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 2일,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환초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샌드 섬과 이스터 섬의 방어준비를 시찰한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의 총지휘관인 C.T.Simard 해군중령과 지상군 지휘관인 H.Shannon 해병중령에게 그들이 미드웨이를 방어하는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다.
곧 여러가지 요구사항을 적은 기다란 목록이 제출되었는데, 그후 1개월동안 니미츠 제독은 그 목록에 적힌것보다 더 많은 비행기와 장비들을 미드웨이로 보내어 이 섬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니미츠 제독은 시머드 중령과 섀넌 중령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그들을 대령으로 진급시키고 대령 계급장을 보냈다.

 

가정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 미드웨이 환초의 방어태세를 보았을 때 만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함대가 미국함대를 격멸하는데 성공하여 미드웨이 환초에 상륙을 실시했더라도 상륙작전 자체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일본군 상륙부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전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압도적인 화력지원을 받고 있던 미해병대가 타라와 환초에서 치른 희생을 생각해 보면 만일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 해병대원만 2,100명이 넘고 해군 및 조종사 등을 합쳐서 3,600 명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고, 철조망과 지뢰, 참호 등으로 강력하게 요새화된 미드웨이 환초에 해군육전대 2,800 명과 육군 3,000 명등 불과 5,800 명의 일본군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했다간 아마도 상륙부대가 거의 몰살당하는 전대미문의 대참극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했다면 주변의 제해권을 장악했을 테니까 미드웨이 환초에 대한 보급을 끊어서 결국에는 점령할 수 있었겠지만..
그만큼 환초라는 조건 자체가 상륙작전을 실시하려는 공격자에게 얼마나 불리한 여건인지를 타라와 상륙작전 이전에는 미국이나 일본 양측이 모두 잘 모르고 있었다.

당시 일본해군은 JN25 라는 암호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암호는 일본 외무성이 사용하던 자줏빛 암호(Purple Code)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JN25 는 5자리 숫자 4만 5천여개로 이루어져 각 숫자가 단어나 구문을 의미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해독을 방해하기 위하여 문장의 중간중간에 아무 의미가 없는 숫자들을 끼워넣는 안전장치와 함께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암호체계는 해독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으며 실제로 일본해군은 암호해독용 난수표가 없는 한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 암호에 의한 통신량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에 미태평양함대의 암호해독반은 복잡한 계산을 빨리 처리해주는 IBM사 기기의 도움을 받아 방대한 양의 통신문에서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어 분류하고 이를 이미 알고있는 정보와 대조하여 각 숫자가 뜻하는 내용을 확인하고 해독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사용된 의미없는 숫자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 암호를 상당부분 해독할 수 있었다.

1942년 5월 20일, 야마모또 제독이 발신한 암호전문에서 AF 가 공격목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일본해군은 태평양상의 지명에 대하여 A 로 시작하는 기호를 붙여 사용했는데 가령 하와이는 AH, 일본비행정이 급유를 위하여 잠수함과의 접선장소로 가끔씩 사용하곤 하던 프렌치 프리게이트 숄은 AG 라는 식이었다.
1942년 3월에 일본비행정이 프렌치 프리게이트 숄에서 급유를 받은 다음 진주만의 해군공창을 폭격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 비행정은 주변의 AF에서 떠오른 정찰기를 주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 이후로 태평양함대의 암호해독반과 이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있던 니미츠 제독은 AF가 당연히 미드웨이를 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참모들 중 일부는 AF 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더구나 육군같은 경우는 일본의 다음 목표가 샌프란시스코라고 주장하고 있던 형편이라 태평양함대의 암호해독반으로서는 AF 가 미드웨이를 뜻한다는 보다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암호해독반의 Joseph Finnegan 소위의 제안에 따라 미드웨이에 도청의 우려가 없는 해저전선을 통하여 미드웨이의 해수담수화시설이 고장나서 식수가 부족하다고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평문으로 무전을 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미드웨이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명령에 따라 멀쩡한 해수담수화시설이 고장나서 식수가 부족하다고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무전을 쳤다.
그로부터 2일 후에 암호해독반이 'AF 에 식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는 내용의 일본군 무전을 도청하여 AF 가 미드웨이라는 사실이 확인했다.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의 항공력 강화를 위하여 열차운반선을 개조한 수상기모함 커티스 호에 최신형 TBF Avenger 뇌격기 7대, 와일드캣 7대,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18대 등을 실어다가 미드웨이에 내려주고, 육군항공대의 B-17 Flying Fortress 19대와 어뢰를 장비한 B-26 Marauder 4대도 보냈다.

 

(수상기모함 커티스 AV-4. 배수량 : 8,671 톤, 길이 : 161m, 폭  : 21.1m, 속력 : 20노트, 승무원 : 1,195명, 무장 : 5인치 양용포 단장 4문, 40mm 기관포 4문)

 

그리고, 조금이라도 먼저, 조금이라도 더 먼 거리에서 적을 발견하기 위하여 진주만에 있던 PBY Catalina 초계비행정 32대도 미드웨이로 파견했다.
그리하여 원래 구식 F-2A Buffalo 전투기 21대와 조종사들이 풍향계라고 부르던 낡은 SB-2U Vindicator 급강하 폭격기 16대등 총 37대로 구성되어 있던 미드웨이 섬의 항공대는 카탈리나 기를 포함하여 합계 124대나 되는 각종 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다만 이때 새로 배치된 항공기의 조종사들은 대부분 비행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조종사들이라 그 전력은 보기보다는 많이 약한 편이었다.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미드웨이 항공대는 일본군의 제로 전투기에 의하여 괴멸적인 타격을 입으면서도 나구모 함대에 용감하게 접근하여 공격을 반복함으로써 보다 숙련된 항공모함의 함재기 조종사들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일정부분 공헌을 했지만 그들 자신의 전과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1942년 5월 하순경, 니미츠 제독은 정보참모 Edwin T. Layton 대령에게 일본함대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요구했다.
조심스러운 레이튼 대령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니미츠 제독은 더 구체적인 예측을 요구했고 마침내 레이튼 대령은 니미츠 제독에게 거의 예언하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함대는 미드웨이 현지시각으로 6월 4일 오전 6시에 북서쪽인 방위 325도, 175 마일 거리에서 우리에게 발견될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함대가 발견된 시각은 6월 4일 오전 5시 55분, 방위 320도, 거리 180 마일로서, 레이튼 대령의 예측으로부터 시간으로 5분, 방위 5도, 거리도 5마일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그분이 오셨어용~~^..^;;)

 

(태평양함대의 정보참모 레이튼 대령)

 

1942년 5월 27일에 태평양함대사령부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앞두고 마지막 작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적의 정세에 대한 비밀문건을 받아본 장교들은 한결같이 일본측 참가함선의 수, 이름, 작전계획은 물론이고 지휘관의 이름까지 너무도 상세하게 기록된 그 문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회의에서 적의 부대 중에서 나구모 중장의 항공모함기동부대 격멸을 제1의 목표로 하며, 이 목표를 위하여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는 미드웨이의 동북방 해상에 매복해 있다가 미드웨이의 북서쪽에서 접근하는 일본의 항모기동부대에서 출격한 함재기들이 미드웨이를 폭격하고 돌아가서 항공모함 갑판에 착함하는 순간을 노려 기습하기로 결정했다.

1942년 5월 31일, 항공모함 호넷의 함장이었던 미처 대령이 소장으로 진급했다.

1942년 6월 1일, 지난 1월 11일에 일본잠수함에게 뇌격을 당해 입었던 피해를 완전히 수리한 새러토가가 피치 제독 지휘하에 기동부대 편성을 마치고 샌디에고 항을 떠나 급히 진주만으로 향했으나,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했다.
니미츠 제독은 모자라는 항모세력을 조금이라도 보완하려고 인도양에 있던 영국항모 3척 중 1척을 빌리고자 하였으나, 일본의 다음 목표가 인도양이라고 믿고있던 영국 해군성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1942년 6월 2일, 진주만에서 북쪽으로 650km 떨어진 행운의 지점에서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가 합류하여 선임자인 제17기동부대의 플레처 소장이 전술적 지휘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미국항모기동부대는 미드웨이 동북방 해상에서 매복에 들어갔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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