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피해

 

12월 10일 정오에 다카이 대위가 리펄스에 마지막 어뢰를 발사하고 이탈하면서 전반전이 끝났다.

이제 Z 부대는 약간의 여유를 얻게 되었고 이 시간을 이용하여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에서는 고장난 대공포를 수리하고 탄약을 운반했다.

함내 깊숙한 곳에 있는 탄약고에서 대공포까지 몇 개 갑판을 지나 대량의 탄약을 운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승조원들은 죽 늘어서서 탄약상자를 릴레이 식으로 운반한 다음 계단에서는 밧줄로 탄약상자를 끌어올려 다시 릴레이 식으로 운반했다.

따라서 많은 인원이 필요했고 대공전투에 필수적인 인원을 뺀 승조원이 탄약운반에 투입되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보수관은 어뢰에 의한 피해를 조사했다.

킹조지5세급 전함은 수중방어대책이 충실한 편이었다.

수선 하의 외부 함체를 뚫고 들어온 어뢰는 공기로 들어찬 외부 격실을 만나게 된다.

외부 격실 안쪽은 중유나 바닷물로 채워진 연료탱크였고 그 안쪽은 다시 빈 격실이었으며 그 너머에 함체가 있었다.

 

(킹조지5세급 전함의 장갑구조.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King_George_V-class_battleship_(1939)#cite_ref-48)

 

보수관은 프린스오브웨일스를 맞춘 어뢰가 설계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뢰는 좌현 바깥쪽 추진축을 잡아주던 지지대(bracket) 부근에 명중하여 지지대를 날려버렸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피격 상황. 2발의 어뢰를 맞은 것으로 나오지만 2007년의 잠수 조사 결과 좌현에 명중한 어뢰는 첫번째 어뢰뿐이다.출처 : The Sinking Of The Prince Of Wales & Repulse : The End Of The Battleship Era., P.199)

 

그 결과 길이 70m 의 추진축이 회전 중심을 벗어나 분당 204회의 고속으로 돌다가 철근들을 연결해 주는 플랜지의 볼트가 부서지면서 5개로 부러졌다.

어뢰에 맞은 직후 배가 심하게 아래위로 흔들리면서 심하게 진동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때 프로펠러도 떨어져 나갔다.

 

(플랜지. https://en.wikipedia.org/wiki/Flange)

 

B 기관실을 맡고 있던 딕 와일디시 대위가 손상된 추진축의 회전을 정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회전이 멈추었다.

와일디시 대위는 상부에 보고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여 직권으로 정지 명령을 내렸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침수상황. 출처 : The Sinking Of The Prince Of Wales & Repulse : The End Of The Battleship Era., P.203)

 

그러나 이미 함체는 큰 피해를 입었다.

어뢰의 폭발로 추진축이 고속으로 회전하다가 부러지면서 주변의 격벽과 배관들을 망가뜨렸다. 

추진축의 뒷쪽이 지나가던 격벽은 수병 3명이 나란히 서서 통과할 수 있을만큼 큰 구멍이 뚫렸고 이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어뢰를 맞은 지 4분 이내에 2,400톤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좌현의 화물갑판과 하갑판이 90m 길이로 침수되었다.

좌현 바깥쪽 추진축을 돌리던 A 기관실은 침수되었고 좌현 안쪽 추진축을 돌리던 Y 기관실은 충격으로 기관의 윤활유 배관이 터지면서 기관이 멈추었다.

따라서 프린스오브웨일스는 피격 몇 분만에 동력의 절반을 잃었다. 

또한 전력을 공급하던 발전기 8개 중에서 5개가 침수나 충격으로 인하여 작동을 멈추었다.

5.25인치 대공포 탄약고 8개 가운데 3개도 침수되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보수반은 추가 침수를 막고 우현에 역침수를 실시했으나 발전기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함체 후방에 전기를 공급하던 발전기 4대가 모두 작동을 멈추면서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전기를 필요한 곳에 분배할 수 있는 체계가 있었으나 작동하지 않았으므로 함체 후방에서는 비상용 축전지로 최소한의 전력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뢰의 피격으로 프린스오브웨일스가 직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펌프

프린스오브웨일스는 1시간에 350톤을 퍼낼 수 있는 소형펌프 14개와 1,000톤짜리 대형펌프 4개를 가지고 있어서 시간당 8,900톤의 물을 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전기부족으로 후방에 위치한 소형펌프 6개와 대형펌프 3개가 작동을 멈추어 후방 함체에 들어찬 바닷물을 빼낼 수 없었다.

따라서 역침수를 실시했어도 기울기는 11.5도에서 9도로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통신

함체 후방에 전화가 되지 않아 전령이 보고와 명령을 전해야 했다.

이로 인하여 보수활동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전기 분배 체계에 문제가 생겨 후방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보수반의 한 팀은 5.25인치 대공포 1개 포좌의 전기문제를 해결하느라 매달려 있었다. 

 

환기 및 조명

함체 후방은 비상용 축전지를 사용하여 최소한의 조명만 유지했기 때문에 환기가 멈추었다.

이에 따라 작업 중인 보수반원들이 쉽게 지쳤으며 보일러실이나 기관실의 인원들은 섭씨 66도까지 올라가는 더위에 직면했다.

의무실도 문제였다.

수술에 필요한 조명이 불가능해지자 의무대는 의무실을 떠나 집중방어구역 밖의 영화갑판(Cinema Flat)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옮겨 부상자를 치료했다.

이는 나중에 큰 비극의 원인이 된다.

 

조향

키를 움직이던 전동기 자체는 어뢰의 피격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전기가 끊어진 후 전동기도 고장나서 조향이 불가능해졌다.

 

대공포

함체 후방에 자리잡은 5.25인치 대공포좌 4개(P3, P4, S3, S4)에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 사격이 불가능해졌다.

폼폼대공포는 전력 문제는 없었으나 포탄 걸림 때문에 제대로 사격을 하지 못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는 단 1발의 어뢰에 맞아 비록 가라앉을 염려는 없었으나 추가 전투가 곤란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반면 250kg 짜리 고폭탄 1발을 맞은 리펄스의 상태는 양호했다.

폭탄에 의한 화재는 약간의 잔불만 남기고 진화되었으며 승조원들은 고장난 대공포를 고치고 대공포탄을 탄약고에서 포좌로 운반했다.

리펄스의 기관은 멀쩡했고 승조원들의 사기는 높았다.

 

리펄스의 함장 테넌트 대령은 필립스 제독이 아직 구원요청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테넌트 대령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1941년 12월 10일 오전 11시 58분에 구원을 요청했다. 

 

<리펄스로부터 영국군에게

적기가 폭격 중. 위치는 134NYTW22X09>

(FROM REPULSE TO ANY BRITISHMAN OF WAR

ENEMY AIRCRAFT BOMBING. MY POSITION 134NYTW22X09)

 

이것이 Z 부대가 출항 이후 최초로 발신한 전문이었다.

 

구원 요청을 받은 싱가포르의 해군통신소에서 암호를 풀고 통신문을 처리하는데 6분이 걸렸다.

오후 12시 4분에 해군통신소를 떠난 구원요청이 싱가포르 시내의 사임로에 있던 항공사령부의 작전실에 도달하는데 15분이 추가로 걸렸다.

항공사령부는 즉시 전화로 셈바왕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주군 제453전투비행대대에 출격명령을 내렸다.

1분 후인 12시 20분부터 팀 비거스 대위가 지휘하는 제453전투비행대대의 버팔로 전투기들이 이륙을 시작하여 5분 내로 11대의 버팔로가 이륙을 마쳤다.

구원요청 이후 22분 만에 전투기가 이륙했으니 결코 느린 대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셈바왕 기지에서 전투현장까지의 거리는 280km 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구원요청은 너무 늦었다.

 

3척의 구축함도 빈약한 대공화기로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일본기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익스프레스는 프린스오브웨일스와 일본기 사이에 끼어 어뢰공격을 받았다.

2발의 어뢰가 다가왔는데 1발은 익스프레스가 고속으로 기동하면서 일으킨 물살에 부딪혀 폭발했고 다른 1발은 함체 중앙에 뛰어들었으나 아슬아슬하게 함저를 지나쳤다.

엘렉트라와 호주구축함 뱀파이어도 열심히 일본기를 공격했으나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리펄스에서 이함한 왈루스 수상정찰기 1대는 전투해역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말레이 해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많은 일본기들이 왈루스를 보았으나 무시했다.

왈루스는 싱가포르로 돌아오다가 연료가 떨어져 해상에 불시착했고 구조요청을 받은 구축함 스트롱홀드가 출동하여 싱가포르로 예인했다.

 

Z 부대를 발견했던 호아시 소위의 정찰기는 정오 직전에 쿠안탄 비행장으로 가서 활주로에 50kg 짜리 폭탄 2발을 떨어뜨리고는 1 시간 후에 전투현장으로 돌아와 영국전함들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영국상선 할디스도 말레이 해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홀 선장은 전투에 휘말리기 싫어 최대 속력으로 현장을 떠나면서 선교에서 관찰한 전투 과정을 일지에 기록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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