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마블헤드 탈락

1942년 2월 5일에 미국구축함 폴 존스는 칠라찹으로 향하는 수송선 티도레를 호위하고 있었다. 이 미니 선단이 오전 11시에 숨바와섬 남쪽을 항해하고 있을 때 북동쪽으로부터 일본제1항공대의 육상공격기 23대가 나타났다. 켄다리2 비행장을 상실한 결과 이제 소순다열도의 남쪽 해상도 일본기의 공습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다. 일본기가 나타나자 티도레는 침몰을 면하기 위하여 해안에 돌진하여 좌초했다.
티도레를 보호해야 할 의무에서 벗어난 폴 존스의 함장 존 후리헌 소령은 일본기가 폭격을 가할 때마다 고속으로 변침하면서 도망다녔다. 2시간에 걸친 숨바꼭질 끝에 폴 존스는 일본기가 7번에 걸쳐 투하한 폭탄을 모두 피했으며 대공포로 반격을 가하여 8대에 피해를 입혔으나 1대도 격추시키지는 못했다.
일본기가 사라지자 폴 존스는 오후 3시 55분에 티도레에게 다가가 승조원을 구한 다음 배를 파괴하고 칠라찹으로 향했다.
제1항공대의 육상공격기들은 폴 존스를 오마하급 경순양함으로 착각하여 집중공격을 가했다. 이날 가노야 항공대의 육상공격기 23대와 다카오 항공대의 육상공격기 8대는 발리섬의 덴파사르 비행장을 공격했고 제1항공대의 육상공격기 23대는 폴 존스가 감당해 준 덕분에 칠라찹으로 후퇴하고 있던 연합타격부대는 전날에 이은 추가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클렘슨급 구축함 폴 존스(DD-230). https://en.wikipedia.org/wiki/USS_Paul_Jones_(DD-230)

 

휴스턴은 2월 5일 정오에 칠라찹에 입항했다. 부상자는 욕야카르타 부근의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수리를 위한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승조원은 6일 오전에 칠라찹의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전사자 48명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장례식은 예포 21발을 비롯하여 최대한 예우를 갖추어 진행되었다. 이후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갑판에 뚫린 큰 구멍과 망가진 메인마스트, 그리고 내부가 전소되어 쓸모없어진 3번 포탑을 수리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리를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버린 보이시가 휴스턴을 위하여 칠라찹에 제대로 작동하는 5인치 대공포탄을 내려놓고 갔다는 점이었다.

휴스턴에 이어 마블헤드가 입항했다. 마블헤드의 항해는 그 자체로 생존과의 싸움이었다. 보수반원들이 왼쪽으로 완전히 꺾인 키를 왼쪽으로 9도 꺾인 지점까지 푸는데 성공했으나 키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따라서 마블헤드는 왼쪽 프로펠러의 속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오른쪽 프로펠러의 속력을 조절함으로써 방향 조절을 할 수 있었으나 이런 방식은 어렵고 느리고 고된 일이었다. 마블헤드의 항적도는 이런 식으로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마블헤드의 항적도. History of U.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Vol. I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April 1942 P.302

 

더 큰 문제는 지근탄 때문에 함수에 벌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블헤드의 펌프가 물이 들어오는 속력을 따라잡지 못했으므로 부상자나 최소한의 필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승조원이 조를 짜서 양동이로 물을 퍼내야했다. 일단 양동이를 나르는 줄에 들어간 승조원은 식사나 수면은 커녕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계속 양동이를 날라야했는데 이짓을 교대로 48시간 동안 해야만 했다. 마블헤드는 승조원의 근성 덕분에 침몰을 면했다. 칠라찹에 입항할 당시 격실 30개가 침수당한 마블헤드의 함수는 함미보다 2.4m 나 깊이 잠겨 있었다.  마블헤드는 도착하자마자 중상자 34명을 상륙시켜 욕야카르타의 페트로넬라 병원으로 이송했으며 군의관 코리돈 와셀 소령이 파견되어 부상자를 돌보았다.

칠라찹의 부유선거는 마블헤드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그러자 네덜란드해군의 기술자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대담하고 독창성이 넘치는 이 기술자는 마블헤드가 전방 함체만 부유선거에 들이민 상태에서 선거를 띄워 함수를 들어올렸다. 평소같으면 당장 군사재판감인 위험천만한 짓이었으나 당시에는 마블헤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일단 마블헤드의 함수가 물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부유선거의 인원들이 우루루 달라붙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벌어진 철판 사이의 틈을 때웠다. 불행하게도 후방 함체에는 이런 꼼수를 부릴 수 없었기 때문에 키는 수리할 수 없었다. 또한 임시로 땜빵한 함수도 완전하게 수밀이 되지 않아 여전히 바닷물이 새어 들어왔다. 하지만 양이 적어서 펌프로 충분히 퍼낼 수 있었으므로 이제 승조원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낼 필요가 없었다.

응급수리를 마친 마블헤드는 잠수모함 오터스의 호위 아래 2월 13일에 칠라찹을 떠나 실론의 트링코말리로 향했다. 상처입은 순양함을 호위하는 일은 잠수모함에게는 다소 엉뚱한 임무였으나 하트 제독에게는 마블헤드의 호위를 위하여 전투함정을 빼낼 여력이 없었다. 마블헤드는 실론을 거쳐 남아프리카의 시몬스타운에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리를 받은 다음 브라질을 거쳐 5월 4일에 뉴욕에 도착했다. 브루클린 조선소에서 수리를 마친 마블헤드는 10월 15일에 일선에 복귀했다.

오마하급 경순양함 CL-12 마블헤드. https://en.wikipedia.org/wiki/USS_Marblehead_(CL-12)

 

마블헤드의 철수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휴스턴의 거취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휴스턴의 3번 포탑은 내부가 전소되어 쓸모가 없었다. 수리를 위해서는 미국으로 가야했으나 보이시에 이어 마블헤드마저 탈락한 당시 상황에서 휴스턴은 아시아함대 유일의 순양함이었으며 3번 포탑을 뺀 6문의 8인치 주포만으로도 아시아함대 최강의 함정이었다.

 

노샘프턴급 중순양함 CA-30 휴스턴. https://en.wikipedia.org/wiki/USS_Houston_(CA-30)

 

하트 제독은 칠라찹으로 와서 휴스턴을 시찰한 후 부두에서 함장 룩스 대령과 단둘이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여기서 3월에 브루클린급 경순양함인 피닉스가 아시아함대에 증원될 때까지 휴스턴이 잔류하기로 결정되었다. 하트 제독은 휴스턴에게 선단호송만 맡길 것이며 자바와 소순다열도의 북쪽 해상으로는 파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에 벌어진 순다해협 해전에서 휴스턴이 침몰하자 당시의 잔류 결정에 대해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하트 제독은 룩스 함장에게 잔류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함장을 비롯한 모든 승조원이 잔류를 강력하게 원했다고 주장했다. 룩스 대령은 전사했고 공식 기록이나 대화 내용을 들은 목격자가 없어 교차 검증이 불가능하지만 승조원들이 기억하는 당시 휴스턴 함내의 분위기로 보아 하트 제독의 주장은 사실일 것이다.

기중기를 사용하여 좌현으로 돌려져 있던 휴스턴의 3번 포탑을 함체 후방을 보도록 돌리고 폭탄의 파편에 맞아 구멍이 숭숭 뚫린 옆면을 판자로 가린 후 도색을 하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포탑처럼 보였다. 갑판에 뚫린 구멍은 철판을 덧대어 용접하고 내부에는 철도레일을 대어 보강했다. 이로써 휴스턴은 다시 전투에 나설 준비가 되었다.

ABDAFLOAT는 한꺼번에 여러 척을 잃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소모되고 있었다. 보이시와 마블헤드처럼 아예 탈락하기도 했고 휴스턴이나 엣솔처럼 피해를 입고 전력이 약화된 상태로 잔류하기도 했다. 보충은 없었다. 이는 ABDAFLOAT 에 공통된 상황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의 해군인 아시아함대의 처지도 본국이 점령되어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였던 네덜란드해군과 다를 바가 없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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