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파
Z 부대의 구축함들이 구조작업을 하는 동안 말레이 해전의 결과는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극동 지역의 영국함정들은 싱가포르와 동시에 Z 부대의 통신을 들었으며 통신장교는 암호를 해독한 다음 함장에게 전달했다.
싱가포르에 잔류했던 동양함대 참모장 팔리서 소장은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침몰한 지 21분 후인 10일 오후 1시 45분에 런던의 해군성에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가 적의 어뢰에 의하여 격침되었다고 타전했다.
여객선을 타고 막 싱가포르를 떠났던 전임 중국총사령관 제프리 레이튼 해군중장은 돌아가서 동양함대 사령관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침몰 뉴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했다.
숨길 수는 없었다.
일본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발표할 것이었다.
또한 12월 10일 밤이 되면 구축함들이 생존자를 싣고 싱가포르 해군기지에 도착할 것인데 기지에는 수백명의 민간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1941년 9월부터 싱가포르에서 전쟁내각을 대표하던 더프 쿠퍼는 솔직하게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10일 저녁에 싱가포르의 지역 라디오가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침몰 사실을 보도했고 다음날 지역 신문이 일제히 보도했다.
극동 지역 영국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일본은 더프 쿠퍼보다 빨리 자신들의 승전 소식을 전했다.
대본영은 아직도 생존자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던 싱가포르 시간 10일 오후 2시 35분에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를 격침했다는 사실을 해전의 간단한 전개 과정과 더불어 의기양양한 어조로 발표했다.
1시간 18분 뒤인 오후 3시 53분에는 일본 도메이 통신사가 영어로 대본영 발표 내용을 방송했다.
처칠 수상은 런던 시간으로 10일 새벽에 침몰 소식을 들었다.
늦게 자는 버릇이 있던 처칠이 자기 전에 서류함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해군참모총장 파운드 제독이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처칠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해군은 개전 이래 전함 몇 척을 상실하긴 했으나 2척을 한꺼번에, 그것도 이번처럼 일방적인 전투 끝에 허망하게 상실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해군성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전함들을 싱가포르로 보낸 사람은 처칠 자신이었다.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Winston_Churchill)
더프 쿠퍼와 마찬가지로 처칠도 침몰 소식을 대중에게 숨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처칠은 10일 오전 11시 32분에 하원에 출석하여 일본군의 항공공격을 받아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가 격침되었다고 보고했다.
같은 시각 해군성도 공식 논평을 내어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상실을 확인했다.
BBC 라디오의 정오 뉴스가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격침 소식을 전하면서 3척의 구축함에 구조된 생존자들이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에 세계가 침몰 사실을 알았다.
10일 오후 영국 석간 신문의 헤드라인은 단연 침몰 소식이 차지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생존자를 싣고 남하하던 익스프레스는 고속으로 북상하던 구축함 5척을 만났다.
영국구축함 스트롱홀드와 미국구축함 4척(알덴, 에솔, 존D에드워드, 휘플)은 필립스 제독의 요청에 따라 북상 중이었다.
익스프레스는 전투가 끝났다고 알렸으나 미국구축함 4척은 전투해역으로 가서 생존자를 찾았다.
생존자를 찾지 못한 미국구축함들이 싱가포르로 돌아오려 할 때 에솔이 일본어선 쇼푸푸마루를 발견했다.
4척의 작은 보트를 끌고 있던 쇼푸푸마루는 전날 Z 부대가 발견했던 선박이었다.
에솔은 쇼푸푸마루를 나포하여 싱가포르로 끌고 왔고 영국군은 선원들을 강도높게 조사했다.
철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쇼푸푸마루와 일본군의 연관성은 나오지 않았으며 끌고 다니던 보트는 그물을 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었다.
조사가 끝난 후 쇼푸푸마루의 선원들은 억류되었다.
익스프레스는 10일 밤 11시 10분에 싱가포르 해군기지에 도착했고 이어서 호주구축함 뱀파이어가, 마지막으로 엘렉트라가 자정에 도착했다.
생존자들이 상륙하자 힘든 하루를 겪은 구축함 승조원에게 마침내 휴식이 주어졌다.
승조원은 대부분 즉시 곯아 떨어졌으며 상부에서는 12시간 동안 휴식을 허락했다.
상륙한 생존자들에게는 담배, 샌드위치 그리고 럼주가 지급되었다.
럼주는 무제한 공급했는데 과음을 유도하여 위에 남아있는 중유를 토해내게 하려는 의도였다.
배를 채우고 한숨돌린 생존자들은 지상근무 장교들이 앉아있는 책상 앞에 줄을 서서 계급, 이름, 군번을 이야기 한 후 승조원 숙소(Fleet Shore Accommodation)에 들어가 잤다.
일본군 비행장이 있는 사이공의 분위기는 침울한 싱가포르와 정반대였다.
호아시 소위는 제453전투비행대대의 버팔로에게 쫓겨 구름 속으로 도망치기 직전에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전복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리펄스 뿐만 아니라 프린스오브웨일스도 침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살아남을 경우에 대비하여 현장으로 달려가던 수상함대와 잠수함들은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수송선들은 도망칠 필요없이 양륙을 계속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본군은 말레이 침공의 가장 큰 장애를 제거했다.
제22항공전대의 육상공격기들은 돌아오는 길에 사이공에 보내는 호아시 소위의 보고를 같이 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리펄스 뿐 아니라 프린스오브웨일스도 격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료가 모자라는 몇 대는 코타바루 비행장에 착륙했고 나머지는 사이공 부근의 기지에 착륙했다.
영국군의 대공포화에 맞아 심하게 피해를 입은 육상공격기 1대가 착륙 도중 망가졌다.
마지막으로 착륙한 것은 호아시 소위의 96식 육상공격기였는데 무려 13시간을 비행했다.
그날밤 일본 비행장에서는 밤새 잔치가 벌어졌으며 승무원들은 떡이 되도록 취했다.
영국해군에게 있어 1916년에 건조한 낡은 순양전함 리펄스가 5발의 어뢰를 맞고 격침된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신형전함인 프린스오브웨일스가 단 1발의 어뢰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에 탔던 스킵워스 소령은 생존자들과 함께 6일간 강도높은 자체 조사를 진행한 후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안전을 위하여 2부가 제작되어 서로 다른 경로로 런던에 보내졌다.
스킵워스 보고서를 시작으로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침몰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호주제453전투비행대대장 팀 비거스 대위는 전투 다음날인 12월 11일에 동양함대 사령관에게 흥미로운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비거스 대위는 중유를 흠뻑 뒤집어 쓴 채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승조원들이 자신의 버팔로를 보고 손을 흔들면서 환호성을 질렀다면서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여유만만하게 헤쳐 나가는 영국해군의 강인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적었다.
비거스 대위는 편지를 항공사령부에 제출했으며 항공사령부는 해군에 전달했다.
해군성은 편지를 보관했다가 1954년에 출간한 공식전사에 실었다.
공식전사에서 비거스 대위의 편지를 읽어 본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생존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생존자들은 비거스 대위에게 손을 흔들면서 환호한 것이 아니라 너무 늦게 도착한 아군 전투기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쌍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익스프레스에 구조된 프린스오브웨일스의 대공포 사수는 퇴함하기 전에 버팔로가 도착했다면 대공포로 쏴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승조원 대부분을 훈련시킨 영국의 데븐포트에는 슬픔이 밀어 닥쳤다.
BBC 뉴스를 들은 승조원 가족들이 훈련소로 몰려와 생사 확인을 요구했다.
훈련소는 해군성에서 보내준 명단에 따라 해당 승조원이 최종 전투에서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에 승함했는지부터 확인해 주었다.
양 함에 승함한 것이 확인된 승조원 가족들은 이제 피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생존자들이 싱가포르에 상륙하면서 명단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무사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승조원의 가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840명에 달하는 승조원의 가족은 사랑하는 아버지, 남편, 아들, 오빠 또는 동생의 죽음을 의미하는 '실종'(missing on the war service)이라는 통보를 받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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