭격비행대, 제3전투비행대, 제3뇌격비행대를 요크타운에 배치하여 미드웨이 해전에 내보낸 것이었다.
이 사실은 미국해군이 채택하고 있던 항공모함의 함정 자체와 그 비행단을 분리하여 운영하는 제도가 가지는 유연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산호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자체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항모의 비행단이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그걸 복구하느라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 못한 일본항공모함 즈이가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이 방식의 장점을 잘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항공모함의 함정 자체와 그 비행단 사이를 분리하는 방식의 유연성은 그 뒤로도 여전히 발휘되었다.
예를들어, 태평양전쟁 후반기에 항공모함 함재기 중에서 전투기의 비율을 크게 늘리면서 동시에 신예 F-4U Corsair 전투기를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로 했는데 해군에 있던 코르세어 전투기의 숫자가 부족했다.
그러자, 코르세어를 장비한 해병대의 전투비행대들이 해군의 항공모함에 배치되었다.
오전 10시 20분, 불과 3시간여 동안 무려 8번이나 감행된 미드웨이 항공대와 함재기들의 연속적인 공격을 제로기 11대 격추라는 비교적 적은 피해로 막아내면서 공격대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안겨준 나구모 제독과 그 참모들은 이제야말로 자신들이 미국항공모함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들떠 있었다.
미드웨이 공격에 나섰던 항공기들 중 돌아온 93대는 모두 무사히 착함하여 격납고에서 무장과 연료를 공급받는 중이었고, 함선공격용 무장을 갖춘 공격대와 호위를 맡을 제로기들도 모두 준비를 마치고 비행갑판에 도열해 있었다.
곧 공격대의 제1번기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구모 제독이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바로 그 순간, 일본제1항공함대의 상공, 고도 6,000m 지점에서는 미드웨이 해전의 향방, 나아가 태평양전쟁의 향방을 일시에 결정지을 세력들, 기고만장한 일본항공모함의 머리 위에 곧 재앙의 불벼락을 퍼부을 준비가 된 죽음의 사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맥클러스키 소령 지휘 하의 돈틀레스기 31대가 마침내 제1항공함대의 상공에 도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