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마리애나 제도 침공작전인 약탈자 작전에 참가하는 통합원정부대(Joint Expeditionary Force, TF 51)가 제5상륙작전부대 사령관인 켈리 터너 중장의 지휘 하에 진주만을 출항했다.
통합원정부대는 상륙부대인 해병제2사단, 제3사단, 제4사단과 해병제1임시여단 및 육군제27사단과 제77사단등 5개 사단과 1개 여단, 육군제24군단의 포병대 등 총 127,571 명의 병력과 이들을 수송하는  110 척의 수송선, 337 척의 상륙함 및 소해함을 비롯한 각종 보조함정들, 그리고 소형의 로켓포함으로부터 호위항공모함과 구형전함에 이르기까지 88척에 달하는 화력지원함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2개의 부대로 나뉘어졌는데 해병 제2사단, 제4사단과 육군제27사단 및 제24군단 포병대로 구성된 북부공격부대는 터너 제독의 직접 지휘 하에 사이판 섬과 티니안 섬에 상륙할 예정이이었으며, 해병 제3군단(해병제3사단 + 제1임시여단)과 육군제77사단으로 이루어진 남부공격부대는 코놀리 소장의 지휘 하에 괌 섬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상륙작전시 예상되는 일본연합함대의 공격으로부터 통합원정부대를 보호하고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미처 중장의 제58기동부대가 6월6일에 마주로를 떠나서 통합원정부대보다 한발앞서 마리애나 제도로 향했다.
이러한 통합원정부대와 제58기동부대는 모두 제5함대 사령관인 스프루언스 대장의 지휘를 받았다.

 

(북부공격부대의 편성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Marianas/img/USA-P-Marianas-p34.jpg )



한편 팔라우 공습 기간 중에 다바오로 비행하다가 순직한 고가 제독의 후임으로 연합함대 사령관이 된 도요다 소에무 대장은 예상되는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여 ‘아’ 호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전임 고가 사령관의 Z 계획을 약간 수정한 이 계획에 따르면 캐롤라인 제도, 마리애나 제도, 보닌 제도를 연결하는 소위 ‘절대 방어선’을 설정하고, 이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미군의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새로 정비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투입한 ‘결전’을 감행하여 단번에 전세를 만회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의한 소위 ‘결전’에 앞서 기지항공대와 잠수함이 미리 미국함대에 타격을 가하여 그 세력을 약화시키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이러한 작전 개념에 따라 일본연합함대는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하여 연합함대의 거의 모든 수상함전력을 집중시킨 제1기동함대를 새로이 편성하여 그 사령관에 당시 일본해군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받고 있던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을 임명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본질적으로 항공모함 기동부대인 제1기동함대에 대형전함 야마또, 무사시를 비롯한 일본의 주력전함들이 대부분 포함된 사실이다.
이것은 드디어 일본연합함대가 시대착오적인 개념인 전함에 의한 함대결전을 포기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제1기동함대의 전면에서 미국함대를 공격하여 결전을 앞두고 미국함대를 약화시킬 임무를 띄고 있던 일본잠수함들은 참으로 허망하게 무력화되었다.
일본연합함대는 원래 미군의 다음 목표가 팔라우 방면일 것으로 오판하여 그 지역에 25척의 잠수함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일본해군은 초계시 잠수함들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전개시키는 매우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일본해군 잠수함대의 실무자들이 이러한 전개 방식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미해군은 결국 일본해군의 이런 버릇을 파악하여 대잠작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는데, 그 중에서 호위구축함인 DE-635 England 가 올린 전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즉 1944년 5월 18일에 일본잠수함을 잡으러 푸비스 항을 출항한 잉글랜드는 다음날인 5월 19일에 I-16 호를 격침한 것을 시작으로 22일에 RO-106호, 23일에 RO-104 호, 24일에 RO-116 호, 26일에 RO-108 호를 격침함으로써 1주일만에 5척의 잠수함을 격침했다.

이후 폭뢰가 떨어져 마누스 섬에 돌아와서 폭뢰를 싣고 다시 출격한 잉글랜드는 31일에 RO-105 호를 격침함으로써 단 1척의 함정이 불과 12일만에 6척의 잠수함을 격침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잉글랜드는 6척 모두 단독격침으로 인정받았다.)
12일만에 잠수함 6척을 단독격침한 이 기록은 대잠작전 사상 최고의 기록으로서 잉글랜드는 이때의 공로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았는데 이 표창은 엔터프라이즈도 미드웨이 해전, 동부솔로몬 해전, 산타크루즈 해전 같은 굵직굵직한 해전들을 치르고 난 이후인 1943년에야 겨우 받았던 것이었다.
잉글랜드의 선전이 보여주듯 미해군의 대잠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어 이때 일본잠수함 25척 중 17척이 격침당함으로써 필리핀 해전을 앞두고 일본의 잠수함 부대는 사실상 무력화되고 말았다.

 

(일본잠수함 6척을 격침한 기록이 새겨진 DE-635 England 의 득점판. 원래 함교의 좌현 벽에 그려져 있던 것을 1949년에 떼어내어 미해군사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결전을 담당할 연합함대의 또다른 한 축인 기지항공대로 말하자면 일본군은 고가 사령관 시절의 Z 계획에 따라 1943년 6월부터 태평양방면의 기지 항공대를 제1항공함대로 통합하여 가꾸다 가꾸지 소장의 지휘 하에 두어 조직을 정비하고 ‘결전’에 대비하여 1,500 대의 세력을 갖출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항공기들이 지속적인 미군의 공격에 의하여 소모되는 반면 보충이 예정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막상 미군이 마리애나 제도에 쳐들어 왔을 때 제1항공함대의 총 세력은 560대 정도에 불과하여 목표대수의 1/3 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 항공기들 중 마리애나 제도에는 136대 밖에 없었다.(미군이 쳐들어 오자 다른 지역의 항공기 100여대를 급거 불러모아서 필리핀 해전에 참가한 기지항공대는 약 250대이다.)

1944년 6월 10일, 일본항공기의 초계권 바로 바깥에서 최종 급유를 마친 제58기동부대는 급유선들을 떼어버리고 마리애나 제도로 접근했다.

11일 정오 경에 미처 중장의 기함인 항공모함 벙커힐 함상에서 열린 작전회의에서 12일 새벽부터 공습을 시작한다는 원래 계획에 대하여 일부 참모들이 새벽부터 공습하는 제58기동부대의 공습패턴이 잘 알려져 있으므로 이번엔 오후에 기습을 실시하자고 건의했다.

미처 제독이 이 건의를 수용함으로써 오후 1시에 폭탄을 장착한 213대의 헬캣이 구조용 고무보트를 실은 10대의 헬다이버 급강하폭격기를 대동하고 제58기동부대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이때 총 223대에 달하는 공격대가 불과 10분만에 15 척의 항공모함에서 이함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항공모함  1척당 평균 40초에 한대꼴로 함재기를 이함시키는데 성공했다.
미처제독의 뛰어난 지휘 하에서 제58기동부대의 사기와 숙련도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제1차 공격대가 오후 4시30분에 귀환하자 다시 비슷한 숫자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출격하여 일본군에게 연속하여 맹타를 가했다.
58.1전단과 58.2전단은 괌을 두드렸으며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제58.3전단과 제58.4 전단은 사이판과 티니안을 공습했다.

 

미처 제독은 2차례에 걸친 이날 공습으로 일본기 86대를 격추하고 33대를 지상에서 파괴했으며 미군은 전투기 11대를 잃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이날 일본기의 피해를 미처 제독에 의해 보고된 119 대보다 더 많은 150 대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날의 기습으로 기선을 제압한 제58기동부대는 12일에는 총 1,400 소티에 달하는 공습을 실시했다.

제58.1전단과 제58.2 전단은 계속 괌을 공격했다.

제58.3전단과 제58.4 전단도 역시 전날에 이어서 사이판과 티니안을 두드렸을 뿐만 아니라 사이판을 떠나는 수송선단을 발견하고 공격을 가하여 13척을 격침했다.
일본기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사이판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해상에서 엔터프라이즈 소속인 제10비행전대 섀넌 맥크러리 중위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고 있는 일본군의 유조선. 몇몇 승무원들이 가라앉는 배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있고, 바다로 쏟아진 드럼통 가운데 작은 원형 구명대가 보인다. 생존한 승무원들은 나중에 미해군의 구축함에 구조되어 포로가 되었다. 1944년 6월 12일 공습 당시의 광경이다.)

 

13일에도 여전히 공습은 지속되었고 제58.2전단 소속의 구축함 히칵스는 괌 부근에서 소형 경비정 1척을 격침했다.
제58.4전단은 사이판 근해에서 또다시 11척의 일본수송선을 격침했다.
또한 7척의 고속전함을 보유한 리 제독의 제58.7전단이 사이판을 포격했으나 지상포격이라고는 포나페에서 딱 1번 밖에 해 본 적이 없는 미숙한 사관들 때문에 포격의 효과는 형편없었다.

14일에는 제58.1전단과 제58.4전단이 사이판 부근에서 급유를 받은 뒤 보닌 제도를 폭격하기 위하여 북상했다.
이들은 보닌 제도의 이오지마, 하하지마, 치치지마를 공격하여 일본군이 이들 섬을 통하여 항공기를 증원할 통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날부터 화력지원함대의 구형전함들이 제58.7전단으로부터 해안포격임무를 이어받았다.

사이판 상륙일인 15일에도 공습을 계속한 제58기동부대는 로타 부근에서 일본군의 경비정 한척을 격침했고, 제58.1전단과 제58.4전단은 보닌 제도를 공습했다.
제58.1전단 소속의 구축함 Boyd 와 Charrette 는 일본군 수송선 1척을 격침했다.

16일에 제58기동부대는 로타 부근에서 경비정 1척을, 사이판 부근에서 수송선 1척을 격침했다.
제58.1전단과 58.4전단은 다시 보닌 제도를 폭격한 후 제58기동부대에 합류하기 위하여 남하했다.

17일에는 화력지원함대 소속의 중순양함 위치타와 구축함 11척이 제58기동부대의 대공화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제58기동부대에 합류하면서 제58기동부대의 구축함 수가 58척에서 69척으로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속전함 전단인 제58.7전단에 집중배치되었다.

18일에는 보닌 제도에서 남하한 제58.1전단과 제58.4전단이 제58기동부대에 합류했다.
바야흐로 태평양 패권의 향방을 확정지을 대해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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