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연합함대의 주력이 과달카날 전투 기간 중에 캐롤라인 제도의 트럭 환초에 배치된 이후 트럭 환초는 ‘태평양의 지브롤터’, ‘일본의 진주만’ 등으로 불리면서 연합함대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제1차 대전 이후 독일로부터 캐롤라인 제도를 넘겨받은 일본은 트럭 환초를 이루는 4개의 섬(Moen, Dublon, Eten, Param) 에 각각 1개씩 4개의 비행장을 건설했고, 초호에는 일본연합함대의 주력이 정박하고 있었다.

1944년 2월 4일, 마셜 제도를 떠난 2대의 카탈리나 비행정이 트럭 환초 상공에 나타났다.
즉각 요격을 위하여 일본기들이 날아올랐으나 이 카탈리나 기들은 정찰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마셜 제도가 점령되면서 드디어 트럭 환초가 카탈리나 기의 행동반경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당시 이들이 찍어온 사진에는 일본연합함대의 기함 무사시를 비롯한 전함들과 항공모함들, 순양함과 구축함들, 기타 수많은 함정들이 초호에 가득 정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암호해독 결과는 일본연합함대의 주력이 2월 10일부터 팔라우 제도와 일본본토 방면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트럭 환초에서 불과 1,000km 정도 떨어진 마셜제도가 미군에게 점령되자 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고가 미네이찌 대장은 태평양전쟁 개전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정찰기가 트럭 환초 상공에 나타나자 미국항모기동부대에 의한 공습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연합함대의 주력을 피신시켰다.
하지만 트럭 환초에는 아직도 일부 전투함정들과 수많은 수송선들이 남아 있었다.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고가 미네이치 대장.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에니웨톡 상륙작전을 엄호할 임무를 맡은 58.4 전단을 제외한 제58기동부대의 3개 전단은 2월 3일부터 방금 확보한 마주로 환초에서 휴식과 재정비, 보급을 실시한 후 2월 13일에 트럭 환초 공격을 위하여 출발했다.
이 공격부대는 정규항공모함 5척(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 에섹스, 인트레피드, 벙커힐), 경항공모함 4척(벨로우드, 캐봇, 몬터레이, 카우펜스), 고속전함 6척(아이오와, 뉴저지, 메사추세츠,앨리배마, 사우스다코타, 노스캐롤라이나),중순양함 3척(미네아폴리스, 뉴올리언즈, 볼티모어), 경순양함 5척(산타페, 모빌, 빌록시, 오클랜드, 샌디에고), 구축함27척으로 이루어졌으며, 핼캣 275대, 야간형 콜세어 8대, 야간형 헬캣 8대, 돈틀레스 133대, 헬다이버 31대, 아벤저 127 대등 총 582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트럭환초에 있던 일본군 항공기는 4개의 비행장에 합계 365 대가 있었는데 그 중의 180대는 파일럿이 없거나 수리 중이었으므로 실제로 운용가능한 항공기 수는 185대였다.
제58기동부대가 마주로를 떠날 때에는 3개의 항공모함 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공격 당일인 2월 16일에 고속전함 6척이 경항공모함 카우펜스, 중순양함 미네아폴리스와 뉴올리언즈, 그리고 구축함 4척과 함께 Willis August Lee 소장 지휘 하에 제50.9전단을 형성하여 공습을 피하여 달아나는 일본함정을 포착 격멸하기 위하여 항공모함 전단들의 전방으로 나섰다.

1944년 2월 15일 오후에 트럭 환초 부근에 배치되어 있던 10척의 잠수함 중 1척인 SS-305 Skate 가 트럭 환초를 빠져나가는 일본 경순양함 아가노에 4발의 어뢰를 쏘아 그중의 3발을 명중시켜서 격침했다.

 

(일본해군의 경순양함 아가노.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283461 ) 

2월 16일 새벽 6시 45분,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어둠 속에서 헬캣 72대가 트럭 환초를 향하여 항공모함들의 갑판을 떠났다.
미처 제독은 ‘마술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작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전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폭격에 앞서 우선 전투기만으로 구성된 항공대를 내보내어 적 기지 상공의 제공권을 장악한 다음 전 함대의 공격력을 3등분하여 각 제파를 약 2시간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내보내어 하루종일 폭격하는 방식이었다.

 

(F6F 헬캣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rectek2/12226726 )


이때 폭격을 끝낸 부대의 상황보고에 따라 현장 상황에 맞추어 다음 공격대의 무장, 폭격우선순위 및 폭격방식을 유연하게 대응해 가는 방식이었으며 특징적으로 연기가 시야를 가려서 폭격에 방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적의 유류저장고나 탄약창은 폭격의 마지막 단계에서 공격하도록 했다.
조종사들 사이에서 ”Mitscher Shampoo” 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이미 부싯돌 작전에서 시도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트럭 대공습 당시 제58기동함대의 정규항공모함들은 주로 공격대를 내보냈고, 함대의 CAP 세력은 주로 3척의 경항공모함들이 맡았다.
그리고 경항공모함 카우펜스는 리 제독의 지휘 하에 고속전함 6척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트럭 환초에서 탈출하는 적함들을 포착 격멸하기 위하여 편성된 제50.9 전단에 편입되어 항공엄호를 담당했다.
제58기동부대는 제공권 장악을 위한 전투기대와 야간폭격대를 제외하고 16일에 6번, 17일에 2번등 총 8번에 걸쳐 공격대를 출격시켰는데 이 공격대들은 평균적으로 150대 정도의 헬캣, 급강하폭격기 및 아벤저로 이루어져 있었다.

16일의 제1파 공격대는 오전 7시에 출격했다.
이 공격대는 초호에 정박한 함선과 비행장 및 항공기들을 주목표로 삼아서 돈틀레스와 아벤저들은 함선공격용 철갑탄과 비행장 공격용의 소이탄 및 집속탄을 장비하고 있었다.
헬캣들은 엄호를 담당했다.

제2파 공격대는 오전 9시에 출격했다.
이 공격대의 주목표 및 무장은 제1파와 거의 동일했다.

제3파 공격대는 오전 11시에 출격했다.
제2파 공격대로부터 일본함정 중의 일부가 북쪽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보고에 따라 제3파 공격대의 급강하 폭격기와 아벤저들은 이 함선들을 격침하기 위하여 전부 함선폭격용 철갑탄을 장비하고 도주 중이던 순양함 가토리, 구축함 노와끼와 마이까제, 그리고 소형구잠함 쇼난마루를 향하여 출격하여 가토리와 쇼난마루에 피해를 입혔으나 폭격 도중에 미처 제독으로부터 그 함선들의 처리는 전함 중심의 제50.9전단에게 맡기고 트럭 환초로 향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폭격을 중단하고 트럭 환초로 가서 그곳의 함선들을 폭격했다.

 

오후 1시에 출격한 제4파 공격대는 오전에 출격했다가 돌아온 전투기와 제1파 공격대를 중심으로 재출격했다.
이미 트럭 환초에 대형전투함은 거의 없었으므로 이번 공격대는 함선공격용 철갑탄보다 관통력은 떨어지지만 대신 작약량이 훨씬 많아서 지상시설과 소형함정의 공격에 보다 유리한 지상공격용 일반폭탄을 싣고 출격했다.
이 4파 공격대의 주요 목표는 트럭 환초의 지상 시설이었다.

오후 3시에 출격한 제5파 공격대는 트럭 환초의 일본기들이 밤새 제58기동부대에 반격을 가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집속탄을 지상에 남아있는 일본항공기들에게 투하하고 활주로에 수시간 씩의 지연 신관이 장착된 지상공격용 일반폭탄을 투하했다.
밤새도록 활주로에서 무작위로 폭발하는 폭탄들 때문에 일본군은 밤새 감히 활주로를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오후 5시에 출격한 제6파 공격대도 제5파 공격대에 이어 일본항공기의 야간반격능력을 제거하는데 중점을 두고 비행장 시설과 활주로를 집중공격했다.
이들의 공격이 어찌나 철저했는지 트럭 환초에 있는 4개의 일본군비행장에서는 밤새 단 1대의 비행기도 출격시키지 못했다.

트럭 환초 부근에서는 고속전함 중심의 제50.9전단이 항공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경순양함 가토리, 구축함 노와끼와 마이까제, 소형구잠함 쇼난마루를 공격하여 가토리와 마이까제, 쇼난마루는 격침하였고, 노와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서 서쪽으로 도주했다.

17일 자정이 막 넘었을 무렵, 사이판을 출격한 일본기 7대가 제58기동부대를 공격했다.
즉각 엔터프라이즈의 콜세어 야간전투기가 출격하여 요격했으나 일본기들은 정규항공모함 인트레피드의 우현 고물 쪽에 1발의 어뢰를 명중시키는데 성공했다.
수선하 4.5m 지점에 명중한 이 어뢰로 인하여 인트레피드에서는 몇 개의 구역이 침수되고 11명이 전사했으며 키가 왼쪽으로 잔뜩 꺾인채 고정되고 말았다.
인트레피드는 오른쪽 엔진은 공회전시키고 왼쪽 스크류만으로 수리차 진주만을 향했으나 항해 2일째 되던 날에 세찬 바람이 몰아쳐서 함수가 도꾜 방향을 향한 채 아무리 해도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게 되자 승무원들이 함내 출입문의 가죽 커버를 모아다가 이어 붙인 임시변통의 돛을 만들어서 겨우 방향을 잡았다.
그리하여 인트레피드는 2월 24일에 누덕누덕 기워붙인 돛을 매단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진주만에 입항했다.
진주만에서 대충 수리를 마친 인트레피드는 3월 16일에 진주만을 출발하여 22일에 캘리포니아의 Hunter's Point에 들어가서 6월까지 수리를 받아야만 했다.

17일 새벽 4시 10분에 1대당 4개의 225kg짜리 폭탄을 장비한 12대의 아벤저가 제10뇌격비행대장인 Van Eason 대위의 지휘 하에 야간폭격을 위하여 엔터프라이즈의 갑판을 떠났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레이더로 적 함선의 위치를 확인한 후 75m 높이의 초저공까지 내려가 육안을 사용하여 목표물을 확인하고 파일럿의 판단으로 폭탄을 투하했다.
레이더를 이용한 이러한 종류의 야간폭격은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었다.
지상의 대공포는 아벤저들의 접근을 알아채고 대공포를 쏘아댔으나 정확하지 못했고, 정작 목표가 된 함선들은 아벤저들이 350m 전방까지 다가가도록 모르고 있다가 기습을 당했다.
투하된 48발의 폭탄 중 13발이 명중하여 작전은 완전히 성공했다.
폭격에 나섰던 아벤저 중 J. Nicholas 중위 탑승기를 제외한 11대가 무사히 귀함했다.

17일 아침이 되자 제58기동부대의 헬캣들이 다시 제공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트럭 환초로 향했다.
하지만 어제의 폭격으로 인하여 트럭 환초의 비행장들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여 헬캣에게 도전하는 일본기는 거의 없었다.
지상의 대공포들도 상당수가 무력화되었고, 강력한 대공화기를 장착한 함선들도 거의 침몰해 버렸기 때문에 헬캣들은 제공권 장악보다 주로 지상에 대고 기총소사를 가했다.

CAP 세력들도 트럭 환초의 반격능력이 사실상 제거된 상태였기 때문에 적기의 내습에 대비하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대부분의 헬캣들이 혹시 살아남아 도주중인 일본함정들이 있으면 찾아내려고 기동부대 주변의 해면을 수색하는데 더 열을 올렸다.

17일의 제1파 공격대는 대부분 육상공격용 폭탄과 소이탄을 장비했으며 벙커힐에서 출격한 아벤저만이 어뢰를 장비했다.
이들의 주목표는 아직 살아남은 소수의 함정들과 비행장 및 잠수함 기지의 건물들이었다.

트럭 대공습의 마지막 공격대인 제2파 공격대는 트럭 환초의 일본군 기지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연장시키려는 목표 하에 일본군의 유류저장고와 탄약창을 포함한 목표들을 타격했다.
이런 유류저장고나 탄약창을 폭격하면 대량의 연기가 발생하여 폭격 전과 확인 및 후속 공격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므로 미처 제독은 이런 시설은 폭격의 마지막 단계에서 폭격하도록 했다.

벙커힐의 함재기들이 제3파 공습을 위하여 이함한 직후 미처 제독의 공격중지명령이 떨어졌다.
이 함재기들은 무장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항공모함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2일간에 걸친 트럭 대공습이 끝났다.

이틀에 걸친 트럭 대공습으로 일본군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비록 연합함대의 주력이 공습 불과 1주일 전에 팔라우 제도로 도망감으로써 미함재기의 공습에 의하여 함대 주력이 정박지 내에서 전멸하는 미증유의 대참사만은 피했다고 하나 그래도 피해는 극심했다.
경순양함 2척(나까, 아가노), 구축함 4척(마이까제, 다니까제, 오이테, 후미즈끼), 보조순양함 3척, 잠수모함 2척, 구잠함 2척, 무장트롤선 1척, 수상기 모함 1척, 함대급유선 5척 및 19척의 수송선이 격침되어 격침 톤수는 합계 220,000 톤에 달했으며 항공기 피해도 275대에 달했다.
격침 톤수 20만 톤이 넘는 전과는 단일 작전으로서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이래 최고 기록이었다.
단 이틀 간의 공습에 의해 트럭 환초의 일본군들이 입은 피해는 1943년 11월부터 미군기의 지속적인 공습에 노출되어 있던 라바울의 피해보다도 훨씬 심했다.
트럭 환초가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자 연합함대 사령부는 라바울에 파견했던 항공기들을 트럭 환초 방어를 위하여 다시 불러들였다.
그나마 라바울의 상공을 지켜주던 항공기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라바울은 다시 미군기들의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트럭 대공습은 남쪽의 라바울을 무력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남서태평양해역군의 수레바퀴 작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이런 노력도 부질없이 사실상 이날 이후 트럭 환초는 정박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오직 라바울 방면으로 비행기를 투입하는 항공중계기지로서의 역할만 수행했다.


트럭 대공습 기간 중 미국 함대의 피해는 정규항공모함 인트레피드가 항공어뢰에 맞아 중파되었고, 헬캣 12대, 급강하폭격기 6대, 아벤저 7대등 총 25대가 격추되었다.
격추된 조종사들 중 일부는 Tang 을 비롯한 미국잠수함들에게 구조되었으며 초호 내에 착수한 조종사들은 중순양함 볼티모어에서 발진한 킹피셔 정찰기가 구조하기도 했다.

엔터프라이즈는 트럭대공습 기간 중에 헬캣, 돈틀레스, 아벤저 각 1대씩 3대의 함재기가 격추되어 제10전투비행대에서 1명, 제10폭격비행대에서 2명, 제10뇌격비행대에서 3명 등 총 6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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