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과의 연락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피지와 사모아, 뉴칼레도니아로 진출하는 작전에 우선권을 두면서 일본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또 제독의 미드웨이 공략작전에 반대하던 일본해군 수뇌부의 분위기는 1942년 4월 18일에 있었던 둘리틀 공격대의 도꾜폭격 이후 급격히 야마모또 제독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 5월 5일에 나가노 오사미 군령부 총장은 야마모또 제독에게 미드웨이 공략계획, 즉 MI 계획을 실시할 것을 정식으로 명령했다.

 

(군령부 총장 나가노 오사미 제독)

 

야마모또 제독과 그 참모들이 작성한 이 작전계획에 따르면 남아있는 미국의 태평양함대 세력을 완전히 격멸하기 위하여 당시 일본연합함대의 함정들 대부분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이 거대한 함대는 크게 4개의 부대로 나뉘어졌는데, 알류샨 열도 공격을 담당한 북방함대, 나구모 중장 지휘하의 제1항공함대(기동부대), 미드웨이 침공부대, 그리고 야마모또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본대였다.
이러한 작전 계획의 문제점은 함대세력이 지나치게 분산되었다는 것과 각 부대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 중 어느 한 부대라도 미해군의 반격을 받아 위험에 빠졌을 때 부대끼리 상호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나구모 제독의 제1항공함대가 미국 항모기동부대의 공격을 받아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있을 때 야마모또 제독의 본대를 비롯한 다른 부대들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1942년 5월 27일 오전 8시, 나구모 쥬이찌 중장이 지휘하는 제1항공함대(기동부대)가 경순양함 나가라를 선두로 하여 히로시마 만의 하시라지마 정박지를 떠나 미드웨이를 향하여 출발했다.
제1항공함대는 정규항모 4척(아까기, 카가, 소류, 히류), 전함 2척(기리시마, 하루나), 중순양함 2척(도네, 치꾸마), 경순양함 1척(나가라) 그리고 구축함 1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5월 28일에는 제5함대 사령관인 호소가야 모시로 중장이 지휘하는 북방부대가 오미나또를 뒤로하고 알류샨 열도를 향하여 출발했다.
이 부대는 정규항모 1척(준요), 경항모 1척(류조), 중순양함 3척(나찌, 마야, 다까오), 경순양함 3척(아부꾸마, 기소, 다마), 구축함 1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애투, 애닥, 키스카 섬을 점령하기 위하여 병력을 실은 3척의 수송선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 북방부대는 본대에서 파견되는 다까수 시로 제독의 강력한 호위함대의 지원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이 호위함대는 전함 4척(히우가, 이세, 후소, 야마시로), 경순양함 2척(기타가미, 오이), 구축함 1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같은 날인 5월 28일, 사이판에서 수일간의 상륙연습을 마친 일본육군의 이찌기 지대 3,000 명과 해군 제2연합특별육전대 2,800 명이 다나까 라이조 소장이 지휘하는 수송선단에 승선하여 사이판을 떠났다.
다나까 소장은 12척의 수송선, 3척의 고속수송선과 1척의 보급함으로 이루어진 이 수송선단을 호위하기 위하여 경순양함 1척(진쑤)과 구축함 10척으로 이루어진 제2수뢰전대를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역시 같은 날인 5월 28일에 구리다 다께오 중장이 지휘하는 제7전대가 괌을 출발하여 수송선단과 약 50km 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동진하며 근접호위를 담당했다.  
제7전대는 중순양함 4척(구마노, 스즈야, 미꾸마, 모가미)과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5월 29일에는 제2함대 사령관 곤도 노부다께 중장이 지휘하는 미드웨이 공략부대 주력이 출발했다.
이 부대는 전함 2척(공고, 히예이), 경항공모함 1척(즈이호), 중순양함 4척(아타고, 죠까이, 묘고, 하구로), 경순양함 1척(유라),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같은 날인 5월 29일에 마침내 야마모또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본대가 출동했다.
이 본대는 북방함대의 지원을 위하여 알류샨 열도로 향한 다까수 제독의 제1전대를 제외하고, 전함 3척(야마또, 나가또, 무쓰), 경항공모함 1척(호쇼), 경순양함 1척(센다이), 구축함 9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합쳐 정규항모 5척, 경항모 3척, 전함 11척, 중순양함 13척, 경순양함 9척, 구축함 65척의 거대한 세력으로 여기에다가 잠수함 22척과 수상기 모함, 소해정 및 기타 보조함정들을 합치면 거의 200 척에 가까운 대함대였다.

한편 이에 대항하는 미태평양 함대의 세력은 상당히 열세한 편이었다.

스프루언스 소장이 지휘하는 제16기동부대는 정규항모 2척(엔터프라이즈, 호넷), 중순양함 5척(미네아폴리스, 뉴올리언스, 빈센스, 노댐턴, 펜사콜라), 경순양함 1척(애틀랜타), 구축함 13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플레처 소장의 제17기동부대는 정규항모 1척(요크타운), 중순양함 2척(아스토리아, 포틀랜드),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알류샨 열도 방어를 위하여 Robert Alfred Theobald 소장 휘하에 제8기동부대를 편성했는데 그 세력은 중순양함 2척(인디애나폴리스, 루이즈빌), 경순양함 3척(내쉬빌, 호놀룰루, 세인트루이스), 구축함 13척이었다.

전체적으로 정규항모 3척, 중순양함 9척, 경순양함 4척, 구축함 32척으로 이루어져 있어 잠수함 19척을 합쳐도 일본연합함대에 비하여 확실히 열세였다.
게다가 제로기의 우수한 성능과 일본측 항공승무원들의 높은 숙련도, 그리고 미태평양함대에 전함이 한 척도 없다는 점등을 고려하면 실제 전력차이는 숫자로 나타난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미태평양 함대는 일본연합함대에 비하여 유리한 점도 몇 가지 가지고 있었다.

1. 연합함대의 세력이 널리 분산되었고 각 부대간의 거리가 멀어 일단 유사시 상호지원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비하여 태평양함대의 타격력은 효율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2. 태평양함대는 연합함대가 가지지 못한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다.
3. 태평양함대는 연합함대의 공격력(특히 항공력)을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는 (몸빵용?) 항공기지인 미드웨이를 가지고 있었다.
4. 가장 중요한 점으로서 태평양함대는 상대방인 연합함대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는데 성공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의도는 해전 당일까지도 완벽하게 숨기는데 성공했다.

미태평양함대는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진 이러한 잇점들을 최대한 살리는데 성공하고, 거기다가 상대방인 제1항공함대의 나구모 제독이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판단착오를 일으키는 행운이 따라줌으로써 막강한 전력을 가진 일본연합함대를 무찌르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Posted by 대사(P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