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매복
둘리틀 공격대를 발진시킨 헐지 중장 휘하의 제16기동부대는 4월 25일에 진주만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이번에는 휴가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제16기동부대에는 함의 정비와 보급품 적재를 위하여 5일만이 주어졌다.
4월 30일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중심으로 한 제16기동부대는 산호해 해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남태평양으로 향했으나 5,600km 나 떨어진 산호해로 가는 도중에 산호해 해전이 끝나 버렸다.
이후 제16기동부대는 일본군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된 오션과 나우루 방면으로 이동했다.
오션 상륙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은 제16기동부대의 출현에 놀라 상륙작전을 포기했다.
5월 14일에 제16기동부대는 툴라기 기지의 일본군에게 일부러 모습을 노출시키라는 니미츠 제독의 명령을 받았다.
제16기동부대는 15일에 툴라기 기지 전방 900km 해상까지 나아가서 일부러 일본군의 정찰비행정에 발견된 다음 밤이 되자 뱃머리를 돌려 비밀리에 진주만으로 돌아왔다.
일본군은 이 정찰결과를 바탕으로 미해군이 일본군의 차기 작전 지역을 남태평양으로 착각하여 제16기동부대를 남태평양에 파견했다고 생각했으며 MI 작전 이전에 잘해야 진주만에 돌아갈 수 있지 미드웨이 부근까지 북상시킬만큼 눈치를 빨리 채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제16기동부대는 5월 26일에 진주만에 입항했다.
그날 오후에 헐지 제독이 방문했을 때 니미츠 제독은 충격을 받았다.
헐지 제독은 웃고 있었으나 초췌한 모습을 감출 길이 없었고 몸무게가 9kg 이나 빠져서 제복이 헐렁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일광화상으로 피부병이 생겨 낮에는 선실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밤에는 터진 피부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힘든 전쟁 초기의 6개월 동안 육지에서 지낸 며칠을 제외하고는 줄곧 해상에서 함대를 지휘하면서 긴장된 생활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도 헐지 제독은 다가오는 전투에서 자신이 지휘를 맡고 싶어했고 니미츠 제독도 그러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16기동부대 군의관의 긴급 보고를 받고 피부과 군의관을 대동한 채 득달같이 달려온 해군병원장은 헐지 제독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단호하게 입원명령을 내렸다.
헐지 제독은 할 수 없이 입원하면서 니미츠 제독에게 제16기동부대사령관으로 자신의 순양전대장인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소장을추천했다.
이때 입원한 헐지 제독은 2달 동안 푹 쉬면서 피부병을 치료한 후 미본토로 가서 지병이던 치질 수술까지 받고 완전히 회복한 다음 과달카날 전투가 한창이던 1942년 10월에 곰리 제독의 뒤를 이어 남태평양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화려하게 전선으로 돌아온다.
(윌리엄 헐지 제독.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헐지 중장은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스프루언스 소장과 친했고 가족들끼리도 알고 지냈는데 남들이 보기에 상당히 뜻밖의 일이었다.
스프루언스 소장은 해군사관학교 25기로 22기인 헐지 중장보다 3년이나 후배였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헐지 중장과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항공병과의 선두 주자이자 스타인 헐지 중장과 달리 스프루언스 소장은 오로지 구축함과 순양함에서만 경력을 쌓아왔다.
스프루언스 소장은 조종사 면허(골드윙)는 커녕 항공모함 함장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인 항공관측사 자격(실버윙)도 따지 않아서 항공모함 함장 경력도 없었다.
하지만 스프루언스 제독은 개전 이래 계속 제16기동부대의 순양전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참모장 브라우닝 대령을 위시하여 항공작전에 정통한 헐지 제독의 참모들과 익숙한 사이였다.
게다가 이후에 증명되는 것이지만 스프루언스 제독은 모범생같은 단정한 겉모습과 달리 상당한 결단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성향도 정반대였다.
헐지 제독은 외향적이고 상냥하고 감정적이었으며 공식행사를 제외하고는 조종사 재킷을 걸치고 아무데나 돌아다녔다.
반면 스프루언스 제독은 내성적이고 냉정하고 침착했으며 언제나 규정에 맞는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했다.
헐지 제독은 스프루언스 소장의 금욕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존중했으며 스프루언스 제독은 헐지 제독의 즐겁고 친근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사실 스프루언스 제독은 뛰어난 능력으로 이미 미해군 수뇌부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자기 주변을 최고의 인재로 채우고 싶어했던 니미츠 제독은 스프루언스 제독을 개인적으로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근무기록을 보고 감명을 받아 역시 스프루언스 제독을 주시하고 있던 킹 제독이 워싱턴으로 빼돌리기 전에 선수를 쳤다.
니미츠 제독은 일찌감치 스프루언스 제독을 자신의 참모장으로 삼고 싶다고 킹 제독에게 말하여 동의를 받아둔 상태였다.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1942년 5월 27일 오후에 산호해 해전에서 만신창이로 얻어터진 항공모함 요크타운이 16km 에 걸쳐 중유를 흘리면서 진주만에 들어왔다.
요크타운은 곧 1번 드라이독으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28일 새벽에 건선거에 들어갔다.
곧 물이 빠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니미츠 제독이 도착했다.
원래 항공모함이 건선거에 들어온 후에는 위험한 항공유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하여 하루 동안을 놓아 두어야 했으나 시간이 급했던 니미츠 제독은 무시했다.
건선거의 물이 완전히 빠지기도 전에 카키색 군복 위에 엉덩이까지 올라가는 긴 장화를 신은 니미츠 제독이 함정조사관과 함께 건선거에 들어와 요크타운의 함체를 검사했다.
니미츠 제독은 위관장교 시절 엔지니어였으므로 이런 행동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피치 제독은 산호해 해전이 끝난 직후 요크타운의 수리에는 90일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고했다.
니미츠 제독은 플레처 제독에게 자세한 피해보고를 하라고 명령했으며 플레처 제독은 진주만에 도착하기 직전에 추가보고를 했다.
나무로 만든 비행갑판의 구멍은 돌아오는 도중에 보수가 끝났으며 기관은 정상이고 수리하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승강기도 정상이라는 내용이었다.
플레처 제독은 요크타운의 문제는 결국 함체의 손상이며 긴급 수리라면 2주 내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니미츠 제독으로서는 목전에 다가온 미드웨이 해전에 요크타운을 투입하지 못한다면 2주나 90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이 도착하기도 전에 공창관계자들에게 최대한 빨리 수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를 갖추어 두라고 명령했다.
실제로 요크타운을 조사한 니미츠 제독은 다가오는 전투에 쓸 수 있을 정도로만 수리하려면 훨씬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함정조사관과 함께 요크타운의 조사를 마친 니미츠 제독은 뒤따르던 함정수리 관계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 배를 3일 안에 복귀시켜야 한다."
("We must have this back in three days.")
순간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대답은 하나일 수 밖에 없었다.
함정수리 담당관인 핑스태드 소령이 일행을 대표하여 대답했다.
"예."
("Yes, sir.")
곧 1,400 여명의 인원이 몰려와서 12시간 교대로 24시간 내내 요크타운을 수리했다.
야간작업을 위하여 거대한 조명이 건선거 전체를 대낮같이 밝혔고 수리에 소요되는 막대한 전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호놀룰루 시내에는 구역별로 제한송전이 실시되었다.
완벽한 수리가 아닌 땜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수리용 청사진이나 계획서같이 시간을 잡아먹는 평상시의 절차는 무시되었다.
기술자들이 때워야 할 구멍에 맞추어 합판을 자른 다음 공작소에 보내면 공작소에서 같은 모양으로 철판을 잘라주었고 그 철판을 구멍에 덧대고 나사를 박든지 용접했다.
함체 내부의 휘어진 격벽은 웬만하면 교체하지 않고 두드려 편 후에 목재로 보강했다.
수리에 투입된 인원들은 12시간씩 2교대로 일했으나 교대시 작업 능률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일부 인원은 한숨도 자지 않고 현장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면서 48시간 이상 연속해서 일했다.
(진주만의 1번 건선거에 들어와 있는 CV-5 요크타운. 1942년 5월 28일에 찍은 사진이다.)
요크타운의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니미츠 제독은 킹 제독의 요구에 따라 플레처 제독이 미드웨이 해전의 지휘를 맡는 것이 적당한지를 평가하는 부담스러운 임무를 처리해야 했다.
킹 제독은 플레처 제독이 산호해 해전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말주변이 없는 플레처 제독은 니미츠 제독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고 결국 자신의 의견을 문서로 제출했다.
플레처 제독이 제출한 문서를 읽어본 니미츠 제독은 그가 미드웨이 작전을 지휘할만한 능력과 용기가 충분하다고 확신하고 킹 제독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얻었다.
니미츠 제독은 킹 제독과 비교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특히 사람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그가 제출한 서류 또는 근무기록만 보고 그 사람의 능력과 성향을 판단하는 재능이 발군이었다.
스프루언스 제독도 개인적으로 모르면서도 근무기록만으로 뛰어난 능력을 알아차린 경우였으며 훗날 미처 제독도 뛰어난 근무기록을 근거로 스프루언스 제독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제58기동부대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당시 미해군의 근무기록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같은 근무기록을 보고도 니미츠 제독이 다른 사람들보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어 기록된 문자 너머의 실체적 진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5월 27일 저녁에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는 플레처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이 참가한 가운데 미드웨이 해전에 대한 최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니미츠 제독은 미국항공모함들의 목표는 오로지 일본항공모함임을 명확하게 했다.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중심의 제16기동부대는 5월 28일에 진주만을 출항하여 미드웨이 북쪽 520km 해역인 행운점(Point Luck)에서 대기하며 요크타운 중심의 제17기동부대는 요크타운의 수리가 완료되는 대로 출항하여 행운점에서 제16기동부대와 합류한다.
이때부터 플레처 제독이 제16 및 제17기동부대를 통합지휘한다.
제16 및 제17기동부대는 6월 3일 저녁에 남하하기 시작하여 4일 아침에는 미드웨이 북방 200km 해역에 도달한 후 북서쪽에서 접근할 일본항모들의 위치가 확인되는 대로 함재기를 내보내어 공격한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단 한번의 공습으로 동시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한다.
회의가 끝난 후 니미츠 제독은 플레처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을 따로 불러 밀봉된 명령서를 1통씩 주면서 출항한 후에 혼자만 보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서에는 적을 공격할 때 엄격하게 계산된 위험만을 감수해야 하며 아군 항모가 적 항모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입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인 5월 28일에 제16기동부대가 진주만을 빠져나갔다.
5월 29일에는 외부 함체 수리가 끝난 요크타운이 드라이독을 떠나 진주만으로 들어왔고 내부에서는 수리가 계속 진행되었다.
요크타운의 수리는 다음날인 30일 오전 11시에 니미츠 제독이 승함하여 수리에 진력한 기술자들을 치하하고 요크타운의 승무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우는 연설을 하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잠시 후 니미츠 제독이 하함하고 요크타운의 기관이 돌기 시작해서야 마지막까지 수리에 전념하던 기술자들이 황급히 배를 빠져나갔다.
제17기동부대가 진주만을 빠져나가 원형진을 형성하자 카네오헤 기지와 에와 기지에서 함재기들이 이륙하여 요크타운에 착함했다.
산호해 해전에서 피해를 입은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새러토가의 비행대대들이 투입되었다.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요크타운의 제5폭격비행대대(VB-5)가 정찰비행대대(VS-5)로 이름을 바꾸었고, 폭격비행대대로는 맥스 레슬리 소령의 제3폭격비행대대(VB-3)가 탑재되었다.
제5뇌격비행대대(VT-5) 대신 랜스 마시 소령의 제3뇌격비행대대(VT-3)가 탑재되었다.
요크타운의 전투비행대대는 원래 레인저 소속이었던 제42전투비행대대(VF-42) 였는데 제임스 태치 소령의 제3전투비행대대(VF-3)로 교체되었다.
제42전투비행대대에서 살아남은 와일드캣들과 조종사들은 제3전투비행대대에 흡수되었다.
1942년 6월 2일 오후 4시, 제16기동부대와 제17기동부대는 미드웨이 북방의 행운점에서 합류하여 매복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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