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갑표적 격침

 

항공모함을 출격한 1차 공격대가 진주만으로 접근하는 동안 I-24 함의 갑표적 정장인 사카마키 가즈오 소위는 항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잠망경을 올려 확인한 결과 자이로스코프가 가리키는 방향은 실제와 90도나 오차가 났다.

사카마키 소위는 자이로스코프를 포기하고 잠망경에 의존하여 진주만 입구에 접근하려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급기야 갑표적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사실 사카마키 소위는 진주만 입구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7일 아침에 미해군의 보급함 안타레스가 바지선을 끌고 진주만 입구로 접근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 안타레스의 함장 로렌스 그래니스 중령이 함의 우현 뒷쪽 1,400m 해상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잠수함의 사령탑이었다.

아마도 부력 조절 실패로 떠오른 것 같았다.

그래니스는 주변에 있던 구축함 워드에게 보고했다.

이때 초계를 나서던 카탈리나 비행정 1대도 잠수함을 발견하고 위치를 알리는 연막탄을 떨어뜨렸다.

 

워드의 함교를 지키고 있던 포술장 괴프너 중위는 안타레스의 보고를 받고 쌍안경으로 살펴본 후 조타병에게도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은 잠수함의 사령탑이 틀림없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괴프너 중위가 보고하자 함장 윌리엄 아우터브리지 대위가 함교로 달려왔다.

 

(위키스 급 구축함 DD-139 워드. 배수량 : 1,267톤, 길이 : 96m, 속력 : 35노트, 승조원 : 231명, 무장 : 4인치 단장포 4문, 3인치 대공포 2문, 21인치 어뢰발사관 4연장 3개, 어뢰 12발)

 

아우터브리지 함장이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잠수함의 사령탑이 틀림없었다.

아군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사령탑이 처음보는 형태였다.

게다가 이곳은 아군 잠수함은 반드시 부상해야만 하는 해역인데도 잠수함은 완전히 부상하지 않았으며 워드와 통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잠항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적의 잠수함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6시 40분에 총원 전투배치 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워드는 속력을 높여 잠수함에게 접근했다.

 

잠수함에게서 50m 거리까지 근접한 워드는 잠수함과 나란히 달리면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초탄은 약간 높았으나 두번째 사격에서 3번 포탑의 4인치 주포가 잠수함의 사령탑 오른쪽 하단에 1발을 명중시켰다.

잠수함은 황급히 잠항했고 워드는 잠수함의 예상 항로를 가로지르면서 폭발심도를 30m로 맞춘 폭뢰를 투하했다.

폭뢰 공격이 끝난 오전 6시 53분에 워드는 적의 잠수함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제14해군관구에 보고했다.

워드가 폭뢰투하를 마치자 상공의 카탈리나 비행정이 폭뢰 2발을 투하했다.

이로써 워드와 카탈리나는 I-20 함에서 발진한 일본군의 갑표적을 격침했다. 

 

(2002년에 진주만 부근 해저에서 발견된 갑표적의 잔해. http://www.aerospaceweb.org/question/hydrodynamics/q0280.shtml)

 

2002년에 하와이 대학의 탐사팀이 진주만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깊이 370m 깊이에 가라앉아 있던 I-20 갑표적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갑표적의 사령탑에는 워드의 함포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갑표적의 우현 사령탑 하단. 워드의 4인치 주포에 맞아 관통당한 구멍이 보인다. http://www.soest.hawaii.edu/HURL/gallery/archaeology/midget.html)

 

12월 7일 아침에 제14해군관구의 당직사관은 해럴드 카민스키 소령이었다.

워드가 일본잠수함을 격침했다고 보고하자 카민스키 소령은 즉시 제14해군관구 사령관 클로드 블로크 소장의 부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자 카민스키 소령은 태평양함대에 전화를 걸어 블랙 소령에게 알렸다.

블랙 소령이 당직 장교인 빈센트 머피 중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을 때 머피 중령은 숙소에서 옷을 입고 있던 중이었다.

머피 중령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제1초계 비행단의 로간 램지 소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램지 소령은 포드 섬의 당직장교인 딕 벨린저 대위로부터 카탈리나 정찰기 1대가 구축함과 공동 작전으로 일본잠수함을 격침했다는 보고를 듣고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머피 중령은 워드의 보고에 이어 램지 소령의 전화를 받자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태평양함대 사령관 허즈번드 킴멜 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킴멜 대장은 오전 7시쯤 일어났으며 머피 중령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아직 세수와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킴멜 대장은 워드의 보고를 그대로 믿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머피 중령에게 상황을 파악하여 다시 전화하라고 말했다.

 

블랙 소령과 통화한 후 카민스키 소령은 제14해군관구 참모장 존 얼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민스키 소령의 보고를 받은 얼 대령의 첫 반응은 지금까지 여러번 있었던대로 오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워드의 함장 아우터브리지 대위가 경험이 일천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후 카민스키 소령에게 사실을 확인해서 다시 보고하라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얼 대령은 사태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잠시 후인 7시 12분에 블로크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로크 소장과 얼 대령은 이 문제에 관해 10분 정도 이야기한 다음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려 보기로 결정했다.

 

잠수함을 공격했다는 워드에 보고에 대한 반응을 보면 당시 제14해군관구나 태평양함대의 장교들이 잠수함 출현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대응 시스템으로 일본군의 공습이 1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중요한 사태에 대하여 누구도 신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전화통만 붙들고 아까운 시간을 날려버렸다.

만일 제14해군관구나 포드 섬의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듣자마자 일단 항공기를 초계에 내보내고 상부에는 나중에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하나 아쉬운 점은 해군이 이 사실을 즉각 육군에 통보하지 않은 점이었다.

만일 워드로부터 보고가 들어옴과 동시에 육군에도 통보되었으면 파괴활동에 매몰되어 있던 육군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의 잠수함이 접근했다면 파괴활동보다는 공습이 뒤따를 가능성을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파괴 활동에 대비하여 감시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모아 두었던 전투기들을 분산시키는 데는 30분이 필요했다.

만일 워드의 보고를 일찍 듣고 결단을 빨리 내렸으면 일본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전투기들을 분산시켜 일본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다면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상당수의 전투기들을 내보내어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일본군에게 더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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