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파부부 섬과 포인트 제도

 

글로스터 지역을 비롯하여 뉴브리튼 섬의 절반을 점령하고 육군제40사단에게 방어를 인계한 제1해병사단은 1944년 4월 26일부터 5월 4일에 걸쳐 과달카날 동북부에 있는 러셀 제도의 파부부 섬으로 이동합니다.

 

과달카날에는 잘 준비된 주둔지가 있었으나 남태평양 해역군의 해병대를 지휘하던 가이거 해병소장은 제1해병사단이 과달카날에 갔다가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역작업에 인부처럼 동원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여 파부부 섬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는 제1해병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제15해군건설대대가 막사나 식당, 기타 편의시설 등을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파부부 섬 건너편의 바니카 섬에 1,500 병상을 갖춘 병원을 짓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막상 제1해병사단이 도착했을 때에는 파부부 섬에 정글과 늪지만 있었다고 합니다.

 

(러셀 제도의 파부부 섬. 남동쪽에는 과달카날 섬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차례로 뉴조지아 섬, 부겐빌 섬을 거쳐 글로스터 전투가 벌어졌던 뉴브리튼 섬이 있습니다.)

 

과달카날과 글로스터라는 힘든 전장을 거친 제1해병사단 장병들의 사기와 체력이 저하되자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1944년 7월 말에 새로 4,860명의 병력을 제1해병사단에 증원합니다.

이에 따라 제1해병사단 장병들 중 24개월 이상의 근무경력을 가져서 과달카날과 글로세스터 전투에 모두 참가했던 병력 중 약 절반이 본토로 돌아가게 됩니다.

 

(본토로 돌아갈 행운의 병사를 추첨하는 장면. 원작에 보면 렉키 이병은 자신과 처클러같이 징계를 먹은 병사들은 아예 철모 속에 이름 자체를 써넣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제가 추첨장면을 보면서 한가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점은 엄연히 포인트 제도가 있는데 왜 굳이 추첨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미본토로 돌아갈 병사를 뽑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해병대나 육군의 포인트 제도는 병사들이 전장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름으로써 나타나는 무기력증을 예방하면서 객관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마치고 귀향할 병사를 정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입니다.

기본적으로 군대에 복무한 1개월당 1점의 포인트가 주어지며 해외 파병의 경우에는 매달 1점이 가산됩니다.

또한 과달카날 전투나 글로스터 전투같이 종군휘장이 주어지는 전역(Campaign)에 참가하면 5점이 추가되고, 훈장을 받을 경우 다시 5점이 가산됩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여 포인트가 특정 점수에 달하면 병역을 마치고 귀향하게 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85점 정도를 획득하면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전략폭격에 종사했던 미육군항공대 병사들도 일종의 포인트 제도가 있었는데 서유럽같은 경우 25회 출격을 마치면 병역을 마치고 귀향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했던 지중해 전구에서는 50회의 출격을 달성해야 병역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파부부 섬에서의 추첨 상황은 렉키의 책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는만큼 분명한 사실인 것 같은데 왜 포인트 제도를 적용하지 않고 추첨으로 귀향할 병사를 뽑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더군요.

 

그리고 이때 제1해병사단에 새로 증원된 병력들 중 일부는 해병대 사상 최초로 징집병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3년까지 고집스레 지원제를 유지하던 해병대도 조직의 급속한 팽창에 따른 병력 소요를 지원병으로만 충당하지 못하고 결국 이때부터 징집된 병력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면 해병대와 같이 지원제였던 공수사단은 종전시까지 지원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펠렐리우 전투 이후 퍼시픽 후반기의 주인공을 맡게 되는 유진 슬레지 일병도 이때 파부부 섬에 증원된 병력 중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유진 일병은 징집병이 아니라 지원병이었지요.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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