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글로스터 전투

 

1943년 12월 26일, 제1해병사단은 뉴브리튼 섬 서부의 글로스터 지역에 상륙작전을 실시합니다.

 

(제4편에서 항공모함을 동반하여 글로스터로 향하는 미함대의 웅장한 위용..그러나..뻥입니다요~~. 글로스터 지역은 미군이 이미 장악한 핀샤펜 지역 및 부겐빌 섬과 지척이라 항공지원은 오로지 육상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이 전담했고, 항공모함은 정규항모든, 경항모든, 호위항모든 1척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렉키 이등병이 포함된 제1해병사단 제1연대 제2대대는 글로스터 지역에 상륙한 제1해병사단 주력과 달리 댐피어 해협 대안인 타우알리 북쪽 해안에 상륙하여 해안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을 차단함으로써 남쪽으로부터 올라가는 일본군의 증원 시도를 차단하고, 나중에 글로스터 지역에서 남쪽으로 달아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작은 화살표가 렉키 이병이 상륙한 지역, 큰 화살표가 제1해병사단 주력이 상륙한 지역입니다.)

 

과달카날에서 호주로 철수할 당시만 해도 일등병이던 렉키는 호주에서 군기위반으로 징계를 받아 이등병으로 강등되고, 벌금 50달러와 영창 10일을 선고받지만 영창은 4일 만에 플려납니다.

징계를 받게 된 사유는 제3편에서도 대략적으로 나오지만 실상은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요..

사실상 제3편은 거의 픽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과달카날에서 상병으로 진급했던 렉키 친구 '처클러' 도 이때 같이 걸려서 일등병으로 강등되고, 벌금 50달러를 선고받지만 영창만은 피했습니다.

 

이후 렉키 이병은 제2대대의 화기중대인 H중대를 떠나 제2대대 정보참모 휘하로 들어갑니다.

제2대대의 정보참모가 바로 제4편에서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렉키 이병의 보관함을 뺏어서 렉키 이병이 죽이니 살리니 난리치던 그 중위입니다.

사실 말이 정보참모지 전장에 나온 대대에서 따로 정보참모가 펜대 굴리고 서류 업무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참모의 주요 임무는 대대의 정찰 임무와 지도 작성이었습니다.

따라서 렉키 이병도 상륙과 동시에 정찰대의 일원으로 제2대대에서 가장 많은 정찰활동에 참가하면서 대대 전체를 통틀어 제일 고되고 위험한 임무를 맡아 고생하게 됩니다.

 

제2대대가 점령한 지역에서 정찰대끼리의 소규모 전투를 제외하고 유일한 큰 전투가 바로 1943년 12월 30일 새벽에 실시된 일본군의 공격입니다.

일본육군 보병제51연대 제1대대 제3중대 및 제4 중대원 116명으로 이루어진 병력이 12월 30일 새벽 1시 55분부터 아침 7시까지 제2대대에서 가장 돌출한 지역을 방어하던 G 중대의 방어선에 4차례의 돌격을 시도했다가 89명이 전사하고, 5명이 포로가 되는 등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공격에 실패합니다.

당시 제2대대의 병력이 약 1,200 명이고, 지원병력을 포함하여 약 1,500 명이 지키는 교두보를 불과 116명이 공격한 것이었지요.

제2대대에서는 7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글로스터 전투에서 제1해병사단 제1연대 제2대대의 전체적인 전투경과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제4편에서 무리한 공격 끝에 전사한 일본군 시체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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