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결전

 

Z 부대에 주어진 휴식은 20분에 지나지 않았다.

1941년 12월 10일 오후 12시 20분, Z 부대의 견시가 동쪽에서 접근하는 일본기들을 발견했다.

 

기함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는 4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좌현으로 10도 기울어진 상태로 오른쪽 기관만을 사용하여 15노트의 속력을 내고 있었고 조향이 불가능했다.

리펄스의 상태는 양호했다.

280km 떨어진 셈바왕 비행장에서는 버팔로 전투기들이 이륙하고 있었다.

 

일본기들을 발견했을 때 필립스 제독은 구조 요청을 발신했다.

 

<지급

좌현에 어뢰 1발이 명중함. NYTW022R06.어뢰 4발. 리펄스도 1발의 어뢰에 맞음. 구축함 파견을 요청함.>

(EMERGENCY

HAVE BEEN STRUCK BY A TORPEDO ON PORT SIDE. NYTW022R06. 4 TORPEDOES. REPULSE HHIT BY 1 TORPEDO. SEND DESTROYERS.)

 

리펄스보다 22분 늦게 12시 20분에 발신된 필립스 제독의 구조 요청은 2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필립스 제독은 리펄스도 어뢰에 맞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즉 Z 부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놀랍게도 전투기가 아닌 구축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항공력에 대한 필립스 제독의 낮은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이때 Z 부대에 접근하던 일본기들은 가노야 항공대 소속의 1식 육상공격기 3개 분대 26대로 204kg 짜리 탄두를 장착한 91식 2형 항공어뢰를 장비하고 있었다.

가노야 항공대는 싱가포르와 같은 위도까지 남하했다가 호아시 소위의 보고를 듣고 북서쪽으로 향했는데 Z 부대 상공 도착했을 때 구름이 끼어 해면이 보이지 않았다.

연료가 달랑거렸으므로 귀환 경로로 변침했는데 그 순간 구름 사이로 왈루스 수상기를 보았다.

가노야 항공대 공격대장 미야우치 소좌는 방향을 바꾸어 접근했고 곧 Z 부대를 발견했다.

 

(미츠비시 G4M 1식 육상공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G4M)

 

제1분대(나베타 대위, 9대)와 제2분대(히가시모리 대위, 8대)는 프린스오브웨일스를 목표로 삼았고 제3분대(이키 대위, 9대)는 리펄스를 목표로 정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를 노린 17대 중에서 6대만 공격했고 나머지 11대는 마음을 바꾸어 리펄스를 공격했다.

 

가노야 항공대는 연료가 부족하여 대형을 갖추고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앞선 공격과는 달리 일본기들은 열을 짓지 않고 개별적으로 다가와서 어뢰를 떨구고 이탈했다.

 

(영국전함 프린스오브웨일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title=Sinking_of_Prince_of_Wales_and_Repulse)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처지는 절망적이었다.

오른쪽 두 개의 프로펠러 회전속도를 분당 204회에서 220회로 올렸으나 조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15노트의 속력으로 약간 왼쪽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일본기가 접근 중인 우현에 자리잡은 5.25인치 대공포 연장포탑 4개 중에서 전방 2개 포탑(S1, S2)만이 사격할 수 있었다.

폼폼대공포 일부도 전원이 끊겼으며 일부는 고질적인 걸림이 발생했다. 

따라서 일본기들은 뇌격 과정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선두의 6대가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우현에 500m 까지 접근하여 어뢰를 떨어뜨렸다.

거리가 가까웠으므로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콜즈 하사가 루이스 기관총으로 투하된 어뢰 1발이 해면에 닿기 전에 명중시켜 폭파했으나 나머지 어뢰는 그대로 다가왔다.

조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프린스오브웨일스의 함장 리치 대령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3발의 어뢰가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우현에 차례차례 명중했다.

12시 23분에 2발의 어뢰가 함수와 함미에 명중했고 30초 후에 3번째 어뢰가 B 주포탑 아래 명중했다.

함미에 명중한 어뢰는 우현 바깥쪽 추진축을 안쪽으로 휘게 만들었으며 휘어진 바깥쪽 추진축은 안쪽 추진축과 함체 사이에 끼어 회전을 멈추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우현 피격 상황. 출처 : http://www.pacificwrecks.com/ships/hms/prince_of_wales/death-of-a-battleship-2012-update.pdf P.43)

 

우현에 3발의 어뢰를 추가로 맞은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치명적 피해를 입었다.

바닷물이 들어찬 격실은 공기가 들어있을 때보다 충격파를 훨씬 잘 전달했다.

탄두의 폭발로 생긴 충격파는 역침수를 위하여 바닷물을 채운 격실을 통하여 함체에 피해를 주었고 충격파를 맞아 찢어진 함체 내부로 중유와 바닷물이 섞여 들어왔다.

이제 프린스오브웨일스에는 18,000톤이 넘는 바닷물이 들어찼다.

4개의 기관 중 구동하는 것은 1개로서 속력은 8노트로 떨어졌고 8개의 발전기 가운데 2개만이 살아남았다.

대공포의 전원이 나갔고 함의 많은 구역에서 조명, 환기 및 펌프를 이용한 배수가 불가능해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뇌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많지 않았다는 점과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우현에 대량 침수가 일어나면서 좌현 9도에 달했던 함체의 기울기가 3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배의 흘수가 깊어지면서 프린스오브웨일스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를 노렸던 17대의 뇌격기 중 선두의 6대를 제외한 11대는 마음을 바꾸어 리펄스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리펄스는 우현에서 접근하는 이키 분대 이외에 프린스오브웨일스를 공격하려다가 방향을 바꾸어 함수 쪽에서 달려드는 나베타 분대 및 히가시모리 분대와도 교전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리펄스의 피해가 250kg 폭탄 1발에 맞은 것이 전부로서 함의 기동력에 문제가 없었고 대공포도 대부분 작동했다는 점이었다.

 

(순양전함 리펄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HMS_Repulse_(1916)

 

먼저 공격한 것은 프린스오브웨일스를 공격하려던 나베타 및 히가시모리 분대의 뇌격기 11대였다.

일본기들은 2개로 갈라졌다.

나베타 분대 3대와 히가시모리 분대 5대, 함계 8대는 함수 우현, 2,280m 거리에서 어뢰를 떨어뜨렸다.

리펄스가 변침하는 순간 나머지 3대의 일본기가 함수 좌현, 1,900m 거리에서 어뢰를 떨어뜨렸다.

함장 테넌트 대령은 리펄스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한쪽의 어뢰를 피하려고 방향을 바꾸면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어뢰에 옆구리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리펄스는 3발의 어뢰에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8발의 어뢰가 달려오는 오른쪽으로 꺾을 수 밖에 없었다.

 

거대한 함체가 27.5노트의 속력으로 우회전하면서 우현에서 다가오는 8발의 어뢰를 모두 피했다.

리펄스는 좌현에서 다가오는 어뢰 2발도 피했으나 마지막 1발만은 피하지 못했다.

오후 12시 22분, 좌현에서 발사된 어뢰 중 1발이 리펄스의 좌현 중앙에 명중했는데 다행히 벌지에 맞았다.

벌지 안으로 침수가 진행되었으나 보수관 덴디 중령이 재빨리 역침수를 실시하여 기울기를 바로잡았고 리펄스는 여전히 2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리펄스의 행운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숨돌릴 틈도 없이 이키 분대의 뇌격이 시작되었다.

 

분대장 이키 대위는 3개 소대 9대로 이루어진 자신의 분대를 2개로 나누었다.

자신이 이끄는 1개 소대 3대는 좌현에서, 나머지 2개 소대 6대는 우현에서 공격했다.

이키 대위의 소대는 리펄스가 첫번째 어뢰를 맞는 순간 리펄스의 좌현 500m 거리에서 어뢰를 떨어뜨렸다.

어뢰를 떨어뜨린 3대의 일본기 중 이키 대위 탑승기를 제외한 2대는 리펄스의 함수 상공을 통과하다가 대공포화에 맞아 격추되었고 승무원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이키 소대가 떨어뜨린 3발의 어뢰는 모두 명중했다.

 

1발은 좌현 기관실, 1발은 후방 15인치 포탑 부근, 마지막 1발은 함미에 명중했다.

이키 대위가 떨어뜨린 마지막 어뢰는 함미에 명중하면서 방향타에 충격을 가해 고정시켰다.

오른쪽으로 돌고 있던 리펄스는 이제 조향이 불가능해져 오른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돌았다.

우현에서 공격한 6대는 먼거리에서 어뢰를 떨어뜨렸는데 6발의 어뢰 중 1발이 오후 12시 26분에 우현 E 보일러실 부근에 명중했다.

 

4분 만에 5발의 어뢰를 얻어맞은 리펄스는 치명적 피해를 입었다.

함장 태넌트 대령은 리펄스가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칼리 뗏목을 펴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승조원들에게 빨리 갑판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칼리 뗏목. http://cs.finescale.com/fsm/modeling_subjects/f/7/t/153205.aspx?pi240=3)

 

가노야 항공대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10분 간의 전투에서 가노야 항공대는 26발의 어뢰 중 3발을 프린스오브웨일스에, 5발을 리펄스에 명중시켜 양함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 댓가로 2대가 격추되었고 3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5대가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가노야 항공대의 공격이 끝났을 때는 오전 12시 30분으로 미호로 항공대의 폭격이 시작된 지 1시간 30분이 지났다.

 

말레이 해전의 승패는 이미 결정났지만 전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직 미호로 항공대 제2분대(다케다 대위, 8대) 및 제3분대(오히라 대위, 9대)가 남아 있었다.

96식 육상공격기 2개 분대 17대는 모두 500kg짜리 고폭탄 1발씩을 가지고 있었다.

 

(미츠비시 G3M 96식 육상공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G3M)

 

9대로 이루어진 오히라 분대의 공격은 어이없이 끝났다.

오히라 분대는 가노야 항공대의 공격이 끝난 직후인 오후 12시 33분에 Z 부대를 발견하고 접근했다.

이때 오히라 대위 탑승기의 폭격수가 실수로 폭탄을 떨어뜨리자 나머지 폭격기도 모두 폭탄을 떨어뜨렸다.

Z 부대의 승조원들은 수평선에 떨어지는 폭탄을 보고 피해를 입은 일본기가 폭탄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12시 41분, 프린스오브웨일스의 견시가 접근 중인 다케다 분대의 폭격기 8대를 발견했다.

사격이 가능한 5.25인치 양용포 연장 3개 포대(S1, S2, P2)가 사격을 시작했으나 P2 포탑은 곧 윤활유가 새면서 작동을 멈추었다.

나머지 2개 포대의 사격도 부정확했다.

거리측정수가 오른쪽 눈을 다쳐 거리 측정이 되지 않았다.

폼폼대공포를 비롯한 근접 대공화기들이 불을 뿜었으나 2,560m의 고도로 다가오는 다케다 분대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후 12시 44분, 다케다 분대는 프린스오브웨일스를 좌현 함수에서 우현 함미로 가로지르면서 7발의 500kg 짜리 고폭탄을 떨어뜨려 1발을 명중시켰다.

1대는 고장으로 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했다.

 

명중탄은 좌현 후방의 사출기 갑판을 관통한 다음 127mm 두께의 주장갑판 위에서 폭발하여 함체에 추가적인 피해를 주면서 엄청난 인명손실을 가했다.

폭탄이 떨어진 곳은 영화갑판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임시 의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당시 영화갑판에는 의무대와 부상병을 포함하여 200 명 이상이 있었는데 폭탄이 그 한가운데서 폭발하여 대부분 사망했다.

또한 폭발의 충격으로 함체의 좌현 장갑판 사이가 벌어지면서 침수가 일어났다.

 

명중탄 이외에 지근탄도 추가 침수를 일으켰다.

지근탄은 주로 함체의 왼쪽에 떨어졌는데 수압으로 인하여 좌현 장갑판 사이가 벌어져 빈 격실 안으로 침수가 일어났고 좌현에 명중한 어뢰에 의한 침수와 더해져서 함을 왼쪽으로 전복시켰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좌현에 1발, 우현에 3발의 어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왼쪽으로 넘어져 전복되었다.

 

다케다 분대의 폭격을 끝으로 말레이 해전이 끝났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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