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24일 새벽 2시, 일본제3함대의 제7전대장인 하라 쥬이찌 소장이 나구모 중장의 명에 따라 경항공모함 류조, 중순양함 도네,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견제부대를 형성하여 공격부대 전방으로 나섰다.
견제부대의 임무는 곤도 제독의 호위부대 전방 100km 지점까지 나아가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한 다음 다나까 제독의 침공부대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24일 아침에 새러토가가 헨더슨 비행장에서 돌아온 자신의 공격대를 받아들이는 동안 엔터프라이즈에서는 23대의 돈틀레스들을 북방으로 날려보내어 320km 지역을 수색하였으나 일본함대를 찾는데 실패했다.
24일 오전 10시, 산타크루즈 섬을 출발한 카탈리나 기가 엔터프라이즈의 북서쪽 320km 지점에서 류조 중심의 견제부대를 발견했다.
예상보다 빨리 일본함대와 조우한 플레처 제독은 어제 급유를 위하여 와스프 중심의 제18기동부대를 남하시킨 결정을 후회했으나 물러서지 않고 2척의 항공모함만을 가지고 일본함대와 대결하기로 결심했다.
한편 류조는 작전계획에 따라 오전 11시에 전체 함재기의 70%에 해당하는 15대의 제로기와 6대의 케이트 뇌격기를 발진시켜서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했다.
플레처 제독은 류조가 발견된 이후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적의 항공모함이 발견된 이상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는 적에게 최소한 1척 이상의 항공모함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류조에 공격력을 집중하다가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일본항모에게 기습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제16기동부대사령관 킨캐이드 소장에게 명령을 내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일본항공모함을 찾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따라 오후 1시 15분, 16대의 돈틀레스와 7대의 아벤저가 450km 전방까지 정찰할 임무를 띄고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다.
30분 후인 오후 1시 45분, 플레처 제독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돈틀레스 30대와 아벤저 8대로 이루어진 새러토가의 공격대가 비행단장 Harry D. Felt 소령의 인솔 하에 류조를 노리고 출격했다.
새러토가의 공격대는 오후 3시 36분에 류조를 발견하고 공격에 들어갔다.
류조에 남아있던 9대의 제로기가 기를 쓰고 이들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류조의 함장 타데오 가또 대령은 교묘한 조함 실력을 발휘하여 처음 몇 발의 폭탄은 무사히 피했다.
그러나, 새러토가 비행단장 펠트 소령이 투하한 폭탄이 명중한 것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4발의 450kg 짜리 대형폭탄이 명중했다.
게다가 신형 아벤저 뇌격기 8대가 2개 편대로 나뉘어서 류조의 양쪽에서 동시에 어뢰를 발사, 그중의 한발을 방어가 취약한 수선하구역에 명중시켰다.
전투 개시 10분만에 450kg 짜리 대형폭탄 4개와 어뢰1발에 명중당한 류조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모든 기능을 상실했고, 그날 오후 8시경, 과달카날 북방 320km 해역에서 침몰했다.
새러토가의 공격대는 이 전투에서 단 한대도 상실하지 않고 전원 무사히 귀환했다.
펠트 소령의 공격대가 새러토가의 갑판을 떠난 지 45분 후인 오후 2시 30분, 치꾸마에서 발진한 일본의 수상정찰기가 엔터프라이즈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거리까지 침투했다가 CAP 세력에 의하여 격추되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의 카탈리나 기도 미국함대의 북쪽 320km 지점에서 일본항공모함 쇼가꾸와 즈이가꾸를 발견했다.
이미 류조 공격을 위하여 새러토가의 공격대를 모두 내보낸 플레처 제독은 류조를 공격하러 간 2개의 돈틀레스 비행대대 중 하나를 새로 발견된 쇼가꾸와 즈이가꾸에게 보내려고 연락을 취했으나 통신불량으로 실패했다.
한편 미국함대의 위치를 알아낸 나구모 제독은 오후 2시 55분에 쇼가꾸에서 발 급강하폭격기 27대와 제로기 10대로 구성된 제1차 공격대를, 오후 3시에는 즈이가꾸에서 발 급강하폭격기 27대와 제로기 9대로 구성된 제2차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24일 오후 4시 32분,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거리 160km 방위 320도에서 일본기의 편대를 포착했다.
당시 제11기동부대와 제16기동부대는 서로 15km 정도의 사이를 두고 각각 지름 3km 정도의 대공원형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동부솔로몬 해전은 함대의 상공에 침투하는 적기의 위협을 각 함의 개별적인 회피운동을 통하여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함대 전체의 진형을 유지하면서 대공포화를 집중하여 사전에 격추시켜 버린다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개념의 대공원형진을 미해군이 처음으로 실전에서 적용한 해전이다.
즉각 항공모함에 남아있던 와일드캣들이 발진하기 시작했고, 엔터프라이즈에 남아있던 11대의 돈틀레스와 6대의 아벤저도 일본함대를 향하여 모두 출격했다.
이 공격대는 대부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고 돈틀레스 2대만이 쇼가꾸에 폭격을 가했으나 지근탄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때 새러토가에서도 남아있던 돈틀레스 2대와 아벤저 뇌격기 5대를 일본함대를 향하여 출격시켰다.
이들은 오후 5시35분에 곤도 제독의 호위함대를 만나자, 수상기 모함 지또세에 어뢰 한발을 명중시켜, 좌측 엔진을 날려 버렸다.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일본의 제1차공격대를 포착한지 6분 후인 4시 38분에 일본기들도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하고 급속히 거리를 좁혀 왔다.
그런데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는 일본기들을 포착한 직후 무려 20분 이상 접촉을 놓쳐버렸다.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4시 55분에 다시 일본기들을 포착했을 때에는 이미 40km 전방까지 접근해 있었다.
엔터프라이즈의 와일드캣들이 즉시 방어에 나섰으나 이들을 저지하는데 실패했다.
오후 5시 12분, 엔터프라이즈의 4번 20mm 대공포대장인 Joseph R. Schinka 해병상사는 고도 6,000m 상공에서 접근하고 있는 일본기들이 와일드캣에 피격당하여 내뿜는 연기를 발견했다.
곧이어 신카 해병상사는 발 급강하폭격기의 은회색 기체를 구별할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정 승무원들이 큰 날개와 고정식 랜딩기어를 가진 일본해군의 발 급강하폭격기를 직접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곧 제16기동부대의 전 함정에 으스스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적기는 바로 함대 상공에 있다.”
이어서 함대 전체의 대공포화가 작렬했다.
쇼가꾸를 출격한 27대의 발 급강하폭격기 중에서 25대가 살아서 엔터프라이즈의 상공에 도달했다.
공격위치를 잡은 발 급강하폭격기들은 평균 7초에 한대의 비율로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연속적으로 급강하폭격을 실시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인 데이비스 대령은 교묘한 조함술로 처음의 몇 발은 무사히 피했으나 공격하는 적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신형전함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제16기동부대에서 쏘아올리는 치열한 대공포화가 하늘을 뒤덮었고, 와일드캣들이 아군의 대공포화에 맞을 위험을 각오하고, 급강하하는 발 폭격기의 꽁무니를 따라 급강하하면서까지 요격했으나 엔터프라이즈를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기들의 공격이 시작된 지 2분 후인 오후 5시 14분, 450m 높이에서 70도 각도로 투하된 250kg짜리 폭탄 한 발이 제3번 엘리베이터 전방에 명중하여 12m를 뚫고 내려가 제2갑판과 제3갑판 사이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하사관 거주 구역에 있던 엘리베이터 운용팀, 탄약관리요원들, 손상관리반 요원들이 폭발에 휘말려 35명이 즉사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우현쪽 수선 하에 직경 1.8m 짜리 구멍이 뚫렸고 그 곳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와 배가 우현으로 3도나 기울었다.
격납고 갑판에는 직경 5m짜리 구멍이 뻥 뚫렸고 그 가장자리는 최고 높이가 60cm나 될만큼 크게 우그러졌으며, 제3번 엘리베이터는 작동불능이 되었다.
폭발의 충격이 20,000만톤짜리 항공모함의 함체를 크게 흔들어 잠시동안 사람이 서있지 못할 정도였다.
불과 30초 뒤,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서 4.5m 정도 후방 오른쪽에 2번째 폭탄이 명중하여 2.4m 깊이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우현고물 쪽의 제5번과 제7번 127mm 포대가 폭발에 휩쓸리면서 5번 포대의 127mm 포의 장약 40세트가 유폭을 일으켜서 치명적인 화재를 발생시켰다.
이 폭발은 38명의 희생자를 내었는데 그 중의 10명은 도저히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미에 폭탄이 명중하는 순간. CA-33 포틀랜드에서 찍은 사진)
첫 번째 명중탄으로부터 불과 2분후인 5시 16분에 3번째 폭탄이 제2번 엘리베이터 전방의 비행갑판에 명중했다.
450m 높이에서 60도 각도로 투하된 이 폭탄은 신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천만다행으로 갑판에 격돌하자마자 폭발해 버렸다.
그리하여 이 폭탄은 비행갑판에 직경 3m짜리 구멍을 내고 제2번 엘리베이터와 어레스팅 기어를 망가뜨리면서 1명의 사망자를 기록했으나, 앞의 폭탄들에 비하면 피해는 가벼운 편이었다.
(세번째 폭탄의 폭발 장면. 뒷쪽으로 1분 30초 전에 명중한 두번째 폭탄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된 함미 우현의 127mm 포대에서 발생한 연기가 보인다. 이 폭발 장면은 오랫동안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전사한 로버트 프레드릭 리드 하사가 전사하는 순간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마리온 릴리 하사가 찍은 사진이다. 리드 하사는 1분 30초 전에 명중한 두 번째 폭탄에 의하여 전사했다.)
5시 17분에는 우현고물에서 불과 4m 거리의 수면에 지근탄이 떨어져서 폭발로 인하여 발생한 강력한 수압 때문에 우현 고물쪽 함체와 몇 개 갑판이 심하게 우그러졌다.
그 외에 3개의 지근탄이 더 떨어졌으나 그 피해는 비교적 가벼웠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일본 급강하 폭격기의 겨냥을 피하기 위하여 오른쪽으로 급회전을 하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함미 우현 쪽으로 127mm 포대에서 발생한 화염이 보인다. 이 포대에서는 2번째 명중탄에 의하여 포대의 장약이 유폭되면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38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한 일본공격대도 큰 피해를 입어서 총 37대 중 발 급강하폭격기 18대와 제로기 6대등 총 24대가 격추되었다.
엔터프라이즈가 3발의 폭탄에 직격당한 일은 취역 이후 처음으로 당한 큰 피해였으나, 평소에 철저한 훈련으로 단련된 엔터프라이즈의 손상관리반은 이런 위기상황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은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생존자를 구조하며, 피해구역의 전력을 복구하고, 폭발위험이 있는 가스들을 제거했다.
나아가 좌현쪽에 역침수를 통해 우현쪽으로 기울어진 함체를 복원시키고, 목재와 매트리스를 사용하여 우현쪽의 수선하 구멍을 막았다.
그리하여 엔터프라이즈는 피폭당한 지 1시간이 채 못 되어 이미 화재를 진압하고, 24노트의 속도를 회복했다.
엔터프라이즈는 즉시 자신의 함재기들을 수용하여 급유한 다음 헨더슨 비행장으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엔터프라이즈의 조타기계실이 침수되어 버린 오후 6시 21분에 찾아왔다.
처음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조타기계실 주변에도 화재가 번져서 환기가 중단되고, 조타기계실 내의 온도가 섭씨 80도 가까이 올라가자 내부의 인원이 모두 탈출했다.
그런데 조타기계실 주변의 화재를 진압하자 환기장치가 다시 작동되면서 부서진 환기통로를 통해 갑자기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조타기계실 전체가 침수되면서 키를 움직이는 전기모터가 작동을 중단했다.
그러자 그 거대한 키가 제멋대로 좌우로 흔들거리더니 오후 6시 50분에 오른쪽으로 최대한 꺾인 채로 고정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엔터프라이즈는 구축함 Balch 와 2번씩이나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면서 겨우 충돌을 모면했다.
할수 없이 엔터프라이즈의 스크류를 전속력으로 후진시켜 속력을 10노트로 낮추었다.
키가 얼마나 오른쪽으로 딱 붙어버렸는지 오른쪽 스크류는 전진으로, 왼쪽 스크류는 최대한 후진시켜도 엔터프라이즈를 직진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엔터프라이즈는 10노트의 저속으로 그 자리에서 맴돌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만일 이런 상태에서 제2차 공습이라도 받는 날에는 함재기의 이함 뿐만 아니라 회피기동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때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에 즈이가꾸를 떠난 일본군의 제2차 공격대가 포착되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에 이어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은 엔터프라이즈에게 미소를 보냈다.
오후 3시에 즈이가꾸를 떠난 제2차공격대는 침로를 40도 가량 잘못 잡아서 제16기동부대의 남쪽 90km 지점까지 접근한 후 북서쪽으로 변침한 후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하지 못한 채 즈이가꾸로 귀함했다.
오후 7시 30분에 천신만고 끝에 조타기계실의 제2번 전기모터를 구동하는데 성공하여 키를 다시 작동시킨 엔터프라이즈는 자신의 함재기를 모두 헨더슨 비행장에 날려 보내고 전장을 이탈했다.
일본제3함대사령관 나구모 중장은 제3차공격을 검토했으나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제1차 공격대의 피해가 예상 외로 너무 큰 데 놀라서 공격을 단념하고 트럭 섬으로 회항했다.
제2함대사령관 곤도 제독이 호위부대를 이끌고 야전을 기도하며 또한 야간에 헨더슨 비행장에 포격을 가하기 위하여 남하하다가 다음날인 25일 밤늦게 반전,북상했다.
한편 플레처 제독은 24일 저녁이 되자 구축함 1척을 현장에 남겨 조종사들을 구조하도록 하고 남하하여 전장을 이탈했다.
그리하여 동부솔로몬 해전은 끝났다.
다음날인 25일이 되자 일본제3함대가 철수함으로써 하늘로부터의 엄호가 없어진 다나까 제독의 침공부대는 미군기의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다나까 제독의 함대는 이미 밤 사이에 카탈리나 기에 의하여 발견되어 있었으므로 날이 밝자마자 헨더슨 비행장에서 8대의 돈틀레스를 보내왔다.
오전 9시 35분에 다나까 함대의 상공에 도착한 이 돈틀레스들은 다나까 제독의 기함인 경순양함 진쑤의 통신실에 폭탄을 명중시켜서 다나까 제독은 이때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24일에 엔터프라이즈에서 헨더슨 비행장으로 옮겨온 돈틀레스 4대가 수송선단에 폭격을 가하여 일본군이 사용할 탄약을 수송하던 수송선 긴류 마루에 폭탄을 명중시켜 긴류 마루는 탄약의 유폭과 함께 침몰했다.
오전 10시 25분에는 에스피리투산토를 떠난 B-17기 8대가 폭탄을 퍼부어서 구축함 무쓰기에 225kg 짜리 폭탄 한 발을 명중시켰다.
이 폭탄은 무쓰기의 기관실에 명중하여 4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무쓰기를 격침해 버렸다.
다나까 제독은 항공엄호가 없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전진은 무리라고 판단, 회항하여 쇼틀랜드로 돌아가 버렸다.
동부솔로몬 해전은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미국함대의 판정승이었다.
일본함대는 경항공모함 류조와 수송선 긴류마루, 구축함 무쓰기를 잃었고 수상기모함 지또세와 경순양함 진쑤가 중파되었으며, 항공기 59대를 상실했다.
또한 다나까 제독의 침공부대가 일본군 증원부대의 상륙을 단념하고 회항하여 버림으로써 ‘과’호 작전이 실패했다.
미국함대는 엔터프라이즈가 명중탄 3발에 의하여 중파되면서, 장교 2명과 사병 72명이 전사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정승무원이 전사한 것은 엔터프라이즈의 취역 이래 마셜 제도 공격에서 죠지 스미스 상병의 전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엔터프라이즈 비행단은 와일드캣 4대, 돈틀레스 2대, 아벤저 4대등 총 10대의 항공기를 상실하고 11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1942년 8월 25일, 엔터프라이즈는 남태평양을 떠나 진주만으로 향했다.
진주만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도 함내에서는 교대로 하루 24시간 연속하여 수리작업이 이루어졌다.
미해군은 1907년부터 2년간 실시된 전함 함대의 세계일주 항해 이후 함정의 수리를 가능한 한 자체 승무원들에게 맡기는 정책을 실시했다.
조선소의 일감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노동조합과 일부 정치인들이 이러한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했으나, 미해군은 끝까지 이 정책을 고수했다.
그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함정의 승무원들은 웬만한 손상은 항해 중이거나 심지어는 격렬한 전투를 수행하는 와중에서도 스스로 수리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미군함정은 상대방인 일본함정과 비교하여 전투 중에 같은 정도의 손상을 입어도 생존확률이 훨씬 높았다.
1942년 9월 10일에 진주만에 도착한 엔터프라이즈는 즉각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엔터프라이즈가 남태평양에 돌아온 것은 10월 2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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