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S Enterprise (CV-6)는 아마도 역사상 존재한 군함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올린 함정일 것이다.
엔터프라이즈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현장에서 자함 소속의 급강하 폭격기가 격추되면서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이래 1945년 5월 14일 규슈 앞바다에서 일본기의 가미카제 공격으로 대파되어 전쟁에서 물러날 때까지 3년 5개월간 태평양전쟁에 참가했다.
이 기간동안 엔터프라이즈는 산호해 해전을 제외한 4번의 함대항공전을 포함하여 미해군이 실시한 22회의 중요 작전에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은 911대의 적기를 격추하였고 71척의 적함을 격침하였으며 최소한 192척의 적함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다.
이제 태평양전쟁의 중요 장면마다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경이로운 함정인 엔터프라이즈의 탄생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펴보자.
1. 탄생 - 1940년 말
1931년에 CV-4 레인저가 건조에 들어가게 되자 미국에게는 워싱턴 조약에서 인정받은 항모 보유 쿼터 13만 5천톤 중에서 5만 5천톤 가량이 남게 되었다.
(레인저 CV-4. 표준배수량 : 14,576톤, 길이 : 234.4m, 폭 : 33.4m, 최고속력 : 29.3노트, 항속거리 : 15노트로 20,000km, 승무원 : 2,148명, 함재기 : 86대)
이 시점에서 항공모함 건조와 관련하여 미해군이 고려하던 방안은 4가지였다.
(1) 워싱턴 조약에서 허용한 항모의 최대 배수량인 27,000 톤급의 대형항모를 2척 건조하는 방안
(2) 레인저급 크기의 소형항모를 4척 건조하는 방안
(3) 레인저급보다 약간 큰 18,000 톤급의 항모를 3척 건조하는 방안
(4) (3)안보다 조금 더 큰 20,000 톤급의 항모 2척 +레인저급 크기의 소형항모를 1척 건조하는 방안
실험적 성격이 강한 미해군 최초의 항모인 CV-1 랭글리를 제외하고도 건조 중이던 순양전함을 개장한 33,000 톤급의 대형항모인 CV-2 렉싱턴 과 CV-3 새러토가를 1927년부터 운용하고 있던 미해군은 성공적인 항모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에 대하여 비교적 정확하고 구체적인 인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보와 운용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미해군은 꼭 27,000 톤급의 대형항모가 아니더라도 성공적인 항모의 기본적인 특성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해군은 그간의 항모운용경험에서 항모의 속력은 가급적 30 노트가 넘는 것이 좋으며 넓은 격납고와 대형 엘리베이터 그리고 적절한 방어력과 대공무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또한 깨닫고 있었다.
그런 여러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레인저급이나 18,000 톤급의 함체로는 불가능하며, 최소한 20,000 톤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하여 미해군은 (4)번의 안으로 확정지은 후에 1931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20,000톤급의 새로운 항공모함 -요크타운급- 의 설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33년 여름, 미의회에서 역사적인 빈슨-트래멀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의해 미해군에는 새로운 군함건조에 사용하도록 2억 3800만 달러라는 거액이 주어졌으며 그중의 4000 만 달러는 2척의 신형 항공모함 건조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1934년 5월 21일에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요크타운급의 네임쉽인 CV-5 요크타운이 건조에 들어갔고 2달 후인 동년 7월 16일에는 자매함인 CV-6 엔터프라이즈가 건조에 들어갔다.
이 두 항공모함의 건조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공공사업국(Public Works Administration = PWA) 에 고용된 인력들로서 이 사실은 요크타운 급의 건조 또한 뉴딜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1936년 10월 3일에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거행된 엔터프라이즈의 진수식 광경)
엔터프라이즈의 건조는 꾸준하게 진행되어 1936년 10월 3일에 진수하였고 그 1년 반 후인 1938년 5월 12일에 취역하여 초대함장인 뉴튼 화이트 대령의 지휘 하에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로 시험항해를 떠났다.
(초대 함장 뉴튼 화이트 대령. 재임기간 : 1938.5.12-12.21)
요크타운급 2척에 이은 레인저급 크기의 항공모함은 CV-7 와스프인데 와스프는 비록 크기는 레인저와 비슷하지만 설계사상 자체가 요크타운급의 축소형이기 때문에 레인저와는 다른 급으로 분류된다.
와스프급은 작은 함체에 가급적 요크타운급의 능력을 구비하도록 고려하여 속력이 약간 느려지고 함체가 조금 짧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요크타운급의 능력에 상당부분 근접했으나 결정적으로 어뢰방어를 위한 벌지(방뢰격벽)를 포기하여 수선하 방어력에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요크타운급도 수선하 방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와스프는 그 정도가 심해진 것이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태평양전쟁에서 격침된 미국의 정규항모들이 모두 일본함대와의 대규모 함대항공전에 참가하여 나름대로 분전한 끝에 장렬한 최후를 마쳤는데 비하여 와스프만은 과달카날로 향하던 수송선단의 호위임무에 종사하다가 일본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격침되어 상대적으로 허망한 최후를 맞았다.
요크타운 급의 3번함인 CV-8 호넷은 1938년 제2차 빈슨트래멀법에 의하여 미해군에 신규항공모함 1척의 추가건조를 위한 예산이 주어졌는데 당시 미해군의 군함설계능력이 온통 BB-61 아이오와급의 설계에 집중되어 새로운 설계에 의한 항모건조가 불가능해지자 당시 대단히 성공적인 설계로 평가받고 있던 요크타운 급의 설계를 약간 수정하여 건조한 것이다.
엔터프라이즈 이야기로 돌아와서..
1938년 겨울에 햄프턴로즈에 돌아온 엔터프라이즈는 자매함 요크타운과 함께 1939년 1월 2일에 카리브 해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당시 해군소장이던 윌리엄 헐지 제독의 지휘 아래 함대훈련에 참가하여 함정 승조원들과 항공기 승무원들의 훈련을 실시하였다.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은 1938년 12월 21일에 화이트 대령과 교대한 찰스 파우널 대령이었는데 파우널 함장은 훈련기간을 통하여 엔터프라이즈의 즉응태세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파우널 대령은 이후로도 승승장구하여 고속항모기동부대인 제50기동부대사령관을 거쳐 태평양함대항공부대사령관이 된다.
(제2대 함장 찰스 파우널 대령. 재임기간 : 1938.12.21-1941.5.21)
카리브 해에서 함대훈련을 마친 엔터프라이즈는 1939년 4월에 태평양함대에 배속되어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를 모항으로 삼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엔터프라이즈가 앞으로 벌어질 일본과의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미해군 전략의 주류를 이루던 제독들의 머리에 들어있던 항공모함에 대한 인식은
‘항공모함이란 전함들을 위하여 함재기를 사용하여 수색, 정찰, 견제공격 및 적 항공기에 의한 수색과 정찰을 차단하는 등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함정으로서 함대결전을 앞둔 상황에서는 정찰효과의 극대화를 노려서 주력함대의 전방에 위치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적 함대에 의하여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거나 최악의 경우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
는 정도였다.
물론 미해군 내에는 함재기가 갖는 장대한 항속거리와 눈부신 항공기술개발의 속도에 주목하여 가까운 장래에 항공모함이 전함을 대신하여 명실상부한 함대의 주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장교들도 있었으나 1939년의 시점에서 그들은 계급도 낮고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다.
태평양함대에 배속된 이후에 엔터프라이즈는 태평양함대의 동료 항공모함들 (렉싱턴, 새러토가, 요크타운)에 비하여 높은 운용효율을 보이면서 선저에 달라붙은 따개비를 제거하거나 영화 ‘급강하 폭격기’를 촬영하기 위하여 함내를 개방하는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작전임무에 종사하면서 샌디에이고와 하와이 사이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샌디에이고에서 진주만으로 항해중인 엔터프라이즈. 1939년 10월 8일 중순양함 미네아폴리스 함상에서 찍은 사진)
1940년 5월에 일본의 확장정책을 경고하는 의미로 태평양함대가 하와이 진주만에 전진배치되었다.
함재 지원 시설의 미비와 수병 모집의 어려움을 이유로 함대이동을 결연하게 반대하던 태평양함대 사령관 제임스 리처드슨 제독을 해임시키면서까지 강행된 함대이동으로 인하여 엔터프라이즈는 렉싱턴과 함께 모항을 샌디에이고에서 진주만으로 옮기게 되었다.
(제임스 리처드슨 제독)
모항이 샌디에이고에서 진주만으로 바뀌었어도 엔터프라이즈의 일상은 변화가 없었다.
역사에서 증명된 유능한 인물인 헐지 사령관(1940년 6월 13일에 중장으로 승진)과 파우널 함장의 지휘 하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항공대 승무원들과 함정 승조원들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서 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USS Enterprise CV6 1938년 취역 당시 제원
표준배수량 : 19,800 톤, 만재 배수량 :25,500 톤
표준 흘수 : 6.6m, 만재 흘수 : 8.5m
전체 길이 : 246.7m, 수면 길이 : 232m
전체 폭 : 33m, 수면 폭 : 25.4m
전체 높이 : 43.6m
비행 갑판 : 244.4m x 26.2m
격납고 : 166.4m x 19.2m x 5.3m
엘리베이터 : 3기, 14.6m x 13.4m, 적재중량 : 7.7톤
동력 : 스팀터빈 4기, 밥콕-윌콕스 400psi 보일러 9개
출력 : 12만 마력, 프러펠러 4개
최고속력 : 32.5 노트
연료적재량 : 6,500 톤
항속거리 : 15노트로 19,300 km, 20노트로 14,600 km
함재기 최대적재량 : 96대
장갑 : 12.2cm (수면 ),3.8cm (갑판),10.2cm (사격통제실)
항공유 적재량 : 674,000 리터
항공무기 적재량 : 433 톤
캐터펄트 : 3개(비행갑판에 1개, 격납고 갑판에 2개)
승무원 : 1,889 명(평화시), 2,919 명(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