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태평양함대는 열세한 세력으로 일본연합함대에게 결정적인 기습을 가하기 위하여, 일본측이 자신들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일본해군이 그들의 장거리 비행정을 띄워서 진주만을 정찰하지 못하도록 부족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구축함을 한 척 빼내어 장거리 정찰시 일본측이 급유장소로 이용하고는 하던 프렌치 프리게이트 숄에 아예 붙박이로 배치해 놓았다.
실제로 일본해군은 미드웨이 공략작전을 앞두고 장거리 비행정에 의한 진주만 정찰을 계획했었으나, 급유장소로 이용해야 할 프렌치 프리게이트 숄에 미국의 구축함 한 척이 배치되어 있는 걸 보고는 포기했다.

혹자는 급유장소로 인근의 네커 섬을 이용하든지 하는 방법으로 정찰할 수 있었는데 정찰을 가볍게 포기했다고 하여 이를 미드웨이 해전을 앞둔 일본해군의 해이한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사례로 들고 있으나, 사실 당시 네커 섬에도 감시가 붙어있었고 전반적으로 미해군이 일본해군의 정찰에 대하여 상당히 강도높게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찰이 반드시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상당히 어려웠던 것만은 틀림없다.

사실 진주만 기습과 비교해 볼 때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해군의 기밀유지 노력이나 정보획득 노력이 많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진주만 기습 당시에는 일본해군이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써서 그들의 무선통신에서 진주만 기습을 암시하는 무선통신이 단 한 차례도 감청되지 않았고, 따라서 태평양함대의 암호해독반도 진주만 기습을 사전에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사실 니미츠 제독도 사령관이 된 직후에는 진주만 기습을 미리 경보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태평양함대의 암호해독반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미드웨이 공략의 경우에는 전혀 딴판이었다.
야마모또 제독이 너무나 많은 명령을 무선통신으로 내리고, 굉장히 중요한 핵심사항까지 암호해독반에서 감청하게 되자, 태평양함대 사령부 일각에서는 일본해군이 태평양함대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무선통신으로 엉터리 정보를 흘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1항공함대같은 경우 구레 군항에서의 보급품 적재 작업도 일반인들이 다 볼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져 누구라도 목표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일본함대가 큰 규모의 작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하급장교들과 병사들까지 부두에서 미드웨이를 점령하러 간다고 거리낌없이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또한 미드웨이로 항진하는 중에도 한 함정에서 앞으로 병사들에게 편지하려면 주소를 어디로 해야하느냐고 물으면 다른 함정에서 평문으로 미드웨이라고 답한 경우까지 있었다니 보안유지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해이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1항공함대와 본대가 출발할 때 미국잠수함에게 탐지되었고, 일본군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니미츠 제독은 휘하의 잠수함 세력을 여기저기 흩어놓지 않고 대부분의 잠수함들을 미드웨이 침공부대를 요격할 수 있는 위치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놓았다.
따라서 만약 미드웨이 침공부대가 예정대로 상륙을 시도했다면 이 잠수함들에 의하여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야마모또 제독의 본대가 출항한 다음날인 5월30일에 심상찮은 첫 번째 징후가 포착되었다.
도꾜의 대본영 군령부에서 하와이 부근에서 훈련 중인 미해군 조종사들의 무전내용을 도청한 결과 미국항공모함이 진주만에서 미드웨이로 이동하는 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야마도또 제독에게 통보한 것이다.

사실 일본군과 미해군의 도청 실력을 비교해 볼 때 도청한 내용을 해독해 내는 능력은 미해군이 훨씬 앞섰으나, 무선통신 자체를 도청해내고 발신지점을 알아내는 등의 하드웨어적인 능력은 오히려 일본군이 더 우수한 편이었고 이 점은 니미츠 제독도 시인하는 부분이었다.

야마모또 제독은 대본영의 이러한 경고를 나구모 제독에게 중계하려 하였으나, 구로시마 가마히토 소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그렇게 하면 본대의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이 있고, 또한 나구모 제독도 대본영으로부터의 무선을 본대와 동시에 받았을 것이라며 반대하여 그만두었다.
사실 나구모 제독은 이런 상황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한 제1항공함대가 변침예정지점에 도착했을 때 해상의 안개가 너무 짙어서 깃발신호나 불빛신호를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서 약한 무선통신을 통하여 변침을 실시했는데 이 통신은 1000km 후방에 있던 야마모또 제독의 본대에서도 뚜렷이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구모 제독은 미해군이 연합함대의 작전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1942년 6월 3일 오전 8시, 북방함대가 알류샨 열도 우날래스카 섬의 더치하버 전방 330km 까지 진출하여 제로기 5대, 발 폭격기 12대, 케이트 뇌격기 6대를 발진시켜서 공습을 실시했다.
북방함대를 막기 위하여 편성된 제8기동부대를 이끌던 테어볼드 소장은 일본군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알류샨 열도를 차지하려고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북방함대의 진짜 목적은 알래스카라고 판단하여 자신의 함대를 코디액 섬의 남쪽 해상에 배치했다.
이 위치는 북방함대로부터 거의 1,600km 나 떨어진 장소였으나 중순양함 중심의 약체함대였던 제8기동부대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일본기의 공습은 더치 하버에 약간의 피해를 주었고 이어서 애투 섬과 키스카 섬에 대한 상륙작전이 실시되었다.
일본군은 원래 애닥 섬도 점령하려고 하였으나 주변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한편 미국은 일본군의 알류샨 열도 공격작전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즉 그날 류조를 출발하여 더치하버를 폭격한 제로기 중의 한 대가 연료탱크에 2발의 총탄을 맞은 후에 귀함하지 못하고 아쿠탄 섬이라는 조그만 무인도에 불시착하다가 뒤집혀서 조종사가 사망했다.
약 한 달 후인 1942년 7월 10일에 알래스카 해안경비대 소속의 카탈리나 기가 이 섬에서 뒤집힌 상태의 제로기를 발견하여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거의 완전한 상태였다.
미국은 즉시 이 제로기를 가져다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하여 그 성능을 확인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이미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핼캣에 대대적인 개조를 가하여 헬캣은 명실상부한 제로기 킬러로서 태어나게 된다.

사실 아쿠탄 섬에서 제로기가 발견되기 7개월 전인 1941년 11월 26일에 중국전선에서 불시착한 한 대의 제로기가 중국군에 의하여 입수되었다.

그러나, 이 제로기가 실제로 미국에 들어온 것은 1943년이었고, 따라서 미국이 제로기에 대하여 얻은 지식의 대부분은 아쿠탄 섬에서 발견한 제로기를 시험하여 얻은 것이다. 

 

(아쿠탄 섬에서 발견된 제로기를 조사하고 있는 미군 관계자들)

 

진주만에서는 더치하버 공습 소식을 일종의 낭보로서 받아들였다.
즉 그들은 이 소식을 일본연합함대의 행동에 관한 그들의 예측이 옳았으며, 연합함대가 그 이후에 작전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니미츠 제독은 곧 미드웨이의 정찰비행대에 일본함대의 출현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정찰활동을 더한층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미 미드웨이의 PBY Catalina 비행정들은 연료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멀리 정찰비행을 실시하고, 악천후가 닥쳐도 비행이 가능한 한 이미 예정된 정찰비행을 취소하거나 단축하지 않도록 엄중한 명령을 받고 있었다.
개전 이래의 잇단 승리에 취하여 자신감 과잉으로 분위기가 다소 해이해져 있던 일본연합함대와 달리 미태평양함대는 다가올 해전에서 열세한 세력으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잔뜩 긴장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42년 6월 3일 오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미드웨이 정찰대의 Jack Reid 소위가 방위 282도, 거리 1,020km 지점에서 다나까 소장의 미드웨이 침공부대를 발견했다.

다나까 소장은 무선침묵을 해제하고 자신이 발견되었음을 본대와 제1항공함대에 알렸다.
나구모 제독은 미드웨이 침공부대가 발견된 것은 이미 예정되었던 일로 생각하고 계획대로 다음날인 4일 새벽에 미드웨이를 폭격하기로 했다.

오후 4시 30분에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16대의 B-17 들이 다나까 제독의 함대에 폭격을 가했으나 실패했다.

오후 늦게 어뢰를 장비한 카탈리나 비행정 4대가 미드웨이를 떠나 일본군 수송선단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6월 4일 새벽 1시경에 다나까 함대를 발견하고 어뢰를 발사하여 수송선 기요쓰미 마루와 유조선 아께보노 마루에 명중시켜 전사 11명, 중상 8명, 경상 13명의 인명피해를 입히고 양함의 속력을 떨어뜨렸다.

이것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태평양함대가 거둔 첫 전과이자 사실상 항공어뢰에 의한 유일한 전과였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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