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6일에 일본군의 기꾸스이 1호 작전이 시작되었다.
총 10회에 걸친 기꾸스이 작전 중에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1호 작전에는 총 800 대 이상의 일본기들이 참가했으며 주력 공격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견제 공격도 포함되었다.
최초로 공격해 온 것은 4월 6일 새벽에 오끼나와의 욘탄 비행장과 가데나 비행장을 습격한 14대의 일본기였다.
이들은 활주로에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으나 미군의 비행기가 아직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 1대의 비행기도 파괴하거나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이어서 100 여대의 전투기와 공격기로 이루어진 공격대가 제58기동부대를 공격하여 CAP 세력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어서 주력 공격대가 제58기동부대와 하구시 앞바다에 정박 중인 미군 선단을 공격해 왔다.
주력 공격대는 355 대의 가미까제 특공기와 344 대의 호위 전투기 및 약간의 공격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6일 오후 3시경부터 공격을 시작하여 총 36시간에 걸쳐 출격했다.

미군도 전력을 다해서 요격에 나섰다.
제58기동부대의 전투기들 뿐만 아니라 호위항공모함의 전투기들도 총동원되었고, 호위항공모함 시트코베이와 브레톤에서 욘탄 비행장으로 이동중이던 해병제31비행대의 전투기들까지 요격에 가담했다.
니미츠 제독의 긴급 명령을 받은 류큐전술항공군 사령관인 멀카니 해병소장은 상륙한 해병대에 대한 근접공중지원(CAS) 임무를 띄고 4척의 호위항공모함에 실려와서 4월 7일에 욘탄 비행장에 전개한 해병제31비행대와 9일에 가데나 비행장에 전개한 해병제32비행대 소속인 192대의 콜세어와 30대의 헬캣에게 당분간 제58기동부대와 협력하여 전투공중초계(CAP) 임무에 전념할 것을 지시했다.
대신 지상의 해병대에 대한 근접공중지원임무는 제58기동부대의 아벤저와 헬다이버가 맡게 되었다.
그런데 제58기동부대의 조종사들은 근접공중지원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상의 해병대로서는 이러한 사실이 상당한 불만이었으나 때가 때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혼신의 노력을 다한 요격전의 결과 미군은 4월6일과 7일에 총 380 대의 일본기를 격추했다.
하지만 가미까제 특공기 33대가 23척의 함선에 격돌하여 구축함 2척과 수송선 2척 등 6척의 함정이 격침되고, 피해를 입은 17척 중 7척은 피해가 너무 심하여 전열에서 탈락했으며 해군장병 367명이 전사했다.
격침된 함선 중 수송선 2척에는 제10군이 사용할 81mm 박격포탄이 모두 실려있었는데 하구시 해안 근처에서 가미까제 특공기에게 당하여 엄청난 폭발과 함께 침몰해 버림으로써 수많은 81mm 박격포들이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변했다.
할 수 없이 육군항공대의 수송기들이 81mm 박격포탄들을 급히 공수해 와야만 했다.

원래 가미까제 특공기들은 공격함정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교육받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정규항공모함의 비행갑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1주일 간의 기초비행훈련 밖에 받지못한 미숙한 가미까제 조종사들은 최초로 눈에 들어오는 표적을 보면 그만 흥분하여 우선순위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로 돌진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함대의 최전방에서 레이더를 이용하여 조기경보임무를 맡고있던 레이더 피켓함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실제로 이날 침몰한 구축함인 부시와 콜헌도 레이더 피켓함이었다.
제58기동부대에서는 정규항공모함 베닝턴과 경항공모함 벨로우드가 가벼운 피해를 입었으나 작전에는 지장이 없었다.

기꾸스이 1호 작전의 항공작전과는 별도로 대형전함 야마또를 중심으로 한 해상특공부대도 오끼나와를 향하고 있었다.
일본연합함대 사령부는 야마또를 공중지원도 없이 오끼나와 해역에 돌입시켜 미군수송선단을 공격한 다음 주변의 해안에 좌초시켜 육상포대로 활용한다는 정신나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야마또와 경순양함 야하기,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진 제1유격부대에게 편도분 연료만 실은 채 오끼나와로 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지로 떠나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도꾸야마 연료보급기지의 관계자들이 연료탱크의 밑부분을 닥닥 긁어서 왕복연료를 맞추어 주었다.

 

(일본해군의 대형전함 야마토.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541824 )

 

야마또를 비롯한 해상특공부대는 6일 오후 3시 20분에 도꾸야마 기지를 출발하여 오끼나와를 향했다.
오후 6시 30분, 해상특공부대는 미잠수함 스레드핀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스레드핀은 즉시 상부에 보고했고, 3월 24일부터 제58기동부대를 떠나 데요 소장의 포격부대와 행동을 같이하고 있던 스프루언스 대장은 즉시 10척의 구형전함을 가진 포격부대에게 야마또를 요격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밤새 남하중이던 해상특공부대는 7일 오전 8시 32분에 정규항공모함 에섹스의 헬캣에 의하여 재차 발견되었다.
스프루언스 제독은 이 보고를 받고서도 제58기동부대에 공습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어제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대규모 가미까제 공격 때문에 제58기동부대는 물론 호위항공모함의 전투기들과 해병대의 류큐전술항공군 소속 전투기들까지 모두 긁어모아서 요격임무에 투입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일본의 수상함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다수의 제58기동부대 소속 함재기들을 동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남하 중인 일본함대는 포격부대의 구형전함 10척으로 간단하게 저지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일본함대가 중간에 되돌아가 버리는 사태였다.
일본해군의 함정 중에서 단연 최고의 상징성을 가진 대형전함 야마또가 스스로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즉시 함재기들을 내보내어 공격하지 않고 주저하다가 만일 이대로 놓쳐버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사방에서 쏟아질 엄청난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반면 제58기동부대 사령관인 미처 제독은 자신의 부대가 야마또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일본기들의 가미까제 공격을 막아낼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참모장인 알레이 버크 준장에게 명하여 정오까지 별도의 중지명령이 없으면 남하 중인 일본함대를 공격하겠다는 뜻을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타전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 오전 10시 22분에 일본함대가 반전했다는 연락이 들어오자 알레이 버크 준장은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재차 공습허가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다.
일본함대가 반전했다는 보고를 받은 스프루언스 제독은 망설임을 떨쳐버리고 공습을 허가했다.

곧 제58.1전단과 제58.3전단 소속 8척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132대, 아벤저 98대, 헬다이버 50대로 이루어진 제1차 공격대가 출격했다.
11시 29분에 해상특공부대는 재반전하여 오끼나와 쪽으로 침로를 돌렸다.
오후 12시 32분, 야마또의 레이더가 접근하는 미함재기의 대군을 발견하여 2분 후부터 18.1인치의 주포에서 발사하는 삼식탄을 비롯하여 일본함대의 각종 대공화기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12시 35분부터 폭격이 시작되어 40분에 베닝턴과 호넷의 헬다이버들이 야마또의 사령탑 부근 좌현에 2발의 450kg 철갑탄을 명중시켰으며, 43분에는 호넷의 아벤저가 야마또의 좌현 선수 부근에 1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
이후 미함재기들은 야마또의 좌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미함재기 조종사들은 시부얀 해전에서 무사시를 격침할 때 양현을 동시에 공격하는 전통적인 뇌격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무사시가 오히려 더 오래 버텼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마또에 대한 공격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공격력을 집중시키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아벤저의 뇌격을 도와주기 위하여 벙커힐에서 출격한 콜세어 14대가 야마또의 좌현에 100 발 이상의 HVAR 을 퍼부어서 좌현에 위치한 대공포좌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4대의 헬캣과 1대의 콜세어, 그리고 22대의 헬다이버와 소수의 아벤저들은 호위함들을 공격했다.
12시 46분에 경순양함 야하기가 1발의 어뢰를 얻어맞고 행동불능상태에 빠졌다.
구축함 하마까제도 어뢰 1발을 얻어맞고 두 동강이 나서 격침되었으며, 후유쓰키도 HVAR 2발을 맞았다.
구축함 아사시모는 기관고장을 일으켜 전열에서 낙오했다.
구축함 스즈쓰키는 함수에 225kg짜리 일반폭탄 1발을 얻어맞고 함수가 날아가 버렸으나 필사적인 응급조치로 침몰만은 면했다.

 

미함재기 조종사들은 시부얀 해전의 경험을 통하여 450kg 짜리 대형철갑탄으로도 야마또의 장갑을 뚫고 들어가 큰 피해를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상당수의 미함재기들이 대형함 공격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연신관을 장착한 철갑탄 대신 야마또의 대공포좌를 공격할 목적으로 접촉신관을 장비한 일반폭탄을 달고 출격했다.
일반폭탄은 같은 무게의 철갑탄보다 관통력이 약한 대신 장약의 양이 많았기 때문에 대공포좌 같이 노출된 목표나 구축함급 이하의 소형함을 공격할 경우에는 오히려 철갑탄보다 유리했다.
12시 50분에 제1차 공격대가 물러갔다.
야마또는 1차 공격에서 2발의 폭탄과 1발의 어뢰를 맞아서 속력이 22노트로 떨어지고 좌현 쪽의 대공포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오후 1시 22분에 167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공습을 시작했다.
1시 23분, 12대의 아벤저가 야마또의 좌현 쪽에서 달려들면서 거의 동시에 12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야마또는 즉시 좌현쪽으로 최대각도로 선회했으나 3발이 좌현 중앙부에 명중했다.
3,000 톤이 넘는 해수가 함내에 쏟아져 들어와서 야마또는 좌현으로 7도나 기울었으며 보조 키가 어뢰 폭발의 충격 때문에 좌현으로 잔뜩 꺾인 채로 고정되어 버렸다.
손상관리반이 우현에 역침수를 실시하여 겨우 균형을 잡았다.
1시 44분, 4대의 아벤저가 야마또에게 달려들어 추가로 2발의 어뢰를 좌현 중앙에 명중시켰다.  
야마또는 다시 좌현으로 기울어지면서 속력이 18노트로 떨어졌다.
구축함 카스미도 2발의 폭탄을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오후 2시 2분, 제58.4전단의 정규항공모함 인트레피드와 요크타운, 경항공모함 랭글리를 떠난 이날의 마지막 공격대인 제3차 공격대 106대가 공격을 시작하여 3발의 폭탄을 야마또의 좌현 중앙에 명중시켰다.
2시 7분, 요크타운의 아벤저가 1발의 어뢰를 야마또의 우현 중앙부에 명중시켰다.
이 어뢰는 야마또에 명중한 10발의 어뢰 중에서 유일하게 우현에 명중한 어뢰였다.
2시 12분, 요크타운의 아벤저가 발사한 2발의 어뢰가 야마또의 좌현에 명중했다.
야마또는 이제 좌현으로 15도나 기울었고, 속력은 12노트로 떨어졌다.
해상특공부대 사령관 이또 중장은 특공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야마또에 대한 퇴함명령과 함께 호위함정들에게 생존자를 구조하여 일본으로 철수하라는 최후명령을 내렸다.  
2시 17분, 요크타운의 아벤저가 야마또의 좌현에 1발의 어뢰를 추가로 명중시켰다.
2시 23분, 야마또가 좌현으로 전복되어 침몰했다.
동시에 제1번 탄약고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는데 이때 발생한 연기는 160km 이상 떨어진 규슈 남부에서도 보였다.
야마또가 침몰하는 중에 해중에서 다시 폭발이 일어나서 그 충격파로 해상에 떠있던 생존자들 중 많은 수가 사망했다.
2,700 명이 넘는 야마또의 승무원 중에서 269명만이 생존했다.

 

(야마토가 격침되면서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주변에 살아남은 3척의 일본구축함이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야마또의 호위함정들도 차례차례 격침되었다.
우선 제1차 공습에서 어뢰 1발을 맞아 빌빌거리며 겨우 해상에 떠있던 경순양함 야하기가 어뢰6발과 폭탄 12발을 추가로 얻어맞고 2시 5분에 격침되었다.
구축함 이소까제도 격침되었고, 기관고장을 일으켰던 아사시모도 결국 그날 밤에 자침했다.
공습현장에서 살아남은 3척의 구축함은 생존자를 구출하여 사세보로 귀항했다.
제1차 공습에서 폭탄에 맞아 함수가 날아가버린 상태로 실종되었던 스즈쓰키는 당초 격침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필사적인 응급조치로 침몰을 면하고 미함재기들이 득실거리는 해역에서 무려 300km가 넘는 거리를 후진으로 돌파하여 8일 오후에 기적적으로 사세보 항에 무사히 귀환했다.
해상특공부대는 총 10척 중에서 대형전함 야마또와 경순양함 야하기, 구축함 4척이 격침되고, 사령관 이또 세이찌 중장을 비롯하여 3,721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면서 오끼나와 돌입에 실패했다.

제58기동부대에서는 헬캣 3대, 아벤저 3대, 헬다이버 4대가 격추되어 12명이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야마또는 합계 10발의 어뢰와 5발의 폭탄을 얻어맞고 전투시작 1시간 40분만에 왼쪽으로 전복되면서 침몰했다.
자매함 무사시가 시부얀 해전에서 20발의 어뢰와 17발의 폭탄을 얻어맞고도 무려 9시간을 버티다가 침몰한 것에 비하면 야마또의 좌현에 공격을 집중시킨 미함재기 조종사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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