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해전이 끝난 후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소에무 제독은 일본의 영역을 4개로 나누어서 결전을 감행할 것을 목표로 하는 ‘쇼’ 호 작전을 수립했다.
쇼1호작전은 필리핀, 쇼2호 작전은 규슈, 오끼나와, 대만, 쇼3호 작전은 혼슈 및 시코쿠, 쇼4호 작전은 홋카이도가 공격받을 때 발령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제38기동부대가 오끼나와와 대만을 공격해오자 쇼2호 작전을 발령하여 공격하였으나 막강한 전력을 지닌 미함대의 반격에 직면하여 600 여대를 상실했다.
필리핀 지역의 방어를 책임진 것은 야마시따 도모유끼 대장의 제14방면군으로서 그 중에서 스즈끼 쇼사꾸 중장이 지휘하는 제35군이 민다나오 섬을 중심으로 한 남부 필리핀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레이테 섬에는 마끼노 시로 중장이 지휘하는 제16사단이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10월 현재 제14방면군의 총 병력은 항공부대와 건설대를 합쳐 432,000 명이었으며 레이테 섬에는 약 20,000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제38기동부대를 제외한 제3함대의 거의 모든 함정을 넘겨받아 전투함 157척을 포함하여 738척의 대세력을 형성한 제7함대는 레이테에 상륙할 부대를 싣고 10월 11일부터 15일에 걸쳐 마누스 섬과 홀랜디어를 떠났다.
레이테 섬에 상륙할 부대는 발터 크루거 중장이 지휘하는 제6군이었다.
제6군은 다시 프랭클린 시버트 소장의 제10군단과 존 하지 소장의 제24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0군단은 제1기병사단과 제24보병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제24군단은 제7보병사단과 제96보병사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제32보병사단과 제77보병사단, 그리고 제96보병사단 소속의 제381연대전투단이 예비대로 대기했다.
제6군은 총6개 사단에 병력은 202,500 명에 달했다.
제7함대는 10월 17일에 목적지에 도달하여 레인저 대대가 레이테 만 입구에 있는 3개의 작은 섬들에 상륙하여 레이테 만의 입구를 열었고, 곧이어 소해정들이 레이테 만으로 들어가 항로를 개척했다.
소해정의 뒤를 따라서 구형전함 6척(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미시시피, 펜실베니아,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중순양함 4척, 경순양함 4척 및 구축함 26척으로 이루어진 제시 올덴도프 소장의 포격지원함대가 레이테 만 안으로 진입하여 함포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레이테 만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던 제38기동부대도 18일부터 루존 섬과 부근 도서에 맹폭을 가하여 22일까지 루존 섬의 비행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소형함정 6척과 함대급유선 2척, 수송선 13척을 격침했다.
(마닐라 만에 모여있는 일본 상선들. 1944년 10월 18일에 엔터프라이즈의 제20비행전대가 찍은 사진이다. 뒷쪽으로 넬슨 비행장에서 발생한 연기가 보인다. 이 사진에 보이는 선박들 중 6척이 이날 제20비행전대에 의하여 격침되거나 피해를 입었다.)
레이테 섬에 대한 상륙은 20일에 실시되어 제10군단은 대니얼 바비 소장의 지휘 하에 타클로반에, 제24군단은 테오도르 윌킨슨 중장의 지휘 하에 타클로반 남쪽의 둘락에 상륙했다.
해안선에서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소에무 대장은 레이테 만 입구의 섬들이 공격을 받자 즉시 쇼1호 작전을 발령했다.
당시 쇼1호 작전에 의하면 일본함대는 크게 3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선 싱가포르 남서쪽의 링가 정박지에 있던 구리따 다께오 중장의 제2함대가 주력이 되고 일본내해에 있던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의 제3함대가 제38기동부대를 북쪽으로 끌어내는 미끼 역할을 하기로 했다.
또한 대만항공전 기간인 10월 15일에 항공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미국함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 내해에서 출항했다가 아직도 멀쩡한 제38기동부대를 보고 놀라서 대만으로 도망와 있던 시마 기요히데 소장의 제5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을 통하여 남쪽에서 레이테 만에 돌입하기로 했다.
쇼1호 작전이 발동됨에 따라 구리따 제독의 제2함대는 제1유격부대, 오자와 제독의 제3함대는 본대, 시마 제독의 제5함대는 제2유격부대가 되었다.
구리따 제독이 도요다 제독으로부터 쇼1호 작전의 발동명령을 받은 것은 10월 17일 오전 9시 28분이었다.
18일에 영국의 극동함대가 링가 정박지 인근의 니코발 섬을 공격하자 보르네오 방면으로 옮겨간 제1유격부대는 그곳에서 함대를 2개로 나누었다.
즉 제2전함전단장 니시무라 쇼지 소장의 지휘 하에 전함 야마시로와 후소, 중순양함 모가미, 구축함 4척으로 지대를 형성하여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을 통하여 남쪽에서부터 레이테만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제1유격부대 본대는 전함 5척(야마또, 무사시, 나가또, 공고, 하루나), 중순양함 10척(아타고, 다까오, 죠까이, 마야, 묘고, 하구로, 구마노, 스즈야, 치꾸마, 도네), 경순양함 2척(노시로, 야하기) 구축함 15척으로 이루어져 시부얀 해를 통과하여 샌 배너디노 해협을 지나 사마르 섬을 돌아서 북쪽에서부터 레이테 만에 돌입하기로 했다.
보르네오 근해에서 최종적으로 급유를 마친 제1유격부대의 본대와 지대는 22일 오전 8시에 각각의 목표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한편 핼시 제독은 레이테 섬에 미군이 상륙한 20일이 되어도 일본함대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자 연합함대가 전투를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레이테 만의 교두보를 버려두고 일본함대가 있다고 알려진 남지나 해로 쳐들어가려고 하다가 니미츠 제독에게 제지를 당했다.
일본함대가 이미 저항을 포기했다고 판단한 핼시 제독은 일본함대를 쫓아서 남지나해로 가지 못하게 되자 마셜제도 상륙작전 이래 10개월 이상 상륙 한번 못해보고 쉴새없이 전투를 지속해온 제38기동부대 장병들에게 울리시로 가서 보급과 급유를 하면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할 생각으로 22일 오후 10시 30분에 맥케인 제독의 제38.1전단에게 울리시로 가라고 명령했다.
23일에는 데이비슨 제독의 38.4전단이 뒤따를 예정이었으며 이 두 전단이 돌아오면 제38.2전단과 제38.3전단이 교대해서 울리시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정규항공모함 3척과 경항공모함 2척으로 이루어져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제38.1전단이 가장 앞장선 것이 문제였다.
347대의 함재기를 보유한 제38.1전단이 빠짐으로서 제38기동부대는 전체 함재기 1047대 중 1/3이 없는 상태로 레이테 해전을 치러야만 했다.
한편 22일 오전 8시에 보르네오를 출발한 제1유격부대 주대는 23일 아침에 미국잠수함 다터와 데이스에게 공격을 받았다.
일본연합함대의 출동에 대비하여 이 해역에 배치된 12척의 미국잠수함 중 팔라완 수로의 경비를 맡은 두 척의 잠수함은 23일 새벽 1시 16분에 일본함대를 레이더로 탐지했다.
즉시 상부에 접촉보고를 발한 두 척의 잠수함은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하여 밤새 기동했다.
당시 일본함대는 대잠작전에는 불리한 5열 종진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터와 데이스는 어렵지 않게 유리한 공격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맥클린톡 중령이 지휘하는 다터는 아침 6시 9분에 잠항하여 6시 30분에 전방 어뢰발사관에서 6발을 발사했고, 곧 선회하여 후방 어뢰발사관에서 4발을 발사했다.
다터가 발사한 어뢰 중 4발이 구리따 제독의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에 명중했고, 2발은 중순양함 다까오에 맞았다.
아타고는 피격 23분만에 침몰했는데 구리따 제독은 얼마나 급했는지 구명정에 옮겨탈 시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서 구명정까지 헤엄쳐가야 했다.
구리따 제독은 사령기를 전함 야마또에 옮겨 달았다.
(일본중순양함 아타고.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6046434 )
어뢰 2발에 명중당한 다까오는 다행히 침몰은 면했으나 동력이 끊어져서 해상을 표류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6시 57분에 다시 중순양함 마야에 거대한 물기둥이 연속적으로 솟아오르면서 엄청난 폭음이 해상을 뒤흔들었다.
미잠수함 데이스가 발사한 어뢰 중 4발이 마야에 명중한 것어었다.
탄약고를 명중당한 마야는 함체가 반으로 꺾이면서 불과 8분 만에 침몰했다.
다터와 데이스는 동력을 잃고 해상을 떠도는 다까오를 격침시키려고 23일 하루 동안 내내 그 해역을 떠나지 않고 기회를 엿보았으나 일본구축함들의 효과적인 방어로 공격기회를 잡는데 실패했고 그동안 응급수리를 마친 다까오는 오후 늦게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며 6노트의 느릿느릿한 속력으로 회항하기 시작했다.
다터와 데이스는 밤에 공격을 가할 예정으로 다까오를 뒤쫓기 시작했으나 24일 새벽 0시 5분에 다터가 모래톱에 좌초하고 말았다.
맥클린톡 함장은 함을 포기하기로 하고 비밀서류를 소각한 뒤 데이스를 불러 승무원들을 모두 옮겨싣고 포격을 가하여 다터를 처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데이스는 더 이상의 추격을 단념하고 다터의 승무원들을 싣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프레맨틀 항으로 귀환했다.
아침이 되자 일본구축함이 다터를 발견하고 내부를 수색하여 레이더와 엔진 시스템의 청사진 등 몇 가지의 도면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물품들을 챙겼다.
비록 암호책 등 중요기밀서류나 중요한 물품들은 소각하거나 파기했지만 원래 이런 도면들이나 물품들도 소각하든지 아니면 파기했어야 할 것들이었다.
10월 23일 저녁에 필리핀 동쪽에서 급유를 마친 제38기동부대의 3개 전단은 밤새 동진하여 필리핀 근해에 도달했다.
제38.3전단은 루존 앞바다에, 제38.2전단은 동남쪽으로 샌배너디노 앞바다에, 제38.4전단은 다시 동남쪽의 레이테 앞바다에 자리잡았다.
다터가 보고한 일본함대를 찾기 위하여 24일 새벽부터 정찰기를 내보낸 제38기동부대는 곧 레이테 만을 향하여 달려오는 2개의 일본함대를 발견했다.
핼시 제독은 그 중에서 전함 5척을 보유하고 샌배너디노 해협을 향하여 시부얀 해를 항진 중인 제1유격부대 주대를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루존 앞바다에 있던 셔먼 소장의 제38.3전단과 레이테 만에 있던 데이비슨 소장의 제38.4전단에게 샌배너디노 해협에 있던 보간 소장의 제38.2전단에게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울리시를 향해 필리핀 동방 1,100km 해상을 항진하고 있던 맥케인 제독의 제38.1전단에게 울리시 행을 중단하고 현재 위치 주변에서 급유를 받은 후에 다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제38.4전단의 함재기들이 제1유격부대 지대에게 한번의 공격을 가한 다음에 보간 소장의 제38.2전단에 합류하기 위하여 북상하면서 제1유격부대 지대가 제38.4전단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게 되자 제7함대 사령관 킨케이드 중장은 구식전함 중심의 포격지원함대를 이끌고 있던 올덴도프 소장에게 수리가오 해협에 나아가 제1유격부대 지대를 저지하도록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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