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급강하 폭격(2) - 순양함, 구축함 및 기타 함정

 

에구사 다카시게 소좌가 지휘하는 소류의 급강하 폭격기 17대 중 최소한 10대 이상이 해군 공창 지역을 폭격했다.

이들은 해군 공창 부두에 정박 중이던 중순양함 2척(뉴올리언스, 샌프란시스코)과 경순양함 2척(호놀룰루, 세인트루이스)을 노렸다.

 

(진주만 기습 당시 함정의 배치상황. http://maps101blog.com/2010/12/)

 

에구사 소좌는 중순양함 뉴올리언스를 노리고 폭탄을 떨어뜨렸으나 빗나갔다.

이날 중순양함 뉴올리언스와 샌프란시스코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경순양함 호놀룰루는 지근탄에 의하여 피해를 입었다.

250kg 짜리 폭탄 1발이 콘크리트 부두를 관통하여 함체의 좌현에서 6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40번 프레임을 중심으로 좌현 12m 가량이 늘어났고 철판이 1.5m 이상 안으로 꺼지면서 침수가 발생했다.

침수는 생각보다 심하여 항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호놀룰루는 1941년 12월 13일에 전함 펜실베이니아가 빠진 1번 건선거에 들어가 1942년 1월 2일까지 수리를 받았다.

함체 수리가 완전히 끝난 것은 1월 12일이었다.

 

(지근탄에 의한 호놀룰루 함체의 피해. http://www.navsource.org/archives/04/048/04048.htm)

 

경순양함 세인트루이스 부근에는 3발의 지근탄이 떨어졌으나 피해는 없었다.

호놀룰루의 바깥에 정박 중이던 세인트루이스는 오전 9시 31분에 부두를 떠나 25노트의 속력으로 진주만을 빠져나갔다.

세인트루이스의 전투보고서에는 탈출 도중 진주만 입구 부근에서 일본군 갑표적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드러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세인트루이스가 갑표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히류의 급강하폭격기 4대는 1010부두에 정박 중이던 경순양함 헬레나를 폭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아카기의 급강하폭격기 5대는 포드 섬 북쪽에 정박 중이던 경순양함 롤리를 폭격하여 오전 9시 8분에 1발을 명중시켰으나 함체를 그대로 관통하여 해저에서 폭발했다.

 

구축함들도 폭격을 받았다.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구축함 쇼는 1번 건선거 옆에 있는 2번 부유선거 속에 들어 있었는데 오전 9시 12분에 아카기의 급강하폭격기 8대가 폭격했다.

쇼는 3발의 명중탄을 맞았는데 3번째 폭탄이 함교를 뚫고 들어와 함체 내에서 폭발하면서 파편이 연료탱크를 찢었다.

치명적인 화재가 발생했고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오전 9시 25분에 퇴함명령이 떨어졌다.

5분 후인 오전 9시 30분에 화재로 인하여 가열된 전방 탄약고가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폭발했다.

이날 쇼에서는 24명이 전사했다.

 

(쇼의 전방탄약고가 폭발하는 순간. http://www.navsource.org/archives/05/373.htm)

 

이 폭발로 65번 프레임 앞쪽의 함체는 걸레짝이 되었으나 함체의 중앙과 후반부, 그리고 기계류는 멀쩡하여 부유선거가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쇼는 함수를 물에 처 박은 채 떠 있었다.

미해군은 처음에 쇼를 완전 손실로 처리했으나 피해 조사를 해보고 함을 살리기로 결정했다.

 

태평양함대는 1941년 12월 19일에 함수를 물에 처박은 채 떠 있던 쇼를 건져내어 걸레짝이 되어버린 65번 프레임 앞쪽을 잘라내고 나무로 만든 임시 함수를 붙였다.

진주만에서 임시 수리를 마친 쇼는 1942년 2월 9일에 나무함수를 붙인 채로 진주만을 떠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메어 아일랜드 해군조선소로 갔다.

쇼는 1942년 6월 말까지 메어 아일랜드 해군조선소에서 새로운 함수를 붙이고 말끔하게 수리를 마쳤으며 기존 승조원 60여명을 포함한 승조원들이 탑승했다.

미본토 서해안에서 승조원의 훈련을 마친 쇼는 1942년 8월 31일에 진주만에 돌아옴으로써 일선에 복귀했다.

 

다른 급강하폭격기들이 구축함 데일과 헬름을 폭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수상기모함 커티스와 탠지어도 폭격을 받았다.

커티스의 대공포가 9시 5분에 포드 섬 상공에서 급강하폭격기 1대를 명중시켰는데 이 폭격기는 커티스의 우현에 격돌하여 화재를 일으켰다.

이 화재를 잡기 전에 6대의 급강하폭격기가 폭격을 가했고 1발이 격납고에 명중하여 큰 인명피해를 입히면서 추가로 화재를 일으켰으나 승조원들이 30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이날 커티스에서는 20명이 전사하고 58명이 부상을 입었다.

 

포드 섬의 북동쪽에 정박 중이던 수상기모함 탠지어도 5대의 급강하폭격기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피해를 모면했다.

 

78대로 이루어진 제2차 공격대의 급강하폭격기들은 14대의 손실을 입은 것에 비하면 전과가 빈약했다.

일본 측은 49발을 명중시켰다고 주장했으나 'Tora! Tora! Tora! , Pearl Harbor 1941' 의 저자 마크 스틸은 명중탄이 15발 내외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모리슨 제독이나 진주만 기습 이후 함정의 인양 및 수리에 실무 책임을 맡았던 호머 월린 제독의 저작, 그리고 함정들의 전투보고서를 살펴보면 마크 스틸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약 20% 에 지나지 않는 명중율로 상대가 대부분 정박 중이던 함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구름의 고도가 1,700m 정도로 낮아서 급강하폭격기들이 교리에서 규정한 4,000m 대신 훨씬 낮은 1,500m 고도에서 급강하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기습효과가 사라져 소수의 미국 전투기가 이륙하여 요격에 나섰고 미함정들 또한 대공포를 사용하여 치열하게 반격을 가함으로써 폭격에만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외에 제1차 공격에서 함정과 지상 시설에 발생한 화재의 연기가 조준을 방해했다는 점도 급강하폭격의 명중율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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