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출항

 

1941년 12월 8일 오후 5시 10분, Z 부대는 구축함 테네도스, 호주구축함 뱀파이어, 리펄스, 프린스오브웨일스의 순서로 출항했다.

구축함 엘렉트라와 익스프레스는 이미 출항하여 창이 곶 부근에서 기뢰제거기를 시험하고 있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가 조호르 수로를 빠져나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안에 나와서 배웅했는데 군중 가운데 이 전함의 최후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평선 너머로 싱가포르의 해안선이 사라지자 구축함 엘렉트라와 익스프레스가 합류하여 선두에 섰다.

이어서 기함 프린스오브웨일스가 항진하고 리펄스가 730m 뒤에서 따라갔다.

승조원들은 다가올 전투에 대해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리펄스의 승조원 중 일부는 요나라는 별명을 가진 프린스오브웨일스와 함께 출격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지만 대부분은 일본군이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출항한 지 5시간쯤 지난 오후 10시 43분에 동양함대 참모장 아서 팔리서 소장으로부터 필립스 제독에게 전문이 들어왔다.

팔리서 소장은 싱가포르에 남아서 극동총사령부와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군은 9일 오전 8시에 1대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을 보내어 귀관의 전방 190km 해역에 대해 정찰을 실시할 예정임.

2. 10일 수요일 새벽에 싱고라 부근에 대한 정찰은 가능함.

3. 10일에 전투기에 의한 엄호는 불가능함, 반복함, 불가능함.

4. 일본은 남부인도차이나와 어쩌면 타이에 대규모 폭격기 부대를 가지고 있음. 극동총사령관은 맥아더 장군에게 장거리 폭격기를 사용하여 최대한 빨리 인도차이나의 항공기지를 폭격해달라고 요청했음.

5. 코타바루 항공기지는 철수했으며  다른 북부 항공기지들도 적의 공습에 의하여 거의 무력화 됨.

6. 코타바루의 군사적 상황은 나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음.

 

팔리서 소장이 모르고 있던 사실은 12월 8일에 일본기들이 필리핀의 클라크 비행장을 공습하여 B-17 폭격기의 절반을 파괴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맥아더 장군에게는 인도차이나의 일본군 비행장을 공습할 여력이 없었다.

 

필립스 제독은 항공엄호가 불가능하다는 팔리서 소장의 전문을 받은 뒤에도 작전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흐렸으므로 일본기에게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필립스 제독은 다음날인 9일 저녁까지 일본기에게 발견되지 않으면 싱고라로 가서 10일 새벽에 일본선단을 공격하고 9일 낮동안 일본기에게 발견되면 싱가포르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영국공군이 Z 부대의 엄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싱가포르의 셈바왕 비행장을 기지로 하는 호주군 제453전투비행대대가 Z 부대 엄호를 위하여 배정되어 있었다.

버팔로 전투기 12대를 보유한 제453전투비행대대는 모든 임무에서 벗어나 순전히 Z 부대 엄호에만 집중하라는 명령을 받고 9일 아침부터 비상태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다만 싱고라는 너무 멀고 말레이 북부의 비행장이 사용불가 상태였기 때문에 싱고라에서의 항공엄호는 불가능했다.

 

(브류스터 F2A 버펄로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Brewster_F2A_Buffalo)

 

Z 부대는  밤새 17.5노트의 속력으로 일본잠수함의 위협을 피하여 지그재그로 항진하면서 북동쪽으로 향했다.

9일 아침이 되었을 때 날씨는 흐리고 비까지 내려 필립스 제독은 일본기에게 들킬 위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전 7시 13분에 아남바스 제도 북동쪽에 도달한 Z 부대는 330도로 변침하여 북상했다.

필립스 제독은 변침 이후 경계태세를 2급으로 내렸다.

이 경우 모든 포에 장전하고 일부 병력이 배치되어야 하지만 비번인 병력들은 식사를 하고 자거나 쉴 수 있었으므로 오전 9시까지 승조원들이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전원 전투배치되는 제1급 경계태세로 들어가 오래 지속될 경우를 대비하여 승조원들의 체력을 비축해 두는 일은 중요했는데 환기능력이 떨어져 승조원들이 더위에 시달리고 있던 프린스오브웨일스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변침한 후 날씨는 더욱 나빠져서 Z 부대는 레이더에 의존하여 항해했다.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레이더는 함정을 40km 거리에서, 그리고 고공으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130km 거리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9일 오전 9시 6분에 리펄스의 함장 테넌트 대령은 프린스오브웨일스에 발광신호를 보내어 구축함 테네도스에 급유해야 한다고 전했다.

Z 부대는 엄격한 무선침묵 상태에 있었다.

급유에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속력을 8노트로 낮추어야 했으므로 필립스 제독은 요청을 거부했다.

9일 오전 중에 Z 부대는 일본잠수함 초계선을 피하여 침로를 345도로 바꾸었고 정오에 즈음하여 거의 정북으로 변침했다.

 

일본은 싱가포르와 상륙해안 사이의 해역을 감시하기 위하여 10척의 잠수함을 투입하여 3중 초계선을 쳐 두었는데 6척을 투입한 제2초계선이 핵심이었다.

제2초계선의 가장 동쪽을 맡은 잠수함은 I-65함으로 하라다 하쿠에 소좌가 지휘했다.

 

9일 오후 2시에 잠망경을 들여다보던 I-65함의 장교가 관측한계에 가까운 거리에서 2개의 희미한 함영을 발견했다.

보고를 받은 하라다 소좌는 잠망경을 들여다 보고 영국전함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I-65함은 영국함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다음 부상하여 뒤따르면서 오후 2시 15분에 무전으로 영국함대의 위치와 침로, 속력을 보고했다.

 

Z 부대는 운이 없었다.

만일 침로가 몇 km 만 동쪽으로 치우쳐 있었으면 I-65함은 Z 부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Z 부대의 이동경로와 발각 상황. 출처 : The Sinking Of The Prince Of Wales & Repulse : The End Of The Battleship Era, P.127)

 

Z 부대를 뒤따르던 I-65함은 오후 2시 20분에 스콜 속에서 영국함대를 놓쳐버렸지만 계속 추격하여 오후 3시 20분에 다시 접촉했다.

오후 4시에 수평선에서 갑자기 1대의 비행기가 날아오자 I-65함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영국기로 생각하고 급히 잠항했는데 사실은 일본제4잠수전대 기함인 경순양함 키누의 수상기였다.

30분 후에 부상해보니 영국함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일본군의 불안정한 통신망 때문에 I-65함의 접촉보고는 늦게 전달되었다.

I-65 함의 보고를 수신한 것은 제4 및 제5잠수전대 기함인 경순양함 키누와 유라였는데 양 함은 1시간 30분이나 우물거리다가 이 통신을 중계했고 이후 30분이 더 지나서야 중순양함 죠카이에 승조하고 있던 남파함대 사령장관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에게 도달했다.

영국전함들이 싱가포르에 있다고 믿고 있던 오자와 중장은 깜짝 놀랐다.

 

일본군은 전날인 12월 8일 오후에 싱가포르에 정찰기를 보내어 전함 2척이 아직 항구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9일 오전에도 일본정찰기가 싱가포르를 정찰했는데 조종사는 부유선거를 전함으로 착각하여 여전히 영국전함들이 정박 중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중순양함을 보유한 남파함대의 주력은 다음 작전을 위하여 캄란 만으로 철수 중이었고 병력과 물자를 양륙한 수송선들도 경순양함과 구축함의 빈약한 호위를 받으며 뒤따라 철수 중이었다.

사이공 부근의 제22항공전대에서는 다음날인 10일 새벽에 싱가포르에 기습을 가해 진주만에서 했던 것처럼 영국전함 2척을 항구 내에서 격침하려고 했다.

따라서 정비사들이 항공기를 정비하는 동안 조종사들은 싱가포르 지도를 들여다보며 항구의 수심과 진입 및 철수 경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I-65함의 접촉보고를 받은 일본군의 첫 반응은 I-65함이 무엇인가 착각했으며 영국전함은 아직 싱가포르에 있다는 것이었다.

확인을 위하여 사이공에서 즉시 정찰기가 이륙하여 가능한 최고속력으로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항구를 자세히 살펴본 정찰기 조종사는 오전의 정찰기가 부유선거를 전함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 영국전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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