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후소와 야마시로, 중순양함 모가미, 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진 제1유격주대 지대가 니시무라 쇼지 중장의 지휘 하에 브루네이를 떠난 시각은 제1유격부대 주대가 출발한 지 7시간 후인 22일 오후 3시였다.
제1유격부대를 2개로 나누는 것은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로 함대가 브루네이로 옮겨온 뒤에 구리따 중장이 결정한 사항이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을 통과하여 남쪽에서 레이테 만에 돌입하는 역할은 시마 기요히데 중장이 지휘하는 제2유격부대의 몫이었다.
구리따 중장이 제1유격부대를 둘로 나눈 이유는 불분명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시각에 같은 해역에서 같은 작전목적을 가지고 활동했던 제1유격부대 지대와 제2유격부대가 협동작전을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일본군 지휘체계의 문제이기도 했다.
즉 니시무라 제독이 연합함대 직속의 제1유격부대 사령관인 구리따 중장의 지휘를 받는 반면 시마 제독은 남방함대 사령관인 미까와 제독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지휘계통이 달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니시무라 제독과 시마 제독간의 불화였다.
해상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잔뼈가 굵은 야전형 사령관이었던 니시무라 제독은 경력상 책상 업무를 많이 한 참모형이었던 시마 제독을 싫어했다.
따라서 만일 공동작전을 펼 경우 선임자인 시마 제독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이 싫었던 니시무라 제독은 고의적으로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제1유격부대 지대는 24일 오전에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에게 발견되었고 곧 제38.4전단에서 출격한 함재기들의 공습을 받았으나 큰 피해는 입지 않았고, 오히려 대공포화로 반격을 가하여 헬캣 1대를  격추했다.
오후 4시 쯤에 레이테 만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을 향하여 항진 중인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구리따 제독으로부터 제38기동부대의 공습으로 인하여 제1유격주대 주대의 레이테 만 돌입이 늦어질 것이란 전문이 도착했다.

하지만, 이 전문에는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후퇴하거나 전진을 늦추라는 별도 지시가 없었으므로 니시무라 제독은 계속 수리가오 해협을 향하여 나아갔다.

 

한편, 제38.4전단이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한번의 공습을 가한 후 북쪽으로 가버리자 제7함대 사령관 킨케이드 중장은 포격지원부대를 이끌고 있던 Jesse B. Oldendorf 소장에게 명령하여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으로 나아가 일본함대를 저지하도록 명령했다.
올덴도프 소장의 포격지원부대는 구식전함 6척(Mississippi , Maryland , West Virginia, Tennessee, California, Pennsylvania), 중순양함 4척(Louisville, Portland, Minneapolis, HMAS Shropshire) , 경순양함 4척(Denver, Columbia , Phoenix, Boise), 구축함 27척, 어뢰정 39척으로 이루어져 제1유격부대 지대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올덴도프 제독은 일본함대를 격멸하기 위하여 수리가오 해협에 3단계로 이루어진 치명적인 덫을 설치했다.
제1단계는 13개의 전대로 나누어진 39척의 어뢰정으로 이들은 수리가오 해협의 입구인 파나온 섬에 매복했다.
제2단계는 수리가오 해협의 출구 쪽에 매복한 27척의 구축함이었다.
제3단계는 수리가오 해협을 빠져나오는 제1유격부대 지대에 대하여 T-자형 대형을 이룬 6척의 구형전함과 8척의 순양함군이었다.

수리가오 해협에 접근한 니시무라 제독의 제1유격부대 지대는 오후 9시에 중순양함 모가미와 3척의 구축함을 파나온 섬 인근으로 정찰을 내보내고 후소와 야마시로는 구축함 시구레를 앞세우고 계속 항진했다.
오후 10시 50분, 선두에 섰던 시구레가 3척의 어뢰정을 발견하고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어뢰정들은 즉시 후소와 야마시로에게 달려들었으나 단 한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한 채 일본함대의 반격을 받아 PT-493 호가 격침되고 나머지 2척도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모가미와 3척의 구축함은 25일 새벽 0시경에 4척의 어뢰정에게 공격을 받았으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후퇴하여 25일 오전 1시 30분에 수리가오 해협 입구에서 전함들과 합류했다.
2시에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한 제1유격부대 지대는 그 직후 30여척의 어뢰정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나 다행히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해군의 어뢰정들은 비록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였으나 해협 출구 쪽에 있던 올덴도프 제독에게 일본함대의 구성과 위치,침로 및 속력 등을 보고했다.

오전 3시, 제1유격부대 지대가 수리가오 해협의 출구로 나서자 미국의 구축함들 중 최초로 공격할 임무를 띠고 있던 제54구축전대의 구축함 5척이 어뢰공격을 가했다.
수리가오 해협 출구 양쪽으로 나뉘어 있던 제54구축전대 소속 구축함 중에서 동쪽에 배치되어 있던 3척의 구축함들은 제54구축전대장인 Jesse Coward 대령이 직접 이끌고 있었는데 오전 2시 40분에 레이더로 일본함대와 접촉했다.
즉시 해협 중앙으로 나와서 남쪽으로 변침, 일본함대의 우현 전방에서 접근해 간 3척의 구축함 중 Melvin 의 견시가 일본함정들을 육안으로 식별한 것은 오전 2시 58분, 거리는 12,000 m 였다.
카워드 대령은 즉시 어뢰발사명령을 내렸다.
오전 3시 정각부터 2분간 3척의 구축함들은 1척당 9발씩 총 27발의 어뢰를 발사하고 연막을 치면서 반전했다.
일본함대에서는 3시5분부터 멀어져가는 구축함들을 향하여 6인치 포로 반격을 가했으나 1발도 명중하지 않았다.
오전 3시 8분, 후소에 1발의 어뢰가 명중했다.
함의 중앙부를 직격한 이 어뢰로 인하여 기관실이 침수되고 화재가 발생한 후소는 속력이 10노트로 떨어지면서 함열에서 이탈했고, 결국 30분 후인 3시 35분에 탄약고의 폭발로 인하여 두 동강이 나서 침몰했다.
후소의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일본전함 후소.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635761 )

 

Richard Phillips 중령이 지휘하는 서쪽그룹의 구축함 2척은 2시 54분에 레이더로 일본함대를 접촉했다.
즉시 남하를 시작한 서쪽 그룹은 3시 10분에 일본함대를 향하여 각각 10발씩의 어뢰를 발사했다.
니시무라 제독의 기함 야마시로, 구축함 야마구모, 미치시오, 아사구모가 각각 1발씩의 어뢰에 맞아서 야마구모는 즉시 침몰하고 미치시오와 아사구모는 대파되었다.

제54구축전대가 공격하는 동안 순양함열의 우측 그룹에 포함되어있던 제24구축전대도 공격에 가담하기 위하여 오전 3시 2분부터 남하했다.
플레처 급 구축함 5척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구축함 1척으로 이루어진 제24구축전대의 공격은 3시 17분부터 시작되었는데 총 35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야마시로에 1발을 명중시켜 속력을 5노트로 떨어뜨렸고, 이미 어뢰에 맞아 대파된 일본구축함 아사구모에 1발을 추가로 명중시켜 격침했다.
일본측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야마시로의 속력이 5노트로 떨어진 이유가 어뢰에 맞아서가 아니라 후소가 이미 전열을 이탈한 사실을 모르고 있던 니시무라 제독이 후소가 뒤따라 올 수 있도록 야마시로의 속력을 늦추고 기다렸던 것이라고 한다.

순양함열의 좌측 그룹에 포함되어 있던 제56구축전대는 제24구축전대의 공격이 진행 중이던 오전 3시 35분에 공격명령을 받았다.
9척의 구축함을 보유한 제56구축전대는 일본함대 전방 6,000m 지점까지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 야마시로에 1발을 명중시켰다.
이때 구축함 Albert W. Grant 가 일본함대의 반격을 받아서 7발의 포탄을 얻어맞았고, 게다가 아군 경순양함에서 발사한 포탄 11발 등 총 18발의 포탄을 뒤집어쓰고 대파되었다.

미국의 구축함들에게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제1유격부대 지대가 계속 전진해오자 드디어 전함과 순양함들의 주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순양함들은 오전 3시 51분에 14,000 m 의 거리에서, 그리고 전함들은 3시53분에 웨스트버지니아를 필두로 20,000 m 의 거리에서 포격을 시작했다.
곧이어 3시55분에 테네시와 캘리포니아가 포격을 시작했다.
미국의 전함과 순양함들은 수리가오 해협을 빠져나오는 일본함대의 머리를 정확하게 누르는 T-자 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해전사상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전함대 전함의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올덴도프 제독의 전함 6척 중 3척(West Virginia, Tennessee, California)은 신형의 Mk8 사격통제레이더를 장비하고 있어서 비교적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던 반면 나머지 3척(Maryland, Missippi, Pensylvania)은 구형의 Mk3 사격통제레이더를 장비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사격을 하지 못했다.
즉 매릴랜드는 가장 먼저 포격을 시작한 웨스트버지니아의 포탄이 떨어지는 탄착군을 보고 포격을 시작했고, 미시시피는 사격중지 명령이 내리기 직전 단 한번의 일제포격을 실시했으며 전함열의 가장 뒤쪽에 있던 펜실베니아는 단 1발도 발사해 보지 못했다.
이날 미국의 전함들은 오전 3시 53분부터 4시 8분까지 15분간 벌어진 일방적인 포격전에서 웨스트버지니아가 16인치 철갑탄 93발, 테네시가 14인치 철갑탄 69발, 캘리포니아가 14인치 철갑탄 63발, 매릴랜드가 16인치 철갑탄 48발, 미시시피가 14인치 철갑탄 12발을 발사하여 합계 16인치 철갑탄 141발, 14인치 철갑탄 144발 등 합계 285발의 16인치 및 14인치 철갑탄을 발사했다.
이에 더하여 순양함들이 8인치와 6인치 주포 및 5인치 부포에서 4,000 여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구축함 그랜트가 피아간의 포격전 사이에 끼어 대파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올덴도프 제독은 아군의 구축함들이 일본함대에게서 떨어질 여유를 주기 위하여 오전 4시 9분에 포격중지명령을 내렸다.

야마시로는 가공할 포탄의 비를 얻어맞으면서도 다시 속력을 15노트로 올려서 14인치 주포로 반격을 가하면서 동쪽으로 항진하다가 다시 남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오전 4시 19분에 전복하여 침몰했다.
니시무라 제독을 비롯한 수많은 승무원들이 함과 운명을 함께 했다.

중순양함 모가미는 3시53분에 포격이 시작되자 동쪽으로 변침해서는 우박같이 쏟아지는 포탄에 의하여 피해를 입으면서도 3시56분부터 남서쪽에 있던 제24구축전대에게 포격을 가하여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린 제24구축전대가 5인치 포로 반격하기 시작하자, 4시 1분에는 어뢰를 발사한 뒤 남쪽으로 변침하고 연막을 피우면서 속력을 올려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미함대의 중순양함열에서 발사된 일제사격이 모가미의 사령탑에 명중하면서 함장 이하 지휘부가 몰살당했고, 속력은 8노트로 떨어졌으며 기관실에서 직접 함을 제어하여 겨우 항해가 가능한 실정이 되었다.
구축함 시구레만이 다행히 이 지옥같은 전장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제1유격부대 지대의 60km 후방에서 항진하고 있던 시마 제독의 제2유격부대가 수리가오 해협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25일 오전 3시였다.
수리가오 해협 입구를 지키고 있던 미국의 어뢰정들이 공격을 가하여 그중 PT-137 호가 경순양함 아부꾸마에 어뢰 1발을 명중시켰다.
기관실에 어뢰를 맞은 아부꾸마는 속력이 떨어지며 전열에서 이탈했다.

제2유격부대는 아부꾸마를 남겨두고 해협 안으로 진입하여 두 동강난 채 불타고 있는 후소의 잔해를 발견했다.
오후 4시 20분, 해협의 출구에 도착한 시마 제독의 기함 나치의 레이더가 8,000m 떨어진 거리에서  2척의 적함을 발견했다.
중순양함 나치와 아시가라는 동쪽으로 변침한 후에 4시 24분에 각각 8발씩 합계 16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이 어뢰들은 1발도 명중하지 않았으며 그중의 2발은 나중에 인근의 히부손 섬의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이 제2유격부대가 실시한 유일한 공격이었다.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엄청난 비극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시마 제독은 현명하게도 남쪽으로부터 레이테 만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포기하고 빨리 그 해역을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나치는 남쪽으로 변침한 직후 대파된 모가미의 진로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나치의 가누까 함장은 모가미가 완전히 동력을 상실하고 떠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모가미는 8노트의 속도로 천천히 항진하고 있었다.
오후 4시 30분, 모가미의 함수가 나치의 고물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나치는 속력이 18노트로 떨어졌으나 모가미는 거의 피해가 없었고, 게다가 손상 부위의 응급처치에 성공하여 18노트의 속도로 제2유격부대의 뒤를 따라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시마 제독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구축함 시구레에게도 합류를 명한 다음 서둘러서 남하했다.

오전 4시 32분, 올덴도프 제독은 기함인 중순양함 루이즈빌과 포틀랜드, 미네아폴리스, 경순양함 덴버, 컬럼비아를 이끌고 제56구축전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추적을 개시했다.
오전 5시 20분, 루이즈빌, 포틀랜드, 덴버는 모가미를 따라잡고 포격을 퍼부어서 10 - 20 발의 명중탄을 기록했으나 모가미가 기를 쓰고 계속 도망가자 올덴도프 제독은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고 북상했다.
대파된 채로 계속 도망가던 모가미는 오전 8시 30분에 엔진이 멎으면서 해상을 표류하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9시 2분에 제7함대의 호위항모군인 태피1에서 날아온 17대의 아벤저 뇌격기들에게 공격을 받아서 2발의 225kg 짜리 폭탄을 얻어맞았다.
결국 10시 47분에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12시 40분에 동료 구축함 아께보노로부터 산소어뢰 1발을 얻어맞은 모가미는 오후 1시 7분에 192명의 전사자와 함께 침몰했다.

 

(일본중순양함 모가미.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052003 )

 

수리가오 해협 남쪽에서는 어뢰정들이 도망가는 제2유격부대를 발견하고 5시 55분부터 6시 50분까지 공격을 가했으나 피해를 입히는데 실패했다.
올덴도프 제독은 오전 6시 43분에 경순양함 덴버와 컬럼비아를 3척의 구축함과 함께 다시 남쪽으로 파견하여 낙오된 일본함정들을 처리하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어뢰를 맞고 대파된 채 표류하고 있던 구축함 아사구모에 포격을 가하여 7시 21분에 격침했다.
수리가오 해협의 남쪽 입구에서 PT-137 에게 어뢰를 맞았던 아부꾸마는 임시 수리를 끝내고 일단 사지를 벗어나는데 성공했으나 다음 날인 26일에 일본군 기지에 돌아가기 위하여 술루 해를 건너다가 미육군제5항공대 소속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의 공습을 받아 폭탄 3발을 얻어맞고 오전 11시 42분에 격침되었다.  

이로서 해전 사상 최후의 전함대 전함의 포격전인 수리가오 해전이 끝났다.
이 해전에서 제7함대의 올덴도프 제독은 니시무라 제독의 제1유격부대 지대를 잘 준비된 덫 속으로 끌어들여 구축함 시구레 1척을 제외한 전 함대를 전멸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올덴도프 제독은 제2유격부대의 경순양함 아부꾸마까지 합하여 합계 전함 2척,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3척을 격침하면서 자신은 어뢰정 1척 격침, 구축함 1척 대파라는 가벼운 피해만을 입음으로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완승을 거두었다.
수리가오 해전에서 미함대는 전력 자체가 일본함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또한 정보력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그러한 유리한 면을 잘 살려서 실효성있는 작전을 구상하고, 또한 제대로 실시하여 실제 전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그런 측면에서 올덴도프 제독의 뛰어난 작전지도가 매우 돋보이는 해전이었다.
이로써 수리가오 해협을 통하여 남쪽으로부터 레이테 만에 진입하려던 일본군의 기도는 완전히 좌절되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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