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칼라 침몰

 

1941년 12월 21일 아침에 동부여단장 세드릭 월리스 준장은 대담 계곡을 거쳐 북상한 다음 서쪽으로부터 황니천 계곡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공격대는 캐나다왕립소총대대 D 중대, 의용대 제1중대로 이루어졌으며  의용대 제2중대의 기관총반이 가세했다.

D 중대장 맥콜리 소령이 지휘하는 공격대가 21일 오전 9시 15분에 스탠리 언덕을 출발하여 북상하자 동쪽의 레드힐로부터 총탄이 쏟아졌다.

D 중대는 총검돌격을 실시하여 북쪽의 브리지힐을 점령했으며 의용대 제1중대는 브리지힐과 레드힐 사이의 노팅힐을 점령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브리지힐과 노팅힐에는 하루종일 일본군의 총탄과 포탄이 떨어졌다.

오후가 되자 맥콜리 소령과 의용대의 모든 장교들이 부상을 입는 등 사상자가 크게 늘어났으나 동부여단에는 예비대가 없었다.

또한 영국군이 보유한 3인치 박격포의 포탄과 식량이 떨어졌는데 일본군의 포격으로 보급이 불가능했다. 

이 상태로 밤이 되면 일본군의 공격을 버텨낼 수 없었으므로 월리스 준장은 오후5시에 철수명령을 내렸다.

 

21일 오후에 브리지힐과 노팅힐의 영국군을 공격한 일본군은 제1/229대대로서 포병과 경전차 3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일본군은 제38사단의 예비대로 구룡 반도에 대기하던 제1/230대대를 오전 10시 30분에 북해안에 상륙시킨 다음 스탠리 방면으로 남하시켰다.

따라서 2개 중대 규모의 맥콜리 공격대가 철수하지 않았다면 21일 밤에 일본군 2개 대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홍콩 섬 상륙 및 전투 상황도.출처 : Hong Kong 1941-45, P.57)

 

몰트비 소장은 월리스 준장과는 별도로 리펄스베이호텔 방면에서 바이올렛힐을 거쳐 황니천 계곡을 공격하길 원했다.

그는 제30해안포대장이었던 템플러 소령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템플러 소령은 캐나다 왕립소총대대의 C 중대와 본부중대에서 각각 1개 소대를 짜내고 비커스 기관총을 가진 의용대의 브렌건캐리어 2대와 트럭 4대도 확보했다.

템플러 소령은 리펄스베이호텔로 가는 도중에 왕립소총대대 A 중대의 2개 소대와 약간의 의용대 병력을 만나 지휘 하에 넣었다.

리펄스베이호텔에 도착한 템플러 소령은 의용대 병력들을 호텔 방어를 위하여 남겨두고 도로를 따라 북상했다.

도중에 일본군의 기관총 사격을 받아 탄약을 싣고 있던 트럭이 파괴되었으나 나머지 트럭 3대는 브렌건캐리어와 함께 계속 북상했다.

도로를 따라 북상한 템플러 공격대는 21일 오후에 황니천 계곡 남쪽의 경찰서를 공격했으나 전력이 약한 데다가 마침 브렌기관총마저 고장나는 등 불운이 겹쳐 실패했다.

저녁이 되자 템플러 공격대는 리펄스베이호텔로 후퇴했다.

 

리펄스베이호텔로부터 황니천 계곡을 공격하려는 영국군의 거듭된 시도는 많은 희생을 내며 실패했지만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군의 공세때문에 제229연대장 다나카 류사부로 대좌는 지휘를 위하여 3일 동안 리펄스베이호텔에서 460m 떨어진 지점에 머물러야만 했으며 제3/229대대는 영국군의 거듭된 공세를 막으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세 때문에 빅토리아시티에 대한 일본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늦어졌다. 

 

21일 오후가 되자 일본제230연대는 전날에 이어 버틀러 산 맞은 편의 언덕에 집중 공격을 가했다.

언덕을 지키던 펀잡대대는 증원된 왕립스코트대대의 1개 소대와 함께 맞섰으나 중과부적으로 필터베드까지 밀려났다.

그러나 영국군은 서둘러 방어선을 정비하여 필터베드에서 레이튼 힐을 거쳐 북해안에 이르는 방어선을 유지했다.

 

북해안에서도 일본군이 서쪽으로 진격했다.

일본군은 코즈웨이 만의 왓슨 공장에 배치되어 있던 의용대 제6포대의 대공포들을 제압하고 빅토리아시티의 동쪽 끝에 도달했다.

빅토리아시티의 해군조선소가 포격을 받았고 북해안의 모든 영국군 야포가 일본군의 포격으로 침묵했다.

 

서부여단장 헨리 로즈 대령은 위니펙척탄병대대의 생존자들을 긁어모아 100 여명을 확보한 다음 일본군의 공격이 예상되는 카메론 산에 배치했다.

카메론 산에 배치된 척탄병대대의 병사들은 21일 오후 내내 일본군의 포격을 받았다.

 

포정 시칼라는 전날에 이어 21일에도 맹활약했다.

21일 아침에 일본군이 브릭힐을 공격했는데 이곳을 지키던 영국군 수비대는 미들섹스 대대의 소규모 분견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수비대는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딥워터 만에서 시칼라가 쏘아주는 6인치 함포의 화력지원에 힘입어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어서 시칼라는 포격을 가하여 황니천 계곡 내의 일본군 포대를 침묵시켰다.

그러자 일본군은 육군항공대에 지원을 요청했고 결국 시칼라는 공습을 받아 21일 오후에 람마 해협에 침몰했다.

시칼라가 침몰하자 일본군이 다시 브릭힐을 공격하여 끝내 점령했다.

 

(HMS 시칼라. 배수량 : 635톤, 길이 : 72m, 폭 : 11m, 속력 : 14노트, 승조원 : 55명, 무장 : 6인치 함포 2문, 12파운더(76mm)함포 2문, 7.7mm 기관총 6정 https://www.flickr.com/photos/hammersmithrob/7077889917/)

 

시칼라가 침몰함으로써 영국해군의 세력은 포정 2척과 어뢰정 5척으로 줄어들었으나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포정 로빈은 21일에 애버딘 항에서 포격을 가하여 미들스퍼의 일본군 포대를 침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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