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메릴랜드, 테네시, 베스털, 네오쇼

 

오전 7시 49분에 오아후 북해안 와이에아 상공에서 돌격명령을 내린 후 후치다 미츠오 중좌가 이끄는 수평폭격기 49대는 3,000m 고도를 유지하면서 오아후 섬의 서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시가 요시오 대위가 이끄는 카가의 제로기 9대가 호위를 맡았다.

후치다 중좌는 7시 53분에 바버스 곶 부근에서 기습성공을 뜻하는 도라도라도라를 타전했다.

수평폭격기들은 진주만을 남쪽으로 돌아 8시 5분에 남서쪽으로부터 진주만에 진입했다.

후치다 중좌는 이런 경로를 취함으로써 자신들이 접근한 방향을 오도하고 육지 상공에서 들키는 걸 막으려 했다.

카가의 제로기들은 호위임무에서 벗어나 히컴 비행장을 공격했다.

 

(진주만 기습 상황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c/Pearl_Harbor_bombings_map.jpg)

 

800kg 에 달하는 폭탄은 나가토 급의 16인치 포탄을 개조한 것으로서 3,000m 높이에서 투하할 경우 미국전함들의 장갑팝을 관통할 수 있었다.

폭탄에는 지연신관이 장착되어 장갑판에 부딪치면 0.2초 후에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투하고도는 3,000m 를 지켜야 했다.

만일 2,000m 높이에서 투하한다면 장갑판을 뚫지 못할 것이었다.

만일 4,000m 높이에서 투하한다면 최종 속도가 너무 빨라서 0.2초 내에 함체를 통과해 버릴 것이었다.

 

800kg 짜리 폭탄은 관통력에 중점을 둔 16인치 철갑탄을 기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게의 대부분이 쇳덩어리였으며 작약은 22.3kg 에 불과했다.

따라서 함체 내에서 터져야만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으며 폭탄의 크기에 비해 지근탄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베스털에 명중한 폭탄 중 1발은 함체를 통과해 해저에서 폭발했는데 거의 피해가 없었다.

 

49대로 이루어진 수평폭격기들은 4대로 이루어진 후치다 미츠오 중좌의 중대를 제외하변 5대로 이루어져 총 10개의 중대였다.

폭격은 중대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5대가 갈매기처럼 역V자형으로 진행하면서 한꺼번에 폭탄을 투하했다.

 

진주만 기습 당일 구름의 높이는 1,700m 정도였다.

따라서 급강하 폭격기들은 교리에 정해진 고도인 4,000m 가 아니라 구름 아래인 1,500m 고도에서 급강하를 시작했으나 숙련도가 뛰어났기 때문에 큰 지장을 받지 않았다.

뇌격기는 원래 저공에서 공격하니 구름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관통력때문에 3,000m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수평폭격기들은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지장을 받았다.

실제로 후치다 중좌는 처음에 네바다를 폭격하려 했으나 구름에 가려 오른쪽으로 선회한 다음 다시 돌아와 메릴랜드를 폭격했다.

후치다 중대의 폭탄 4발은 모두 빗나갔다.

 

그러나 구름 양이 7 정도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어서 수평폭격도 효과를 거두었다.

수평폭격기들은 전함열의 안쪽에 있던 메릴랜드, 테네시, 애리조나, 전함열의 끝에 있던 네바다, 따로 정박 중이던 캘리포니아를 목표로 삼았다.

49대의 수평폭격기는 전함 4척(웨스트버지니아, 메릴랜드, 테네시, 애리조나) 그리고 수리함 베스털에게 총 12발의 폭탄을 명중시켰다.

 

신관의 신뢰성은 좋지 않았다.

명중한 폭탄 12발 중 5발이 불발이거나 조기 폭발이었으며 베스털에 명중한 2발 중 1발은 함체를 그대로 통과하여 진주만 바닥에서 폭발했다.

그러나 애리조나에 명중한 4발의 폭탄 중 1발이 진주만 기습 최대의 전과를 올리면서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진주만 기습 당시 함정의 배치상황. http://maps101blog.com/2010/12/)

 

전함열의 선두에서 오클라호마 안쪽에 정박 중이던 메릴랜드(BB-46)는 진주만에 정박중이던  전함 중 가장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메릴랜드는 아카기의 수평폭격기가 떨어뜨린 800kg 짜리 폭탄 2발을 맞았는데 1발은 전방 선실을 뚫고 수면 아래 화물창에서 폭발하면서 침수를 일으켜 흘수가 1.5m 정도 깊어졌다.

다른 1발은 함체 전방에 쳐놓은 천막의 밧줄에 명중하면서 조기 폭발하여 갑판에 3.7mx 6.1m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총 1,604명의 승조원 중 4명이 전사하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메릴랜드는 공습 이후 건선거에 들어가지도 않고 12월 20일까지 수리를 마친 후 미본토 서해안 브레머튼의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로 가서 본격적인 수리를 받았다.

1942년 2월 26일에 퓨젠 사운드 조선소를 나온 메릴랜드는 시험항해를 마치고 6월부터 일선에 복귀했다.

메릴랜드는 진주만에서 피해를 입은 함정 중에서 가장 먼저 일선에 복귀했다.

 

(진주만 기습 당시 메릴랜드의 모습. 옆에 전복된 함정은 오클라호마. http://www.navsource.org/archives/01/46c.htm)

 

메릴랜드의 바로 뒤, 웨스트버지니아의 안쪽에 정박하고 있던 테네시(BB-43)는 아카기, 카가 및 소류의 수평폭격기가 떨어뜨린 800kg 짜리 폭탄 중 2발을 맞았는데 1발은 조기 폭발, 1발은 불발이라 피해가 적었다.

1발은 2번 포탑의 지붕에 명중하는 순간 조기 폭발했는데 이 폭발로 옆에 정박했던 웨스트버지니아의 함장 베니언 대령이 치명상을 입었다. 

나머지 1발은 3번 포탑 지붕을 뚫고 들어가 주포 1문을 망가뜨렸으나 불발탄이었다.

 

테네시의 피해는 주로 25m 뒤에 정박하고 있던 애리조나에서 날아온 파편과 불타는 중유에 의한 것이었다.

승조원들은 애리조나에서 흘러온 불타는 중유에 의한 화재를 끄기 위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샌드위치와 커피로 끼니를 때워 가며 밤새 소화작업을 벌여야 했다.

1,466명의 승조원 중 5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테네시는 12월 20일까지 임시수리를 마치고 미본토 서해안 브레머톤의 퓨젯 사운드 해군조선소로 가서 본격적인 수리를 받았다.  

1942년 2월 26일에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를 나온 테네시는 시험항해를 거쳐 8월 14일에 진주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개장을 위하여 2주 후인 27일에 다시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로 돌아갔다.

1943년 5월 7일에 개장을 마친 테네시는 동년 8월의 키스카 상륙작전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1941년 12월 10일에 찍은 테네시의 사진. 옆에 상부구조물만 내놓고 가라앉은 함정은 웨스트버지니아. http://www.navsource.org/archives/01/43d.htm)

 

진주만 기습 당시 웨스트버지니아의 뒤, 애리조나의 바깥쪽에 정박하고 있던 수리함 베스털(AR-4)은 애리조나를 노린 카가와 히류의 수평폭격기가 떨어뜨린 800kg 짜리 폭탄 10발 중 2발을 맞았다.

베스털은 오전 7시 55분에 전투태세에 들어가 대공포 사격을 시작했는데 8시 5분에 애리조나를 노린 카가의 800kg 짜리 폭탄 5발 중 1발이 우현 전방에 떨어졌다.

폭탄은 3개 갑판을 관통한 후 식료품 창고에서 폭발하면서 화재를 일으켰으며 베스털은 주변에 있던 전방 탄약고를 침수시켜야 했다.

 

8시 10분에 애리조나를 노린 히류의 수평폭격기들이 떨어뜨린 5발의 폭탄 중 1발이 좌현 후방에 명중했다.

이 폭탄은 함체를 뚫고 내려가 배 밑바닥에 1.5m x 1.5m 크기의 구명을 남긴 채 관통한 다음 해저에서 폭발하여 거의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이때 히류의 수평폭격기들이 떨어뜨린 5발 중 1발에 맞아 애리조나의 전방 탄약고가 폭발하면서 어마어마한 폭풍이 베스털을 덮쳤다.

폭풍은 베스털의 화재를 순식간에 끄면서 함장 캐신 영 중령을 함 밖으로 날려 버렸다.

기적적으로 별다른 상처없이 해면에 떨어진 영 중령은 헤엄쳐서 다시 함으로 돌아왔다.

애리조나로부터 불타는 중유가 흘러나와 베스털이 화염에 휩싸이자 누군가 퇴함을 권고했으나 영 중령은 거부했다.

 

오전 8시 40분에 승조원들이 도끼로 애리조나와 연결된 로프를 끊었고 베스털은 애리조나의 곁을 떠났다.

키가 말을 듣지 않아 양쪽 프로펠러의 회전 수를 조절하여 방향을 조절했다.

곧 예인함이 다가와 베스털을 진주만 북서쪽의 맥그로우 곶 부근으로 끌고 갔고 베스털은 오전 9시 10분에 맥그로우 곶 부근 수심 11m 해역에 닻을 내렸다.

함장 영 중령은 만일 일본기가 다시 공격해오면 베스털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닻을 올려 오전 9시 50분에 맥그로우 곶 동쪽의 아이에아 만으로 가서 얕은 모래톱에 함을 좌초시켰다.

 

(아이에아 만의 모래톱에 좌초한 베스털의 모습. http://www.navsource.org/archives/09/25/2504.htm)

 

베스털은 이 와중에도 수리반을 오클라호마에 파견하여 뒤집힌 배 밑바닥을 뚫고 승조원을 구조하기도 했다.

영 중령은 이날의 지휘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승조원 783명 중 1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격이 끝나자 베스털의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배에 들어찬 기름과 물을 빼낸 후 응급 수리를 실시했고 기습 1주일 후부터 진주만 내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함정들을 수리했다.

승조원들은 다른 배를 수리하면서 자함의 수리도 병행했으며 베스털의 수리가 완전히 끝난 것은 1942년 2월 중순이었다.

 

(진주만 기습 당시 네오쇼의 모습. 앞에 보이는 것은 캘리포니아. http://www.navsource.org/archives/09/19/19023.htm)

 

급유함 네오쇼(AO-23)는 전함열과 캘리포니아 사이에 정박하고 있었다.

당시 네오쇼는 항공유를 만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 폭발한다면 캘리포니아와 전함열의 전함들 전부가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네오쇼는 애리조나로부터 흘러나온 불타는 중유가 다가오자 정박 중이던 선석을 떠나 사우스이스트 협만으로 이동했다.

도중에 네오쇼는 대공화기로 일본기 1대를 격추했다.

네오쇼의 승조원 중 전사자는 없었으며 3명이 일본기의 기총소사로 부상을 입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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