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수마트라 함락

하트 제독이 자바를 떠난 1942년 2월 15일에 싱가포르가 함락되었다. 극동에서 영국의 지배를 상징하던 대요새 싱가포르가 함락되자 영국 뿐만 아니라 연합국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으며 ABDACOM 휘하 장병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말레이 작전의 성공으로 싱가포르 함락이 가까워지자 일본군은 수마트라 침공을 서둘렀다. 장축의 길이가 1,600km가 넘고 폭이 최대 370km에 달하는 수마트라는 면적이 47만㎢를 넘어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섬이었다. 수마트라는 말라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말레이 반도와 평행하게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가장 가까운 곳은 말레이 반도에서 5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수마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남쪽에 있는 팔렘방이었다. 팔렘방은 유전지대로서 부근의 플라주에는 로얄더치셸의 정유공장이, 승게이 제롱에는 스탠더드오일의 정유공장이 있었다. 또한 도시 부근에는 비행장이 2개 있었는데 도시의 북쪽에 있는 비행장은 팔렘방1 또는 P1, 남서쪽에 있는 것은 팔렘방2 또는 P2라고 불렀다. 팔렘방시는 내륙에 있었으나 원양항해용 선박이 다닐 수 있는 80km 길이의 무시강을 통하여 방카 해협과 연결되어 있었다.

팔렘방 공략을 담당한 육군선견대선단이 제1호위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캄란만을 출항한 것은 2월 9일 오후 7시였다.  수송선은 8척이었으며 제1호위대는 경순양함 센다이, 제11구축대(하츠유키, 시라유키, 후부키), 구축함 아사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0일 오후 6시에는 주대가 캄란만을 떠났다. 주대는 제1남견함대사령장관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의 기함인 중순양함 초카이, 제7전대(구마노, 스즈야, 미쿠마, 모가미), 경순양함 유라, 제19구축대제1소대(아야나미, 이소나미), 제12구축대(시라쿠모), 그리고 제3항공부대(경항공모함 류조, 구축함 시키나미)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조는 96식함상전투기 12대와 97식함상공격기 15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츠비시 A5M 96식함상전투기.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A5M

 

11일 오후 6시에는 수송선 14척에 탑승한 육군주력이 제2호위대와 함께 캄란만을 떠났다. 제2호위대는 경순양함 가시이, 해방함 시무슈, 제20구축대(유기리, 아마기리), 제9호구잠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합군 정보기관이 일본선단의 캄란만 출항을 알아채고 경고했다. 아시아함대 잠수함부대장인 윌크스 대령은 잠수함 시레이븐의 함장 시어도어 에일워드 소령에게 요격명령을 내렸다. 시레이븐은 2월 11일 일몰시에 주대에 접근하여 순양함 2척에게 2발씩 총 4발의 마크14어뢰를 쏘았으나 모두 빗나갔다.
13일 오전 8시부터 하시모토 신타로 소장의 제3수뢰전대(센다이, 유라, 제11구축대, 아사기리)는 싱가포르를 탈출하려던 영국선박들을 공격하여 3척을 격침했다.
13일 오후 7시 40분에 영국공군의 블레넘 폭격기 5대가 후부키와 아사기리를 폭격했으나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육군선견대를 실은 8척의 수송선은 15일 오전 1시까지 무시강 하구 대안에 있는 방카섬의 문톡에 진입했으며 오전 2시 20분부터 병력이 상륙했다. 팔렘방까지 무시강을 거슬러 올라갈 무시강 소강부대는 오전 4시 45분에 하구에 도착하여 오전 7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수마트라로 접근하자 웨이벌 장군은 텔 푸어텐 장군에게 팔렘방의 방어를 강화하라고 명령했다. 텔 푸어텐 장군은 1개 대대를 팔렘방에, 1개 대대를 해협을 사이에 두고 무시강 하구를 바라보는 방카섬과 동쪽의 벨라퉁섬에 파견했다.

웨이벌 장군은 ABDA타격부대에게 서부 자바로 와서 팔렘방을 향하는 일본선단을 타격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타격부대는 하트 제독의 명령에 따라 숨바와섬 남쪽에서 마카사르의 일본군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먼 제독은 미국함정들은 남겨두고 네덜란드 함정인 경순양함 2척(드루이터, 트롬프)과 구축함 3척(반겐트, 방커트, 피에타인)을 이끌고 가기로 결정했다. 숨바와섬 남쪽에서 자바 서부까지 1,300km 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야 했던 도먼 제독은 마음이 급했다. 결국  2월 12일 밤에 급유를 위하여 자바 남동해안의 프리기만에 들른 도먼 제독의 기함 드루이터는 안개끼고 거친 해상을 고속으로 항진하다가 미국구축함 휘플의 우현 전방 함체를 들이받았다. 드루이터의 상처는 가벼웠으나 휘플은 함수가 왼쪽으로 45도 꺾였다. 휘플은 당분간 칠라찹의 부유선거에 들어가야 했으며 수리를 마친 후에도 전투임무에서 배제되었다.

2월 14일 아침이 되자 수마트라 남부의 연료보급항인 반다르람풍에는 강력한 연합군 함대가 모였다. 비록 휴스턴은 티모르로 가는 선단을 호위하기 위하여 다윈으로 갔지만 미국구축함 6척(벌머, 바커, 스튜어트,  패럿, 에드워즈, 필즈베리)은 헬프리히 제독의 명령을 받고 달려왔다. 호주경순양함 호바트, 네덜란드경순양함 자바, 네덜란드 구축함 코테네어도 순다해협으로 가는 선단을 호위한 후 합세했다.

영국중순양함 엑서터도 바타비아로 향하는 선단을 호위한 후 가세했다. 올리버 고든 대령이 지휘하는 엑서터는 8인치 주포 6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뢰 6발도 장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휴스턴의 사용가능한 8인치 주포수가 6문으로 줄어든 당시 상황에서는 엑서터가 ABDAFLOAT 에서 가장 강력한 함정이었다.

 

요크급 중순양함 엑서터. https://en.wikipedia.org/wiki/HMS_Exeter_(68)

 

그리하여 도먼 제독은 휘하에 중순양함 엑서터, 경순양함 4척(드루이터, 자바, 트롬프, 호바트), 그리고 구축함 10척(반겐트, 방커트, 피에타인. 코테네어, 벌머, 바커, 스튜어트,  패럿, 에드워즈, 필즈베리)을 거느리게 되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의 함정이 모두 포함되어 ABDA타격부대라는 이름에 걸맞는 함대였다.

14일에 일본군이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팔렘방을 공격했다. 일본폭격기가 P1 비행장을 폭격한 후 일본군 공수부대 260명이 P1 비행장에, 100명이 주변의 정유공장에 강하했다. P1 비행장을 기지로 삼아 활동하던 영국기들은 공격받을 당시 비행장을 떠나 일본선단을 공격하고 있었다. 제211폭격비행대대의 블레넘 폭격기들은 989톤짜리 수송선 이나바산마루를 격침하고 P2 비행장으로 복귀했다. 14일 오후에 제84 및 제211폭격비행대대 소속의 블레넘 11대가 허리케인 15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류조를 공격했으나 96식 함상전투기에 막혀 블레넘 2대가 격추되고 6대가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의 피해는 없었다.

14일 오후 4시에 연합타격부대는 반다르람풍을 떠나 일본선단을 요격하기 위하여 북상했다. 가장 가까운 길은 방카 해협을 통하는 길이었으나 이미 일본이 기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타격부대는 방카섬과 벨리퉁섬 사이의 가스파해협을 통하여 북상했다. 문제는 가스파해협의 해도가 부실하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안전한 수로 중앙을 따라 단종진을 형성해야 했으나 해도를 과신한 도먼 제독은 일본잠수함을 막기 위하여 중앙에 순양함을 두줄로 세우고 네덜란드구축함 3척을 앞쪽에, 미국구축함 6척을 뒤쪽에 부채꼴로 펼쳤다. 노련한 네덜란드구축함 방커트는 전방에서 항로를 인도했다.

15일 오전 5시 20분에 네덜란드구축함 중 가장 오른쪽에서 항진하던 반겐트가 바미조 산호초에 좌초하면서 전방 보일러실에 불이 났다. 방커트가 반겐트의 승조원을 수용한 후 함체를 파괴했다.

15일 오전 6시에 드루이터는 수상기를 사출했다. 오전 8시 37분에 이 수상기는 방카섬 북쪽 70km 해상에서 순양함 7척과 구축함 3척이 북서쪽으로 고속항진중이라고 보고했다. 오전 9시 23분에 연합타격부대는 초카이의 수상기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일본군에게 발견되었음을 알았으나 사실 초카이의 수상기는 오전 8시 8분에 이미 타격부대를 발견했다.

드루이터의 수상기가 발견한 일본함대는 주대로서 초카이, 제7전대제2소대, 제4항공전대, 제19구축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자와 제독은 오전 8시 30분에 접촉보고를 받았는데 초카이의 수상기는 엑서터를 전함으로 착각하여 전함 1척, 순양함 3척, 구축함 6척으로 보고했다. 적의 함대에 전함이 포함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오자와 제독은 항공공격으로 적을 약화시킨 다음에 해상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접촉보고를 받자마자 제3항공부대에게 주대에서 떨어져 나가 항공공격을 가하라고 명령하고 주대는 타격부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오전 9시 5분에는 제22항공전대의 육상공격기에게 공격명령이 떨어졌고, 오전 10시 5분에는 주대에서 북동쪽에서 80km 떨어진 해상을 항진하던 주력 선단과 제2호위대가 북쪽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전 10시 20분에 250kg 짜리 폭탄 1발과 60kg짜리 폭탄 4발을 장비한 류조의 97식함상공격기 4대가 날아와 엑서터를 공격했다. 플로렌스해 전투를 경험한 타격부대의 대응은 확실히 좋아졌다. 함정들은 교묘하게 기동하여 조준을 방해했으며 대구경 대공포들은 일본기를 고공으로 몰아내어 정확한 폭격을 막았다. 엑서터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어서 원산항공대의 96식육상공격기 23대가 폭격을 가했다. 명중탄은 없었으나 지근탄으로 인하여 구축함 바커와 벌머의 함체 철판이 벌어져 침수가 일어났다.

오전 11시 30분에는 250kg 짜리 폭탄 1발과 60kg짜리 폭탄 4발을 장비한 류조의 97식함상공격기 7대가 다시 엑서터를 공격했다. 이번에도 명중탄은 없었으나 캐터펄트에 있던 왈루스 수상기가 지근탄에 피해를 입어 비행이 불가능해졌다.

아직도 일본함대와의 거리는 130km 에 가까웠다. 도먼 제독은 일본함대가 전투를 회피하면서 공습으로 타격부대를 약화시키려는 속셈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타격부대가 일본선단에 피해를 입힐 기회는 없었다. 오후 12시 42분에 도먼 제독은 작전을 중단하고 탄종프리옥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퇴각하는 타격부대를 일본기가 계속 괴롭혔다.

쿠안탄을 이륙한 미호로 항공대의 96식육상공격기 27대가 오후들어 처음으로 공격했으나 타격부대는 적절한 회피와 대공포화로 피해를 면했다.
류조를 이함한 97식함공격기 6대가 오후 3시 29분에, 7대가 오후 4시 30분에 다시 엑서터를 공격했으나 역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오후 7시에는 97식함상공격기 6대가 드루이터를 공격했으나 역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가노야 항공대의 1식육상공격기 17대가 폭격했으나 역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타격부대에게 2월 15일은 무척 힘든 하루였다. 아군의 항공엄호가 없는 상황에서 승조원들은 일본함대는 보지도 못한 채 하루종일 고속으로 미친듯이 변침을 반복하면서 일본기에게 쫓겨다녔다. 그나마 플로렌스해 전투의 경험 덕분에 적이 투입한 항공전력의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그러나 일본선단을 막을 희망이 사라지면서 수마트라 함락은 확정되었다.

15일 오후 2시 50분에 육군 주력을 실은 일본선단은 다시 남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팔렘방은 15일 저녁에 함락되었으며 18일에는 제3비행집단의 주력이 팔렘방 비행장에 진출했다. 이제 일본은 자바에서 지척인 곳에 비행장을 확보했으며 다음날인 19일부터 자바서부에 대한 항공격멸전을 시작했다.

일본기에 시달리면서 남하한 타격부대는 2월 16일 아침에 탄종프리옥에 도착했으나 항구가 너무 붐벼서 모두 입항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순양함 4척(드루이터, 트롬프, 엑세터, 호바트)과 상처를 입은 구축함 바커와 벌머만 오전 9시 52분에 입항했다. 순양함 자바, 네덜란드구축함 코테네어와 피에타인, 미국구축함 존D.에드워즈, 패럿, 필즈베리, 그리고 스튜어트는 수마트라 남쪽에 있는 반다르람풍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연료보급을 받았다. 일본군이 수마트라에 상륙하면서 반다르람풍은 수마트라로부터의 탈출거점이 되어 있었으며 조만간 폐쇄될 예정이었다.

수마트라가 일본군 손에 넘어가면서 벨리퉁섬에 파견된 병력을 철수시켜야 했는데 헬프리히 제독은 내키지 않는 이 임무에 최소한의 전력만을 투입했다. 수송선 슬롯반더빌이 구축함 반네스의 호위 아래 벨리퉁섬으로 파견되었다. 이 미니선단은 벨리퉁섬에 무사히 도착하여 병력과 주민 다수를 싣고 17일 아침에 출항했다. 그러나 17일 오후에 모가미의 수상기가 이들을 발견했다.

17일 오후 2시 45분에 원산항공대의 96식육상공격기 15대가 날아와 슬롯반더빌을 폭격했다. 슬롯반더빌은 명중탄 여러 발을 얻어맞고 5분 만에 침몰했다. 3시 27분에는 류조를 이함한 97식함상공격기 10대가 반네스를 공격했다. 반네스는 미친듯이 구조요청을 발신하면서 도망다녔으나 오후 5시에 폭탄 3발을 연속으로 얻어맞고 2개로 쪼개져 순식간에 침몰했다. 반네스의 승조원 154명 중 68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고 86명이 구조되었는데 이중 52명은 음식이나 식수도 없이 92시간을 바다에서 떠돌다가 도르니에 Do-24비행정에 구조되었다. 반네스는 항해 중에 일본항공모함에 의하여 격침된 최초의 연합군 함정이다.
슬롯반더빌의 탑승자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짐작할 뿐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살아남은 인원은 272명으로 대부분 네덜란드해군항공대가 구조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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