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보 섬 해전(2)-연합군 함대의 상황

 

일본제8함대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고 있던 1942년 8월 8일 오후 6시 7분, 제61기동부대 사령관 플레처 제독은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곰리 제독에게 와일드캣의 숫자가 99대에서 78대로 줄어들고, 일본군 뇌격기의 세력이 강대하므로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즉시 철수시키겠다고 통보했다.

 

이 전문을 곰리 제독과 동시에 수신한 터너 제독은 분통을 터뜨렸다.

전투기의 숫자가 이틀 동안 21% 나 줄었다지만 아직도 제61기동부대는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함대와의 일전을 앞둔 6월 4일 아침에 3척의 미항공모함들이 보유했던 와일드캣보다 1대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사보 섬 해전의 참패가 문제가 되자 종전 이후에 플레처 제독은 당시 제61기동부대의 연료보유량이 적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또한 틀린 주장이었다.

당시 제61기동부대 소속 함정들의 전투보고서에 나타난 8월 8일 오전 당시의 연료보유량은 충분한 수준이었다.

기함 새러토가는 4,000 톤이 넘는 중유를 보유하여 미해군이 전투에 적합한 상한선으로 설정한 3,600 톤보다 오히려 400톤이나 초과하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도 1,850톤의 중유를 보유하여 충분한 수준이었고 와스프는 나중에 격침되면서 전투보고서가 소실되어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중유가 모자라는 상태는 아니었다.

전함 노스캐롤라이나도 3,120톤의 중유를 보유하고 있었다.

2,200 톤에서 3,000 톤 가량의 연료용량을 가진 순양함들도 모두 50% 이상의 중유를 보유한 상태였다.

450톤에서 650톤 정도의 연료용량을 가지는 구축함들의 중유보유량은 다양하지만 가장 연료를 적게 보유한 그레이슨도 142톤의 중유를 가지고 있었다. 

구축함들의 1일 중유사용량이 40톤에서 80톤 가량이란 걸 생각해보면 제61기동부대는 수일간 활동할 수 있는 중유를 가지고 있었다.

정 급하면 구축함들은 순양함이나 항공모함으로부터 급유를 받을 수도 있었고 누메아에는 제61기동부대 소속 급유함 5척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플레처 제독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 급유함들을 불러서 급유를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플레처 제독은 곰리 제독에게 보낸 전문에서 철수 도중에 만날 수 있도록 이 급유함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구했다. 

 

플레처 제독의 전문을 받은 곰리 제독은 오후 10시 41분에 철수를 허가하는 전문을 보냈으나 이 전문은 불안정한 통신망 때문에 9일 새벽 3시 30분에야 플레처 제독에게 도달했다.

하지만 플레처 제독은 곰리 제독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철수를 요청한 직후 바로 누메아를 향하여 남동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제61기동부대가 떠나버리자 과달카날 교두보를 보호할 임무는 제62임무부대의 호위함대 사령관인 크러칠리 영국해군소장에게 떨어졌다.

크러칠리 소장은 호주해군에 파견되어 태평양으로 오기 전에 영국에서 2년 이상 대서양 전투에 참가하는 함정 승무원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했었다.

따라서 그는 대잠작전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잠수함의 위협에 예민했다.

크러칠리 소장의 과달카날 교두보 방어계획을 보면 일본잠수함의 위협을 염두에 두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과달카날과 툴라기 사이의 해역을 남부,북부, 그리고 동부 해역으로 삼등분했다.

 

(사보 섬 해전 당시 연합군 함정들의 배치상황도)

 

과달카날 북서해안의 에스퍼란스 곶과 사보 섬 사이를 방어하는 남부부대는 호주중순양함 2척(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중순양함 1척(시카고), 그리고 구축함 2척(패터슨, 버글리)로 이루어져 기함인 오스트레일리아에 승좌한 크러칠리 제독 자신이 지휘했다.

사보 섬에서 북쪽의 플로리다 섬 사이를 방어하는 북부부대는 중순양함 3척(빈센스, 아스토리아, 퀸시), 구축함 2척(헬름, 윌슨)으로 이루어져 빈센스의 함장인 립콜 대령이 지휘했다.

동쪽을 방어하는 동부부대는 호주 경순양함 1척(호바트), 대공경순양함 1척(산후앙), 그리고 구축함 2척(몬센, 뷰캐넌)으로 이루어져서 기함 산후앙에 승좌한 노만 스코트 소장이 지휘했다.

그리고 남부부대와 북부부대의 전방 15km 에서 20km 전방에는 조기 경보를 위하여 구형의 SC 레이더를 장비한 구축함 블루와 랠프탤벗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함정들의 배치는 5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는 남부부대와 북부부대가 분리되어서 강력한 일본수상함대와 조우시 각개격파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고 이 사태는 사보 섬 해전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만일 남부부대와 북부부대가 한덩어리가 되어 해전을 치렀다면 비록 기습을 당했어도 적어도 실제 역사에서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싸웠을 가능성이 많았다.

 

둘째로는 조기 경보를 위한 구축함과 남부부대 및 북부부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수상함이 공격해 올 경우 사전 경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고속을 낼 수 있는 적의 수상함을 의식했다면 구축함들과 남부부대 및 북부부대와의 거리는 실제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떨어져야 했다.

 

셋째로는 조기 경보를 맡은 구축함 블루와 랠프탤벗에 장비된 구형 SC 레이더의 성능을 과신했다는 점이었다.

구형 SC 레이더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적의 함정을 약 15km 정도 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었으나 과달카날 근해처럼 육지가 가까이 있는 지형에서는 성능이 떨어졌다.

 

넷째로는 SC 레이더보다 우수한 신형 SG 레이더를 보유한 유일한 함정인 대공경순양함 산후앙을 적의 수상함이 들어올 확률이 거의 없는 동부부대에 배치했다는 점이었다.

만일 산후앙이 남부부대나 북부부대에 배치되어 있었으면 적어도 연합군 함대가 실제처럼 완전히 기습을 당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산후앙은 노만 스코트 소장의 기함이었으므로 그를 북부부대로 보내버리면 동부부대의 지휘관이 애매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으나 터너 제독이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8월 7일과 8일에 걸쳐 일본기는 계속해서 공습을 가해왔었다.

안 그래도 미함대의 가장 큰 위협을 일본군 항공기로 보고 수상함의 대공전술연구에 푹 빠져 있던 터너 제독은 8일 오전에 발견되었다는 일본함대도 다음날 수상기에 의한 공습을 가하려는 의도라는 선입견에 빠져서 일본수상함대의 출현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따라서 유일하게 SG 레이더를 가진 산후앙을 적의 수상함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재배치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제62임무부대는 미해군 전사가인 새뮤얼 모리슨 제독이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격찬했던 SG 레이더를 갖추고도 일본함대의 기습을 허용하여 사보 섬 해전에서 미해군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해야만 했다.

 

마지막 다섯번째 문제는 서로 떨어져 활동하는 3개의 부대 사이에 유사시 협동작전을 펴기위한 어떠한 사전협의나 작전지시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크러칠리 제독은 남부부대의 함장들과는 몇 개월간 같이 일해왔었으나 북부부대와 동부부대의 함장들과는 긴밀한 전술적인 협의는 커녕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이또한 급하게 진행된 과달카날 상륙작전이 가져온 문제점의 하나였다. 

 

8월 8일 오후 8시, 터너 제독은 제61기동부대가 떠난 이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미 남부해역에서 초계 중이던 크러칠리 제독과 과달카날에 상륙해 있던 반데그리프트 장군을 기함 맥콜리로 급히 호출했다.

크러칠리 제독은 기함 오스트레일리아를 타고 맥콜리가 정박 중인 과달카날 북해안 쪽으로 이동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초계를 하도록 남겨두고 주정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몇 시간이 걸릴 것이 뻔했는데 터너 제독은 최대한 빨리 오라는 전문을 보내왔다.

결국 안 그래도 전력이 양분된 남부부대는 전투를 앞두고 강력한 중순양함 1척을 잃고 말았다. 

 

(크러칠리 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HMAS 오스트레일리아. 표준 배수량 : 10,000톤, 길이 :190m, 폭 : 20.8m, 속력 : 31.5노트, 항속거리 : 12노트로 24,600km, 승무원 : 848명, 무장 : 8인치 포 8문, 4인치 포 4문. 3파운드 포 4문, 항공기 : 1대)

 

이때 터너 제독이 주재한 회의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크러칠리 제독은 제61기동부대의 철수도 알고 있었고 오전에 발견되었다는 일본함대의 소식은 터너 제독보다 30분 가량 일찍 받았다.

그렇다고 터너 제독이 크러칠리 제독의 교두보 방어계획에 불만이 있어서 변경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반데그리프트 소장은 이런 내용을 알 필요도 없었다. 

 

회의는 반데그리프트 소장의 도착이 늦어져서 오후 11시 15분에 시작하여 40분 만인 55분에 끝났다.

이 회의에서 크러칠리 제독이 새로 알게 된 것은 터너  제독이 제61기동부대의 철수에 따라 다음날인 9일에 제62임무부대도 철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것 뿐이었다.

맥콜리를 떠난 크러칠리 제독은 소해정 수타드를 타고 툴라기 섬으로 가기로 한 반데그리프트 장군과 함께 주정을 타고 1시간 동안 수타드를 찾아다녔다.

9일 새벽 1시가 훌쩍 넘겨서야 기함으로 돌아온 그는 남부부대와 합류하는 대신 엑스레이 부대의 동쪽 11km 해역을 초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남부부대는 강력한 중순양함 1척을 잃게 되었으나 만일 이때 오스트레일리아가 남부부대와 합류했다면 일본군이 공격하는 난리통에서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시켰을 가능성이 많았다.

 

한편 과달카날 서쪽해상에서 접근 중이던 일본제8함대는 오후 11시에서 13분 사이에 중순양함 죠카이, 아오바, 카고에서 각각 1대씩의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정찰기 조종사들은 연합군 함대의 최종상태를 보고하고 연합군 함대 상공에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연합군 함대 상공에 조명탄을 투하한 후 쇼틀랜드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잠시 후 정찰기들은 연합군 함대의 배치 상태가 낮과 동일하다는 보고를 보내왔다.

일본함대가 과달카날 해역에 접근하자 저 멀리서 불타는 조지 엘리엇의 화염이 보였다.

미카와 제독은 최종 진입 단계에서 불타는 조지 엘리엇을 등대삼아 항로를 결정했다.

 

일본정찰기들은 사보 섬 전방에서 초계 중이던 미국구축함 블루와 랠프탤벗을 보지 못했지만 랠프탤벗은 오후 11시 35분에 사보 섬 상공을 통과하는 순양함에서 운용하는 형식의 정체불명 항공기를 발견하고 즉시 TBS(Talk Between Ship) 를 통하여 경보를 발했다.

당시 이 경보를 많은 함정들이 들었으나 정작 기함 맥콜리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잠시 후 블루도 레이더로 정체불명의 항공기를 확인하고 다시 경보를 발했으나 이 경보도 맥콜리에 도달하지 않았다.

맥콜리와 블루의 거리는 약 30km 쯤 되었는데 마침 11시 30분 경부터 사보 섬 상공에서 발생한 세찬 스콜이 내리고 있었다.

이런 기상상황에서는 30km 밖에서 TBS 를 듣기 어려웠다.

동부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구축함 패터슨이 터너 제독으로부터 받은 명령은 무조건 랠프탤벗에게 반복해주기로 되어 있었으나 반대 방향으로의 이 경보는 반복하지 않았다.

 

사실 이 일본군 정찰기는 랠프탤벗과 블루 이외에도 많은 함정에서 보았다.

북부부대를 지휘하던 빈센스의 함장 립콜 대령은 이 정찰기를 직접 보았으나 등화를 환하게 켜고 비행하는 것으로 보아서 아군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크러칠리 제독 휘하의 함장들은 제61기동부대가 이미 과달카날 인근해역을 떠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순양함 퀸시에서는 몇명의 초급 장교들이 정찰기의 엔진소리가 미군 비행기와 다르다면서 함장에게 당장 알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고급 장교들은 초급 장교들의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다고 생각하고 안 그래도 피곤에 쩔어있는 함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랠프탤벗과 블루의 경보를 받은 다른 함정들에게서도 피로에 찌든 함장들이  만일 정체불명의 항공기가 일본기라면 당연히 터너 제독에게서 무슨 명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크러칠리 제독은 휘하 함정들에게 8월 6일 저녁부터 전원 전투배치 상태인 제1호 상태(Condition 1)를 발령했다가 48시간이 경과한 8일 저녁에야 터너 제독과의 회담을 위하여 맥콜리로 출발하면서 일부 병력이 식사를 위하여 전투배치지역을 떠날 수 있는 제2호 상태로 완화했다.

따라서 이무렵 연합군 함대의 승무원들은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함장들과 사령관들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맥콜리에서 터너 제독 및 크러칠리 제독을 만난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훗날 그 당시 자신도 대단히 피곤했지만 두 제독은 완전히 피로에 쩔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고 회고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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