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동부대의 공습을 견디다 못하여 24일 오후 3시 30분에 일시 서쪽으로 반전했던 제1유격부대는 오후 5시 15분에 재차 반전하여 샌배너디노 해협을 향했다.
미군의 정찰기가 이것을 보고 제38기동부대에 보고했으나 핼시 제독은 무시하고 오자와 함대를 쫓아서 북쪽으로 가버렸다.
따라서 제1유격부대는 25일 새벽 0시 35분에 샌배너디노 해협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구리따 제독은 샌배너디노 해협에 진입하면서 함대 전멸을 각오했었다고 한다.
만일 스프루언스 제독의 주장대로 제38기동부대가 해협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면 아마 제1유격부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협 출구는 기분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제1유격부대는 사마르 섬의 북쪽을 돌아서 동쪽 연안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25일 오전 6시 23분, 야마또의 레이더에 미군항공기가 잡혔다.
구리따 제독은 휘하 함대에게 명령을 내려서 진형을 대공윤형진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오전 6시 30분, 제77.4.2전대(Taffy 2) 소속의 호위항공모함 Kadashan Bay 를 출격하여 대잠경계를 맡고있던 Hans Jensen 소위의 아벤저가 레이더로 북쪽에서 고속으로 남하하는 여러 척의 함선을 발견하고 77.4.3전대(태피3)에 보고한 다음 조사해보기 위하여 접근했다.
태피3은 레이테 만의 가장 북쪽에 있었고, 태피2는 100km 남동쪽에, 태피1은 태피2로부터 다시 100km 남동쪽에 있었다.

태피3은 6척의 호위항공모함(Fanshaw Bay, St. Lo, White Plains, Kalinin Bay, Kitkun Bay, Gambier Bay), 3척의 구축함(Hoel, Heermann, Johnston), 4척의 호위구축함(Dennis, John C. Butler, Raymond, Samuel B. Roberts) 등 총 13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함재기는 와일드캣 95대와 아벤저 72대였다.
호위항공모함은 모두 Casablanca 급이었으며, 구축함들은 모두 Fletcher 급으로서 한척당 5문의 5인치(127mm) 포와 10발의 어뢰를 보유하고 있었다.
호위구축함은 모두 John C. Butler 급으로서 한 척당 5인치 포 2문과 3발의 어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구리따 제독이 지휘하는 제1유격부대는 전함 4척(야마또, 나가또, 공고, 하루나), 중순양함 6척(구마노, 스즈야, 치꾸마, 하구로, 죠까이, 도네), 경순양함 2척(노시로, 야하기), 구축함 11척으로 이루어져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중순양함들은 모두 35노트 가까운 고속을 낼 수 있어서, 태피3의 호위항공모함들보다 2배 가까이 빠른 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6시 43분, 젠센 소위는 제1유격부대에 접근하여 일본함정들의 파고다형 마스트와 함종을 확인하여 태피2에 보고했고, 태피3도 그 내용을 동시에 수신했다.
6시 44분, 제1유격부대가 태피3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제1유격부대는 대공윤형진을 형성하려 기동하다가 그 진형 그대로 태피3을 향하여 돌격하기 시작했다.
6시 45분, 태피3의 기함 팬쇼베이와 갬비어베이의 레이더가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함대를 접촉했다.
6시 48분, 팬쇼베이 함상에서도 일본함정 특유의 파고다형 마스트를 확인했다.
6시 50분, 태피3의 사령관 스프라그 소장은 즉시 모든 함정에게 연막을 치면서 바람이 불어오는 동쪽을 향하여 전속으로 항진하도록 명령했다.
6시 58분, 야마또를 비롯한 제1유격부대의 함정들이 32,000m 거리에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일본함정들은 어느 함이 쏜 일제사격인지 구별하기 위하여 포탄에 함정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염료를 넣어서 다른 함정의 탄착군과 구별했다.
이때 야마또의 색깔은 분홍색이었고, 공고는 노란색이었다.

7시 1분, 스프라그 제독은 태피1과 태피2에 구조요청을 했는데, 어찌나 급했던지 암호문으로 고치지도 않고 평이한 영어로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7시4분, 태피3의 가장 후미에 있던 구축함 존스턴의 함장 Ernest Evans 중령은 스프라그 제독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함의 침로를 되돌려 구리따 함대의 선두였던 제7순양전단(중순양함 구마노,스즈야,도네,치꾸마)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돌진해 갔다.
7시 6분, 태피3은 스콜 속에 진입했다.

 

7시 8분부터 태피 3에 실려있던 함재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했다.
이때 태피3에서는 총 65대의 와일드캣과 44대의 아벤저가 출격했다.
당시 태피3의 함재기들은 상륙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과 대잠경계를 주로 맡고 있었기 때문에 무장이 주로 45kg 짜리와 225kg 짜리 일반폭탄 및 450kg짜리 폭뢰였으며 어뢰의 재고량은 상당히 적었다.
함재기들은 항공모함에 실려있던 상태 그대로 이륙했기 때문에 무장이나 연료상태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뢰를 장비한 아벤저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이 일반폭탄과 폭뢰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일부 와일드캣은 45kg짜리 일반폭탄을 달고 출격했다.
어떤 함재기는 아무런 무장도 없이 이함했고, 일부 함재기는 연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이함한 경우도 있었다.
태피3의 조종사들 중 함정공격훈련을 받은 조종사는 거의 없었으나 그들은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폭탄이 없는 전투기는 일본함정의 대공포좌에 기총소사를 가하여 대공포의 조준을 방해하거나 함교에 기총소사를 가하여 조함과 전투지휘를 방해했고, 기관총탄마저도 떨어지면 마치 폭격을 가하는 것처럼 일본함정의 상공에 접근하여 회피운동을 강요함으로써 일본함정들이 주목표인 태피3의 호위항모들을 효과적으로 추격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7시 10분, 구축함 존스턴이 구리따 함대의 가장 선두에서 추격해오던 중순양함 구마노의 전방 16,000 m 지점에서 5인치 포로 200발 이상 사격을 가하여 몇 발을 명중시켰다.
일본의 중순양함들은 8인치 포로 존스턴에게 반격을 가했으나 1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같은 시각, 호위항공모함 화이트플레인즈에 일본전함의 철갑탄 1발이 명중했으나 함체를 그대로 관통하는 바람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7시 16분, 스프라그 제독은 3척의 구축함들에게 일본함대에 반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7시 20분, 구마노 전방 9,000m 지점까지 접근한 존스턴은 구마노에게 10발의 어뢰 전부를 발사하고 반전하여 연막을 뿌리면서 전속력으로 후퇴했다.
이 어뢰 중 1발이 구마노에게 명중하여 속력이 16노트로 줄었고, 바로 뒤를 따라오던 스즈야는 구마노와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전속후진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이때 속력이 떨어진 스즈야를 노리고 태피3의 함재기들이 달려들어 폭탄 2발을 명중시킴으로써 스즈야는 우측으로 기울어지고 속력이 23노트로 떨어지면서 구마노와 함께 전열에서 탈락했다.
또한 이들을 바짝 뒤따르던 중순양함 도네와 치꾸마는 존스턴이 발사한 어뢰를 피하고 선두의 양 함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속력을 늦추면서 일시 추격을 중단해야 했다.
도네와 치꾸마는 자신들의 뒤를 이어서 추격해오던 제5순양전단(죠까이, 하구로)와 합세하여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존스턴은 과감한 기동과 공격으로 35노트의 고속을 낼 수 있어서 사실상 태피3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구리따 함대의 중순양함 중 가장 선두에 섰던 구마노와 스즈야를 전투 초반에 전열에서 탈락시키고 제7순양전단의 전열을 흩어버려서 추격속도를 늦춤으로서 태피3가 살아남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일본군 중순양함 구마노.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078889 )

 

7시 23분, 스콜 속에서 스프라그 제독은 휘하함대에게 남쪽으로 변침하도록 명령했다.
7시 25분, 전함 중의 선두인 공고 전방 8,000 m 지점까지 육박한 구축함 호엘은 5인치 포를 사격하면서 5발의 어뢰를 발사한 직후, 공고의 반격을 받아 14인치 철갑탄 3발을 맞고 대파되었다.
호엘이 발사한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7시 30분, 전속력으로 후퇴하던 존스턴이 공고가 발사한 14인치 철갑탄 3발과 경순양함에서 발사한 6인치 포탄 3발에 맞아 속력이 17노트로 줄었다.
이후 추격 중인 일본함대의 중간에 끼이게 된 존스턴은 전투의 최종단계에서 일본구축함들의 집중포격을 맞아 격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5인치 포를 발사하면서 전투를 계속했다.
연막과 스콜이 난무하고 해상에서는 어뢰가 돌아다니며 공중에서는 포탄과 미해군의 함재기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혼란한 전투현장에서 일본함대의 중간에서 시도때도 없이 5인치 포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존스턴 때문에 일본함대는 전투 내내 상당한 혼란을 겪었고 존스턴을 상대하느라 호위항공모함군에 공격력을 집중하는데 꽤나 방해를 받았다.

이때 스프라그 제독은 킨케이드 제독에게 무전을 보내어 레이테 만으로 후퇴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으나 킨케이드 제독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시 구리따 함대가 레이테 만의 교두보에 들이닥칠 경우 이들과 대적할만한 세력은 올덴도프 제독의 포격지원함대 뿐이었는데 밤새 제1유격부대 지대를 격멸하느라 치열한 전투를 치른 이 함대의 전함들이 보유한 철갑탄의 수효는 1,348 발로서 강력한 세력을 가진 구리따 함대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고, 순양함들의 철갑탄도 한 척당 평균 50 – 70 발 정도로서 전투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구축함들 또한 간밤의 전투에서 어뢰를 거의 소모해 버린 상황이었다.
킨케이드 제독이 레이테 만으로의 후퇴를 불허하자 태피3은 가까이 있던 태피2를 향하여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7시 37분, 구리따 함대의 선두 그룹을 형성한 제5순양전단이 12,000 m 거리까지 접근하자 호위항공모함 세인트로가 선두의 순양함을 향하여 딱 1문 있는 5인치 단장포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태피3의 호위구축함들은 북쪽에서 접근하는 구리따 함대에 어뢰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변침했다.
7시 50분, 호위항공모함 칼리닌베이가 몇 발의 8인치 포를 얻어맞았다.
당시 구리따 함대가 태피3을 핼시 제독 휘하의 고속항공모함 전투단으로 착각하여 지연신관을 장착한 철갑탄을 사용한 것이 태피3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구리따 함대가 발사한 대구경 철갑탄은 장갑이라고는 사실상 없는 호위항공모함들에 맞고는 그대로 함체를 관통해버리기 일쑤였다.
만일 구리따 함대가 철갑탄 대신 순발신관을 장착한 고폭탄을 사용했다면 태피3의 피해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때쯤 태피2에서 날아온 함재기들이 태피3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남쪽으로 기동하고 있던 경순양함 노시로와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진 제2구축전대를 공격하여 그 진로를 방해했다.
태피2의 함재기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마르 해전 당시 태피2의 사령관 F.B.Stump 소장은 태피3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면서 구리따 함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구리따 함대가 쫓아오는 반대방향인 남동쪽으로 도망가는 대신 바람이 불어오는 북동쪽으로 항진하면서 함재기를 이함시키기로 결심했다.
덕분에 태피2는 해전의 막바지에는 일본전함 하루나에게 포격을 받을 정도로 전투현장에 접근하게 되었으나 대신 제대로 무장을 갖춘 함재기들을 이함시켜 구리따 함대를 타격하고 태피3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7시51분, 구축함 호엘이 구리따 함대의 선두에 있던 중순양함 하구로에 6,000 m 까지 접근하여 5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1발을 명중시켰다.
호엘은 그 직후 40여발의 명중탄을 얻어맞아 기관실이 침수되고 함체는 좌현으로 20도나 기울어졌다.
호엘은 결국 8시 55분에 좌현으로 넘어져 고물부터 침몰했다.
253명의 전사자와 함께 침몰한 호엘은 태피3에서 처음으로 침몰한 함정이었다.
그러나 호엘은 구마노 대신 선두에 섰던 중순양함 하구로에게 어뢰를 명중시켜 속력을 떨어뜨림으로서 존스턴에 이어 또다시 태피3에게 도망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 주었다.

7시52분, 호위구축함 로버츠가 하구로, 도네, 치꾸마와 함께 구리따 함대의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중순양함 죠까이에게 3,000 m 거리까지 바짝 다가가서 3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그 중 1발을 명중시켰다.

8시에 구축함 히어맨이 사마르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과를 올렸다.
앞서 7시 42분에 중순양함 하구로에 7발의 어뢰를 발사했지만 1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던 히어맨은 중순양함들을 지나쳐 그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전함들에게 육박했다.
그리하여 8시에 전함 하루나의 4,000 m 전방까지 접근한 히어맨은 남은 3발의 어뢰를 모두 하루나에게 발사했다.
이 어뢰들은 하루나를 빗나가서 하루나의 뒤를 따라오던 구리따 제독의 기함인 대형전함 야마또 쪽으로 돌진했다.야마또는 급히 회피운동에 들어갔는데 어뢰가 달려오는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회전하는 바람에 양옆과 뒤쪽에서 3발의 어뢰에 쫓겨서 속력을 줄이지도 못하고 좌우로 회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뢰의 연료가 소진될 때까지 마치 트랙을 달리는 단거리 선수처럼 태피3이 도망가는 반대방향인 북쪽을 향하여 직선코스를 전속력으로 16km나 달려야 했다.
따라서 18.1인치 포를 9문이나 장착하여 구리따 함대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함정인 야마또는 전장에서 이탈해버렸고, 더 중요한 사실은 안그래도 태피3가 피워올린 자욱한 연막과 스콜, 거기에다가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태피3와 무질서하게 쫓아가는 구리따 함대의 어지러운 기동 때문에 상황파악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함인 야마또가 이렇게 후방으로 처져버리니 구리따 제독으로서는 현장의 상황을 도저히 알 길이 없어져 버렸다.
전장에서 멀어져버린 야마또는 8시 20분에 레이더 조준으로 갬비어베이를 향하여 일제사격을 실시했으나 이 일제사격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탄착 장면을 본 함정이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빗나가 버렸다.
미국보다 최소한 2년이상 떨어지는 기술로 만든 일본군의 조잡한 레이더로 레이더 조준사격을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이렇게 전투현장에서 격리되어 버린 구리따 제독은 결국 1시간 후에 진형을 정비하기 위하여 휘하 함대를 야마또 주변으로 불러들임으로써 태피3가 전멸의 위기를 넘기게 된다.
사실 구리따 제독의 집결명령이 내렸을 때 일본함정의 일부는 결정적인 공격위치까지 도달해 있었다.

 

(일본해군의 대형전함 야마토.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541824 )

이제 구리따 함대 중 가장 선두에 나선 중순양함 치꾸마는 8시 10분에는 도망가던 태피3의 호위항공모함군의 좌현 8,000 m 이내까지 접근하여 평균 2분에 한발꼴로 호위항공모함 갬비어베이에게 명중탄을 날려댔다.
하지만 지연신관을 장착한 8인치 철갑탄은 갬비어베이의 함체를 계속 관통해버려서 갬비어베이의 함체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포탄구멍이 뚫렸으나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고 있었다.
8시 20분, 치꾸마가 발사한 8인치 철갑탄 1발이 갬비어베이의 좌현 물 속에서 폭발하여 그 압력으로 좌현의 기관실 부근인 수중 3.6m 깊이의 함체가 1.2m 가량 찢어졌다.
곧이어 그곳으로 엄청난 양의 해수가 쏟아져 들어왔고 급히 배수펌프가 작동했으나 역부족으로 8시 25분까지에는 1번 보일러가 물에 잠겼고 갬비어베이는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 속력이 11노트로 떨어지면서 호위항공모함의 대형에서 낙오하고 말았다.
치꾸마는 8시30분이 되자 5,000 m 거리까지 접근하여 갬비어베이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8시 40분이 되자 중순양함 하구로와 죠까이, 경순양함 노시로와 구축함 1척이 치꾸마에 가세하여 갬비어베이에게 포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갬비어베이는 불타오르면서 좌현으로 20도나 기울었다.
갬비어베이는 결국 9시7분에 좌현으로 전복되어 9시 10분에 침몰했다.

 

8시45분, 구축함 히어맨은 몇 발의 8인치 포에 명중되어 대파되었다.
8시 46분, 태피2에서 날아온 함재기들이 일본함정들을 공격하여 이미 폭탄 2발을 맞았던 중순양함 스즈야에게 몇발의 폭탄을 추가로 명중시켜서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으며 구축함 2척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중순양함 치꾸마는 갬비어베이의 함재기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다.
이 시점부터 태피2에서 발진한 함재기들의 공격이 집중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태피1에서 발진한 함재기들도 현장에 도착하여 일본함정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8시 51분, 구리따 제독은 전장의 상황을 알기 위하여 기함 야마또에서 1대의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9시에 호위구축함 데니스는 중순양함 도네에게 3발의 8인치 포탄을 얻어맞아 대파되었고, 호위구축함 로버츠는 전함 공고에게서 14인치 철갑탄3발을 얻어맞아 함체에 12 m 나 되는 구멍이 뚫리고 기관실이 침수되어 동력을 상실했다.
9시1분, 호위항모 키트쿤베이의 바로 20 m 후방에 중순양함 죠까이가 발사한 8인치 철갑탄의 일제사격이 떨어졌다.
다음 일제사격은 명중할 것이 확실시되자 키트쿤베이는 필사적으로 오른쪽으로 급회전했다.
하지만 죠까이는 다음 일제사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키트쿤베이의 함재기들이 모함을 위협하는 죠까이에게 벌떼같이 달려들어 불과 4분만에 무려 9발의 폭탄을 명중시켰다.
이미 로버츠에게 어뢰 1발을 얻어맞고도 키트쿤베이를 향하여 정확한 일제사격을 날려대던 죠까이는 이 불의의 일격을 당하여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면서 모든 기능을 상실했다.
키트쿤베이는 간발의 차이로 갬비어베이와 같은 운명을 면했다.

 

(일본해군의 중순양함 죠카이.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049962 )

전장은 어느덧 태피2에게도 바짝 접근하여 9시2분부터 7분까지 전함 하루나가 수평선 상에 보이는 태피2를 향하여 포격을 가했으나 명중탄을 내는데에는 실패했다.
9시 3분, 중순양함 치꾸마가 태피2의 함재기들이 발사한 항공어뢰 2발에 명중되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9시4분, 야마또에서 이함하여 전장의 상황을 무전으로 구리따 제독에게 보고하던 정찰기가 태피2의 와일드캣에 의하여 격추되었다.
그리하여 구리따 제독은 또다시 전장의 상황을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이제 일본함대의 선두에 선 함정은 중순양함 도네와 하구로였으며 이들은 호위항모군에 9,000 m 이내로 바짝 접근하여 키트쿤베이, 팬쇼베이, 칼리닌베이에 계속하여 8인치 주포의 명중탄을 내고 있었다.
도네와 하구로의 남서쪽에서 호위항공모함군에게 접근하고 있던 경순양함 노시로는 호위항공모함 화이트플레인즈에게 계속 6인치포의 명중탄을 기록하고 있었다.

 

9시 6분, 태피2의 아벤저들이 전함 야마또와 나가또, 그리고 공고를 향하여 어뢰를 발사했다.
이 어뢰들은 1발도 명중하지 않았지만 3척의 전함들은 15분 동안 이 어뢰들을 피하여 이리저리 도망다녀야만 했다.
9시 11분, 아직도 항공어뢰를 피하여 도망다니고 있던 야마또 함상에서 구리따 제독이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다.

“행동 중지, 북상하여 기함 주변에 집결할 것, 20노트”

일본함정들은 추격을 멈추고 호위항공모함들을 향하여 일제히 어뢰를 발사한 뒤 북상하기 시작했다.
이 어뢰들은 1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구리따 제독의 이 명령 덕분에 태피3은 전멸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일본함대는 호위항공모함에 대한 추격을 포기하고 북상하면서 피해를 입고 북쪽에 남겨진 구축함 존스턴과 호위구축함 로버츠에게 집중포격을 가했다.
이미 빈사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던 양함은 이 포격이 결정타가 되어 로버츠는 10시 7분에, 존스턴은 10시10분에 각각 침몰했다.

한편 전투에서 피해를 입었던 일본함대의 중순양함들도 침몰하기 시작했다.
10시17분, 어뢰1발과 폭탄 9발을 맞은 죠까이와 항공어뢰2발에 맞은 치꾸마가 나란히 동료구축함의 어뢰를 얻어맞고 침몰했다.
전투 초반에 폭탄 2발을 얻어맞은 후 추가로 폭탄 몇 발을 더 얻어맞은 스즈야는 10시 14분에 포기명령이 내려졌고, 오후 1시 22분에 침몰했다.
어뢰 1발씩을 맞은 구마노와 하구로는 살아 돌아갔다.

일단 북쪽으로 물러나서 진형을 가다듬은 구리따 함대는 오전 11시에 다시 레이테 만을 향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다.
12시 30분, 태피2의 함재기들이 다시 구리따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12시36분, 구리따 함대는 레이테 만을 불과 40km 앞둔 지점에서 돌연히 반전, 북상하여 샌배너디노 해협을 향했다.  
당시 구리따 제독이 레이테 만을 바로 눈 앞에 두고 반전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구리따 제독 자신의 술회에 의하면 태피3을 고속항모기동부대의 1개 전단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 다른 전단이 들이닥칠 것이고, 레이테 상륙작전이 시작된 지 이미 5일이 지났으므로 만 안에는 빈 수송선만 있을 것이므로 빈 수송선을 부수고 전멸하느니 후일을 기약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사마르 해전이 끝났다.

 

 

(구리타 다케오 중장.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45540127 )

사마르 해전에서 태피3은 호위항공모함 1척, 구축함 2척, 호위구축함 1척을 잃었고, 구리따 함대는 중순양함 3척을 잃었다.
양함대의 세력과 특히 구리따 함대가 포격이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여 선제공격을 가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런 전과는 태피3가 대단히 선전한 결과로서 사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전투개시 30분 만에 태피3가 사실상 전멸해 버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태피3가 이렇듯 선전할 수 있었던 원인은 여러가지로서 한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구리따 함대를 저지하여 태피3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해낸 세력 중 가장 중요한 세력이라면 태피2의 함재기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태피3가 전멸을 면한 요인은 그 이외에도 많이 있었으며 또한 행운이라는 요소도 결코 무시못할 요인이다.
따라서 태피3의 지휘관이었던 스프라그 제독은 나중에 사마르 해전에서 자신의 함대가 전멸을 면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공적인 연막, 어뢰를 이용한 반격, 적에 대한 함재기의 끊임없는 괴롭힘(폭격, 뇌격, 기총소사 등), 시의적절한 조함,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명백한 편애..”
(“successful smoke screen, our torpedo counter-attack, continuous harassment of the enemy by bomb, torpedo, and strafing air attacks, timely maneuver, and the definite partiality of Almighty God..”)

사마르 앞바다를 떠나 북상한 구리따 함대는 25일 오후 9시 30분에 샌배너디노 해협을 빠져나갔다.
킨케이드 제독의 구원요청을 받고 남하한 제34기동부대는 자정 경에 샌배너디노 해협에 도착하여 중순양함 치꾸마의 생존자를 구하느라 뒤에 처졌던 구축함 노와끼를 발견하고 경순양함 3척(빌록시, 마이애미, 빈센스)과 구축함 5척을 내보내어 26일 새벽 1시 3분에 격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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