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아후 섬

 

진주만을 가진 하와이 제도의 오아후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기간을 통하여 미국의 해외 기지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전쟁 전에 미국 방어에 핵심적인 지역은 오아후 섬과 파나마 운하 지역이었으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오아후 섬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만큼 오아후 섬의 방어도 충실했으며 1941년 4월에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전쟁성은 오아후 섬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로 확신한다고 적었다.

물론 그 확신은 7개월 후에 일본이 실시한 놀라우리만치 성공적인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은 1898년에 하와이를 합병한 직후부터 오아후 섬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미해군과 육군은 1908년에 오아후 섬의 진주만을 태평양에서 으뜸가는 해군 전진기지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육군은 진주만을 지키기 위하여 수비대를 증강했고 1913년에는 전쟁성 직속으로 하와이 군관구를 설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20년간 미육군은 병력의 11%를 오아후 섬에 주둔시켰으며 진주만과 동쪽의 호놀룰루 항을 지키기 위하여 해안포와 대공포를 설치했다. 

 

1941년 초까지 하와이에 주둔한 미육군의 임무는

 

'적의 함대, 항공기, 또는 원정군으로부터 진주만을 지키는 것'

 

이었다.

 

1940년 5월부터 미태평양함대의 주력이 진주만을 모항으로 삼게 되면서 1941년 2월에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하와이 주둔 육군의 방어 대상에 진주만의 항구 시설 뿐만 아니라 함정도 포함된다고 비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렇듯 태평양함대의 전진 배치는 육군의 방어 의무를 늘렸으나 실제로는 강력한 함대가 진주만에 머무르는 동안은 일본의 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안전감을 주어 수비대의 심리를 이완시켰다.

 

(하와이 제도. http://www.antor.org/images/hawaii.jpg)

 

하와이 제도는 캘리포니아에서 남서쪽으로 3,900km, 일본의 혼슈로부터 남동쪽으로 6,300km 떨어져 있다.

가장 큰 섬은 전체 면적의 약 2/3를 차지하는 하와이 섬이며 여기서 북서쪽으로 약 640km 에 걸쳐 8개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

중요한 섬들은 하와이, 마우이, 오아후, 카우아이 섬이며 하와이 섬을 제외한 세 섬은 크기가 비슷하다.

기후는 아열대로 지내기 좋은 편이다.

 

(오아후 섬. http://www.bouwman.com/world/Hawaii/Oahu-WWII.html)

 

오아후 섬은 하와이 제도에서 세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약 1,545㎢ 이며 남해안에 두 개의 항구를 가지고 있다.

호놀룰루 앞바다에는 호놀룰루 항이 있었으며 거기서 북서쪽으로 1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내륙으로 움푹 들어간 초호를 군항으로 개발한 것이 진주만이었다.

 

오아후 섬의 면적은 하와이 제도 전체 면적의 1/10 정도이나 인구는 1940년 당시 약 423,000 명으로 하와이 제도 전체 인구의 약 60% 를 차지했다.

인종 구성은 다양했으며 일본계가 가장 많아 약 37% 로 백인 전체 숫자와 맞먹었다.

하와이 섬과 카우아이 섬에서는 일본계가 3:1 의 비율로 백인들을 압도했다.

일본계 중 3/4은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였으나 미군은 일본과 전쟁이 났을 경우 일본계의 충성심을 믿지 못했다.

따라서 미해군과 육군은 일본과 전쟁시 하와이 전역에 군정을 실시하기로 결정해 두었다.

 

하와이의 통치 체제는 미연방에 늦게 편입된 지역으로서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현지 의회는 투표로 선출했으나 연방 하원에 파견하는 대표자는 투표로 뽑지 않았으며 행정관료와 사법부는 대통령이 지명했다.

하와이 정부의 통치권은 하와이 제도 전체와 북쪽으로 미드웨이까지 미쳤다.

 

오아후 섬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두 개의 산맥이 달리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인구가 산맥 사이의 평원 지역과 남쪽에 몰려 있었다.

군부대들도 대부분 평원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보안이 곤란했다. 

육군 사령부는 호놀룰루 교외의 샤프터 요새에 자리잡고 있었고 주력은 진주만에서 북쪽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스코필드 병영에 주둔하고 있었다.

육군의 주력은 1921년에 창설된 하와이 사단으로 사단의 배치는 오아후 섬 북해안에 상륙한 적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는 진로를 가로막는 형태였다.

미국이 생각하기에 오아후 섬의 동해안과 서해안은 산맥에 가로막히고 남해안에는 진주만과 호놀룰루 항을 지키기 위하여 강력한 해안포들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이 상륙할 곳은 북해안 밖에 없었다.

 

육군의 주요 비행장인 히컴 비행장은 섬 남쪽의 진주만과 호놀룰루 시가지 사이에 있었으며 섬 중앙인 스코필드 병영 주변에는 전투기용인 휠러 비행장이 있었고 1941년에는 남동해안에 벨로우즈 비행장을 완성하여 전투기와 경폭격기용으로 사용했다.

해군은 진주만 내의 포드 섬에 정찰기와 함재기들을 위한 비행장을 가지고 있었고 동해안의 카네오헤 만에 정찰기들을 위한 비행장을 가지고 있었다.

해병대는 진주만 서쪽의 에바 지역에 비행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몇 개의 간이 비행장이 있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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