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대체 전쟁공채가 뭐길래..

 

(미국 정부의 전쟁공채를 사세요..지금 당장~~)

 

제3편에서 미국정부는 과달카날의 영웅 존 바실론 하사에게 군인 최고의 명예인 의회명예훈장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풀러 중령은 바실론 하사에게 이제 미본토로 돌아가서 전쟁공채를 팔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자네는 명예훈장을 탔으니 우리랑 같이 다니는 것 보다는 미본토로 돌아가서 앵벌이..는 아니고, 전쟁공채를 팔아야 하네. 자네가 전쟁공채를 많이 팔면 팔수록 전우들의 식판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올라온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라네..블라블라블라..")

 

이리하여 바실론 하사는 미본토로 돌아와서 전쟁공채를 팔러 전 미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헐리우드의 여배우와 사진도 찍고)

 

(팔자에 없던 라디오 성우 노릇까지 하게 되지요.)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 에도 보면 미군은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은 '영웅' 들을 이용하여 전쟁공채 매각에 열을 올립니다.

 

그럼 당시 미국은 왜 이렇게 전쟁공채 매각에 혈안이 되었을까요?

도대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전쟁공채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전쟁을 하려면 돈이 듭니다.

크고  웅장한 항공모함에서부터 병사들이 쓰는 칫솔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에는 돈이 들지요.

 

(유진이 쓰는 이 칫솔 하나도 엄연히 미정부가 지불한 돈으로 마련한 것이란 말씀..)

 

이러한 군수품의 최종 수요자는 결국 정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개인이 항공모함을 끌고 다니지는 못하니까요..

따라서 전쟁이 나면 정부의 군수분야 지출이 엄청나게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정부가 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가장 간단한 것이 세금을 늘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증세는 국민의 반발을 가져옵니다.

이 세상에서 세금 늘어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납세자를 만날 확률이나 트리플악셀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고릴라를 만날 확률이나 비슷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정권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지요.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증세를 단행하긴 했지만 소득세율을 올리지는 않았고, 다만 소득세의 5% 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승리세' 라는 이름으로 부과하는데 그쳤습니다.

대신 소득세가 면제되는 기준을 낮추고(즉 이전에는 소득세가 면제되던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얄짤없이 소득세를 걷고), 노동자에게 소득세를 미리 공제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원천징수제를 도입하여 소득세 탈루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세수를 증대시켰습니다.

미국이 이미 남북전쟁 때도 실시했던 이 원천징수제는 이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임금노동자의 소득세 징수 방법으로 정착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 원천징수제를 실시하고 있지요.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세수를 늘려 늘어난 정부 지출의 약 40% 를 충당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증세를 단행해도 돈이 모자랍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정부에게 통화발행권이 있으니 정 급하면 돈을 찍어내면 됩니다.

실제로 전쟁시에 많은 국가가 이 방법을 씁니다.

그런데 이 방식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인플레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전쟁통인데 인플레가 뭔 대수냐고요?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발발했을 당시 애초에 군사력에서 훨씬 우세했던 중국국민당의 장제스가 결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에게 정권을 빼앗긴 이유를 설명한 말 중에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장제스는 마오쩌둥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에 패하여 정권을 빼앗겼다."

 

는 말은 비록 전쟁같은 난리통에서도 극심한 인플레가 정권의 운명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입니다.

 

인플레를 막으려면 공급량을 늘리거나 통화량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전쟁시에는 국민이 원하는 재화나 용역의 공급은 줄어들 수 밖에 없지요.

국민들은 자동차와 스테이크, 스타킹을 원하지 항공모함, 전투기, 전차를 원하지는 않으니까요..

 

미국은 전차와 군용 차량 생산을 위하여 1942년부터 민수용 자동차 생산을 금지시켰습니다.

1920년대에 이미 60% 의 가정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한해 500 만대씩 차를 만들던 나라에서 1942년부터 종전시까지 만들어 낸 민수용 자동차가 수십대에 불과합니다.

쇠고기 소비도 배급제로 엄격하게 규제되어서 규제를 받지 않는 말고기, 토끼고기에 비버고기까지 식당에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개나 쥐를 먹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이 상태에서 정부가 지폐를 마구 찍어내면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이 인플레가 발생합니다.

 

정부에게 남은 대안은?

그렇지요..전쟁공채입니다.

만일 시중에 100 달러의 통화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부가 전쟁을 위하여 100 달러를 더 찍어내어서 시중에 풀어버리면 시중의 통화량은 200 달러가 되면서 소비재 공급감소와 맞물려 엄청난 인플레를 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이나 전쟁공채로 돈을 확보하여 가격을 지불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만일 정부가 시중의 100달러에서 30달러의 세금을 더 거두면, 군수품 가격으로 100달러를 지불해도 시중의 통화량은 200 달러가 아닌 170달러가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만일 정부가 전쟁공채를 많이 팔면 팔수록 시중의 통화량을 줄이면서 인플레 압력을 줄이게 됩니다.

만일 정부가 30달러의 증세에 더하여 전쟁공채를 70달러어치 팔면, 정부는 시중의 통화량은 전혀 늘리지 않으면서도 100 달러어치의 군수물자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미국이  전쟁공채 판매에 그렇게 열을 올리던 이유입니다.

이러한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실제로 미국은 소비재 공급이 크게 감소하고, 정부 지출이 전쟁 기간 동안인 4년간 3,300억 달러나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도 증세와 전쟁공채 판매, 그리고 배급제의 교묘한 조합으로 4년간 소비자 물가 인상율을 9%로 억제할 수 있었지요.

 

전쟁공채의 좋은 점은 강제할당식이 아닌 자율구입식으로 판매하면서 제대로 된 선전기술과 결합시켰을 경우 경우 세금과는 달리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전쟁 전에 이미 영화나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가 크게 발달했던 미국은 이런 방면에서 매우 뛰어난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쟁공채 판매를 위하여 전쟁영웅들과 헐리우드의 1급 여배우들을 각 5명 정도씩 한 팀으로 묶어서 미 전역을 순회하면서 공채를 팔았습니다.

공채 판매 행사에서는 공들여 준비한 무대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영웅들이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싸웠고, 자신의 동료들이 지금도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상황에서 힘껏 싸우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청중들에게 자신들도 그들을 도울 일이 없을까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는 그 영웅이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전쟁공채를 사 주신다면 여러분들은 지금도 싸움터에서 생명을 걸고 힘들게 싸우고 있는 제 전우들에게 저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공채 사세요..공채..

 

미언론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전쟁영웅들을 최대한 대중스타로 키울 필요가 있었지만 많은 경우 전쟁영웅들은 그런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전쟁공채 판매는 엄청난 성공작이었습니다.

4년 동안 미국성인 8천만명이 합계 1,875억 달러의 공채를 매입했습니다.

1인당 매년 거의 600 달러 가까이 매입한 셈으로 1942년에서 45년까지 4년간 미국의 1인당 GDP 의 평균이 1,460 달러 정도이니, 미국성인 거의 모두가 1인당 GDP 의 40% 에 해당하는 전쟁공채를 매년 구입한 셈입니다.

이걸 우리나라의 2016년 GDP 를 가지고 환산해 보면 4년간 매년 1200 만원, 매달 100만원씩 꾸준히 전쟁공채를 매입한 것과 맞먹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인 남녀 대부분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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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렉키 일병의 현금 보유량?

 

돈이 많으면 연애하기 쉽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실이지요.

퍼시픽에서도 과달카날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호주로 들어온 렉키 일병은 매력적인 호주 아가씨 스텔라 양과 애틋한(?) 사랑을 합니다.

물론 원작인 렉키의 책과 비교하면 거의 픽션 수준이지만..ㅋㅋ..

 

드라마에서는(그리고 원작에서도) 크게 드러내 놓고 강조하지는 않지만 언뜻언뜻 렉키 일병이 돈을 좀 가진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제3편에서 렉키 일병으로부터 실크 스타킹을 선물받고 기뻐하는 스텔라)

 

당시 실크는 상당히 귀중한 옷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태평양전쟁 이전에 세계 최대의 실크 수출국이 일본이었으며, 당시 실크는 낙하산의 재료였기 때문에 호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후방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옷감이었지요.

이러한 실크 품귀현상 속에서 1938년에 듀퐁 사가 개발한 나일론이 실크 대용품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 나일론도 낙하산 등의 재료로 쓰이면서 생산되는 족족 군대에 납품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스타킹의 품귀현상에 시달리면서 전쟁시기를 넘겼습니다.

아무튼 렉키 일병이 암시장에서 이런 귀한 실크 스타킹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렉키 일병에게 돈이 좀~~ 있었다는 뜻이지요.

 

(제3편에서 귀한 양다리를 통째로 구해와서 바베큐를 만들면서 일거에 스텔라 어머니로부터 대량 득점 중인 렉키 일병)

 

양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호주군 전투식량의 육류가 주로 쇠고기와 양고기였기 때문에 호주 정부는 쇠고기와 양고기의 유통을 엄격하게 규제했고, 후방에서 이런 양다리를 통째로 구한다는 것은 암시장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고 사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도 못 구하는 양다리를 어디서 통째로 구했냐는 스텔라 어머니의 질문에 럭키스트라이크 몇 갑과 미국인의 창의성을 발휘했다고 답하지만 당시 비행기까지 만들던 호주가 무슨 원주민 동네도 아니고..

 

그럼 당시 렉키 일병이 가지고 있던 돈은 얼마였고,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얼마쯤 될까요?

 

로버트 렉키의 원작에 보면 렉키가 진주만 기습 직후 해병대에 입대했을 당시 해병대 이병의 월급이 21달러, 일병은 26달러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1942년 7월 1일에 미군의 월급이 대폭 인상되면서 이병은 50달러, 일병은 52.5달러가 됩니다.

게다가 해외파병시에는 20% 의 가산금이 나왔으니 과달카날에서 렉키 일병의 월급은 63달러가 됩니다.

과달카날에서는 월급이 필요가 없었으니 호주에 도착한 뒤 6개월치 월급을 한꺼번에 호주 파운드화로 받았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멜버른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렉키 일병의 호주머니에는 378달러에 해당하는 호주 파운드화가 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당시 378달러면 호주에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었을까요?

당시 호주 사람(=스텔라나 그 어머니)이 378달러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정도의 돈일까요?

 

1942년의 미국 1인당 GDP 는 1201 달러입니다.

따라서 378달러는 미국 1인당 GDP 의 약 31% 가량 됩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에 파견된 미군병사들의 월급은 같은 계급의 영국병사의 6배였다고 합니다.

저는 편의상 호주와 영국 사람의 경제력이 비슷하다고 보고(1950년의 1인당 GDP 가 비슷하더군요..1942년의 영국이나 호주 GDP 는 찾지 못함..) 병사들의 월급 차이가 6배니까 일반 국민이 느끼는 경제력 차이도 6배라고

 

"제 마음대로!!!"

 

추정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당시 378달러는 호주 1인당 GDP 의 186% 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로 치면?

2016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는 27,539달러더군요.

환율을 1,090 원으로 놓고 계산해보면 3000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3000 만원의 186% 면 5580 만원이 되는군요.

당시 렉키 일병이 22살이니까 22살짜리 해병대원이 5600 만원 가까운 현금을 들고 있었으면 돈이 적은 편은 아니었군요.

월급도 900만원이 넘고..

 

제가 계산 과정에서 영국(=호주)의 1인당 GDP 를 비교하지 않고 병사들의 월급 차이를 계산의 근거로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당시 호주 사람의 느낌을 더 가깝게 반영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간접적으로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1942년 영국의 1인당 GDP 는 약 970 달러로 미국의 1,201달러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록이나 증언에 나타나는 미군과 영국 및 호주 현지 주민들과의 경제력 격차는 미국민들과 영국 및 호주국민들의 실제로 사용가능한 가처분 소득이 큰 차이가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퍼시픽의 또다른 원작인 유진 슬레지의 책에 보면 유진은 월급을 60달러 받았다고 나옵니다.

유진은 렉키보다 1년 이상 늦게 해병대에 들어갔으니 처음부터 인상된 월급을 받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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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달카날 전투의 전개 과정

 

퍼시픽 제1편과 제2편은 1942년 8월 초부터 1943년 2월 초까지 6개월 간 남태평양의 솔로몬 제도에 있는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졌던 과달카날 전투를 그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짧은 시간에 복잡다단한 과달카날 전투를 다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과달카날 전투의 전개 과정을 잘 모르면 드라마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1편에서 일본해군이 사보 섬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미해군을 다 쫓아내고 과달카날 섬에는 해병대만 고립되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과달카날 섬에 육군부대도 상륙하고, 제2편 마지막에는 수송선이 와서 렉키 일행을 태우고 호주로 가지요.

그래서 과달카날 전투의 전개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942년 8월 7일 : 미해병제1사단이 과달카날에 상륙하여 다음날인 8일에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탈취하여 헨더슨 비행장이라고 명명합니다.

당시 과달카날에 상륙한 병력은 총 10,900 명으로 제5연대와 제1연대가 주축입니다.(제1편의 주인공 로버트 렉키 일병은 제1연대 소속)

 

8월 9일 : 과달카날 앞바다에서 사보 섬 해전이 벌어져서 미해군의 호위함대가 사실상 전멸하고, 다음날 수송선단이 철수합니다.

따라서 해병제1사단은 1달 치의 보급품과 함께 과달카날 섬에 고립됩니다.

이때부터 8월 20일에 활주로가 완성될 때까지 일본군은 대낮에 순양함을 보내어 해병대의 야포 사정거리 바깥에서 교두보를 포격하고, 폭격기들이 매일같이 호위도 없이 날아와서 건설 중인 활주로를 폭격했습니다.

 

8월 20일 : 활주로가 완성되어 해병대의 와일드캣 전투기 19대와 돈틀리스 급강하폭격기 12대가 처음으로 배치됩니다.

이후로 일본함정은 대낮에 과달카날 부근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일본폭격기들도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됩니다.

 

8월 21일 : 916명으로 이루어진 일본제28연대 제2대대를 주축으로 한 이치기 지대가 21일 새벽에 일루 강 하구에서 제1편의 주인공인 렉키 일병이 포함된 제1연대 제2대대의 방어선에 무모한 공격을 가했다가 거의 전멸당합니다.

 

8월 24-25일 : 드라마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중요한 해전인 동부솔로몬 해전이 벌어집니다.

사보 섬 해전으로 잃어버린 과달카날 근해의 제해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미해군은 정규항모 3척을 보내어 경항모 1척과 정규항모 2척을 보유한 일본해군과 치열한 함대항공전을 벌입니다.

여기서 미해군은 일본의 경항모 1척을 격침하면서 근소한 판정승을 거두고, 완전히 상실했던 과달카날 근해의 제해권을 어느 정도 회복합니다.

 

9월 13일 : 역시 극에는 나오지 않지만 과달카날 전역에서 테나루 강 전투에 이어 중요한 2번째 지상전이자 테나루 강 전투보다 훨씬 큰 규모의 피투성이 능선 전투가 벌어집니다. 

미해병대는 이 피투성이 능선 전투에 참가한 일본제35보병여단의 공격을 과달카날 전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병대는 이틀 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역시 일본군의 공격을 물리치는데 성공합니다.

 

9월 18일 : 제1해병사단의 3번째 연대인 제7연대가 상륙합니다.

제2편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존 바실론 병장이 제7연대 제1대대의 화기중대인 D 중대 기관총소대 소속으로 휘하에 기관총 2정을 보유한 1개 섹션(Section, 분대 2개가 합쳐진 것으로 보통 반소대라고 번역합니다.)을 지휘합니다.

 

제7연대 제1대대의 대대장은 체스티 풀러 중령입니다.

제1편에서 브리핑하던 분이지요.

참고로 이 풀러 중령은 소위 시절부터 그 뛰어난 능력으로 당시 해군 대령이던 니미츠 제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유능한 지휘관으로 과달카날 전투 당시 제1사단장이었던 반데그리프트 장군에 이어 미해병대 역사상 슈퍼스타 넘버2 쯤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1편에서 증원부대로 상륙하여 먼저 상륙한 제1연대 병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도쿄" 라고 대답하고 계시는 씩씩한 제7연대 제1대대장 풀러 중령님)

 

10월 13일 : 최초의 육군부대인 아메리칼 사단 휘하의 제164연대가 과달카날에 상륙합니다.

해병대원들이 제164연대로부터 보급 면에서 큰 도움(?)을 받지요.

 

(제2편에서 육군제164연대로부터 보급 면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해병대원들)

 

10월 14일 - 일본전함 공고와 하루나가 4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과달카날 앞바다에 나타나서 새벽 1시부터 2시 20분까지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했습니다.

14인치 주포 각 8문을 보유한 전함 2척은 918발의 포탄을 활주로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차근차근 조직적으로 퍼부어서 미군이 보유한 항공기의 절반 이상과 수많은 항공유, 탄약 등을 파괴했습니다.

이 포격으로 미군 41명이 전사하고, 100 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2편에서 일본전함의 14인치 주포탄에 직격당해 전사한 미군들의 모습)

 

10월 23-25일 : 일본군의 제3차 공격이 실시됩니다.

제2편의 메인 전투 씬이지요.

드라마에서 나온 전투 장면은 25일 새벽 1시 30분부터 존 바실론 병장이 포함된 제7연대 제1대대가 지키던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제29연대와의 공방전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2편에서 기관총을 손으로 들고 일본군을 향하여 난사하는 존 바실론 병장. 이 전투에서 세운 공훈으로 바실론 병장은 명예훈장을 받게 됩니다.)

 

11월 15일 :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과달카날 전투 기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인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집니다.

미해군은 태평양 전쟁에서는 드물게 전함 대 전함의 포격전으로 진행된 이 야간 해전에서 일본전함 기리시마를 침몰시키면서 승리하여 과달카날 주변의 제해권을 완전하게 확립합니다.

 

12월 9일 : 과달카날 섬의 지휘권이 해병제1사단장 반데그리프트 해병소장에게서 아메리칼 사단장인 패치 소장에게 넘어갑니다.

동시에 해병제1사단은 호주로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12월 9일에 제5연대가 철수했고, 렉키 일병이 포함된 제1연대는 12월 14일에 철수했습니다. 

존 바실론 병장이 포함된 제7연대는 마지막으로 철수했습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해병제1사단은 전사 및 실종 681명, 부상 1,278명의 인명피해를 입었고, 렉키 일병을 비롯한 8,580 명이 말라리아에 걸렸습니다.

 

(제2편에서 철수하는 수송함의 식당에서 자신들이 고향에서 영웅이라는 해군취사병의 말을 듣고 있는 렉키 일병과 동료들)

 

이후 과달카날 전투는 3개 사단(해병제2사단, 아메리칼 사단, 제25사단)으로 이루어진 미군 제14군단이 일본군을 압박하여 전멸시키기 직전인 1943년 2월 초에 살아남은 일본군 1만여명이 해상철수함으로써 미군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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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테나루 전투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 곳은 일루 강 하구지만, 당시 미해병대의 지도에는 일루 강 동쪽에 있는 테나루 강이라고 잘못 기입되어 있어서, 테나루 전투라는 잘못된 이름이 붙었습니다. 퍼시픽에서는 그냥 Alligator Creek 이라고 나오지요.)

 

퍼시픽 제1편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투이자, 과달카날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상군이 정면으로 격돌한 최초의 주요 전투입니다.

 

과달카날을 관장하던 일본제17군 사령관 햐쿠다케 중장은 애초 과달카날에 상륙한 미해병대 병력을 약 2,000 명 정도로 낮게 추산하여 제7사단 제28연대 약 2,000 명의 일본군을 상륙시켜 미해병대를 섬멸하고, 비행장을 되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과달카날에 상륙한 미해병대는 2,000 명이 아니라 10,900 명이었고, 인접한 툴라기 섬에는 따로 6,075 명이 더 있었습니다.  

 

제28연대는 주둔지인 괌에서 트럭까지는 수송선 2척을 타고 왔으나, 트럭 섬에서 과달카날까지는 속력이 빠른 구축함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사용가능한 구축함의 숫자가 모자랐으므로, 우선 제28연대 제2대대를 주축으로 한 916명을 제28연대장 이치기 기요노 대좌 지휘 하에 선발대로 보내고, 4일 후에 나머지 병력을 다시 수송하기로 했습니다.

 

1942년 8월 18일 밤에 일본구축함 6척(하마카제, 가게로, 하기가제, 다니가제,우라가제, 아라시)에 분승한 이치기 지대는 헨더슨 비행장 동쪽 35km 지점에 있는 타이부 해안에 무사히 상륙했습니다.

병력 1인당 총알 150발과 7일 분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원화력은 70mm 보병포 3문과 소형 박격포인 척탄통 및 경기관총이 전부였습니다. 

화염방사기도 보유하고 있었으나, 실제 전투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극에서는 마치 일본구축함들이 해병대가 뻔히 보는 가운데 과달카날 앞바다를 통과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야간에 통과했습니다.

미해병대는 야간에 해상에서 들리는 구축함 엔진 소리와 해안에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일본함대가 지나간다는 걸 짐작했을 따름이지요.

병력을 내려놓고 돌아가던 구축함 중 일부는 해병대의 교두보에 함포 사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제1편에서 대낮에 당당하게 해병대의 눈 앞을 통과하는 일본구축함들. 하지만, 사실은 야간에 통과했습니다.)

 

이치기 기요노 대좌는 과달카날에 상륙하자 후속부대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이끄는 916명만으로 미해병대를 공격하여 비행장을 탈취하기로 하고 서쪽으로 진격합니다.

한편 미해병대는 정찰대를 내보내어 이치기 지대의 접근을 확인하고, 일루 강 서안에 강력한 방어선을 편성합니다.

당시 일루 강 서안을 방어하던 미해병대는 제1연대였는데 제2대대가 일본군의 주공의 정면인 일루강 하구를 담당하고, 제1대대가 상류를 담당하다가 전투의 막바지 단계에 일본군 배후로 진출합니다.

주인공 렉키 이병은 제2대대의 화기중대인 H 중대 소속이라 일루 강 서안에서 일본군의 주력을 분쇄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일루 강은 수량이 적어서 바다로 합류하는 부근에서 자주 흐름이 끊깁니다.

일루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는 강의 흐름과 직각 방향으로 모래사장이 있는데 일루 강의 수량이 풍부하면 모래사장을 넘어 바다로 들어가고, 수량이 모자라면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치 더러운 연못처럼 물이 고이면서 모래사장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테나루 강 전투 당시에도 일루 강 하구의 모래사장은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1943년 8월 21일 새벽에 일루 강에 도달한 이치기 지대는 오전 3시 10분부터 보병포 2문과 척탄통, 경기관총의 엄호 하에 일루 강 하구의 모래사장을 건너 제2대대의 방어선에 공격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미해병대의 강력한 방어선 전면에 헛된 돌격을 거듭하다가 치열한 기관총과 박격포, 37mm 대전차포, 그리고 야포 사격을 받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공격에 실패합니다.

일단 일본군의 예봉을 꺾은 해병대는 오전 7시에 제1연대 제1대대가 일루 강 상류에서 강을 건너 일본군의 배후로 진출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 섬멸합니다.

오후 3시에는 M3 스튜어트 경전차 3대까지 소탕전에 참가해서 오후 7시에 소탕전이 끝납니다. 

 

이 테나루 강 전투에서 이치기 지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혹독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916명 중 871명이 전사했고, 15명이 포로가 되어서 97% 가까운 병력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제28연대장 이치기 기요노 대좌는 21일 오후에 연대기를 불사르고, 권총자살합니다.

미해병대에서는 34명이 전사하고, 7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에 미해병대가 노획한 무기는 70mm 보병포 3문, 척탄통 20문, 화염방사기 12개, 중기관총 10정, 경기관총 20정, 소총 700정, 권총 20정, 다량의 폭약과 다수의 대검 및 수류탄 등이었습니다.

 

 

(제1편에서 테나루 강 전투가 끝난 후 모래사장에 파묻힌 수많은 일본군 시체들) 

 

그리고, 전투가 끝나고 일본군 부상병이 미군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장면은 픽션입니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에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적어도 테나루 강 전투에서는 그런 기록은 전혀 없고, 로버트 렉키의 원작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제1편에서 충격적인 일본군의 동반자살 장면. 그러나,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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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보 섬 해전

 

(제1편에서 과달카날 해안의 렉키 일행이 지켜본 사보 섬 해전 광경)

 

렉키와 동료들은 상륙 이틀째 밤에 과달카날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터너 제독이 지휘하는 미해군이 일본해군을 싹쓸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해전은 미해군 사상 최악의 패배로 불리는 사보 섬 해전이었습니다.

미해군 전사를 쓴 새뮤얼 모리슨 제독은 이 사보 섬 해전 때문에 애당초 미군의 승리로 간단하게 끝났을 과달카날 전투가 6개월에 걸친 사투가 되었다고 평가했지요.

 

과달카날 상륙 당시 라바울에 있던 일본제8함대 사령관 미카와 구니치 제독은 상륙보고를 받자마자 중순양함 5척(죠카이, 아오바, 카고,기누가사, 후루다카), 경순양함 2척(덴류, 유바리), 그리고, 구축함 1척(유나기)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수상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로 향합니다.

도중에 일본함대는 미군 정찰기에게 두 번이나 발견되지만 그때마다 침로를 바꾸는 척해서 정찰기 조종사의 눈을 속이는데 성공하고, 9일 새벽 1시에 과달카날 앞바다에 도달합니다.

당시 과달카날 앞바다를 지키던 미함대는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8척으로 일본함대보다 우세했으나, 이들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뉜 채로 경계임무에 임하다가 일본함대에게 기습을 당해 차례로 격파당하고 맙니다.

게다가 당시  미함대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로 피로가 극도로 쌓인 상태였습니다.

 

1942년 8월 9일 새벽 1시 38분에 일본함대가 기습적으로 산소어뢰를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불과 40분간 지속된 일방적인 해전에서 일본함대는 연합군의 중순양함 4척(캔베라, 빈센즈, 아스토리아, 퀸시, 이중 캔베라는 호주해군 소속)을 격침하고, 중순양함 1척(시카고)과 구축함 2척(랄프 탤벗, 패터슨)을 대파했습니다.

연합군 전사자는 1,023명, 부상자는709명에 달하여 미해군이 지금까지 겪은 사상 최악의 패배로 기록됩니다.

(물론 진주만 기습의 피해가 더 크지만 미국은 진주만 기습을 해전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진주만 기습을 하와이 해전이라고 부릅니다.)

일본함대의 피해는 중순양함 죠카이와 아오바가 소파되어, 전사 51명, 부상 31명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미군의 함재기들이 공습을 가할까 봐 두려워한 미카와 제독은 무방비 상태의 미군 수송선단을 남겨두고 그대로 퇴각합니다.

 

과달카날 상륙을 엄호했던 항모기동부대는 해전이 벌어지기 몇 시간 전에 이미 철수했고, 이제 남은 호위함대마저 사보 섬 해전으로 격파되어 버리자 상륙작전을 현장에서 총지휘하던 켈리 터너 해군소장은 8월 9일 하루동안 하역작업을 초스피드로 실시하여 원래 싣고왔던 2달치 보급품 중 1달치만 양륙하고는 9일 오후에 서둘러 과달카날을 떠납니다.

그리하여, 주인공 렉키 일병이 포함된 해병 제1사단은 1달치의 보급품과 함께 그대로 과달카날 섬에 고립되어 버립니다.

 

(제1편에서 수송선단이 떠나버리고 텅 빈 바다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해병대원들)

 

극에서는 마치 밤 사이에 수송선단이 모두 떠난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 수송선단은 9일 하루동안 최대한 빠른 속도로 보급품을 하역하고 오후에 과달카날 앞바다를 떠났습니다.

로버트 렉키의 원작에도 그날 아침부터 열심히 보급품을 내륙의 기관총 진지에 옮겨놓고 해안에 돌아와보니 수송선단이 떠나버린 상태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해병대원들의 대사 가운데에서 주인공 렉키 일병의 대대가 타고 온 병력수송함인 조지 엘리엇이 마치 간밤의 해전에서 격침된 것처럼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실제로 조지 엘리엇은 상륙 당일 낮에 일본기의 폭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일본함대가 과달카날에 접근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불타는 조지 엘리엇의 화염을 기준으로 침로를 정했지요.

 

사보 섬 해전에서 수송선단은 천만다행으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미군의 수송선단에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미카와 제독은 사보 섬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일본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제독에게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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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송함과 상륙주정

 

 

(제1편에서 왼쪽에 보이는 병력수송함의 옆면에 P13 이라는 번호가 보입니다.)

 

퍼시픽 제1편에 보면 주인공인 렉키 일병이 과달카날에 상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수송함의 옆면에 P13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은 주인공인 렉키 일병이 탄 배가 AP13 인 '조지 엘리엇' 임을 뜻합니다.

AP(Auxilary Personnel)은 이름 그대로 상륙작전에 참가하는 병력을 주로 수송하는 해군 소속의 수송함으로 대부분 민간 화물선을 기초로 만든 것입니다.

민간 화물선과 다른 점은 다수의 상륙정들과 그걸 다룰 수 있는 대빗을 보유하여 항만시설이 전혀 없는 해안에도 상륙주정을 이용하여 많은 병력을 재빨리 상륙시킬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조지 엘리엇의 길이는 약 155m, 만재배수량 13,525톤, 속력은 16.8노트 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10.5노트로 나와 있던데 틀린 것입니다.

조지 엘리엇이 포함된 헤이우드 급을 보면 위키피디아에도 속력이 16-17노트로 옳게 나와 있지요.

 

수송병력은 장교 72명과 부사관 및 병 1,203명으로 실제 상륙작전 시에는 이러한 AP 1척이 보통 1개 대대를 수송합니다.

AP 4척이 3개 대대와 연대 본부 및 직할 부대들을 수송하고, 화물수송함인 AK(Auxiliary Cargo) 1척이 연대의 중장비 및 무기, 보급품들의 대부분을 수송하여, 이렇게 5척의 수송함이 1개 연대를 수송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지 엘리엇은 과달카날 상륙 당일 일본군의 폭격을 받아 격침됩니다.

 

 

 (제1편에서 과달카날 해안을 향해 달려가는 상륙주정인 LCVP)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이  소형 상륙주정인 LCVP(Landing Craft, Vehicle, Personnel) 입니다.

LCVP 는 기존의 LCP(R) (=Landing Craft, Personnel,Ramp) 과 LCV (=Landing Craft, Vehicle)을 통합한 것으로 길이 11m 에 속력 9노트로 병력 36명이나 화물 3.7톤을 운반할 수 있습니다.

실제 상륙작전에서는 LCVP 8척이 1개 중대를 상륙시킵니다.

조지 엘리엇과 같은 급의 APA-6 헤이우드는 LCVP 21척, LCP(R) 2척, 그리고, 전차를 수송할 수 있는 LCM(Landing Craft, Mechanized) 4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LCVP 의 최초 시험항행이 1942년 10월 5일이고, 최초 실전투입은 1942년 11월의 북아프리카 상륙이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1942년 8월의 과달카날 상륙 때는 LCVP 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렉키 일병은 아마 LCVP 와 비슷하게 생긴 LCP(R) 을 타고 상륙했을 것입니다.

뭐.. 이정도야 감독의 애교..

 

사실 LCVP 의 옆구리에 새겨진 PA13-2 란 숫자도 틀린 것입니다.

AP-13 호의 제2호 주정은 P13-2 라고 적습니다.

PA13-2 라면 APA-13인 조셉 딕맨의 제2호 주정이라는 뜻입니다.

뭐..이것도 사실 애교..

 

APA(Auxiliary Personnel, Attacker)는 AP 와 비슷한데 상륙정을 좀 더 늘이고, 무장을 좀 더 강화했다고 보면 됩니다.

많은 AP 들이 APA 로 개장했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바로 APA 로 건조되지요.

다만 조지 엘리엇은 APA 로 개장될 기회를 얻기 전에 과달카날에서 격침되어 버립니다.

나중에 APA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미해군은 상륙작전에는 APA 를 투입하고, 일단 교두보를 확보한 후의 인원이나 화물 수송에는  AP 를 투입합니다.

 

가끔씩 AP 나 APA 를 리버티쉽과 착각하는 사람이 있던데 전혀 다릅니다.

AP나 특히 APA는 상륙작전에 직접 참가하는 해군 소속의 엄연한 상륙함으로 증기 터빈을 사용하여 16노트 이상의 속력을 냅니다.

반면에 리버티쉽은 전시에 대량생산된 화물선으로 왕복증기기관을 이용하여 11노트의 속력을 내지요.

AP 나 APA는 엄연한 군함이기 때문에 상선으로 취급되는 리버티쉽과 달리 크기를 배수톤수로 나타냅니다. 

 

 

 

 

세 장의 사진 중 가장 윗사진이 퍼시픽 제1편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는 순간, 가운데 사진이 LCVP, 아랫쪽 사진이 LCP(R)입니다.

LCVP 는 트럭같은 차량도 실어야 하기 때문에 LCP(R) 보다 좀 더 크고 문도 좀 더 넓습니다.

퍼시픽 제1편에서 나온 상륙주정이 LCP(R) 이 아니라 LCVP 란 걸 구별하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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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병대의 계급과 계급장

 

퍼시픽 제1편에 보면 수송함 갑판에서 손에 오렌지를 들고 열심히 브리핑을 듣고 있는 병사가 보이는데 팔에는 아무런 계급장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이 병사는 이등병(Private) 입니다.

 

 

(제1편에서 손에 오렌지를 들고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이등병)

 

일등병(Private First Class = pfc)은 역갈매기 모양 1개, 상병(Corporal)은 역갈매기 모양 2개, 병장(Seargeant) 은 역갈매기 모양 3개입니다.

극 초반에 바실론 병장이 동료들과 함께 체스티 풀러 중령에게 브리핑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깨에는 역갈매기 모양 3개가 선명하지요.

미해병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상병(Corporal)부터 부사관(NCO = Non-commissioned Officer)으로 인정합니다.

다만 육군같은 경우 Corporal 과 같이 상병으로 번역되지만 지휘권이 없는 Specialist 는 사병에 속합니다.

우리나라는 하사(Staff Sergeant)부터 부사관이지요.

 

 

(제1편에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부사관들. 팔에는 역갈매기 3개로 이루어진 병장 계급장이 뚜렷합니다.)

 

수송함 갑판에서 열변을 토하는 이 분의 계급은 대위입니다.

 

 

(제1편에서 상륙 후의 행동요령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는 대위님)

 

소위(Lieutenant Second Class)는 황금색 막대기 하나, 중위(Lieutenant First Class)는 은색 막대기 하나, 대위(Captain)은 은색 막대기 두개입니다.

 

 

 

제1편 초반에 병장들을 모아놓고 브리핑을 하고있는 체스티 풀러 중령입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깨에 중령임을 나타내는 은빛 떡갈나무 잎이 보입니다.

소령(Major)은 황금색 떡갈나무잎 하나, 중령(Lieutenant Colonel)은 은색 떡갈나무잎 하나, 대령(Colonel)은 은빛 독수리 모양입니다.

 

 

(제7편에서 다시 나오시는 풀러 연대장님..그새 중령에서 대령으로 승진하셨네요. 옷깃에 은빛 독수리가 보이시는지?)

 

장성계급은 단순합니다.

차례로 준장(Brigadier General), 소장(Major General), 중장(Lieutenant General), 대장(General 또는 Full General), 원수(General of The Army..이건 미육군 원수.해병대 원수는 없으므로..참고로 다른 나라의 육군 원수는 주로 Marshall 이라고 합니다.)로 올라가며 각각 은빛 별이 1개, 2개 ,3개 , 4개, 5개로 늘어납니다.

소장부터 대장까지는 별이 일직선이고 원수는 5개의 별이 둥글게 모여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미해병대에서는 원수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대장이 최고 계급이었지요.

홀콤 대장이 해병대에서 최초로 퇴역하면서 예비역 대장을 달았고, 반데그리프트 장군이 해병대 사상 최초로 현역 대장이 되었습니다.

 

 

(제3편에서 바실론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시는 반데그리프트 소장님.. 모자의별 두개가 보이시죠?)

 

 

(제8편에서 사무실로 찾아온 바실론을 맞이한 반데그리프트 장군님..옷깃의 계급장을 보니 그새 중장으로 승진하셨네요..)

 

 

제2차 대전 당시 미해병대의 사병 및 부사관들의 계급장 모습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http://www.ww2gyrene.org/rank_structure.htm

 

미해병대의 장교 계급장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링크를 참조하시길..

 

http://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Marine_Corps_officer_rank_insig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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