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출격

 

일본제2함대 사령장관 곤도 노부다케 중장이 10일 오전 1시 52분에 발신한 I-58함의 접촉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2시 11분이었다.

영국함대가 남쪽으로 변침하여 빠른 속력으로 싱가포르로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I-58함은 영국함대가 쿠안탄 방향인 240도로 항진 중이라는 후속 보고를 타전했으나 이 보고는 곤도 중장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접촉 보고를 받은 곤도 중장은 함대결전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제2함대는 속력을 24노트로 올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제2함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북상 중이던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의 남파함대도 남쪽으로 변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0일 동이 트자 일본함대는 속력을 28노트로 올렸다.

 

하지만 잠시 후 곤도 제독은 추격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영국함대가 싱가포르에 접근하기 전에 포착하기 어려웠는데 곤도 제독은 자신의 함대를 싱가포르의 영국군 비행장에 접근시키기 싫었다.

결국 28노트로 속력을 올린지 1시간 30분 만에 곤도 제독은 추격을 중단하고 침로를 북쪽으로 되돌렸다.

이로써 수상함대는 영국함대를 처리하는 임무에서 물러났다.

만일 영국함대가 쿠안탄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곤도 제독은 추격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제 제22항공전대가 영국함대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상함대는 추격을 포기했다.

밤새 영국함대를 찾아 흩어진 잠수함들은 영국전함에게 치명타를 먹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잠수함의 공격은 계획을 세워 진행하기보다는 운에 맡겨야 할 상황이었다.

일본해군항공대에게 있어 수상함대가 저지에 실패한 영국함대를 처리하는 임무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할 기회였다.

 

제22항공전대 사령관 마츠나가 사다이치 소장은 휘하의 3개 해군항공대에 재급유하고 무장을 장착한 다음 10일 날이 밝으면 출격하라고 명령했다.

99대의 육상공격기 중 94대가 작전가능했는데 지난 며칠동안 지속적으로 작전에 투입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가동율이었다.

95% 가까운 가동율은 육상공격기의 높은 신뢰성과 정비병들의 뛰어난 숙련도를 보여준다.

 

일본해군의 지상기지항공대는 3대의 항공기가 모여 소대를 이루고  3개의 소대가 모여 분대를 이루었다.

1944년부터 전투기 소대는 4대로 늘었다.

9대의 항공기로 이루어지는 지상기지항공대의 분대는 항공모함항공대의 중대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분대가 3개 또는 4개가 모여 항공대를 이루었다.

96식 육상공격기를 장비한 원산 및 미호로 해군항공대는 4개 분대 36대, 1식 육상공격기를 장비한 가노야 해군항공대는 3개 분대 27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츠나가 소장은 육상공격기 11개 분대 중 1개 분대는 정찰, 4개 분대는 폭격, 6개 분대는 뇌격으로 임무를 분담했다.

정찰을 담당한 1개 분대는 50kg 짜리 소형폭탄 2개만 매단 채 연료를 최대한 싣고 가장 먼저 이륙한 다음 부채꼴로 퍼져 해상을 수색할 것이었다.

폭격을 담당한 육상공격기 중 3개 분대는 500kg 짜리 고폭탄 1개를 달았으며 미호로항공대 제1분대는 250kg 짜리 고폭탄 2개를 장비했다.

전함에게는 철갑탄이 효과가 컸으나 당시 일본해군이 보유한 철갑탄은 모두 진주만 공격에 배정해서 제22항공전대에는 재고가 없었다.

공격의 주력은 뇌격으로서 항공어뢰 1발씩 장비했는데 원산 및 미호로 항공대의 3개 분대는 149.5kg 짜리 탄두를 가진 91식 1형을, 가노야 항공대의 3개 분대는 204kg 짜리 탄두를 가진 91식 2형을 장비했다.

 

1941년 12월 10일 아침에 이륙한 제22항공전대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정찰기

원산항공대의 96식 육상공격기 9대

사이공 비행장에서 오전 5시 이륙

 

원산항공대(나카하시 소좌, 96식 육상공격기)

제1분대 이시하라 대위 9대 뇌격

제2분대 다카이 대위 8대 뇌격

제3분대 니카이도 대위 9대 폭격

사이공 비행장에서 오전 6시 25분에 이륙

 

가노야항공대(미야우치 소좌, 1식 육상공격기)

제1분대 나베타 대위 9대 뇌격

제2분대 히가시모리 대위 8대 뇌격

제3분대 이키 대위 9대 뇌격

투두암 비행장에서 오전 6시 44분에 이륙

 

미호로항공대(96식 육상공격기)

제1분대 시라이 대위 8대 폭격

제2분대 다케다 대위 8대 폭격

제3분대 오히라 대위 9대 폭격

제4분대 다카하시 대위 8대 뇌격

투두암 비행장에서 오전 6시 50분 - 8시에 걸쳐 이륙

 

합계 : 정찰기 9대, 폭격기 34대, 뇌격기 51대

 

미호로 항공대장 마에다 코세이 대좌는 마츠나가 소장에게 요청하여 옵저버로서 제3분대의 폭격기 중 1대에 탑승했다.

조종사들은 영국함대가 얼마나 남쪽으로 멀리 갔든 상관없이, 심지어 싱가포르에 입항했어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날 늦게 착륙하여 잠깐 눈을 붙인 항공기 승조원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오하기를 담은 도시락과 달콤한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들고 오전 5시부터 8시에 걸쳐 차례로 이륙했다.

마지막으로 이륙한 것은 미호로항공대의 제3분대로서 어뢰를 장비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사다이치 소장의 명령에 따라 폭탄으로 바꾸는 바람에 이륙이 늦어졌다.

 

(오하기. https://ja.wikipedia.org/wiki/%E3%81%BC%E3%81%9F%E3%82%82%E3%81%A1)

 

이륙한 정찰기는 부채꼴로 퍼졌고 폭격기와 뇌격기는 분대 단위로 뒤를 따랐다.

날씨가 맑았으므로 고도는 2,500m - 3,000m 를 유지했다.

폭격기와 뇌격기는 영국함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싱가포르 근해를 목표로 날았다.

 

사이공에서 740km 이상 날아도 영국함대가 보이지 않자 일본기 승조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뢰를 장비한 원산항공대 제2분대는 연료를 아끼려고 엔진의 공기 흡입 비율을 무리하게 조정하다가 1대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사이공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숫자가 8대에서 7대로 줄었다.

 

9대의 정찰기 중 4번 정찰기는 남쪽 한계인 티오만 섬 상공에서 동쪽으로 선회했다.

동쪽으로 짧은 거리를 비행한 다음 북쪽으로 꺾어 사이공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오전 9시 43분에 4번 정찰기는 해상에서 영국구축함 테네도스를 발견했다.

정찰기는 사이공에 보고한 다음 접근하여 50kg 짜리 폭탄 2개를 떨어뜨렸으나 빗나갔다.

이어서 4번 정찰기를 뒤따르던 원산항공대의 육상공격기 26대가 테네도스 상공에 나타났다.

이들 중 제3분대가 500kg 짜리 폭탄 9발을 떨어뜨렸으나 90m 이내로 떨어진 폭탄은 하나도 없었으며 테네도스의 피해는 일본군 폭탄 파편에 허벅지를 맞은 수병 1명 뿐이었다.

공격을 받은 테네도스는 오전 10시 5분에 구원요청을 한 후 전속력으로 싱가포르로 도망쳤다.

테네도스의 구원 요청은 멀리 떨어진 쿠안탄 앞바다의  Z 부대에서는 똑똑히 들었으나 가까운 싱가포르에서는 듣지 못했다.

따라서 싱가포르의 영국전투기들은 일본기를 공격할 기회를 놓쳤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면서 일본기 조종사들은 초조해졌다.

이제 원산 및 가노야 항공대의 육상공격기들은 싱가포르와 같은 위도까지 내려와 항속거리의 한계에 가까워졌으며 일부 승조원들은 남쪽으로 멀리 수마트라까지 볼 수 있었다. 

늦게 이륙한 미호로 항공대는 아직 북쪽에 있었다.

 

정찰기 조종사인 호아시 마사메 소위는 정찰 해역의 남쪽 끝에 도착하여 오른쪽으로 꺾었다.

서쪽으로 잠시 비행하다가 북쪽으로 꺾어 사이공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오전 10시 15분, 호아시의 승조원 중 1명이 해상에서 Z 부대를 발견했고 호아시 소위는 즉시 보고했다.

 

적함대 발견 북위 4도, 동경 103도 55분, 침로 60도

 

적함대는 킹급 전함 1척 및 리펄스로 이루어져 구축함 3척의 호위를 받고 있음 

 

호아시 소위는 반복하여 보고하는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육상공격기들이 알 수 있도록 장파 신호를 보냈다.

소식을 들은 육상공격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폭격기 8대로 이루어진 시라이 요시미 대위의 미호로항공대 제1분대로서 호아시 소위의 보고가 나간 지 40분 후인 10시 55분에 도착했다.

 

(Z 부대의 행동. 출처 :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War At Sea, P. 565)

 

호아시 소위에게 발견되었을 때 Z 부대는 바지선들을 조사하러 북상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다른 선박을 발견하고 남동쪽으로 침로를 바꾸었다.

이 선박은 홍콩에서 탈출하여 싱가포르로 향하던 영국상선 할디스였다.

할디스의 승무원들은 본의 아니게 말레이 해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

 

쿠안탄을 떠난 이후 필립스 제독은 경계태세를 다시 2급으로 떨어뜨렸다.

따라서 비번인 수병들은 2번째 아침식사를 하고 밀린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55분, Z 부대의 레이더가 접근하는 한 무리의 일본기를 발견했다.

즉시 함대 전체에 전원배치 명령이 떨어졌고 수병들은 서둘러 전투위치로 달려갔다.

놀라운 점은 이 상황에서도 필립스 제독이 싱가포르에 전투기 파견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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