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요격 및 수색

 

오아후의 북쪽에 있는 할레이와 비행장은 주로 훈련에 사용되는 예비 비행장으로 일본군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 당시 할레이와 비행장에는 제47전투비행대대 소속의 P-40 및 P-36 전투기 7대가 주기되어 있었다.

 

(진주만 기습 상황도. http://aerotoons.com/blog/2010/12/)

 

제47전투비행대대의 조지 웰치 소위와 케네스 테일러 소위는 12월 6일 밤에 휠러 비행장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술을 잔뜩 마신 후에 동료들과 함께 7일 아침까지 밤새 카드를 쳤다.

최후의 승자가 판돈을 쓸어담고 있을 때 일본기들이 휠러 비행장을 공격해 왔다.  

웰치 소위와 테일러 소위는 할레이와 비행장에 전화를 걸어 발진준비를 시킨 다음 뷰익 자동차를 타고 달렸다.

 

일본기들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시속 160km 에 달하는 엄청난 속력으로 도로를 달린 웰치 소위와 테일러 소위는 오전 8시 30분에 할레이와 비행장에 도착하여 발진 준비를 마친 P-40 전투기를 타고 이륙했다.

그들은 휠러 비행장으로 돌아갔으나 이미 일본기들은 떠난 이후였다.

더 남하한 그들은 에바 해병대 비행장 부근에서 수많은 일본기를 만났다.

 

(커티스 P-40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이곳에서 웰치 소위는 아카기와 히류의 급강하폭격기 1대씩 2대를 격추했다.

테일러 소위도 히류의 급강하폭격기 1대를 격추했다.

 

웰치 및 테일러 소위는 휠러 비행장에 내려 무장과 연료를 채운 다음 다시 이륙했다.

두번째 출격에서 그들은 휠러 비행장을 다시 공격해 온 일본기를 요격했다.

웰치 소위는 급강하폭격기 2대를 추가로 격추했으며 테일러 소위 또한 급강하폭격기 1대를 추가로 격추했다.

이날 웰치 소위는 4대, 테일러 소위는 2대를 격추했다.

 

사실 할레이와에서는 해리 브라운 소위가 웰치 및 테일러 소위보다 먼저 P-36 전투기를 타고 이륙하여 역시 P-36 전투기를 타고 휠러 비행장에서 이륙한 제46전투비행대의 말콤 무어 소위와 짝을 이루어 일본기들을 요격했다.

브라운 소위는 이 과정에서 테일러 소위보다 먼저 오아후 섬 북쪽에서 일본기 1대를 격추하여 태평양전쟁에서 미군 조종사로서 최초의 격추를 기록했다.

이날 할레이와 비행장에서는 이외에도 존 데인스 소위, 로버트 로저스 소위, 그리고 존 웹스터 소위가 출격했는데 데인스 소위는 3번째 출격 때 스코필드 병영 상공에서 아군의 대공포화에 맞아 격추되면서 전사했다.

 

(커티스 P-36 호크 전투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휠러 비행장에서는 8시 50분에 제46전투비행대대 소속의 P-36 전투기 4대가 이륙했다.

이들은 카네오헤 기지 상공에서 제로기 8대와 교전하여 루이스 샌더스 중위와 필립 라스무센 소위가 각각 제로기 1대씩을 격추했다.

미군 측에서는 고든 스털링 소위가 격추되었다.

휠러 비행장에서는 이날 약 25회에 걸쳐 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

 

(진주만 기습 당시 격추를 기록한 육군항공대 조종사들. 왼쪽부터 루이스 샌더스 중위(1대), 필립 라스무센 소위(1대), 케네스 테일러 소위(2대), 조지 웰치 소위(4대), 해리 브라운 소위(1대). 이들 중 테일러 소위와 웰치 소위는 수훈십자장을 받았다.

 http://ww2db.com/image.php?image_id=6333)

 

벨로우즈 기지에 일본기가 공격해 왔을 때 제44전투비행대대 소속의 P-40 전투기 12대 중 3대만 발진준비가 갖추어진 상태였다.

조지 화이트맨 소위는 이륙하다가 격추되어 전사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소위는 전투기에 탑승하다가 기총소사를 받아 전사했다.

새뮤얼 비숍 소위도 이륙 직후 제로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되었다.

비숍 소위의 전투기는 바다에 추락했으며 비숍 소위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해안까지 헤엄쳐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하와이 육군항공대는 일본함대에 대해 반격을 시도했으나 수색 방향을 남쪽으로 잡아 일본함대를 포착하는데 실패했다.

오파나 레이더 기지에서의 보고 사항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기들이 대부분 남쪽으로부터 진주만으로 진입한 것이 이러한 오판을 불러온 원인이었다.

 

오전 11시 27분에 히컴 비행장으로부터  A-20 쌍발폭격기 4대가 발진하여 일본함대를 찾아 남쪽을 수색했다.

오전 11시 40분에는 B-17 폭격기 2대가 역시 남쪽으로 날아가 일본함대를 찾았다.

이들은 남쪽에서 일본함대를 찾지 못하자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수색했으나 역시 일본함대에 이르지 못했다.

오후 1시에는 3대의 A-20 쌍발폭격기가 남쪽을 수색했으며 오후 1시 30분에는 2대의 B-18 쌍발폭격기가 역시 남쪽을 수색했다.

육군항공대에서는 일본함대를 찾기 위하여 오후 3시 20분까지 총 48회의 출격을 실시했으나 찾는데 실패했다.

 

해군항공대도 일본함대를 수색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이 되었을 때 제24초계비행대대(VP-24) 소속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4대가 잠수함과 합동훈련 중이었다.

제14초계비행대대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3대는 오아후 인근을 초계하고 있었으며 이들 중 1대가 워드를 도와 갑표적 I-20 정을 격침했다.

진주만 기습 당시 오아후 섬에 주둔 중이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69대 중에서 이들 7대를 포함한 11대만이 살아 남았다.

 

(PBY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7일 아침에 엔터프라이즈에서 이함하여 기습 도중에 오아후 섬에 도달한 돈틀레스 18대 중에서 9대는 포드 섬 비행장에서 급유와 무장을 마친 다음 오후 12시 10분에 이륙했다.

이들은 일본함대를 찾아 북쪽으로 160km 정도 날아갔으나 오후 3시 45분에 돌아설 때까지 일본함대와 접촉하지 못했다.

이날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6대와 해군수송기 5대도 이륙하여 일본함대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더글러스 SBD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7일 오후에 정찰 중이던 엔터프라이즈의 돈틀레스 1대가 오아후 섬 남쪽에서 일본항모 2척을 발견했다고 잘못된 보고를 해왔다.

오후 5시에 제6뇌격비행대대 소속의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18대가 어뢰를 장비하고 출격했다.

제6전투비행대대의 와일드캣 6대가 호위했으며 뇌격기가 어뢰를 투하할 때까지 일본함정의 눈을 가리기 위하여 연막탄을 장비한 제6폭격비행대대의 돈틀레스 6대가 동행했다.

 

(더글러스 TBD 데버스테이터.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일본함대를 찾지 못한 공격대는 귀로에 올랐는데 와일드캣 6대는 데버스테이터 및 돈틀레스들과 헤어져 진주만의 포드 섬 비행장으로 향했다.

와일드캣의 도착은 반복적으로 고지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9시 10분에 진주만 상공으로 와일드캣이 접근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대공포 사수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치명적인 오인사격으로 6대의 와일드캣 중 4대가 격추되어 허버트 멩게스 소위가 전사했으며 프랜시스 헤벨 중위와 에릭 앨런 중위는 탈출 과정에서 중상을 입어 다음날 사망했다.

멩게스 소위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초로 전사한 해군전투기 조종사이다.

 

(그루먼 F4F 와일드캣.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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