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태평양함대 전투부대 사령관 윌리엄 파이 중장의 기함 캘리포니아는 급유함 네오쇼를 사이에 두고 전함열의 남쪽에 따로 정박하고 있었다.

아카기(2대)와 소류(1대)의 뇌격기 3대로부터 공격을 받은 캘리포니아는 전함 중에 늦게 공격받은 편이지만 다른 전함에 비하여 대응이 늦었다.

방수를 비롯한 함정 상태가 미흡했고, 너무 많은 장교들이 상륙한 상태였으며 함상에 남아있던 장교들은 신속하고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전투배치나 완전 방수태세(Condition Zed) 명령도 늦었다.

 

(진주만 기습 당시 함정의 배치상황.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Pearl_Harbor_attack_-_maps#mediaviewer/File:Pearl_Harbor_before_strike.gif)

 

공식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기함을 맡은 전함의 경우 엄정해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실제 준비 태세나 함정의 상태는 다른 전함보다 열악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함일 경우 검열에서 제독이 굴욕감을 느끼거나 짜증을 내지 않도록 함정 상태의 문제점을 깐깐하게 지적하지 않고 대충 합격점을 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함에서는 함장을 포함한 승조원들이 제독과 참모들을 시중들고 각종 함상 행사를 준비하고 행사에 대비하여 겉모습을 번쩍거리게 유지하느라 전투에 대비한 준비 태세나 함정 상태를 최선으로 유지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진주만 기습 당시 검열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럴 경우 함저의 물탱크와 빈 격실을 완전히 환기시켜야 했다. 따라서 공격을 받았을 때 이중 바닥의 구멍을 막는 맨홀 뚜껑 6개는 제거되었고 다른 12개는 고정용 너트를 빼서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상태였다.

 

오전 8시 5분, 캘리포니아의 좌현에 아카기의 뇌격기 2대가 발사한 어뢰 중 1발이 명중했고, 잠시 후 소류의 뇌격기가 발사한 어뢰 1발이 추가로 명중했다.

1발은 함교 바로 앞, 1발은 3번 주포탑 아래에 명중했다.

방수 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장갑대 아래에 명중한 어뢰 2발은 대량의 침수를 가져와 함체가 급속히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함장이 상륙하여 부재한 상황에서 에드가 페인 소위가 역침수를 실시했다.

이때 페인 소위는 오른쪽 보일러실 2개를 침수시키는 결정을 내렸는데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쨌든 역침수 덕분에 왼쪽으로 16도까지 기울어졌던 캘리포니아는 기울기가 완화되면서 전복을 모면했다.

 

하지만 어뢰의 폭발로 연료탱크가 파열되었고 그곳으로 바닷물이 들어가 8시 10분에 캘리포니아는 동력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이때부터 반격을 시작한 캘리포니아의 대공포좌에는 승조원들이 줄을 서서 탄약을 날랐다.

오전 8시 45분에 소류와 히류의 급강하폭격기들이 떨어뜨린 250kg 짜리 폭탄 중 1발이 대공포 탄약고에 떨어져 일렬로 늘어서 탄약을 운반하던 승조원들 중 약 50명이 전사했다.

 

보수반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8시 55분까지 캘리포니아는 동력, 조명 및 수압을 회복했으며 화재도 거의 진압했다.

오전 9시 10분에는 4개의 보일러를 가동하면서 이동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함정에 돌아와 있던 함장 조엘 벙클리 대령은 이때 지체없이 닻을 올리고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그가 이동명령을 내리지 않고 시간을 끄는 동안 애리조나에서 흘러나온 불타는 중유가 캘리포니아를 덮쳐 10시가 되자 함정 뒤쪽이 온통 불길과 연기에 휩싸였다.

 

이렇게 되자 벙클리 대령은 오전 10시 2분에 퇴함명령을 내렸는데 이것이 치명적이었다.

퇴함 명령에 따라 전방 기관실의 인원들이 자리를 뜨면서 동력이 끊어져 펌프가 작동을 멈추었다.

만일 캘리포니아가 일찍 이동하여 애리조나에서 흘러나온 불타는 중유를 피할 수 있었다면 퇴함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침몰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리조나로부터 불붙은 기름이 떠내려오자 캘리포니아의 승조원들이 퇴함하고 있다. 오른쪽에 전복된 오클라호마의 함체가 보인다. http://www.navsource.org/archives/01/44b.htm)

 

오전 10시 15분에 풍향이 바뀌면서 애리조나에서 흘러나온 불붙은 기름이 다른 곳으로 떠내려 가자 벙클리 대령은 모든 승조원에게 배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으나 일부만이 명령에 따랐다.

그동안 캘리포니아에서는 침수가 계속되고 있었다.

많은 방수문이 닫히지 않았고 통풍관이나 파이프에 망가진 곳이 많아 어뢰가 뚫은 구멍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계속 함내를 침수시켰다.

소해함 비레오와 보보링크가 캘리포니아에 접근하여 펌프로 물을 퍼냈고 승조원들도 이동식 휘발유 펌프로 물을 퍼내었으나 침수되는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필사적인 배수 노력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의 침수는 계속 진행되어 3일 후인 12월 10일 밤에 캘리포니아는 상부구조물만 물 밖으로 내놓은 채 바닥에 가라앉았다. 

1,666명의 승조원 중 98명이 전사하고, 61명이 부상을 입었다.

 

로버트 스코트 상사는 최후까지 전투위치를 지키면서 대공포를 발사하다가 전사하여 명예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DE-214 에 붙었다.

토머스 리브스 무전상사는 부하들을 모아 대공포탄을 인력으로 보급하는 조직을 만들어 지휘하다가 연기에 질식해 전사했다.

리브스 무전상사에에게도 명예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DE-156 에 붙었다.

 

캘리포니아는 1942년 3월 25일에 인양되어 진주만의 건선거에서 수리를 마쳤다.

1942년 6월 7일에 캘리포니아는 진주만을 떠나 자력으로 미본토 서해안 브레머튼의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에 가서 개장을 실시했다.

1944년 1월 31일에 퓨젯 사운드 해군 조선소를 떠난 캘리포니아는 2달간 시험항해를 실시한 후 5월 5일에 마리아나 제도 침공작전을 위하여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마리아나 제도로 향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

 

일본군의 어뢰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함렬의 마지막에 위치한 네바다 함상에서는 국기게양식이 진행되면서 국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연속적인 폭음이 들리더니 주변의 함정들이 미친듯이 대공포화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공격 당시 네바다의 최선임 장교였던 프랜시스 토마스 소령이 즉시 전투배치 명령을 내렸고, 곧 네바다의 대공포화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카가의 뇌격기 1대가 네바다의 좌현으로 접근했다.

네바다의 5인치 부포와 12.7mm 대공기관총이 불을 뿜자 그 뇌격기는 불이 붙었으나 어뢰 투사에 성공한 후 추락했다.

어뢰는 8시 3분에 네바다의 좌현 함수에 명중하여 13m x 9m 크기의 구멍을 만들었다.

이 폭발로 격실 몇 개가 침수되었고 전기는 유지되었으나 배를 움직일만한 동력은 사라졌다.

네바다는 수평폭격으로 인한 피해는 받지 않았다.

 

잠시 후 애리조나에서 흘러나온 불타는 중유가 접근했다.

오전 8시 40분에 동력이 돌아오자 토머스 소령은 출항하기로 결정했다.

힐 원사가 정박용 부표에 뛰어내려 기총소사를 무릅쓰고 밧줄을 풀고나서 헤엄쳐 돌아왔다.

나중에 힐 원사는 일본군의 폭격으로 전사했으며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

 

(불타는 포드 섬의 수상기 계류장을 배경으로 진주만 입구로 향하는 네바다. http://www.navsource.org/archives/01/36c.htm)

 

이제 네바다는 연기를 쭗고 선석을 떠나 진주만 입구로 향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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