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카메론 산 함락

 

1941년 12월 22일 아침이 밝았을 때 일본군의 배치를 보면 리펄스베이호텔 북쪽에 제2 및 제3/229대대가 있었고, 동쪽에서는 제1/229및 제1/230대대가 스탠리 반도 입구에 방어선을 펴고 있는 동부여단과 대치하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제228연대가 니콜슨 산에서 카메론 산을 노리고 있었다.

 

세드릭 월리스 준장의 동부여단은 캐나다왕립소총대대 B, C 및 D 중대, 미들섹스 대대 B 및 D 중대, 의용대 제1, 제2중대 및 스탠리 교도소를 경비하던 스탠리 소대, 이외에 잡다한 부대의 잔존병들로 이루어져 홍콩섬 남동쪽의 스탠리 반도에 3중의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야포 세력은 2파운더(40mm) 대전차포 2문, 18파운더(84mm) 야포 3문 및 3.7인치 곡사포 2문이었으며, 9.2인치 해안포 3문 및 6인치 해안포 2문도 가세했다.

 

헨리 로즈 대령이 지휘하는 서부여단의 방어선은 남북으로 얕고 넓게 늘어져 있었다.

북해안은 제2/14펀잡대대 C 중대가 지키고 있었고 그 남쪽의 레이튼 힐에는 미들섹스 대대 Z 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Z 중대 남쪽으로는 제4/7라지푸트 대대 B중대 및 제2/14펀잡대대 B중대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었다.

카메론 산에는 왕립스코트대대와 위니펙척탄병대대 C중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 남쪽에는 척탄병대대 B 및 D 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남해안은 의용대와 영국군의 잡다한 병력들이 방어하고 있었다.

 

22일 정오가 되자 일본군 2개 대대가 동부여단이 지키던 스탠리 언덕과 그 북쪽의 슈가로프를 공격해 왔다.

이곳을 지키던 병력은 캐나다왕립소총대대 B중대, D 중대의 2개 소대, 그리고  본부중대의 1개 소대였다.

캐나다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몇 차례나 막아내었으나 탄약이 부족해지자 스탠리 언덕 정상을 내어주고 남쪽 사면으로 물러섰다.

 

그동안 일본제229연대의 주력은 리펄스베이호텔의 영국군을 거세게 몰아쳤다.

2개 대대의 일본군은 강력한 화력지원을 받으면서 진격하여 캐나다왕립소총대대 병력을 중심으로 한 수비대를 호텔 본관 내로 몰아넣었다.

22일 오후에 수비대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호텔에는 피난 중이던 영국인 여자들과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철수시킬 방법이 없었으므로 이들은 수비대가 떠난 후 일본군에게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병사들은 몇 명씩 짝지어서 호텔을 떠났지만 이들중 소수만이 스탠리 반도에 자리잡은 동부여단의 방어선에 도착했다.

템플러 소령을 위시한 약 30명의 병력은 후퇴를 거부하고 다음날 저녁까지 호텔을 방어했다.

 

23일 밤에 템플러 소령 일행이 호텔을 빠져나가자 일본군이 리펄스베이호텔을 점령했다.

템플러 소령 일행은 해안에서 보트를 타고 라운드 섬에 좌초한 트라시안의 잔해로 가서 숨었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텔레그라프 만에 상륙했을 때는 이미 홍콩 수비대가 항복한 후였다.

 

(홍콩 섬 상륙 및 전투 상황도.출처 : Hong Kong 1941-45, P.57

 
황니천 계곡을 제압한 일본군은 카메론 산을 노렸다.
카메론 산은 황니천 계곡을 굽어보는 요충지로 서부여단의 새로운 사령부와 위니펙척탄병대대의 본부가 있었다.
22일 오후에 실시된 제228연대의 공격은 카메론 산 북쪽을 방어하고 있던 캄프타 프라사드 소령의 제2/14펀잡대대 B 중대에 떨어졌다.
 
압도적 열세의 B 중대는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 무너졌다.
B 중대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8명에 불과했으며 남아있는 공용화기는 기관총 2정 뿐이었다.
펀잡대대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북쪽에 있던 제4/7라지푸트대대 B  중대가 일본군의 북익에 날카로운 반격을 가했다.
예기치 않은 일격을 얻어맞은 일본군이 주춤하는 사이 억지로 쥐어짜낸 영국군 예비병력이 달려가서 전선의 구멍을 겨우 메꾸었다.

 

 

그러자 일본제228연대는 방향을 바꾸어 카메론 산 남쪽을 공격했다.

일본군은 카메론 산 남쪽 사면과 리틀홍콩 사이 약 1km 정도의 좁은 전선에 많은 병력을 밀어넣었으나 위니펙척탄병대대 D 중대에게 격퇴당했다.

 

이로써 카메론 산은 안전해진 듯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22일 밤 10시에 제3/228대대로부터 1개 중대를 증원받은 제2/228대대가 동쪽으로부터 카메론 산에 들이닥쳤다.

제228연대장 도이 데이히치 대좌는 노획한 영국군의 박격포와 기관총을 포함하여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동원했다.

혼란 속에서 왕립스코트대대를 주축으로 한 영국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병사들은 카메론 산의 정상을 뺏기고 서쪽 사면으로 밀려났다.

23일 새벽 1시 30분에 서부여단장 헨리 로즈 대령은 몰트비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카메론 산이 함락되었다고 보고했다.

 

다행히 카메론 산 서쪽의 만자 계곡에는 22일 오후에 이미 의용대 제4 및 제7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로즈 대령이 만약을 대비하여 배치해 둔 이 병력 덕분에 서부여단은 방어선의 전면적인 붕괴를 모면했다.

하루 종일 격전을 치른 일본제228연대도 추격을 포기하고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맘때쯤 빅토리아시티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일본군이 대담 저수지에 있던 급수시설을 발견하고 펌프를 멈추자 홍콩섬 전역에 급수가 중단되었다.

동부여단이 방어하고 있던 스탠리 요새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었으나 23일에 일본군의 포격으로 파괴되어 저장하고 있던 식수가 유실되었다.

급수 중단과 저장식수 유실은 수비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누구도 식수없이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12월 23일 아침에 동부여단 세드릭 월리스 준장은 스톤힐과 스탠리 언덕을 탈환하기 위하여 공격을 실시했다.

캐나다왕립소총대대가 주력을 담당했고 미들섹스 대대가 얼마 안 되는 야포와 기관총을 동원하여 화력지원을 맡았다.

왕립소총대대는 일본군의 허를 찔러 일단 스톤힐과 스탠리 언덕을 탈환했으나 오래 지킬 여력이 없었다.

오전 10시부터 일본군의 야포와 박격포가 무시무시한 포격을 가해오자 왕립소총대대는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영국군이 철수하자 일본제1/229대대가 스톤힐과 스탠리 언덕을 다시 점령했다.

왕립소총대대는 스탠리 언덕 남쪽의 평지에 방어선을 편성했는데 일본군은 방어선에 포격을 가할 뿐 추격하거나 방어선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지난 이틀 간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제1/229대대도 재정비가 필요했다.

 

23일 오전 8시에 일본군이 레이튼 힐의 남쪽 절반을 지키던 라지푸트대대 C 중대를 공격했다.

C 중대는 몇 번의 공격을 물리쳤으나 탄약이 떨어지면서 남서쪽의 경주로(Racecourse) 지역으로 밀려났다.

레이튼 힐의 북쪽 절반을 지키던 미들섹스대대 Z 중대는 전선을 유지했으나 우익을 지키던 라지푸트대대가 밀려나자 약간 후퇴하여 방어선을 재편했다.

 

23일 아침에 해군조선소를 방어하던 영국해병대가 카메론 산의 북쪽 사면에 도착하여 서쪽 사면을 지키던 왕립스코트대대와 연결했다.

새벽에 카메론 산의 정상을 점령했던 일본제228연대가 오전9시에 서쪽 사면으로 진출하여 왕립스코트대대를 공격했다가 격퇴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포격과 공습만 실시했는데 일본기들은 저공비행을 하면서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했다.

 

23일 오후가 되자 지속적인 포격과 공습에 시달리던 스코트 대대는 카메론 산의 북서쪽 사면으로 물러나 그날 오전에 경주로(Racecourse) 지역으로 밀려나 있던 라지푸트대대 C 중대와 연결했다.

위니펙척탄병대대는 23일 저녁까지 재집결한 다음 만자 계곡과 베넷츠힐 사이를 방어했다.

리틀홍콩 지역의 탄약창을 방어하던 영국군도 아직 버티고 있었으며 덕분에 야간에는 탄약을 꺼내어 보급할 수 있었다.

 

23일에 일본군은 다음날로 예정된 빅토리아시티 공격을 위하여 제38사단의 마지막 예비대였던 제3/230대대를 북해안에 상륙시켰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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