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함대가 동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할 때쯤, 오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던 일본제1항공함대의 항공모함들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침몰한 것은 소류였다.
오후 7시 13분, 소류는 함장 야나기모또 류사꾸 대좌와 718명의 전사자와 함께 침몰했다.
7시28분에는 카가가 800 여명의 전사자와 함께 침몰했다.
아까기는 밤새 가라앉지 않고 있었으나, 야마모또 제독의 처분명령을 받은 동료 구축함의 어뢰 4발을 맞고 5일 새벽 4시 55분에 263명의 전사자와 함께 침몰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히류도 5일 새벽 2시 30분에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이어서 5시 10분에 동료 구축함의 어뢰 2발을 맞았으나 3시간을 더 가라앉지 않고 버티다가 오전 8시 20분에 침몰했다. 제2항공전대장 야마구찌 다몬 소장과 함장인 가꾸 도메오 대좌가 416명의 전사자와 운명을 같이 했다.
1942년 6월 4일은 야마모또 제독에게 몹시도 가혹한 날이었다.
제1항공함대에서 약 600km 떨어진 본대에 있던 그에게 오전 11시경에 경순양함 나가라에서 나구모 제독이 3척의 항공모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해왔고 오후 늦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항모 히류마저 불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야마모또 제독은 상당히 당황했으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전투를 속행하기로 결심했다.
오후 8시 30분, 그는 일련의 명령을 내려 우선 본대를 최대속력으로 미드웨이 쪽으로 항진시키고, 항모 2척을 보유한 북방부대에게 즉시 남하하여 자신과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제1항공함대의 호위함들에게는 즉시 미국함대를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드웨이 침공부대 지원함대를 이끌던 구리따 다께오 중장에게 휘하의 중순양함 4척(구마노, 스즈야, 미꾸마, 모가미) 과 구축함 2척을 이끌고 미드웨이를 포격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미드웨이 근해의 잠수함들에게도 밤에 미드웨이를 포격하고, 날이 밝으면 상처를 입은 미국 항공모함들을 찾아서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구리따 제독 휘하의 4척의 중순양함들은 미드웨이를 향하여 최대속력으로 접근했다.
오후 9시 30분에는 항공모함을 상실한 후 의기소침해 있던 나구모 중장의 지휘권을 박탈하여, 제1항공함대에 대한 지휘권을 미드웨이 침공부대 주력을 이끌고 있던 곤도 노부다께 중장에게 맡겼다.
하지만 야마모또 제독의 이러한 반격계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다.
우선 야마모또 자신이 이끄는 본대부터가 제1항공함대에서 500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북방부대 또한 마찬가지로 전투해역에 도착하려면 이틀이나 걸릴 예정이었다.
만일 제1항공함대와 미드웨이 침공부대 소속 수상함들이 미국함대를 쫓다가 밤새 그들을 포착하는데 실패할 경우 날이 새면 아직 항모를 2척이나 보유한 미국함대로부터 반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순양함에서 발진한 정찰기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함대는 일본함대로부터 200km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함대의 지휘관이 야전을 벌이려는 야마모또 제독의 속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정을 막 넘긴 5일 새벽 0시 15분, 야마모또 제독은 곤도 중장에게 미국함대의 추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새벽 2시 55분, 야마모또 제독은 마침내 미드웨이 작전의 중단을 공식선언하고, 휘하 함대에게 서쪽으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북방부대에게는 남하 명령을 취소하고, 미드웨이 탈취에 실패함으로써 이미 소용이 없어진 애투와 키스카 섬 상륙을 강행하도록 명령했다.
이미 미드웨이 작전이 실패한 마당에 작은 전과라도 거두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대본영 군령부는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를 철저히 은폐하고, 알류샨 열도의 애투와 키스카 섬 점령 사실만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야마모또 제독의 명령을 받고 미드웨이를 포격하기 위하여 고속으로 접근하던 구리따 제독의 미드웨이 침공부대 지원함대는 작전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황급히 철수했다.
6월 5일 새벽 3시 42분, 미국잠수함 SS-198 Tambor 가 미드웨이 서쪽 140km 지점에서 서쪽으로 급히 퇴각하는 구리따 함대의 함정들을 발견했다.
구리따 함대에서도 탬버 호의 잠망경을 발견했고 탬버 호는 일본구축함들이 폭뢰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몰려오자 황급히 잠항하여 탈출했다.
(미국잠수함 탬버. 표준배수량 : 1,475톤, 길이 : 93.6m, 폭 : 8.3m,속력 : 수상 - 20.4노트, 수중 - 8.8노트, 항속거리 : 10노트로 20,000km, 잠항심도 : 76m, 승무원 : 60명, 무장 : 533mm 어뢰 발사관 - 전방에 6개 , 후방에 4개, 어뢰 24발, 76mm 함포 1문, 12.7mm 기관총 2정, 7.62mm 기관총 2정)
그런데 그 순간 탬버 호가 어뢰를 발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중순양함 모가미가 회피운동을 하다가 자매함 미꾸마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말았다.
그리하여 미꾸마는 연료탱크가 터졌고, 모가미의 함수도 크게 부서졌다.
구리따의 중순양함 중 구마노와 스즈야는 먼저 대피했고, 상처를 입은 미꾸마와 모가미는 기름을 줄줄 흘리면서 2척의 구축함과 함께 14노트의 속력으로 뒤에 처졌다.
오전 7시 45분, 미드웨이를 떠난 돈틀레스들과 빈디케이터들이 모가미과 미꾸마를 공격했다.
이들은 또다시 한발의 폭탄도 명중시키지 못했으나, 대공포화에 피탄된 빈디케이터 한대가 미꾸마의 후방포탑에 자살공격을 감행하여 미꾸마를 대파하고, 안 그래도 느린 속력을 더 떨어뜨렸다.
(SB2U 빈디케이터 급강하폭격기. 승무원 : 2명, 길이 : 10.4m, 폭 : 12.8m, 최고속력 : 404km/hr, 항속거리 : 1,014km, 무장 : 7.62mm 기관총 2정, 1정은 동체, 1정은 오른쪽 날개, 454kg 짜리 폭탄 1발)
이어서 B-17 기들이 이들을 공격했으나 역시 모두 빗나갔다.
다나베 야하찌 소좌가 지휘하는 제30잠수전대 소속의 잠수함 I-168 호는 야마모또 제독의 명령에 따라 5일 새벽 1시30분에 해면에 부상하여 미드웨이를 향하여 100mm 포로 8발을 사격했다.
이 포탄 8발이 대공포화를 제외하고, 일본함대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실시한 유일한 포격이다.
그 이후 I-168 은 미드웨이 작전이 중지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상처입은 미국항공모함을 찾아서 격침하기 위하여 미드웨이 북쪽 해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6월5일 새벽, 요크타운이 일본군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격침하라는 명령을 받고 요크타운에 접근했던 미국구축함 DD-410 Hughes 는 아직까지 요크타운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보고했다.
오후 2시 26분에 예인선 Vireo 가 도착하여 3노트의 속력으로 요크타운을 예인하기 시작했다.
곧 벅매스터 함장이 이끄는 손상관리반이 승선하여 물이 새는 곳을 막고, 망가져 버린 기기들을 바다에 버림으로써 함의 중량을 줄여 침몰위험을 줄이고 예인하기 쉽도록 응급처치를 했다.
곧 구축함 DD-412 Hamman을 비롯한 여섯 척의 구축함이 더 도착했다.
해먼은 요크타운 옆에 바짝 붙어서 응급처치에 필요한 전력과 동력을 공급하고 ,나머지 6척은 주변에서 대잠경계망을 펼쳤다.
한편 밤새 일본함대를 피해서 미드웨이의 북동쪽 해상으로 물러났던 미국함대는 새벽이 가까워오자 15노트의 속력으로 서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찰을 내보내기에는 돈틀레스의 숫자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스프루언스 제독은 정찰기를 발진시키지 않고 미드웨이의 정찰기에서 보고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8시 30분, 미드웨이의 카탈리나 기가 상처입은 항공모함 1척이 전함 2척 및 순양함 3척과 함께 북서쪽으로 도주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들은 일본제1항공함대의 호위함들 중 일부로서 전함 2척은 틀림없이 있었으나, 상처입은 항공모함 1척은 정찰기가 잘못 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보고를 들은 스프루언스 제독은 즉시 미국함대를 북서쪽으로 변침시키고, 시속 25노트의 속도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오후 2시, 공격대의 출격을 앞둔 엔터프라이즈의 함교에서 제16기동부대의 참모장인 브라우닝 대령과 엔터프라이즈 항공단장 맥클러스키 소령 사이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브라우닝 대령이 380km 떨어진 적을 공격하는데 450kg 짜리 대형폭탄을 달고 출격하라고 명령하자, 맥클러스키 소령이 그런 무거운 폭탄을 달고 그 먼거리를 폭격하러 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며 사령관 스프루언스 소장의 면전에서 브라우닝 대령에게 마구 대들었다.
제6정찰비행대장 갈라허 대위와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인 Georgr D. Murray 대령도 맥클러스키 소령의 주장에 동조했다.
보다못한 스프루언스 소장이 나서서 분노로 길길이 날뛰는 브라우닝 대령을 제지하고, 맥클러스키 소령에게
"자네들 조종사들이 원하는대로 해 주겠네."
라고 하면서 논쟁을 종식시켰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의 항공모함에서 함재기 조종사들의 지위가 꽤 높고, 계급에 비하여 발언권이 상당히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전 때도 오후 늦게 상당한 장거리 폭격을 감행하는 바람에 무려 80대의 함재기가 귀환 도중에 연료부족으로 캄캄한 밤바다에 불시착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구사일생으로 귀함한 제58기동부대의 기함 CV-10 Yorktown 비행단 소속 조종사들이 사령관 미처 중장에게 따지겠다며 전투지휘소에 들어가려고 하는 바람에 그것을 뜯어 말리느라고 제58기동부대 참모들이 진땀을 뺀 적도 있었다.
하긴 함정의 존재가치 자체를 순전히 함재기의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항공모함에서 함재기 조종사들이 누리는 권위와 특혜는 상당한 것이었다.
미해군의 어느 장교는 이를 빗대어
“항공모함이란 3,400 명의 하인들이 100 명의 도련님들을 모시고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함정”
이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오후 3시 12분, 32대의 돈틀레스들이 225kg 짜리 폭탄을 달고 엔터프라이즈를 떠났다.
호넷은 이번에도 연락을 늦게 받아서 3시 43분에야 공격대를 발진시킬 수 있었다.
폭격결과는 한심했다.
목표지점에서 항공모함은 커녕 일본구축함 다니까제 한 척밖에 발견하지 못한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공격대는 다니까제에게 달려들어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모또이 가쓰미 중좌가 지휘하는 다니까제는 지그재그로 재빠르게 회피동작을 취하여 그 수많은 폭탄을 다 피했을 뿐 아니라 빈약한 대공화기로 반격을 가하여 제5정찰비행대 소속의 Samuel Adams 대위를 격추했다.
공격대가 귀환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스프루언스 제독은 일본잠수함의 위협을 무릅쓰고 귀환하는 비행사들을 위하여 전 함대의 등화를 환하게 밝혔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야간착함훈련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대의 사고도 없이 무사히 착함을 마쳤다.
다만 호넷에서 발진한 돈틀레스 5대가 엔터프라이즈에 잘못 착륙하고, 제6정찰비행대의 돈틀레스 한 대가 호넷에 잘못 착륙하여 양함의 갑판요원들을 잠시 당황하게 만든 정도였다.
그렇게 6월 5일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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