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보 섬 해전(3) - 남부해역 전투
과달카날 해역을 향하여 접근하던 일본제8함대는 1942년 8월 9일 오전 0시 45분에 전원 전투배치 상태로 들어갔다.
당시 제8함대는 선두로부터 중순양한 죠카이, 아오바, 카고, 기누가사, 후루다카, 경순양함 덴류, 유바리, 구축함 유나기의 순으로 단종진을 이루고 있었으며 함정 사이의 간격은 약 1,200m, 함대 속력은 26노트였다.
(사보 섬 해전 상황도. 1942년 8월 9일)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진지 9분 후인 9일 0시 54분, 선두에 섰던 기함 죠카이의 견시가 우현쪽으로 약 8,000m 거리에서 남동쪽으로 멀어져 가는 미국구축함 블루를 발견했다.
미카와 제독은 계획을 바꾸어 사보 섬의 북쪽을 돌아서 진입하기로 하고 0시 59분에 북쪽으로 변침했다.
잠시 후 죠카이의 견시가 이번에는 북동쪽으로 멀어져가는 미국구축함 랠프탤벗을 발견했다.
죠카이의 견시가 보고한 랠프탤벗과의 거리는 약 16km 였는데 야간에 이정도 원거리에서 쌍안경으로 구축함 크기의 함정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죠카이의 견시가 그 먼거리에서 랠프탤벗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당시 일본군 견시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를 보여준다.
죠카이가 블루를 발견했을 당시 블루의 레이더는 사보 섬의 간섭에 의하여 일본함대를 포착하는데 실패했고 블루의 견시들도 열심히 해상을 감시하고 있었으나 마침 블루의 함미 쪽은 깜빡 잊고 있었다.
원래 함미 쪽이 견시가 잘 놓치는 부분이다.
랠프탤벗은 레이더나 견시나 일본함대를 발견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미카와 제독은 원래 계획대로 사보 섬의 남쪽을 돌아 진입하기로 하고 1시 5분에 다시 남쪽으로 변침하여 26노트의 속력으로 사보 섬 남쪽을 통과했다.
오전 1시 33분에 미카와 제독은 지금부터 별도의 공격명령이 없더라도 함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별도의 공격승인을 요청하지 말고 자유롭게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분 후인 오전 1시 34분, 억수같이 퍼붓는 스콜 속에서 죠카이의 좌현 견시가 북쪽으로 불과 2,700m 떨어진 지점에서 서쪽으로 서서히 항진하던 미국구축함 자비스를 발견했다.
아마 자비스에서도 일본함대를 발견했겠지만 낮에 어뢰에 맞아 통신수단이 망가진 자비스는 경고를 해줄 수 없었다.
자비스는 통신이 두절된 상태로 약 12시간 후에 승무원 전원과 함께 침몰해버려서 당시 자비스 함상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죠카이에 이어서 자비스를 발견한 일본함정이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고 기함인 죠카이가 포격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함정들도 자비스에 포격을 가하지 않았다.
자비스를 발견한지 2분 후인 오전 1시 36분에 죠카이의 견시가 남부부대의 선두인 미국구축함 패터슨과 버글리를 발견했고 이어서 11,000m 거리에서 호주중순양함 캔버라와 뒤따르던 중순양함 시카고를 잇달아 발견했다.
남부부대는 구축함 패터슨과 버글리를 양쪽에 앞세우고 캔버라와 시카고가 나란히 10노트의 속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미카와 제독은 지체없이 어뢰발사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최후미에서 따라오던 구축함 유나기에게는 구축함 자비스나 버글리가 되돌아와서 일본함대의 뒷통수를 때리지 못하도록 함열을 떠나서 사보 섬 남쪽 해상을 감시하라고 명령했다.
즉시 일본함대의 어뢰발사관에 발사제원이 입력되었고 2분 후인 1시 38분부터 17발의 어뢰가 패터슨과 순양함들를 향하여 발사되었다.
이들 중 패터슨을 노렸던 어뢰들은 모두 빗나갔으나 순양함들을 향한 어뢰 중 3발이 명중했다.
남부부대가 일본함대의 출현을 알아차린 것은 일본함정들이 어뢰를 발사한지 5분이나 지난 1시 43분이었다.
패터슨이 4,600m 거리에서 일본함대의 함영을 발견하고 즉시 경보를 발했으나 이미 늦었다.
패터슨이 경보를 발하는 순간 미카와 제독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 정찰기들이 과달카날 북해안에 정박 중인 엑스레이 부대와 툴라기 방면에 정박 중이던 요크 부대의 상공에 조명탄을 투하했다.
엑스레이 부대의 상공에 투하된 조명탄 불빛에 남부부대 소속 캔버라와 시카고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그러자 불과 4,100m 거리까지 접근해있던 죠카이와 5,000m 떨어진 아오바, 그리고 8,200m 떨어진 후루다카의 8인치 주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일본해군의 중순양함 아오바.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캔버라의 견시들도 패터슨과 거의 동시에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함교에 보고했다.
캔버라의 함장인 게팅 호주해군대령과 포술장이 견시가 보고한 방향을 자세히 보려고 함교의 유리창에 눈을 갖다 대는 순간 일본군 어뢰 2발이 캔버라의 우현에 명중했고 이어서 일본군의 첫번째 일제사격이 캔버라의 상부구조물에 떨어졌다.
포술장은 즉사했으며 중상을 입은 게팅 대령은 몇시간 후 사망했다.
캔버라는 어뢰 2발과 4인치 부포 몇발을 발사했으나 맹렬한 화재가 상부구조물을 휩쓸고 함체는 오른쪽으로 10도나 기울었다.
5분만에 캔버라는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호주해군의 중순양함 캔버라. 표준 배수량 : 10,000톤, 길이 :190m, 폭 : 20.8m, 속력 : 31.5노트, 항속거리 : 12노트로 24,600km, 승무원 : 848명, 무장 : 8인치 포 8문, 4인치 포 4문. 3파운드 포 4문, 항공기 : 1대)
다음은 시카고 차례였다.
패터슨의 경보를 받을 당시 시카고의 함장 보데 대령은 함교에 딸린 부속실에서 복장을 완전히 갖춘 채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다.
일본함대가 출현했다는 보고를 듣고 즉시 함교로 나온 보데 대령은 5인치 부포에게 조명탄을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1시 46분에 일본어뢰의 접근을 알아차린 보데 대령은 필사적인 회피운동을 시도했으나 이미 늦었다.
1시 47분, 시카고의 좌현 함수 쪽에 일본군의 어뢰가 명중했으나 승무원들이 재빨리 대응하여 시카고는 전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시카고의 5인치 부포들이 일제히 조명탄을 발사했으나 모두 불발탄이었다.
할 수 없이 시카고의 8인치 주포들은 대충 어림짐작으로 일본함대를 향하여 포격을 가하였으나 1발의 명중탄도 기록하지 못했다.
잠시 후 자신을 탐조등으로 비추는 일본구축함 유나기를 발견한 시카고는 그쪽으로 전진하면서 함포로 유나기를 공격했다.
사보 섬 해전에서 시카고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미카와 제독이 시카고를 상대하는 대신 북부부대 공격을 위하여 북진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카고가 일본함대를 따라가면서 뒤에서 포격을 계속 가했다면 북부해역의 전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북부부대에 경고만 해 주었어도 실제 역사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데 함장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하여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한 채 유나기를 쫓아가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시카고의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21명으로 시카고의 전사자 수는 사보 섬 해전에서 격침된 중순양함 4척은 물론 구축함 패터슨의 8명이나 랠프탤벗의 11명보다도 적었다.
(CA-29 시카고. 배수량 : 9,300톤, 길이 : 183m, 폭 : 20.1m, 속력 : 32노트 승무원 : 621명, 무장 : 8인치 포 9문, 5인치 포 4문, 21인치 어뢰발사관 6문)
구축함 패터슨은 1시 43분에 일본함대를 발견했을 때 캔버라의 좌현 전방에서 항진하던 중이었다.
함장 프랭크 워커 중령은 일본함대를 발견하자 즉시 경보를 발하면서 함포사격을 위하여 좌회전했다.
동시에 그는 어뢰발사를 명령했으나 이 명령은 혼란 통에 전달되지 못했다.
패터슨은 5인치 주포를 쉴 새 없이 쏘아대면서 왼쪽으로 완전히 한 번 회전한 후 일본함대와 나란히 북상하면서 포격전을 벌이다가 1시 49분에 4번 포탑에 명중탄을 맞아서 8명이 전사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패터슨은 일본함대가 북부부대의 중순양함들을 상대하러 북상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DD-392 페터슨. 표준배수량 : 1,500톤, 길이 :104m, 폭 : 10.8m, 속력 : 38.5노트, 항속거리 : 12노트로 12,000km, 승무원 : 158명, 무장 : 5인치 포 4문, 12.7mm 대공기관총 4정, 21인치 어뢰발사관 12문, 폭뢰투하궤도 2조 )
캔버라의 우현 전방에서 항진하던 구축함 버글리는 페터슨보다 불과 몇 초 후에 일본함대를 발견햇다.
함장 싱클레어 소령은 즉시 좌회전하면서 어뢰발사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버글리의 어뢰요원들은 함이 죄회전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 발사제원을 입력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우현 어뢰는 발사하지 못했고 함이 완전히 회전한 후에 죄현 어뢰 8발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일본함대가 북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력이 느린 미국어뢰가 따라잡지 못했다.
초기에 우현의 어뢰가 발사되었다면 1-2발 정도는 명중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시카고가 어뢰를 맞기도 전인 1시 44분부터 이미 일본함대는 북쪽으로 변침하여 북부부대를 향하고 있었다.
변침과정에서 일본함대는 2개로 갈라졌다.
즉 4번함 기누가사가 갑자기 속력을 늦추자 뒤를 따르던 5번함 후루다카가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오른쪽으로 변침하여 함열을 이탈했다.
그러자 후루다카를 따르던 경순양함 덴류와 유바리도 나란히 우회전했는데 곧 후루다카가 다시 죄회전하는 것을 보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좌회전하여 앞장섰다.
그리하여 일본함대는 죠카이를 선두로 하는 중순양함 4척과 경순양함 유바리, 덴류, 그리고 중순양함 후루다카로 이루어진 부대로 양분되어 북부부대를 공격하게 되었다.
(일본해군의 중순양함 후루다카.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1942년 8월 9일 오전 1시 43분에 캔버라에 가한 포격을 시작으로 49분에 패터슨을 패퇴시킬 때까지 일본제8함대는 어뢰 17발을 발사하여 3발을 명중시키고 집중적인 함포사격을 퍼부어서 불과 6분 만에 단 1발의 포탄도 맞지 않은 채 중순양함 2척과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남부부대를 제압했다.
이제 일본함대는 북부부대를 공격하러 북상하고 있었으며 본게임이 시작될 참이었다.
사보 섬 해전에서 북부부대가 입은 피해가 야구방망이로 호되게 얻어터진 수준이라면 남부부대의 피해는 회초리로 찰싹 맞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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