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싱가포르 섬 방어(3) - 병력 배치


1942년 2월 5일에 4척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증원선단이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제18사단의 나머지 병력과 인도군 보충병, 그리고 차량을 비롯한 장비가 실려 있었다. 선단은 5일 오전 11시에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일본제3비행단에게 공습을 받았다. 수송선 엠파이어오브아시아가 폭탄에 맞아 화재가 발생했고 결국 침몰했다. 타고 있던 병력들은 대부분 호주수송선 라라에 구조되었으나 제125대전차연대의 대전차포를 비롯한 장비들은 모두 잃었다. 엠파이어오브아시아는 말레이 증원 과정에서 공습으로 상실한 유일한 수송선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군은 케펠항에 대규모 공습을 반복하여 창고의 70% 를 파괴했다. 공습으로 인하여 선박들은 분산해야 했으며 일부만 부두에서 선적하고 대부분 항구 앞에 정박한 채 거룻배로 선적해야 했다. 민간인 노동자가 대부분 사라져 버려 주로 공군병력들이 선적을 담당헀으나 아무래도 숙련도가 떨어졌다. 어떤 수송선은 선적을 하다말고 공습을 피하여 출항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원과 물자의 반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마트라의 폭격기 부대가 꼭 필요로 하는 장비들이 아예 선적되지 못했다. 일단 출항한 수송선들도 일본군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수마트라와 자바에서 꼭 필요로 하는 대량의 부품과 차량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수마트라에 전개한 제225폭격비행전대는 1942년 2월 첫째주에 평균적으로 허드슨 20대와 블레님 15대를 작전가능상태로 보유하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폭격기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일본군이 점령한 말레이의 비행장, 페낭 항 및 싱고라 등을 공격했으나 공습의 규모가 작아 일본군의 싱가포르 섬 공격을 방해하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싱가포르의 대공방어는 한줌밖에 남지 않은 전투기 세력과 대공포가 담당했다. 가끔 수마트라에서 전투기들이 날아와 도와주기도 했으나 팔렘방에 대한 공습이 강화되면서 그쪽 방면으로 돌려졌다. 초반 주력이었던 버팔로가 소진되면서 허리케인이 주력이 된 싱가포르의 전투기 부대는 요격을 위하여  주간에는 거의 공중에 머물러야 했다. 조기 경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본기들은 18대 내지 27대씩 떼를 지어 몰려와서는 마을과 부두를 폭격하고 영국군이 반격하기 전에 물러갈 수 있었다. 일부는 섬 북부의 영국군 진지에 급강하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2월 4일과 5일에 걸쳐 셀레타, 셈바왕 및 텡가 비행장이 적의 야포 사거리 내로 들어가 이착륙이 불가능해졌으므로 전투기들은 칼랑 비행장에 집결했다. 그러자 일본군이 칼랑 비행장을 집중적으로 공습하여 6일부터는 칼랑 비행장 이착륙이 어려워졌다.


(호커 허리케인.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Hawker_Hurricane)


일본군이 싱가포르 섬에 상륙할 당시 영국군의 배치는 다음과 같다.

북부 지구 : 히스 중장은 창이에서 셀레타 강에 이르는 11km 구간에 제18사단을 배치했다. 제18사단은 우익에 제54여단, 우익에 제55여단을 배치했다. 셀레타 강에서 둑길까지의 11km 구간에는 제11인도사단을 배치했다. 셀레타 강에서 해군기지까지는 제53여단이, 해군기지에서 둑길까지는 제28인도여단이 담당했으며 제8인도여단이 사단예비대를 맡았다. 제15인도여단은 군단 예비대였다. 

남부 지구 : 케이스 시몬스 소장은 창이 곶에 제2말레이여단, 싱가포르 시가지 및 케펠 항에 해협식민지의용여단, 싱가포르 시가지에서 주롱 강 사이에 제1말레이여단을 배치했다. 제2/17도그라스대대는 풀라우테콩베사르를 지켰다. 


(1942년 초 싱가포르 섬의 방어태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ngapore_map_1942.jpg)


서부 지구 : 실제로 일본군이 상륙한 구역으로 벤넷 소장이 지휘했다.  벤넷 소장은 서부 지구의 해안선을 3개 구간으로 나누었다. 둑길에서 크란지 강에 이르는 2.4km 길이의 둑길 구간은 제27호주여단이 담당했다. 크란지 강에서 베리 강에 이르는 13km의 북서구간은 호주군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보유한 제22호주여단이 맡았다. 베리 강에서 주롱 강에 이르는 16km 의 남서 구간은 공격받을 위험이 적다고 판단하여 경험이 부족한 제44인도여단을 배치했다. 좁은 구간을 담당한 제27호주여단의 제2/29대대는 서부지구 예비대가 되었다. 벤넷 소장은 애당초 제27호주여단 전체를 예비대로 보유하려 했으나 해안 방어를 중시하라는 퍼시발 중장의 명령에 따라 제2/29대대만을 예비대로 보유했다.


둑길 구간을 담당한 제27호주여단은 제2/30호주대대를 우익에 배치하고 제2/26호주대대를 좌익에 배치했다. 제2/4호주기관총대대의 1개 중대가 해안선에 배치되었으며 제2/10야포연대와 제13대전차포대가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북서구간의 해안선은 작은 강에 의하여 3개의 반도 모양으로 나뉘어 좁은 육지를 통하여 아마켕 마을과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북서구간을 책임진 제22호주여단장 테일러 준장은 여단 예비대를 확보하지 못하고 3개 대대를 모두 해안선 방어에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달포스의 1개 중대를 지원받은 제2/20호주대대가 크란지 강과 사림분 강 사이의 6,400m 를 담당했다. 제2/18호주대대가 사림분 강과 탄종무라이 사이의 3,200m 를 지켰으며 제2/19호주대대가 탄종무라이와 베리 강 사이의 3,200m 를 책임졌다. 각 대대는 3개 중대를 해안선에 배치하고 1개 중대를 예비대로 두어 해안선과 아마켕 마을을 잇는 좁은 육지를 지키도록 했다. 제2/4호주기관총대대의 1개 중대가 해안선에 배치되었으며 제2/15야포연대와 제15대전차포대가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북서구간에 포함된 텡가 비행장을 방어하는 인도의용대대인 진드보병대대도 테일러 준장의 지휘를 받았다.

제22호주여단의 방어전술은 특이했다. 해안선에 배치된 병력들은 만일 방어선이 뚫리거나 포위당할 것 같으면 중대본부로 후퇴해서 중대 방어선을 편성해야했다. 만일 중대방어선도 뚫리거나 포위될 것 같으면 다시 후퇴하여 아마켕 마을로 통하는 좁은 육지를 막는 형태로 대대방어선을 형성해야 했다. 이런 비정통적인 방어전술은 잘 훈련된 부대가 실시하기에도 위험했는데 대대마다 미숙한 보충병들을 많이 받아들인 당시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했다.


남서구간을 담당한 조지 발렌타인 준장의 제44인도여단(제6/1펀자브대대, 제6/14펀자브대대, 제7/8펀자브대대)은 2.5개 대대를 해안선에 배치하고 2개 중대를 예비대로 보유했다. 제2/4호주기관총대대의 1개 중대가 해안선에 배치되었으며 제5야포연대와 제16대전차포대가 화력지원을 맡았다.


서부지구의 해안선에는 제5탐조등연대가 배치되어 탐조등과 자동차에서 떼어낸 전조등으로 상륙작전시 해협을 비출 채비를 갖추었다.

벤넷 소장은 인접한 북부 및 남부 지구 사령관들과 협조하는 일을 게을리했다. 벤넷 소장의 참모들은 주롱 강 부근에서 일본군이 침투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주롱 강 유역에 정기적으로 정찰대를 파견하면서도 주롱 강 방어선을 책임진 시몬스 소장과는 협의를 하지 않았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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