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은 태평양전쟁의 승리자와 패배자가 확실하게 확인된 한해였다.
비록 후대에 사는 우리들의 눈에는 미드웨이 해전, 적어도 과달카날 전투의 종식과 함께 미국의 우세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이지만 우리와는 달리 바로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 눈에도 미국의 승리가 명확해진 때가 바로 1944년이었다.  
1944년은 태평양함대의 마셜제도 상륙전으로 시작하여 트럭섬 공습, 필리핀 해전, 대만항공전, 레이테 해전 등 1943년까지의 전투와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대규모의 전투들이 잇달아 벌어졌고 이러한 중요한 전투들은 항상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하여 1944년 말이 되자 미군은 일본본토 가까이까지 바짝 다가섰다.

1943년에 근대화 개장을 받은 엔터프라이즈도 이러한 미해군의 작전에 발맞추어 한참 물이 오른 운동선수처럼 1년 내내 온 태평양을 돌아다니며 전투임무에 참가했다.
1월에는 마셜제도 공략에 참가하여 타로아 섬과 콰잘레인 환초를 공격했으며, 2월에는 동양의 지브롤터라고 불리던 일본연합함대의 근거지 트럭 환초에 대한 공습에 참가하여  태평양전쟁 중에 하루동안의 공격에 의한 전과로는 최대의 격침톤수를 기록하는데 일조했다.
3월에는 에미라우 상륙을 엄호한 후 1,800km 를 항진하여 팔라우 제도를 폭격했고, 4월에는 월레아이를 폭격하고 마주로에서 잠시 쉰 후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남서태평양해역군의 홀랜디아 상륙을 엄호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트럭 환초를 폭격했다.
5월을 마주로 환초에서 지낸 엔터프라이즈는 6월 6일에 마리애나 제도 상륙작전을 엄호하기 위하여 출동하여 6월 19일에 벌어진 사상 최대의 함대항공전인 필리핀 해전에 참가, 일본의 함대항공력을 사실상 괴멸시킴으로써 태평양전쟁의 승리를 확정짓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7월 5일까지 마리애나 제도 근해에서 엄호활동을 하던 엔터프라이즈는 진주만으로 돌아와 수리를 받고 새로운 항공단인 제20항공단을 맞아들였다.
8월 말에 진주만을 떠난 엔터프라이즈는 31일에 이오지마가 있는 보닌제도를 공습하고 9월에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팔라우 제도 상륙전을 엄호했다.
10월 초에는 핼시 제독이 지휘하는 제38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대만항공전에 참가하여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기들의 씨를 말려버렸고, 10월 말에는 사상최대규모의 해전인 레이테 해전에 참가하여 일본연합함대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후 12월 초까지 필리핀 근해에서 루존 섬의 일본군 비행장과 선박들을 공격하는 임무에 종사하다가 12월 6일에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에 다시 해상에 나왔을 때 엔터프라이즈는 CV(N)-6 로 분류되고 있었다.
N 은 Night 란 뜻으로 이로써 엔터프라이즈는 세계 최초로 24시간 내내 작전이 가능한 항공모함이 되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주로 야간에 항공모함기동부대의 CAP 세력을 제공하고 적에게 야간 공습을 가하는 일을 주로 맡게 되었고, 주간에는 CAP 임무 외에는 주로 큰 피해를 입어 모함에 돌아가기 힘든 함재기들이 비상착륙할 수 있도록 비행갑판을 비워두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1944년이 저물어 갈 때쯤에는 엔터프라이즈와 그 승무원들은 일본의 현관까지 도달해 있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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