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갑표적(1) - I-18정, I-20정, I-22 정

 

진주만 기습에서 5척의 갑표적들은 아무런 공식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전멸했다.

갑표적은 HA 로 시작하는 고유 번호를 가지고 있으나 진주만 기습에 투입된 갑표적 중 HA 번호가 확인된 것은 포로로 잡힌 사카마키 가즈오 소위의 HA-19 정뿐으로 I-24 함에서 발진했다.

따라서 여기서 칭하는 갑표적의 번호는 발진한 잠수함의 기호를 딴 것이다.

즉 I-16 정은 I-16 함에서 발진한 갑표적이라는 뜻이며 HA 번호와는 다르다.

다만 사카마키 소위의 갑표적은 HA-19 정으로 칭한다.

 

진주만 기습에 참가한 갑표적 중 가장 먼저 발진한 것은 요코야마 마사하루 중위와 가미타 사다무 2등 병조가 탑승한 I-16 정으로 7일 새벽 0시 42분에 진주만 입구에서 11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진했다.

두번째로 발진한 것은 이와사 나오지 대위와 사사키 나오기치 1등 병조가 탑승한 I-22 정으로 7일 새벽 1시 16분에 진주만 입구에서 14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진했다.

세번째로 발진한 것은 후루노 시게미 중위와 요코야마 시게노리 1등 병조가 탑승한 I-18 정으로 7일 새벽 2시 15분에 진주만 입구에서 21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진했다.

네번째로 발진한 것은 히루 아키라 소위와 가타야마 요시로 2등 병조가 탑승한 I-20 정으로 7일 새벽 2시 57분에 진주만 입구에서 8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진했다.

마지막으로 발진한 것은 사카마키 가즈오 소위와 이나가키 기요시 2등 병조가 탑승한 HA-19 정으로 7일 새벽 3시 33분에 진주만 입구에서 16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진했다.

I-24 함에서 발진한 HA-19 정은 자이로컴퍼스가 고장나서 발진이 늦었다.

 

갑표적들은 진주만에 잠입해 해저에 숨어 있다가 제1차 공습과 제2차 공습 사이에 부상하여 어뢰로 전함들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공격을 마친 갑표적은 진주만을 벗어나 오아후 남동쪽에 있는 라나이 섬 부근에서 모함과 만나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1척도 접선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와이 제도. http://www.antor.org/images/hawaii.jpg)

 

12월 7일 오전 3시 42분에 소해함 콘도르가 발견하여 워드에게 보고했던 잠수정은 발진 시각을 고려해 볼 때 I-16 정이나 I-22 정일 가능성이 높다.

 

I-20 정은 7일 오전 6시 50분 경에 진주만 입구 부근에서 구축함 워드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으며 잔해는 2002년에 발견되었다.

 

(2002년에 진주만 부근 해저에서 발견된 I-20 정의 잔해. http://www.aerospaceweb.org/question/hydrodynamics/q0280.shtml)

 

I-22 정은 공습이 진행 중이던 오전 8시 36분에 포드 섬의 서쪽, 미들 협만 쪽에 정박 중이던 수상기모함 커티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커티스는 I-22 정의 잠망경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진주만 기습 당시 함정의 배치상황. http://maps101blog.com/2010/12/)

 

잠시 후 I-22 정은 커티스를 노리고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가 펄시티의 부두에 부딪혀 폭발했다.

어뢰를 쏘고 가벼워진 I-22 정이 부상하자 커티스 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수리함 메두사, 수상기모함 탠지어, 구축함형 소해함 페리와 제인, 기뢰부설함 브리즈가 사격을 가했다.

이들이 발사한 포탄 중 1발이 I-22 정의 사령탑에 명중했으며 정장 이와사 나오지 대위는 이때 전사했을 것이다.

 

이스트 협만에 정박 중이던 구축함 모내건의 함장 빌 버퍼드 소령은 오전 7시 51분에 진주만 밖에 있던 구축함 워드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4분 후 일본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대공포를 난사하면서 미들 협만 쪽으로 이동하던 모내건은 일본군 잠수함을 발견했다는 커티스의 무선보고를 들었다.

 

해상을 살피던 모내건은 I-22 정을 발견하고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I-22 정은 달려드는 모내건에게 남은 어뢰 1발을 발사했으나 모내건의 좌현으로 약 20m 정도 빗나가서 포드 섬 해안에 부딪혀 폭발했다.

모내건이 고속으로 들이받자 I-22 정은 옆으로 쓰러지면서 침몰했다.

충돌 직후 모내건은 함미에서 폭발심도를 얕게 맞춘 폭뢰 2발을 떨어뜨려 마무리지었다.

이는 잘못하면 모내건 자신에게 위험할 수 있는 공격이었으나 이로써 I-22 정을 격침했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모내건은 베코닝 곶 앞에 정박 중이던 준설선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면서 함체가 긁혔으나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모내건은 이후 일본기들을 피하여 진주만을 빠져나와 공해로 도망쳤다.

 

미해군은 진주만 기습 2주일 후에 I-22 정의 프로펠러와 전방 함체 일부를 우연히 발견하여 인양했으나 구태여 나머지를 찾지는 않았다.

전쟁 후반기에 I-22 정의 잔해가 발견되었던 곳에 잠수함용 건선거가 들어섰다. 

전쟁이 끝난 후 1952년에 I-22 정의 나머지 부분이 노출되었으나 내부에 축전지에서 발생한 염소가스가 가득했으므로 그 자리에 다시 파묻었다.

 

I-18정은 1960년 6월 13일에 미국의 다이버들에 의하여 진주만 입구 바깥의 키히 환초에서 발견되었다.

함체에는 폭뢰 공격을 받은 흔적이 있었으며 어뢰 2발은 발사되지 않은 상태였다.

진주만 기습 당시 진주만 입구 부근에서 몇 차례의 폭뢰 공격 보고가 있었으므로 이때 격침된 것으로 보인다.

함체 내부에서 승조원인 후루노 시게미 중위와 요코야마 시게노리 1등 병조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탈출에는 성공한 후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

 

(인양된 I-18 정의 모습. 앞쪽을 절단한 상태다.

http://en.wikipedia.org/wiki/Type_A_K%C5%8D-hy%C5%8Dteki-class_submarine#Pearl_Harbor_attack)

 

미해군은 어뢰가 있어 위험한 I-18 정의 앞쪽을 절단하고 인양한 후 일본정부의 요청에 따라 해상자위대에 넘겨주었다.

 I-18 정은 현재 에타지마 병학교에 전시되어 있다.

 

(에타지마 병학교에 전시 중인 I-18 정. 앞쪽은 만들어 붙인 것이다. http://www.combinedfleet.com/Pearl.htm)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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