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습 계획

 

1941년 11월 23일 아침에 제1항공함대 사령장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히도카프 만에 정박 중인 기함 아카기 함상으로 진주만 공격부대의 지휘관, 참모 및 함장들을 모두 불러 모은 후 기동부대 명령 제1호를 발령했다.

이로써 진주만 공격부대의 장병 전원이 진주만 기습에 대해 알게 되었다.

 

(히도카프 만에 정박 중인 제1항공함대의 기함 아카기.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Akagi_Hitokappu_Bay.jpg)

 

이 자리에서 제1항공함대의 항공참모 겐다 미노루 중좌는 진주만 기습의 개요에 대하여 설명했다.

목표는 진주만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전부와 전함 4척 이상을 격침하고 오아후의 항공기들을 최대한 많이 파괴하는 것이었다.

 

제1파는 오아후 북쪽 370km 거리에서 발진하며 제2파는 320km 거리에서 출격할 것이었다.

후치다 미츠오 중좌가 지휘하는 제1파는 뇌격기, 수평폭격기, 급강하폭격기 및 전투기가 모두 참가하며 적의 항공모함과 전함을 공격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시마자키 시게카즈 소좌가 지휘하는 제2파는 뇌격기는 빼고 수평폭격기, 급강하폭격기 및 전투기로 이루어져 제1파가 공격한 함정들을 추가로 공격하여 마무리짓고 적의 항공력을 말살하여 반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임무를 맡았다.

공격을 마친 항공기들은 오아후 북서쪽 30km 공역에 집결하여 귀함할 것이었다.

 

하와이를 향해 가는 도중 발견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므로 제1항공함대는 진주만 기습부대가 이함하기 전에는 함재기를 띄우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진주만 기습 전날까지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해가 뜬 직후부터 해질녘까지 각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 전투기 6대와 급강하폭격기 3대를 즉시 출격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것이었다. 

 

적이 공격일 이전에 진주만 공격부대를 발견하면 함대는 돌아갈 것이었다.

공격 당일 발견당하면 싸울 것이었다.

 

진주만의 상황에 대한 최종정보는 오아후의 일본영사관과 하와이 해역에 미리 전개한 잠수함이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다.

이 최종 통고를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제1차 공격대의 출격 30분 전에 중순양함 도네와 치쿠마에서 정찰기 1대씩을 사출할 것이었다.

정찰기 1대는 라하이나 정박지를, 다른 1대는 진주만을 정찰하고 무전으로 보고할 것이었다.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함대 방공을 위하여 각 항모에서 6대씩 총 36대의 전투기를 전투초계에 투입할 것이었다.

전투초계기들은 18대씩 2시간 간격으로 교대로 초계를 담당하며 나머지 18대는 비행갑판에 즉시 출격가능한 상태로 대기할 것이었다.

공중에 뜬 18대의 전투기 중 9대는 4,000m, 나머지 9대는 2,000m 고도를 담당할 것이었다. 

항해 중 함대는 무전신호를 일체 보내지 않으며 신호는 낮에는 깃발 신호, 밤에는 발광  신호를 사용할 것이었다.

제1파 공격대가 기습에 성공하면 후치다 중좌가 '도라-도라-도라'(호랑이-호랑이-호랑이) 라는 무전을 치기로 했다.

나구모 중장은 공격을 마친 함재기들이 귀환 도중에 엔진이 고장나는 사태 이외에는 무전을 금지했다.

그러자 조종사들이 항모의 안전을 위하여 엔진이 고장나도 무전을 치지 않기로 결의하고 나구모 중장의 승인을 받았다.

오전 회의가 끝나자 지원부대 및 경계부대의 지휘관, 참모 및 함장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나구모 중장은 11월 23일 오후에 제1항공함대 수뇌부와 조종사 전원이 모인 가운데 다시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는 주로 후치다 중좌가 공습에 대한 세부 내용을 설명했다.

 

공격대가 이함할 때 쇼가쿠와 즈이가쿠의 함재기들은 함대 뒷쪽 400m 상공에, 카가와 히류의 함재기들은 함대 상공 200m 고도에, 아카기와 소류의 함재기들은 함대 앞쪽 400m 상공에 집결할 것이었다.

후치다 중좌 자신은 함대 가장 앞쪽에 15대의 수평폭격기를 이끌고 500m 고도로 집결할 것이었다.

 

진주만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수평폭격기들은 중앙 3,000m 고도, 뇌격기들은 오른쪽 2,800m 고도, 급강하폭격기들은 왼쪽 3,500m 고도로 날아갈 것이었다.

순항속도가 빠른 전투기들은 3,800m 고도로 폭격기들 상공을 왔다갔다하면서 비행할 것이었다.

제2차 공격대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함하여 비행할 것이었다.

 

오아후 북쪽에 도달하면 후치다 중좌가 권총으로 신호탄을 발사할 것이었다.

동시에 전투기들은 폭격기들을 앞지르면서 튀어나와 제공권을 장악할 것이었다.

이때 전투기들은 2개로 나뉘어 이타야 시게루 소령이 지휘하는 27대는 3,800m 고도를 유지하고 오카지마 기요구마 대위가 지휘하는 18대는 2,000m 고도로 내려올 것이었다.

그동안 수평폭격기들은 3,000m 고도를 유지하고 급강하폭격기들은 4,000m 고도로 상승하며 뇌격기들은 하강할 것이었다.

신호탄이 1발만 발사되면 뇌격기들이 가장 먼저 진입하고, 2발 발사되면 급강하폭격기, 수평폭격기, 그리고 뇌격기의 순서로 진입할 것이었다.

 

(진주만 기습 상황도. http://en.wikipedia.org/wiki/Pearl_Harbor_attack)

 

뇌격대는 2개로 나뉘어 포드 섬의 양쪽으로부터 진입할 것이었다.

무라타 시게하루 소좌가 지휘하는 아카기와 카가의 뇌격기 24대는 포드 섬의 남동쪽으로부터 진입하면서 전함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나가이 츠요시 대위가 지휘하는 소류와 히류 소속 16대는 포드 섬의 북서쪽으로부터 진입하면서 항공모함을 공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기습 당시 항공모함이 없었으므로 소류와 히류의 뇌격기들은 표적함 유타와 순양함 롤리를 공격했으며 일부는 포드 섬을 건너 전함 캘리포니아, 오클라호마 및 웨스트버지니아를 공격했다.

뇌격 대상은 중대장이 정했으나 목표의 최종 식별 및 공격은 조종사가 스스로 결정했다.

 

(진주만 기습 당시 뇌격기의 공격 경로. http://www.freeinfosociety.com/media.php?id=807)

 

후치다 미츠오 중좌가 지휘하는 아카기, 카가, 소류 및 히류의 수평폭격기 50대는 800kg 짜리 폭탄으로 2열로 정박한 전함군의 안쪽에 정박한 함정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뇌격대와 마찬가지로 폭탄 투하의 최종 결정은 개별 조종사 및 폭격수의 몫이었다.

후치다 중좌는 만일 진주만 바깥으로 도망치려는 함선을 발견하면 입구 근처에서 격침하여 진주만을 폐쇄하라고 말했다.

 

뇌격기와 수평폭격기가 함정들을 공격하는 동안 250kg 폭탄 1발을 장착한 쇼가쿠와 즈이가쿠의 급강하 폭격기 54대는 비행장을 공격할 것이었다.

다카하시 가쿠이치 소좌가 이끄는 쇼가쿠의 급강하 폭격기 27대는 포드 섬의 해군항공기지와 히컴 비행장을, 사카모토 아키라 대위가 이끄는 즈이가쿠의 급강하폭격기 27대는 휠러 비행장을 공격할 것이었다.

 

전투기들은 제공권을 장악하고 이후에는 히컴, 휠러, 에바, 카네오헤, 벨로우즈 비행장의 미군기들과 관제탑을 기총소사할 것이었다.

 

제1차 공격대에 참가할 항공기는 뇌격기 40대, 수평폭격기 50대, 급강하 폭격기 54대, 전투기  45대로 총 189대였다.

이들 중 수평폭격기 1대, 급강하폭격기 3대 및 전투기 2대가 기계적 결함으로 빠져서 실제로 공습에 참가한 항공기는 183대였다. 

 

시마자키 시게카즈 소좌가 이끄는 제2차 공격대는 제1차 공격대가 시작한 함정 공격 임무를 완수하고 비행장을 공격할 것이었다.

제2차공격대의 핵심은 에구사 다카시게 소좌가 지휘하는 아카기, 카가, 소류 및 히류의 급강하폭격기 81대였다.

겐다 중좌는 제2차 공격대가 도달할 때 쯤이면 미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들이 제1차 공격대의 뇌격을 받아 전복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250kg 짜리 폭탄 1발을 장착한 제2차 공격대의 급강하폭격기들이 전복된 항공모함에 달려들어 함체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리면 미군이 감히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공습 당일 항공모함이 없었기 때문에 제2차 공격대의 급강하폭격기들은 전함을 포함한 다양한 함정들을 공격했다.

일부 폭격기들은 해군공창을 공격했으며 마키노 사부로 소좌가 지휘하는 카가의 급강하폭격기들은 진주만 바깥으로 도망치려던 전함 네바다를 집중폭격하여 입구 근처에서 침몰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시마자키 시게카즈 소좌가 이끄는 쇼가쿠와 즈이가쿠의 수평폭격기 54대는 비행장을 폭격할 것이었다.

54대의 수평폭격기 중 36대는 250kg 짜리 폭탄 1발과 60kg 짜리 폭탄 6발로 무장했으며 나머지 18대는 250kg 짜리 폭탄 2발로 무장했다.

이치하라 다츠오 대위가 지휘하는 쇼가쿠의 수평폭격기 27대 중 18대는 포드 섬 비행장, 9대는 카네오헤 비행장을 폭격하고 시마자키 소좌가 지휘하는 즈이가쿠의 수평폭격기 27대는 히컴 비행장을 폭격하여 일본항공모함에 대한 미군의 반격능력을 분쇄할 것이었다.

 

신도 사부로 대위가 지휘하는 전투기 36대 역시 제공권을 장악하고 비행장의 항공기와 관제탑을 기총소사할 것이었다.

제2차 공격대에 투입될 항공기는 수평폭격기 54대, 급강하폭격기 81대, 전투기 36대로 합계 171대였으나 공습시에는 급강하폭격기 1대가 불참하여 실제 공격에 투입된 숫자는 170대였다.

1차와 2차 공격대를 합쳐 진주만 기습에 참가한 일본함재기는 353대였다.

 

진주만 공격의 주역은 뇌격기였는데 겐다 중좌와 후치다 중좌는 만일 어뢰방어망이 있을 경우 선두 뇌격기가 자폭하여 망을 찢기로 하고 뇌격기 조종사들의 동의를 받아둔 상태였다.

하지만 나구모 제독이 허가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후치다 중좌는 꼼수를 썼다.

뇌격대의 공격에 대하여 설명하던 무라타 소좌가 어뢰방어망이 있을 경우에 관하여 말할 때가 되자 후치다 중좌가 슬쩍 끼어들어 무라타 소좌를 밀어내고 자신이 설명했다.

 

"어뢰방어망이 있을 경우 선두 뇌격기가 어뢰방어망을 폭격하여 돌격로를 열 것입니다. 만일 선두가 실패하면 다음 뇌격기가, 또 실패하면 다음 뇌격기가..이런 식으로 폭격하여 돌격로를 엽니다."

 

예상대로 나구모 중장이 말을 끊고 질문했다.

 

"어뢰방어망을 폭격하여 돌격로를 연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

 

후치다는  미리 준비한 대로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것은 대단히 기술적이고 특별한 형태의 공격으로 조종사들은 무슨 말인지 압니다."

 

그러자 나구모 제독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회의는 이어서 진주만에 미함대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로 옮겨갔다.

그럴 경우 진주만 공격부대는 함재기를 회수한 후 남하하면서 하와이 주변을 수색하여 미함대와 대결할 것이었다.

이때는 수평폭격기도 모두 어뢰를 장비하고 뇌격기로 운용할 것이었다.

미함대를 발견하는데 실패하면 진주만 공격부대는 마셜제도로 물러가 다음 명령을 기다릴 것이었다.

수색 도중 미함대가 진주만에 돌아와도 진주만을 공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기습의 잇점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위험이 너무 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조종사들은 26개 공격대 별로 나뉘어 토론에 들어갔다.

겐다 중좌와 후치다 중좌는 공격대를 돌아다니면서 조종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모든 조종사가 자신의 임무를 숙지하도록 격려했다.

아카기의 주방에서는 술과 음식을 준비했다.

밤늦게 토론회를 마친 조종사들은 히도카프 만에 심한 폭풍우가 이는 가운데 야식을 즐기면서 떠들썩하게 놀다가 잤다.

 

1941년 11월 24일 아침부터 조종사들은 토론과 학습을 재개했으며 오전에 나구모 중장이 들러 조종사들을 격려했다.

아카기의 해도실에서는 진주만의 대형 모형을 만들었는데 새로운 정보가 들어옴에 따라 모형은 점점  정교해졌다.

 

이날 야마모토 제독으로부터 26일 아침에 하와이를 향하여 출항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함정들은 24일과 25일에 걸쳐 급유를 받고 기관을 점검하는 등 출항준비에 들어갔다.

카가는 싣고 온 100 발의 신형어뢰를 아카기, 소류 및 히류에 분배했으며 기술자들이 항모에 올라 신형어뢰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정비병들에게 취급 방법을 설명했다.

 

사기는 높았다.

제2항공전대 사령관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부하들을 비행갑판에 모아놓고 출항명령이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좋은 철로 뛰어난 장인이 만든 명검인 자신의 칼 이야기를 꺼냈다.

검술이 뛰어난 야마구치 소장은 그 칼을 휘둘러 일본 투구를 반쪽으로 가를 수 있었다.

야마구치 소장은 제2항공전대를 칼에 비유하자면 자신의 칼보다 훨씬 좋은 천하제일의 명검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맺었다.

 

"자, 이제 적을 반토막내러 가자!"

 

그리고는 당시 해군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던 군가를 불렀다.

야마구치 소장과 부하들은 목청높여 군가를 부른 후 만세삼창을 했다.

 

25일 저녁이 되자 각 함정마다 만들어 놓은 신사에는 조종사와 승조원이 몰려들어 기원했다.

모두들 미군 몰래 하와이에 접근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 함대를 박살내고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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