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부투-타남보고 상륙
가부투-타남보고 섬은 툴라기 섬에서 동쪽으로 2,700m 정도 떨어져 있다.
가부투 섬은 크기가 200m x 450m 정도이며, 서북쪽으로 450m 정도 떨어져서 둑길로 가부투 섬과 연결된 타남보고 섬은 약간 작다.
양섬은 둘다 고지를 가지고 있는데 가부투 섬의 148 피트 고지가 타남보고 섬보다 10m 정도 높았으므로 먼저 가부투 섬에 상륙하기로 했다.
가부투 섬 상륙부대는 가부투 섬의 동쪽으로 진입하여 섬의 북동쪽에 있는 수상기용 램프에 상류할 예정이었으므로 진입수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대안인 플로리다 섬의 할라보 반도에 미리 상륙하기로 했다.
(툴라기 섬 및 가부투-타남보고 상륙작전 상황도. 원본은 여기로)
8월 7일 오전 7시 27분부터 32분까지 5분간 로널드 스무트 중령이 지휘하는 구축함 몬센이 60발의 5인치 포탄을 할라보 반도의 상륙예정해안에 발사했다.
오전 8시 45분에 로버트 힐 중령이 지휘하는 제1/2대대 중 할레타 해안에 상륙한 B 중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들이 할라보 반도에 아무런 저항을 받지않고 상륙했다.
(플로리다 섬의 할라보 반도에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상륙하는 제1/2대대의 모습)
가부투 섬 상륙은 상륙주정의 부족 때문에 툴라기 상륙 4시간 후인 정오에 실시했다.
따라서 기습은 불가능했다.
병력수송함 헤이우드에 탑승하고 있던 로버트 윌리엄스 소령의 제1낙하산 대대 395명은 13척의 상륙주정에 분승하여 11km 를 항해해야 했다.
11시 45분부터 55분까지 항공모함 와스프를 출격한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들이 가부투 섬을 폭격했고 이어서 11시 55분부터 59분까지 4분간 대공경순양함 산후앙이 280발의 5인치 함포탄을 가부투 섬에 쏟아부었다.
그 직후 제1낙하산 대대가 가부투 섬에 상륙했다.
돈틀레스들이 원래 상륙하기로 계획했던 콘크리트로 만든 일본군의 수상기용 경사로를 부수어 버리는 바람에 제1낙하산대대는 더 북쪽의 부두에 상륙해야 했고 따라서 타남보고 섬으로부터 사격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선두의 A 중대는 아무런 피해없이 상륙에 성공했으나 뒤따르던 B 중대와 마지막의 C 중대는 가부투 섬과 타남보고 섬에서 쏟아지는 일본군의 소화기 사격을 받아서 전 병력의 10% 정도가 상륙과정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B 중대는 즉시 섬의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타남보고에서 쏘아대는 측사로부터 벗어났다.
잠시 숨을 고른 B 중대는 가부투 섬의 148피트 고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A 중대와 C 중대도 가세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공격 도중에 대대장 로버트 윌리엄스 소령이 부상을 입어 찰스 밀러 소령이 대대장직을 이어받았다.
오후 2시 30분이 되자 제1낙하산 대대는 섬의 서쪽 및 남서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부투 섬을 거의 점령했다.
그러나 타남보고 섬에서 쏘아대는 총탄 때문에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다.
대대장 밀러 소령은 타남보고 섬에 폭격과 함포 사격을 요청했다.
곧 제61기동부대에서 날아온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들이 타남보고 섬을 10분간 폭격했고 구축함 뷰캐넌과 몬센이 5인치 포탄을 쏟아부었다.
이때 대공경순양함 산후앙은 포탑 내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서 5명이 죽고 13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함포 사격에 참가하지 못했다.
타남보고 섬의 일본군들이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는 사이에 제1낙하산 대대는 가부투 섬의 일본군 진지에 최후의 공격을 가하여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일본군들을 섬멸하고 오후 6시에 마침내 가부투 섬을 점령했다.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들의 폭격을 받고 있는 타남보고 섬. 왼쪽에 보이는 섬이 가부투 섬이다. 앞쪽에 보이는 작은 섬이 가오미 섬)
밀러 소령은 폭격과 함포사격을 요청할 때 기진맥진한 제1낙하산대대 병력으로 타남보고 섬 까지 점령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 윌리엄 루퍼투스 준장에게 증원군 파견을 요청했다.
해병제1사단의 부사단장인 루퍼투스 준장은 당시 톨라기 및 가부투-타남보고를 점령할 임무를 지닌 북부부대의 지휘관이었다.
밀러 소령의 요청을 받을 당시 루퍼투스 준장 휘하의 예비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나 루퍼투스 준장은 아침에 할레타 해안에 상륙했던 에드워드 크레인 대위의 B/1/2 중대를 상륙주정에 태워 가부투 섬으로 파견했다.
가부투 점령을 끝낸 직후인 오후 6시에 B/1/2 중대원 252명을 태운 6척의 상륙정이 도착하자 제1낙하산 대대장 밀러 소령은 B 중대장 크레인 대위에게 야간을 틈타 타남보고 섬에 상륙하라고 명령했다.
오후에 제1낙하산 대대의 일부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둑길을 통하여 타남보고 섬으로 건너가려고 시도했으나 일본군의 총격이 맹렬하여 건너갈 수 없었기 때문에 야간이라도 둑길을 건너는 것은 위험했다.
이번에도 호주공군의 스펜서 소위가 수로안내인으로서 동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륙주정 1척이 가부투 섬에서 산호초에 걸려 좌초하는 바람에 5척의 상륙주정이 타남보고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윽고 해가 떨어지자 구축함의 엄호사격 하에 상륙주정들은 타남보고 섬의 북동쪽에 있는 부두와 그 부근의 해안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상륙주정은 무사히 병력을 상륙시켰으나, 두번째 상륙주정의 마지막 병력이 상륙하는 순간 엄호하던 구축함의 포탄 1발이 상륙해안 주변의 일본군 연료저장고를 명중시켰다.
곧 연료가 환하게 타오르면서 상륙 중인 B 중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이제야 미군의 상륙을 알아차린 타남보고의 일본군들이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M 중대에서 파견된 기관총 소대가 부두에 기관총 2정을 거치하고 반격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상륙한 병력과 아직 상륙주정에 타고 있던 병력 모두가 큰 피해를 입었다.
상륙주정 중의 1척은 승무원이 전멸해 버리는 바람에 어깨 너머로 주정 조작법을 익혀두었던 해병대원이 주정을 조작했다.
B 중대장 크레인 대위는 후퇴를 명령했다.
B 중대의 부상자 전원과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모두 수용한 상륙주정들은 급히 철수했다.
중대장 크레인 대위 및 제2소대장 존 스미스 소위는 10명의 부하들과 함께 해안에 남았다.
이들 중 병사 2명은 노 젓는 보트를 발견하여 그걸 타고 밤 10시경에 가부투 섬으로 돌아왔고 크레인 대위 및 스미스 소위와 8명의 병사들은 일본군의 눈을 피해가며 타남보고 섬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다음 콘크리트 둑길을 건너 자정 무렵에 전원 무사히 가부투 섬으로 복귀했다.
타남보고 섬 상륙실패를 보고받은 루퍼투스 준장은 사단예비대 투입을 요청했다.
반데그리프트 사단장과 터너 제독이 요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8일 오전 3시 30분에 예비대인 제1/2대대와 제3/2대대를 실은 병력수송함 프레지던트 헤이즈와 프레지던트 애덤스가 과달카날 섬의 정박지를 떠나 툴라기로 향했다.
이들 중 프레지던트 애덤스에 탑승한 로버트 헌트 중령의 제3/2대대는 바로 가부투로 향하여 다음날인 8일 오전 10시부터 상륙하기 시작했다.
제1낙하산 대대장 밀러 소령으로부터 지휘권을 인수한 헌트 중령은 즉시 가부투 섬의 일본군 패잔병을 완전히 소탕한 다음 오후부터 타남보고 섬을 향하여 사격을 가하여 일본군을 압박했다.
그는 타남보고 공격을 위하여 전차를 요구했고 오후 1시 15분에 스위니 소위가 지휘하는 제2해병연대 제2전차대대 C 중대 소속의 경전차 2대가 상륙했다.
헌트 중령은 경전차 1대는 틴슬리 대위의 I/3/2 중대와 함께 타남보고 섬의 동해안에 상륙하고, 나머지 1대는 K 중대의 선두에 서서 둑길을 따라서 진격하기로 했다.
오후 4시부터 20분간 미구축함들이 타남보고 섬에 함포사격을 가했고 4시 20분에 경전차 1대를 앞세운 I 중대가 타남보고 섬의 동해안에 상륙했다.
동시에 가부투 섬으로부터는 경전차 1대가 K 중대의 선두에 서서 타남보고 섬으로 돌진해 갔는데 경전차의 뒤를 따르던 K 중대는 적의 치열한 사격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고 둑길 중간에서 되돌아오고 말았다.
경전차는 혼자서 전진했다.
일본군들은 갑작스러운 경전차의 돌격에 당황했으나 뒤따르는 보병이 없다는 것을 알자 캐터필러에 굵은 쇠막대기를 집어넣어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차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한 일본군은 화염병을 만들어 두지 못했고 동시에 동쪽에서도 경전차를 앞세우고 I 중대가 상륙하여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화염병을 만들 여유가 없었다.
일본군들은 급한대로 천을 휘발유에 적신 후 불을 붙여 경전차에 던졌으나 이런 어설픈 방법으로는 파괴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군은 멈추어 선 경전차 앞에서 우와좌왕하다가 경전차의 37mm 주포에서 발사하는 산탄과 기관총 세례를 받고 몰살당했다.
저녁이 되어 마침내 미군이 전선을 장악했을 때 경전차는 망가진 상태였으나 승무원들은 상처 하나 없었고 경전차 주위에는 42구의 일본군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미군의 M3 스튜어트 경전차.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I 중대와 함께 상륙한 경전차 1대도 제몫을 충분히 했다.
소대장 스위니 소위는 상륙하자마자 전사했으나 경전차는 보병의 근접엄호를 받아가며 공격을 이끌었다.
I 중대는 상륙하자마자 경전차를 앞세우고 동쪽 사면의 일본군을 공격했다.
일본군도 동굴이나 참호에 틀어박혀서 악착같이 저항했다.
오후 5시경 타남보고 섬에서 동쪽으로 수백 m 떨어진 가오미 섬에서 몇명의 일본군이 소총을 쏘았다.
I 중대의 요청을 받은 구축함 그리들리가 달려와서 가오미 섬에 5인치 함포사격을 가하자 가오미 섬의 일본군들은 곧 침묵했다.
오후 5시가 되자 K 중대의 제1소대가 마침내 둑길을 건너 망가진 경전차가 있는 위치에 도달하여 방어선을 편성했다.
해병대는 오후 9시까지 타남보고 섬의 남동쪽 2/3를 장악했다.
오후 11시에 M 중대의 기관총 소대가 I 중대의 방어선에 증강되었는데 그 직후 일본군이 I 중대의 정면에 결사적인 돌격을 감행했다.
일본군의 공격 기세는 대단하여 순식간에 I 중대의 방어선에 도달하면서 어둠 속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일본군 대다수는 요코야마 항공대 소속의 항공요원이었고 전투병력인 제84경비대 소속 병사는 소수였기 때문에 전원이 전투병력인 I 중대원들에 비해 체력이나 백병전 기술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군의 역습은 실패하고 I 중대는 방어선을 지켜내었다.
8월 9일 날이 밝자 해병대는 공격을 개시하여 저녁까지 타남보고 섬을 완전히 점령했다.
가부투-타남보고 섬을 지키던 일본군 수비대는 요코야마 항공대의 항공요원 342명과 제84경비대에서 파견된 5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들 중 20명이 포로가 되었고 30명 정도가 플로리다 섬으로 탈출했다.
나머지 340 명 가량은 모두 전사했다.
해병대도 전사 108명, 부상 140명이라는 결코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
타남보고 점령과정에서 LVT 는 유용성을 충분히 과시했다.
8일 정오부터 제2수륙양용트랙터대대 A 중대 제3소대 소속 5대의 LVT 가 가부투 섬과 프레지던트 애덤스 호 사이를 오가면서 식수, 보급품, 탄약, 병력들을 해안으로 실어나르고 돌아가는 길에 부상자들을 후송했다.
이들 중 1대는 내륙까지 들어가서 일단의 해병대를 못박아두고 있던 일본군 방어진지에 돌격하여 기관총으로 일본군들을 몰살시키고 해병대의 부상자를 후송했다.
그러나 LVT 는 수송차량이지 전투차량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런 경우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었다.
나중에 미군은 LVT 에 포탑을 얹어 본격적인 수륙양용장갑차인 LVT(A) 를 만든다.
툴라기 섬과 가부투-타남보고 섬에서 조직적 저항이 끝나자 해병대는 소탕 및 점령작업을 시작했다.
가부투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제1낙하산 대대는 9일 저녁 5시에 툴라기의 옛 행정청 지구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전쟁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툴라기-과달카날 지구에서 주거요건이 가장 양호했다.
툴라기, 가부투-타남보고 지구를 방어하는 임무는 제2해병연대가 담당했다.
제1/2대대 및 제3/2대대가 툴라기 섬을 방어했다.
제2/2대대는 1942년 8월 9일까지 주변의 작은 섬들을 장악했다.
E 중대가 마캄보 섬, F 중대가 음방가이 섬, G 중대가 코콤탐부 및 송오난고나 섬을 점령했다.
이들 섬에서의 일본군 저항은 미미했다.
E 중대는 마캄보 섬에 그대로 주둔했고, F 중대와 G 중대는 가부투-타남보고 섬으로 돌아와 주둔했다.
이후 과달카날 전투 기간을 통하여 툴라기 섬과 가부투-타남보고 섬은 전투의 중심에서 비껴서 있었다.
일본군의 폭격기들은 헨더슨 비행장에 집중하느라 툴라기 섬과 가부투-타남보고 섬에는 폭격을 하지 않았다.
일본함정들이 가끔 툴라기 섬에 포격을 가하기는 했지만 헨더슨 비행장에 가한 포격에 비하면 강도는 무시할만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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