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대체 전쟁공채가 뭐길래..

 

(미국 정부의 전쟁공채를 사세요..지금 당장~~)

 

제3편에서 미국정부는 과달카날의 영웅 존 바실론 하사에게 군인 최고의 명예인 의회명예훈장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풀러 중령은 바실론 하사에게 이제 미본토로 돌아가서 전쟁공채를 팔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자네는 명예훈장을 탔으니 우리랑 같이 다니는 것 보다는 미본토로 돌아가서 앵벌이..는 아니고, 전쟁공채를 팔아야 하네. 자네가 전쟁공채를 많이 팔면 팔수록 전우들의 식판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올라온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라네..블라블라블라..")

 

이리하여 바실론 하사는 미본토로 돌아와서 전쟁공채를 팔러 전 미국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헐리우드의 여배우와 사진도 찍고)

 

(팔자에 없던 라디오 성우 노릇까지 하게 되지요.)

 

이오지마 전투를 다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 에도 보면 미군은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은 '영웅' 들을 이용하여 전쟁공채 매각에 열을 올립니다.

 

그럼 당시 미국은 왜 이렇게 전쟁공채 매각에 혈안이 되었을까요?

도대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전쟁공채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전쟁을 하려면 돈이 듭니다.

크고  웅장한 항공모함에서부터 병사들이 쓰는 칫솔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에는 돈이 들지요.

 

(유진이 쓰는 이 칫솔 하나도 엄연히 미정부가 지불한 돈으로 마련한 것이란 말씀..)

 

이러한 군수품의 최종 수요자는 결국 정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개인이 항공모함을 끌고 다니지는 못하니까요..

따라서 전쟁이 나면 정부의 군수분야 지출이 엄청나게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정부가 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가장 간단한 것이 세금을 늘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증세는 국민의 반발을 가져옵니다.

이 세상에서 세금 늘어나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는 납세자를 만날 확률이나 트리플악셀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고릴라를 만날 확률이나 비슷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정권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지요.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증세를 단행하긴 했지만 소득세율을 올리지는 않았고, 다만 소득세의 5% 에 해당하는 부가세를 '승리세' 라는 이름으로 부과하는데 그쳤습니다.

대신 소득세가 면제되는 기준을 낮추고(즉 이전에는 소득세가 면제되던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얄짤없이 소득세를 걷고), 노동자에게 소득세를 미리 공제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원천징수제를 도입하여 소득세 탈루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세수를 증대시켰습니다.

미국이 이미 남북전쟁 때도 실시했던 이 원천징수제는 이때부터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임금노동자의 소득세 징수 방법으로 정착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 원천징수제를 실시하고 있지요.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세수를 늘려 늘어난 정부 지출의 약 40% 를 충당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증세를 단행해도 돈이 모자랍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정부에게 통화발행권이 있으니 정 급하면 돈을 찍어내면 됩니다.

실제로 전쟁시에 많은 국가가 이 방법을 씁니다.

그런데 이 방식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인플레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전쟁통인데 인플레가 뭔 대수냐고요?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발발했을 당시 애초에 군사력에서 훨씬 우세했던 중국국민당의 장제스가 결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에게 정권을 빼앗긴 이유를 설명한 말 중에 경제문제와 관련하여

 

"장제스는 마오쩌둥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에 패하여 정권을 빼앗겼다."

 

는 말은 비록 전쟁같은 난리통에서도 극심한 인플레가 정권의 운명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입니다.

 

인플레를 막으려면 공급량을 늘리거나 통화량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전쟁시에는 국민이 원하는 재화나 용역의 공급은 줄어들 수 밖에 없지요.

국민들은 자동차와 스테이크, 스타킹을 원하지 항공모함, 전투기, 전차를 원하지는 않으니까요..

 

미국은 전차와 군용 차량 생산을 위하여 1942년부터 민수용 자동차 생산을 금지시켰습니다.

1920년대에 이미 60% 의 가정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한해 500 만대씩 차를 만들던 나라에서 1942년부터 종전시까지 만들어 낸 민수용 자동차가 수십대에 불과합니다.

쇠고기 소비도 배급제로 엄격하게 규제되어서 규제를 받지 않는 말고기, 토끼고기에 비버고기까지 식당에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개나 쥐를 먹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이 상태에서 정부가 지폐를 마구 찍어내면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이 인플레가 발생합니다.

 

정부에게 남은 대안은?

그렇지요..전쟁공채입니다.

만일 시중에 100 달러의 통화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부가 전쟁을 위하여 100 달러를 더 찍어내어서 시중에 풀어버리면 시중의 통화량은 200 달러가 되면서 소비재 공급감소와 맞물려 엄청난 인플레를 일으킬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이나 전쟁공채로 돈을 확보하여 가격을 지불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만일 정부가 시중의 100달러에서 30달러의 세금을 더 거두면, 군수품 가격으로 100달러를 지불해도 시중의 통화량은 200 달러가 아닌 170달러가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만일 정부가 전쟁공채를 많이 팔면 팔수록 시중의 통화량을 줄이면서 인플레 압력을 줄이게 됩니다.

만일 정부가 30달러의 증세에 더하여 전쟁공채를 70달러어치 팔면, 정부는 시중의 통화량은 전혀 늘리지 않으면서도 100 달러어치의 군수물자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미국이  전쟁공채 판매에 그렇게 열을 올리던 이유입니다.

이러한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실제로 미국은 소비재 공급이 크게 감소하고, 정부 지출이 전쟁 기간 동안인 4년간 3,300억 달러나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도 증세와 전쟁공채 판매, 그리고 배급제의 교묘한 조합으로 4년간 소비자 물가 인상율을 9%로 억제할 수 있었지요.

 

전쟁공채의 좋은 점은 강제할당식이 아닌 자율구입식으로 판매하면서 제대로 된 선전기술과 결합시켰을 경우 경우 세금과는 달리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전쟁 전에 이미 영화나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가 크게 발달했던 미국은 이런 방면에서 매우 뛰어난 경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쟁공채 판매를 위하여 전쟁영웅들과 헐리우드의 1급 여배우들을 각 5명 정도씩 한 팀으로 묶어서 미 전역을 순회하면서 공채를 팔았습니다.

공채 판매 행사에서는 공들여 준비한 무대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영웅들이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싸웠고, 자신의 동료들이 지금도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상황에서 힘껏 싸우고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청중들에게 자신들도 그들을 도울 일이 없을까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는 그 영웅이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전쟁공채를 사 주신다면 여러분들은 지금도 싸움터에서 생명을 걸고 힘들게 싸우고 있는 제 전우들에게 저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공채 사세요..공채..

 

미언론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전쟁영웅들을 최대한 대중스타로 키울 필요가 있었지만 많은 경우 전쟁영웅들은 그런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전쟁공채 판매는 엄청난 성공작이었습니다.

4년 동안 미국성인 8천만명이 합계 1,875억 달러의 공채를 매입했습니다.

1인당 매년 거의 600 달러 가까이 매입한 셈으로 1942년에서 45년까지 4년간 미국의 1인당 GDP 의 평균이 1,460 달러 정도이니, 미국성인 거의 모두가 1인당 GDP 의 40% 에 해당하는 전쟁공채를 매년 구입한 셈입니다.

이걸 우리나라의 2016년 GDP 를 가지고 환산해 보면 4년간 매년 1200 만원, 매달 100만원씩 꾸준히 전쟁공채를 매입한 것과 맞먹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인 남녀 대부분이 말이지요..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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