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지사부로 제독이 지휘하는 본대가 구레 군항을 출항한 것은 10월 20일이었다.
(오자와 지사부로 제독.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45537439 )
정규항공모함 1척(즈이가꾸), 경항공모함 3척(즈이호, 지또세, 지요다), 항공전함 2척(이세, 히우가), 경순양함 3척(오요도, 다마, 이스즈),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진 본대의 역할은 그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제1유격부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제38기동부대를 북쪽으로 유인하여 제1유격부대가 레이테 만에 돌입할 수 있도록 미끼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보유한 함재기도 제로기 80대, 케이트 뇌격기 4대, 질 뇌격기 25대, 주디 급강하폭격기 7대 등 총 116 대에 지나지 않았다.
24일 아침에 루손 섬 북부해상에 도달한 오자와 함대는 10 대의 정찰기를 내보내어 제38.3전단을 발견했고, 11시 45분에 대규모의 공격대를 출격시켰으나 항공기의 정비 상황이 불량하여 예정된 76대 중 57 대만이 출격에 성공했다.
이들은 제38.3전단의 반격에 직면하여 40여대가 격추되고 10여대는 필리핀의 기지로 도망갔으며 목표를 찾지 못한 3대는 항모로 돌아왔다.
이들이 기록한 전과는 지근탄 1발에 불과했다.
이 공격의 목적은 제38기동부대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었으나 정작 공격을 당한 제38.3전단은 이 함재기들이 필리핀의 지상기지에서 날아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제38기동부대는 일본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출현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찰기를 내보내어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24일 오후 4시 40분에 오자와 함대를 발견했다.
핼시 제독은 일본의 항공모함 기동부대가 발견되자 즉시 제38기동부대의 3개 전단을 이끌고 북상했다.
(윌리엄 헐지 제독.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51213763 )
핼시 제독은 이때 샌배너디노 해협을 감시하기 위하여 구축함 한 척도 남겨놓지 않았다.
오후 8시에 서쪽으로 후퇴하던 제1유격부대가 다시 반전했으며 자정쯤에는 샌배너디노 해협을 통과할 것이라는 정찰기의 보고가 들어왔으나 핼시 제독은 무시했다.
사실 핼시 제독은 24일 오후 4시에 6척의 고속전함 전부와 중순양함 2척(위치타, 뉴올리언스), 경순양함 3척(빌록시, 빈센스, 마이애미), 구축함 12척으로 제34기동부대를 편성했다.
핼시 제독은 이 내용을 니미츠 제독에게 보고했는데 당시 핼시 제독은 제7함대 사령관인 킨케이드 제독에게는 이런 내용을 알리지 않았으나 킨케이드 제독은 무전감청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핼시 제독이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오자와 함대를 공격하러 3개 전단을 이끌고 북상한다는 무전을 보냈을 때 진주만의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제7함대의 킨케이드 제독은 북상하는 것은 항공모함 전단들이고 새로 편성된 고속전함 중심의 제34기동부대는 당연히 샌배너디노 해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핼시 제독은 제34기동부대를 항공모함 전단들의 앞쪽에 배치하여 공습으로 약화시킨 오자와 함대를 추격하여 전멸시키는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대신 핼시 제독은 오후 8시 24분에 킨케이드 제독에게 전문을 보내어 제1유격부대의 상황과 침로, 속력 등을 알려 주었다.
핼시 제독은 킨케이드 제독이 제34기동부대에 대하여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이 전문을 받으면 당연히 제1유격부대의 처리는 제7함대에게 맡긴
다는 자신의 의중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34기동부대 사령관이 된 리 제독은 제1유격부대를 남겨둔 채 샌배너디노 해협을 비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2번씩이나 핼시 제독에게 제34기동부대에 공중엄호를 담당할 2척의 경항공모함을 붙여서 샌배너디노 해협에 잔류시킬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당했다.
진주만의 태평양함대 사령부에서는 니미츠 제독 이하 대부분의 참모들이 핼시의 북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나 스프루언스 제독만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핼시 제독이 오자와 함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자 집게손가락으로 샌배너디노 해협의 출구를 가리키며
“내가 저기에 있다면 나는 함대를 이곳에다 둘 거야.”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태평양함대의 대다수의 참모들, 특히 항공관계자들은 그때까지도 스프루언스 제독이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함대를 격멸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미처 제독도 필리핀 해전에 대한 전투보고서에서 요격에만 전념했던 6월 19일의 전투에 대하여 스프루언스 제독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 측의 기록을 들여다 본 결과는 필리핀 해전 당시 스프루언스 제독의 선택이 최선이었으며 미처 제독은 비록 고속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사령관으로서는 흠잡을 데 없는 인물이긴 하나 전투의 전체적인 국면을 파악하는 안목과 판단력에서는 자신의 직속상관인 스프루언스 제독이나 일본 측의 맞수인 오자와 제독에 비하여 한 수 아래라는 사실을 증명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번의 레이테 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미처 제독은 직속상관인 핼시 제독이 오자와 제독의 꾐에 빠져 그만 제1유격부대에게 레이테 만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동안 샌배너디노 해협을 지켜야한다는 조언을 하지 못했다.
스프루언스 제독이었다면 그 자신의 말대로 오자와 함대는 무시하고 샌배너디노 해협을 지켰을 것이고 그랬다면 리 제독은 24일 자정쯤에 6척의 고속전함 전부를 포함하여 제38기동부대 호위함 세력의 상당부분을 포함하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샌배너디노 해협을 빠져나오는 제1유격부대를 공격하여 아마도 거의 전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었다.
레이테 해전에서 오자와 함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제1유격부대에게 샌배너디노 해협을 비워준 일은 핼시 제독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로서 이로 인하여 하마터면 미군의 레이테 상륙작전 전체가 위험에 빠질 뻔 했다.
사실 핼시 제독의 경력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역시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시절로서 핼시 제독에 대한 유명한 일화들은 대부분 이때의 이야기들이다.
제3함대 사령관으로서의 핼시 제독은 전투현장에서 몇 번이나 컴퓨터같이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준 스프루언스 제독과 비교하여 확실히 기량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전쟁 전체의 흐름을 보는 전략적 안목이 뛰어나고 유능한 부하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한 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부하들의 능력과 충성심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핼시 제독의 스타일은 당시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전투현장에서의 재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전투함대의 사령관보다는 오히려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처럼 넓은 지역을 관할하면서 비교적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실시해야하는 지역 사령관 임무에 적합했다.
사견이지만 만일 핼시 제독이 태평양함대 사령관직을 맡았다면 니미츠 제독 못지않은 훌륭한 사령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4일 오후 4시경 구리따 제독으로부터 제1유격부대가 반전했다는 전문을 받은 오자와 제독은 즉시 반전하여 북상했으나 저녁 8시에 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제독으로부터
“쇼호 작전에 참가한 전 부대는 공격을 지속하라.”
는 명령을 받고 다시 반전하여 남하했다.
25일 새벽에 엔가노 곶 부근에 도달한 오자와 함대는 쓸데없는 희생을 피하기 위하여 호위를 위한 제로기 19대를 제외한 잔여 함재기 전부를 필리핀의 일본군 항공기지로 보냈다.
오자와 함대를 공격권 내에 포착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북상해 온 제38기동부대는 새벽부터 정찰기를 내보내어 25일 오전 7시 30분에 180km 거리에서 오자와 부대를 발견했다.
핼시 제독은 즉시 헬캣 60대, 헬다이버 65대, 아벤저 55대로 구성된 제1차 공격대를 출격시켰다.
(F6F 헬캣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69351104 )
그와 동시에 핼시 제독은 자신의 기함인 고속전함 뉴저지에 승좌하여 제34기동부대를 이끌고 일본함대를 타격하기 위하여 항공모함 전단의 앞쪽으로 나섰다.
8시 15분에 오자와 함대의 상공에 도달한 제1차 공격대는 19대의 제로기로 이루어진 허술한 방어막을 가볍게 일축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곧 일본함정들에 폭탄과 어뢰가 명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경항공모함 지또세가 7발의 폭탄을 맞고 격침되었으며 구축함 아키쓰키도 폭탄에 명중당해 폭발을 일으키면서 함체가 반으로 꺾여 침몰했다.
정규항공모함 즈이가꾸는 어뢰1발과 폭탄 5발을 맞고 속력이 23노트로 떨어지면서 통신장치가 파괴되어 오자와 제독은 사령기를 경순양함 오요도로 옮겨 달았다.
경항공모함 즈이호도 폭탄 1발을 맞았다.
오전 10시에는 헬캣 14대, 헬다이버 6대, 아벤저 16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가 도착했다.
이번 공격에서는 경항공함 지요다가 4발의 폭탄을 얻어맞았고, 경순양함 다마도 1발의 폭탄을 얻어맞고 대파되었다.
그때 남쪽의 킨케이드 제독으로부터 긴급한 구원요청이 핼시 제독에게 도달했다.
밤새 샌배너디노 해협을 돌파한 제1유격부대가 제7함대가 보유한 호위항공모함 전단 중의 하나인 태피3을 공격한 것이었다.
핼시 제독은 급유를 마치고 급히 돌아오고 있던 맥케인 제독의 제38.1전단에게 즉시 레이테로 달려가서 태피3을 도우라고 명령하고 자신은 계속 오자와 함대에게 접근해 갔다.
하지만 킨케이드 제독의 구조요청이 거듭되고 마침내 진주만의 니미츠 제독까지 개입하게 되자 오자와 함대의 남쪽 70km 까지 접근했던 핼시 제독은 오전 11시에 할 수 없이 제34기동부대를 이끌고 남하했다.
남하하다가 아직도 북상 중인 항공모함 전단을 만난 핼시 제독은 항공엄호를 위하여 보간 제독의 제38.2전단을 차출한 후 제38.3전단과 제38.4전단은 오자와 함대를 계속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핼시 제독은 제34기동부대 대신 듀보스 소장의 지휘 하에 순양함 4척과 구축함 12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북쪽으로 파견하여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함정들을 처리하라고 명령했다.
미처 제독은 정오 직후에 제38.3전단과 제38.4전단에서 160 대로 이루어진 마지막 제3차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오후 1시 5분에 오자와 함대의 상공에 도달한 제3차 공격대는 항공모함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제1차 공습에서 어뢰 1발과 폭탄 5발을 맞았던 즈이가꾸는 이번 공습에서 어뢰 6발, 폭탄 4발을 추가로 얻어맞고, 오후 2시 15분에 격침되었다.
제1차 공습에서 폭탄 1발을 맞았던 경항공모함 즈이호도 어뢰 2발과 폭탄 5발을 추가로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일본 항공모함 즈이가쿠.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170694 )
오후 4시 20분경에 일본함대에 접근한 듀보스 제독의 함대는 제2차 공습에서 폭탄 4발을 맞고 대파되어 우현으로 13도 기울어진 채 해상을 표류하고 있던 경항공모함 지요다를 4시 24분부터 공격하여 30분 만인 4시 55분에 격침했다.
듀보스 제독의 함대는 또한 즈이가꾸와 지요다의 승무원들을 구조하던 경순양함 이스즈와 구축함 와카즈키와 하쓰즈키를 공격하여 그 중 하쓰즈키에게 1발의 어뢰를 명중시키고 집중포격을 가하여 저녁 9시에 격침했다.
한편 미잠수함 SS-368 Jallao 는 제1차 공습에서 폭탄 1발을 맞고 대파되었던 경순양함 다마를 발견하고 접근한 후 7발의 어뢰를 발사, 그 중의 3발을 명중시켜 오후 11시 5분에 격침했다.
항공모함을 모두 잃어버린 오자와 제독이 살아남은 항공전함 이세와 히우가, 경순양함 오요도와 이스즈, 구축함 5척을 이끌고 일본내해로 퇴각함으로써 엔가노 해전이 끝났다.
오자와 제독의 본대는 이 해전에서 정규항공모함 1척, 경항공모함 3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2척을 상실함으로써 참패를 당했으며, 일본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는 이 엔가노 해전에서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비록 엄청난 댓가를 치렀지만, 어쨌든 오자와 제독은 작전목표였던 제38기동부대의 유인에 성공하여 제1유격부대에게 레이테로의 길을 열어주었다.
사실상 함대를 이끌고 레이테 해전에 참가한 일본 측의 제독 중에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사람은 오자와 제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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