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엔다우 양륙
말레이 반도의 동해안에서는 호주군이 후퇴하면서 일본군 보병제55연대가 1월 21일에 엔다우를 점령하고 22일에는 일본군 정찰대가 메르싱 강에서 제2/20호주대대와 접촉했다.
(메르싱과 엔다우. Australia in the War of 1939–1945, Army, The Japanese Thrust, P.333)
쿠안탄 비행장을 상실한 이래 영국군은 적의 상륙에 대비하여 엔다우 부근 해상을 항공정찰했다. 1월 26일 아침 7시 45분에 허드슨 2대가 엔다우 북동쪽 30km 해상에서 일본선단을 발견했다. 이 선단은 순양함 1척(센다이), 제20구축대(아마기리, 아사기리, 유기리), 그리고 소해정들의 호위를 받는 수송선 간사이마루와 캔버라마루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항공관계 자재와 지상요원을 싣고 24일 오후 11시에 싱고라를 떠나 엔다우를 향하여 남하중이었다.
일본군의 통신방해로 인하여 발견 보고가 말레이 항공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20분이었다. 당시 출격 가능한 폭격기는 허드슨 9대(제1 및 제8비행대대), 빌데비스트 21대, 알바코어 3대로 합계 33대였다. 그 중에서 제36 및 제100뇌격비행대대 소속의 빌데비스트와 알바코어는 바투파핫에서 해상철수 중인 제15여단으로부터 일본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전날 밤에 2회에 걸쳐 일본군을 야간 폭격하고 돌아온 이후 재급유와 재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빌데비스트에는 어뢰 대신 113kg 짜리 폭탄 4발을 장착했는데 일본선단이 얕은 해역으로 들어와서 뇌격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항공사령부는 수마트라에 전개한 제225폭격비행전대에 모든 폭격기를 엔다우로 보내라고 명령하고 미국 중폭격기로 적의 호송선단을 공격해 달라고 ABDA 사령부에 요청했다.
그동안 간사이마루와 캔버라마루는 엔다우에 도착하여 26일 오전 10시 45분에 닻을 내리고 양륙을 시작했다.
재급유와 재무장에 시간이 걸려 영국군의 출격은 26일 오후 1시에야 이루어졌다. 허드슨 9대와 빌데비스트 12대가 버팔로 15대와 허리케인 8대의 호위를 받으며 300m 의 저공으로 날아갔다. 영국기들은 오후 3시 30분에 선단 상공에 도착하여 일본제12비행단 소속 전투기 19대의 요격과 대공포화를 무릅쓰고 폭격을 감행했다. 명중탄은 없었으며 빌데비스트 5대가 격추되었다.
오후 5시 30분에 전투기 12대의 호위를 받는 빌데비스트 9대와 알바코어 3대가 다시 일본선단을 공습했다. 영국기는 수송선 1척의 선미에 폭탄 1발을 명중시켜 화재를 일으켰으나 승조원이 곧 진화했다. 일본전투기 13대의 반격을 받아 빌데비스트 5대, 알바코어 2대, 전투기 1대가 격추되었다.
오후 8시에는 수마트라를 출발한 허드슨 5대가 버팔로 4대 및 허리케인 8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엔다우 강에 들어선 일본군 주정들을 폭격했다. 일본전투기 16대가 요격했으나 폭격 과정에서는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어두워진 후에 싱가포르의 비행장에 착륙 도중 2대가 추락했다.
영국군은 이날 하루동안의 폭격으로 수송선 1척에 1발의 명중탄을 기록했다. 댓가는 컸다. 빌데비스트 11대, 알바코어 2대, 허드슨 2대, 허리케인 2대 및 버팔로 1대, 합계 18대가 격추되었고 제36 및 제100뇌격비행대대장을 포함하여 승무원 대부분이 전사했다. 살아남은 비행기들도 큰 피해를 입은 기체가 많았으며 많은 승무원들이 부상을 당했다.
(비커스 빌데비스트 뇌격기. https://en.wikipedia.org/wiki/Vickers_Vildebeest)
영국함정들도 일본선단 공격에 나섰다. 26일 오후 4시 30분에 구축함 뱀파이어와 타넷이 엔다우를 향하여 싱가포르를 떠났다. 2척의 낡은 구축함은 27일 오전 4시 30분에 엔다우 부근 해상에서 일본순양함 센다이와 구축함 3척을 만났다. 1시간에 걸친 일방적인 교전 끝에 타넷은 침몰했고 뱀파이어는 연막을 뿌리면서 도망쳤다. 그동안 일본수송선은 제96비행장대대와 통신대, 그리고 카항 및 클루앙 비행장에서 사용할 부품, 장비, 항공유 및 폭탄을 하역했다. 간사이마루가 27일 밤까지, 켄버라마루가 28일 정오까지 하역을 마치고 싱고라로 돌아갔다. 이로써 일본군은 조호르의 항공작전을 지원할 물자와 인력을 확보했다.
동부부대는 1월 25일 저녁에 제3군단의 명령에 따라 메르싱을 떠나 제말루앙으로 후퇴했다. 제22호주여단장 테일러 준장은 추격하는 일본군에게 반격을 가하여 추격의지를 꺾을 목적으로 제2/18호주대대를 제말루앙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니츠데일 농장에 잠복시켰다. 추격하던 보병제55연대가 26일 밤에 매복에 걸렸다. 제2/18대대는 2개 야포대의 지원을 받아 제55연대를 공격했고 일본군이 반격하면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는 27일 정오에 사전 계획에 따라 제2/20대대가 제말루앙으로 철수하면서 끝났다. 이 전투에서 제2/18대대는 92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일본군의 사상자는 약 110명이었으며 뜻밖의 역습에 충격을 받은 제55연대는 테일러 준장의 의도대로 추격을 포기하고 메르싱으로 후퇴했다. 보고를 받은 제25군 사령관 야마시타 중장은 제5사단수색연대, 보병제56연대제2대대, 야포병제5연대의 1개 중대, 그리고 공병 1개 중대를 제말루앙 쪽으로 급파했다. 제55연대는 추격을 그만두고 클루앙으로 가서 제18사단 주력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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