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진주만 공격부대

 

출항을 몇 시간 앞둔 1941년 11월 25일 밤에 제1항공함대 사령장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히도카프 만에 정박한 기함 아카기의 선실에 누워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만일 진주만에 적 함대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적이 우리의 계획을 미리 알고 매복해 있으면?

오늘 히도카프 만처럼 날씨가 나쁘면 해상급유가 불가능한데 항해 내내 이런 날씨가 이어진다면?

안개가 끼면 진주만을 공격하고 돌아온  함재기들의 착함이 어려울 것이다.

반면 날씨가 맑다면 진주만 공격부대는 새하얀 설원의 검은 소처럼 눈에 띌 것이다.

기습에 성공해도 살아남은 B-17 이 대규모로 역습해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구모 제독은 잠들기를 포기하고 26일 0시 경에 일어나 진주만의 상황을 브리핑했던 스즈키 스구루 소좌를 불렀다.

스즈키 소좌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가 갑작스런 호출을 받자 복장을 갖추고 나구모 중장의 선실로 갔다.

 

나구모 중장은 스즈키 소좌가 들어오자 질문을 퍼부었다.

스즈키 소좌는 나구모 중장이 듣고 싶어하는 답을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그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미함대는 주말에는 항상 항구에 들어오며 그걸 갑자기 바꿀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현재까지 미국은 우리의 의도를 모르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며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는 식이었다.

 

어차피 나구모 중장도 스즈키 소좌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구모 중장은 술과 간단한 안주를 들여오게 해서 스즈키 소좌에게 권했다.

스즈키 소좌는 중장과 단 둘이 앉아 술을 마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후 26일 새벽 2시에 자기 선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운 스즈키 소좌는 대함대를 지휘하는 사령장관이자 중장인 사람도 일개 소좌처럼 큰 작전을 앞두고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인 1941년 11월 26일 오전 6시에 진주만 기습부대는 히도카프 만을 떠났다.

(일본 시간은 미동부보다 14시간 빠르며, 하와이보다는 19시간 30분 빠르다.따라서 진주만 공격부대가 히도카프 만을 떠난 26일 오전 6시는 워싱턴 시간으로는 25일 오후 4시이며 하와이 시간으로는 25일 오전 10시 30분이다. 앞으로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시간은 현지 시간을 따르며 진주만 공격부대는 날짜 변경선을 넘기 전에는 일본 시간, 넘은 이후에는 하와이 시간을  따른다.)

 

스즈키 소좌는 히도카프 만에 정박한 포함 구나시리에서 진주만 공격부대를 배웅했다.

장병의 사기는 높았으며 젊은 장교들은 자신들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지 개의치 않았다.

 

총 30척으로 이루어진 진주만 공격부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공습부대 - 제 1 항공함대 (사령장관 : 나구모 주이치 중장, 참모장 :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

제 1 항공전대 (나구모 중장) - 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제 2 항공전대 (야마구치 다몬 소장) - 항공모함 소류, 히류

제 5 항공전대 (하라 주이치 소장) - 항공모함 쇼가쿠, 즈이가쿠

 

2. 지원대 - 제 3 전대 (미카와 군이치 중장) - 전함 히에이, 기리시마

제 8 전대 (아베 히로아키 소장) - 중순양함 도네, 치쿠마

 

3. 경계대 - 제 1 수뢰전대 (오모리 센타로 소장) - 경순양함 아부쿠마

제 17 구축대 (스기우라 가주 대좌) - 구축함 다니카제, 우라카제, 요코카제, 이소카제

제 18 구축대 (미야자카 대좌) - 구축함 시라누이, 카스미, 아키쿠모, 아라레, 카게로

 

4. 초계대 - 제 2 잠수대 (이마이즈미 키지로 대좌) - 잠수함 I-19, I-21, I-23

 

5. 보급부대 - 제1보급대(오토 마사나오 대좌) - 교쿠토마루, 겐요마루, 고쿠요마루, 신고쿠마루

 제2보급대(니미 가즈타카 대좌)- 도요마루, 니혼마루, 도에이마루

 

(http://blog.naver.com/mirejet/110083057166, <At Dawn We Slept : The Untold Story of Pearl Harbor> Gordon W. Prange, McGraw Hill, 1981, P.394, <제2차세계대전해전사> 이정수. 남영문화사, 1981년, P.119)

 

함정들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

 

 함종

함명 

표준배수량 

최고속력 

항속거리 

연료량

 항공모함

아카기 

 41,300톤

 31노트

 18노트로 14,800km

 6,000톤

 카가

 42,500톤

 28노트

 18노트로 18,500km

 8,200톤

 쇼가쿠,즈이가쿠

 29,800톤

 34노트

 18노트로 18,000km

 5,000톤

 소류,히류

 20,250톤

 34노트

 18노트로 14,100km

 3,500톤

 전함

 히에이,기리시마

 37,000톤

 30노트

 18노트로 18,100km

 6,300톤

 중순양함

 도네,치쿠마

 11,000톤

 36노트

 18노트로 14,800km

 2,600톤

 경순양함

 아부쿠마

 5,500톤

 35노트

 14노트로 9,300km

 1,600톤

 구축함

 카게로 급

 2,000톤

 36노트

 18노트로 11,100km

 600톤

 카스미, 아라레

 2,000톤

 35노트

 18노트로 9,300km

 600톤

 잠수함

 I-19, 21,23

 2,200톤

 23노트

 16노트로 25,900km

 800톤

 급유함

 겐요마루급

 20,000톤

 18노트

 16노트로 16,700km

 2,000톤

 도호마루급

 8,000톤

 16노트

 14노트로 13.000km

 450톤

(<At Dawn We Slept : The Untold Story of Pearl Harbor> Gordon W. Prange, McGraw Hill, 1981, P.416, 일부 수정 및 편집)

 

제1항공전대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제1항공함대 사령장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항공전에 대해서는 책으로만 배웠으므로 항공참모 겐다 중좌와 아카기의 항공대장 후치다 미츠오 중좌에게 의존했다.

제2항공전대 사령관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항공전에 익숙했으나 그도 실전경험이 없기는 나구모 중장과 마찬가지였다.

제5항공전대 사령관 하라 주이치 소장 또한 1941년 9월에 항공전대 사령관이 되기 전까지는 항공전에 문외한이었다.

 

제1항공전대를 이루고 있는 아카기와 카가는 각각 전투기 18대, 함상폭격기 18대, 함상공격기 27대, 합계 63대를 운용했다.

제2항공전대를 이루고 있는 소류와 히류는 각각 전투기 18대, 함상폭격기 18대, 함상공격기 18대, 합계 54대를 운용했다.

제5항공전대를 이루고 있는 쇼가쿠와 즈이가쿠는 각각 전투기 18대, 함상폭격기 27대, 함상공격기 27대, 합계 72대를 운용했다.

 

(일본항공모함 카가.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일본 군령부는 태평양함대의 미국항공모함을 최대 4척으로 추정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3척이었으며 그나마 새러토가는 오버홀을 위하여 미본토 서해안의 푸젯사운드 조선소에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중부 태평양에서 활동 중이던 미국항공모함은 렉싱턴과 엔터프라이즈 2척이었다.

CV-2 렉싱턴은 표준배수량 34,000톤에 최고 속력 35노트로 약 80대의 함재기를 운용했으며, CV-6 엔터프라이즈는 표준배수량 20,000톤에 최고 속력 34노트로 약 85대의 함재기를 운용했다.

 

전함 히에이와 기리시마는 속력이 30노트에 달해 21노트에 불과한 태평양함대의 전함들보다 빨랐으며, 무장도 14인치 주포 8문으로 약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평양함대는 16인치 주포 8문을 가진 메릴랜드와 웨스트버지니아를 포함한 8척의 전함을 가지고 있어서 전함 전력은 진주만 공격부대를 압도했다.

 

(일본전함 히에이.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중순양함  도네와 치쿠마는 8인치 주포 8문을 가지고 있어서 9문을 가진 미국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보다 1문이 적었으나 대신 강력한 산소어뢰 발사관 6문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표준배수량 10,000 톤에 33노트인 샌프란시스코보다 더 크고 더 빨랐으므로 일본해군은 자신들의 중순양함이 미군 중순양함을 압도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중순양함 도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경순양함 아부쿠마는 5,500톤에 140mm 주포 5문을 보유하고 있어서 7,000톤에 6인치 주포 10문을 가진 미국 경순양함 롤리에게 주포 화력은 밀렸다.

그러나 아부쿠마는 어뢰발사관 2문과 산소어뢰 8발을 보유하고 있어서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경순양함 아부쿠마. http://en.wikipedia.org/wiki/Japanese_cruiser_Abukuma,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진주만 공습부대에 배치된 9척의 일본구축함 중 7척은 최신형인 가게로 급이었으며 2척은 아사시오 급이었는데 모두 5인치 주포 6문과 산소어뢰 및 폭뢰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구축함들은 전반적으로 미국구축함보다 강력했으나 태평양함대는 진주만 공격부대의 3배가 넘는 29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게로급 구축함 시라누이.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I-15 급 잠수함인 I-19, I-21, I-23함은 미국잠수함보다 훨씬 컸으며 수상정찰기 1대를 싣고 다녀  정찰능력이 뛰어났다.

수상정찰기는 170km/hr 의 속력으로 3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었다.

 

(I-15 급 잠수함.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제1보급대의 급유함들은 최고 18노트를 낼 수 있었고 제2보급대는 최대 16노트를 낼 수 있었다.

진주만 공격부대는 하와이를 왕복하면서 대부분 12 - 14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했다.

 

히도카프 만을 떠난 이후로 나구모 중장은 일본해군의 일개 중장이 아니었다.

그가 진주만 기습을 성공으로 이끌면 국가의 영웅으로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었다.

설사 그가 진주만 기습에서 전사한다 해도 길이 추앙받을 것이며 에타지마 병학교에서는 이후 수십년간 그의 전술을 가르치고 연구할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실패하는 날이면 천길의 땅을 파도 그 수치를 파묻지 못하고 태평양의 바닷물을 다 쏟아부어도 씻어내지 못할 것이었다.

 

나구모 중장의 어깨에 걸린 책임은 막중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진주만 기습부대는 일본해군의 전통과 오랜 시간 미해군에 대항하기 위하여 확립해 온 계획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리고 함대항공력의 집중적인 운용을 통하여 적의 함대 주력을 격파한다는 새로운 방식의 전투를 치르려 하고 있었다.

이제 나구모 중장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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