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ABDA타격부대

발릭파판 해전의 승리로 수상함대가 일본군의 남진을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하트 제독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트 제독은 내친 김에 미국과 네덜란드 함정으로 이루어진 ABDA타격부대(ABDA Strike Force)를 만들겠다고 제안하여 웨이벌 장군의 동의를 얻었다. 타격부대는 미국중순양함 휴스턴, 네덜란드 경순양함 드 루이터와 트롬프, 미국경순양함 마블헤드, 그리고 미국구축함 스튜어트, 에드워즈, 바커, 벌머, 폴 존스, 휘플, 필즈베리, 그리고 네덜란드 구축함 피에타인, 방커트, 반겐트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하트 제독은 2월 2일에 ABDA타격부대 구성을 위하여 헬프리히 제독, 글래스포드 제독, 그리고 영국해군의 콜린스 제독을 불러 렘방에서 회의를 열었다. 타격부대 사령관의 인선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함정 대부분이 아시아함대 소속인만큼 미해군인 글래스포드 제독을 임명하는 것이 무난한 선택일 수 있었으나 하트 제독은 글래스포드 제독이 발릭파판 해전을 전후하여 보여준 전술적 능력에 실망했다. 게다가 ABDAFLOAT 사령관 자리를 하트 제독에게 뺏긴 후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헬프리히 제독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네덜란드해군의 카럴 도먼 소장이 타격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도먼 제독은 네덜란드 해군 내에서 유능하고 인품도 훌륭한 제독으로 존경받고 있었으며 하트 제독은 그가 ABDAFLOAT 의 모든 제독을 통틀어 전술적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헬프리히 제독이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사이의 카리마타 제도에 일본군이 있다는 보고를 듣고 도먼 제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함대를 그곳으로 파견하는 바람에 2월 4일이 되어야 연합타격부대가 집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해군은 이 보고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만일 헬프리히 제독이 문의했다면 알려줄 수 있었으나 헬프리히 제독은 묻지 않았다.

2월 3일에 수라바야가 폭격을 당하는 동안 ABDA연합타격부대는 수라바야 동쪽 해상에서 집결 중이었다. 당시 집결한 함정은 ABDACOM이 만들어진 이래 최대 규모로서 중순양함 휴스턴, 미국경순양함 마블헤드, 네덜란드 경순양함 2척(드 루이터, 트롬프), 미국구축함 7척( 스튜어트, 에드워즈, 바커, 벌머, 폴 존스, 휘플, 필즈베리), 그리고 급유함 페코스였다.

카럴 도먼 제독의 기함인 드 루이터는 수마트라급 경순양함의 후계함으로 6인치 주포를 폐쇄식 연장포탑에 달아 함체의 중심선을 따라 배치함으로써 당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건조비 절감을 위하여 수마트라급에 비하여 배수량을 800톤 가까이 깎고 주포도 전방에 2문, 후방에 4문, 합계 6문으로 줄였다. 네덜란드 해군이 화력이 약하다면서 반발하자 전방에 6인치 단장포 1문을 증설했으나 여전히 6인치 주포 7문으로 수마트라급의 10문보다 적었다.  게다가 어뢰도 없었기 때문에 드 루이터는 경순양함 중에서 약체였다. 차라리 배수량이 3,800톤 밖에 안되지만 6인치 주포 6문과 어뢰 6발을 가지고 있던 트롬프가 드 루이터보다 강력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네덜란드 경순양함 드 루이터. https://en.wikipedia.org/wiki/HNLMS_De_Ruyter_(1935)

 

2월 3일 오후 1시 50분에 말랑을 폭격하고 돌아가던 제1항공대 소속의 일본기가 마두라 해협에서 연합타격부대를 발견했다. 제11항공함대사령장관 츠카하라 니시조 중장은 다음날인 4일에 모든 육상공격기를 동원하여 적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월 4일 0시가 막 지났을 때 연합타격부대는 마카사르 해협 남쪽에 집결 중인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하트 제독의 명령에 따라 집결지를 출발하여 15노트의 속력으로 동쪽으로 항진했다. 급유함 페코스는 폴존스, 휘플, 필즈베리의 보호를 받으면서 후방에 머물렀다.

연합타격부대는 오전 5시에 마두라 해협과 발리 해협이 만나는 카랑마스 등대 앞바다에서 네덜란드 구축함 3척(피에타인, 방커트, 반겐트)과 합류했다. 여기서 연합타격부대는 순항진으로 바꾸었다. 순양함들은 기함 드 루이터를 필두로 휴스턴, 마블헤드, 트롬프의 순서로 약 640m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섰다. 구축함들은 순양함렬의 좌우에서 호위했는데 미국구축함들은 앞쪽에, 네덜란드 구축함들은 뒷쪽에 자리했다. 도먼 제독은 침로를 거의 동쪽인 87도로 잡았는데 가급적 켄다리와 수라바야를 잇는 일본기의 공격 항로에서 멀리 벗어나 일본기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는 생각이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2월 4일 오전 9시 35분에 37대의 일본쌍발폭격기가 켄다리를 이륙했다는 보고가 도먼 제독에게 들어왔다. 도먼 제독은 이 폭격기들이 수라바야로 향하기를 바랬으나 헛된 희망이었다. 그는 모르고 있었으나 전날밤에 켄다리를 이수한 일본군 도고항공대 소속 대형비행정 2대와 그날 새벽에 발릭파판 및 켄다리에서 정찰차 이륙한 육상공격기 2대가 잇달아 타격부대를 발견하고 보고했다.
오전 9시 49분에 케인지언 제도 남쪽 30km 해상에서 휴스턴이 1,700m 고도로 접근하는 수상한 비행기를 발견하고 경보를 발했다. 도고항공대의  비행정이었다.  잠시 후 가노야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27대와 다카오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9대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뒷쪽에서는 제1항공대의 96식육상공격기 24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켄다리2 비행장에 전개한 육상공격기들이었다.

곧 타격부대에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졌고 보일러가 미친듯이 증기를 뿜어 함정들을 최대 속력으로 증속시켰다. 당시 타격부대는 공습에 대항하는데 있어 3가지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2개는 시대적 한계로 인한 것이었다.

첫째는 공격해오는 적의 항공기를 저지하는데 대공포의 위력이 과대평가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과대평가는 프린스오브웨일스와 리펄스의 격침으로 허구임이 드러났지만 전훈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둘째는 함대가 공습을 당할 경우 분산한다는 전술이었다. 이러한 분산을 통하여 회피기동할 공간을 확보하고 적 항공기 세력의 분산을 강요하여 공격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적 항공기가 가벼운 저항을 받으면서 중요한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만 늘려 주었다. 실제로 이때도 일본기들은 구축함은 무시하고 순양함만 집중공격했다. 미해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습을 받으면 흩어지지 않고 원형진을 유지하면서 대공화력을 집중시켜 대항하는 전술로 바꾸었다.

세번째 약점은 오전 9시 58분에 휴스턴의 5인치 대공포 4문이 접근하는 일본기에게 발사했을 때 드러났다. 4발 중 1발만이 폭발했으며 두번째 사격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포수들은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으나 사실 휴스턴의 함장 앨버트 룩스 대령과 포술장 아서 메이허 중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메이허 중령은 몇달 전에 미본토 서해안의 해군기지에서 실시한 훈련에서 휴스턴이 가진 것과 같은 시기에 생산된 5인치 대공포탄의 75%가 불발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생산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오랜 기간 보관하면서 부식된 것이었다. 메이허 중령의 보고를 받은 룩스 대령은 즉시 실탄훈련을 하겠다고 상부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해군부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실탄훈련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룩스 대령은 새로 생산된 5인치 대공포탄의 공급을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미처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이 터졌다. 승조원의 사기 저하를 염려한 함장과 포술장은 이 우울한 소식을 자신들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첫 공격은 마블헤드가 받았다. 오전 10시 10분에 다카오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9대와 가노야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9대가 마블헤드를 노리고 4,300m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함장 아서 로빈슨 대령은 고속으로 달리면서 급격한 변침을 거듭함으로써 적의 조준을 방해하는데 성공했다. 명중탄은 없었으며 가장 가까운 폭탄이 함수에서 왼쪽으로 90m 빗겨난 해상에 떨어진 것이었다. 이탈하던 다카오 항공대의 육상공격기 중 하나가 대공포에 맞아 점점 고도가 떨어지더니 마블헤드에 자폭하려고 달려들었다. 일본기가 접근하자 마블헤드의 12.7mm 기관총이 불을 뿜어 몇발을 기수 부근에 명중시켰다. 이때 조종사가 사살되었는지 일본기는 갑자기 통제를 잃고 뒤집어져  마블헤드의 함수에서 좌현으로 900m 떨어진 해상에 추락했다.

비슷한 시각 휴스턴도 가노야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9대로부터 폭격을 받았으나 명중탄은 없었다. 폭탄 2발이 함체 좌우로 불과 3m 떨어진 곳에 떨어져 물기둥이 함교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나 함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10시 27분에 가노야 항공대의 1식 육상공격기 9대가 다시 마블헤드를 공격했다. 로빈슨 함장의 급격한 변침에도 불구하고 마블헤드는 2발의 명중탄과 1발의 지근탄을 맞았다.
1발은 우현에서 3m 떨어진 함체 전방에 명중했다. 폭탄은 구명정을 부수고 갑판을 뚫은 다음 사관실에서 불과 5m 후방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사관실과 의무실이 부서졌으며 통풍관이 구부러지고 화재가 일어났다. 1발의 명중탄으로 함의 지휘부가 몰살당하는 걸 막기 위하여 로빈슨 함장의 명령에 따라 함교를 떠나 사관실에서 대기하던 부장 윌리엄 고긴스 중령은 파편에 목이 다치고 팔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으나 후송을 거부하고 현장에서 보수작업을 지휘했다.
다른 1발은 좌현에서 1m 떨어진 함미갑판에 명중했다. 이 폭발로 조타실 요원이 모두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며 마블헤드의 키가 왼쪽으로 잔뜩 꺾인 채로 고정되어 버렸다.
함수 바로 왼쪽에 떨어진 지근탄 또한 큰 피해를 입혔다. 폭발의 충격으로 함수 부근의 용골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철판이 벌어져 침수가 일어났다.

마블헤드의 상태는 심각했다. 비록 2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으나 함체에는 불이 났고 오른쪽으로 10도 기울어진 채 중유를 줄줄 흘리면서 물을 잔뜩 머금은 함수를 중심으로 좁은 원을 그리며 뱅뱅 돌았다. 트롬프는 마블헤드가 곧 침몰할 것으로 보고 구조를 위하여 접근했다. 이날 마블헤드의 사망자는 15명, 중상자는 34명이었다.

그러나 로빈슨 함장은 마블헤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며 미해군의 보수 능력은 정평이 나 있었다. 마블헤드의 보수반은 오전 11시까지 화재를 잡았다. 함수의 침수는 막을 수 없었으나 최소한 비슷한 속도로 물을 퍼낼 수는 있었다.
문제는 왼쪽으로 잔뜩 꺾인 채 고정되어 버린 키였다. 이 상태로는 오른쪽 기관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왼쪽 기관을 최대 출력으로 올려도 직진이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키를 풀어야만 했는데 폭탄에 맞아 전원이 죽거나 중상을 입은 조타실은 함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장 고긴스 중령이 목에 부상을 입어 피를 철철 흘리고 팔다리에는 심한 화상을 입어 껍질이 벗겨진 상태로 보수반을 이끌고 조타실까지 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고긴스 중령이 함교로 가서 조타실의 상황에 대해 보고하자 그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 로빈슨 대령은 노고를 칭찬한 다음 즉시 사령탑에 마련된 임시 의무실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수관이 부장 직위를 대행했다.
그동안 고긴스 중령이 조타실에 남겨두었던 보수반원들은 키를 고정하고 있던 유압파이프의 기름을 빼고 키의 톱니바퀴에 쇠사슬을 걸어 끌어당김으로서 왼쪽으로 완전히 꺾여있던 키를 왼쪽으로 9도 꺾인 상태까지 푸는데 성공했다. 이제 로빈슨 함장은 좌우 프로펠러의 회전 속력을 조절함으로써 함정의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되었고 마블헤드는 살아남았다.

 

 CL-12 마블헤드. https://en.wikipedia.org/wiki/USS_Marblehead_(CL-12)

 

마블헤드가 침몰을 면한 이유는 뛰어난 보수능력 덕분이지만 보수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일본군의 추가 공격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현장에 늦게 도착한 제1항공대는 마블헤드가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하여 다른 순양함들을 공격했다.

오전 11시 4분에 제1항공대의 96식 육상공격기 1개 중대가 마블헤드 상공에 나타났으나 마블헤드를 무시하고 17분에 휴스턴을 폭격했다. 휴스턴은 또다시 협차를 당했으나 명중탄은 없었다.

11시 26분에 나타난 제1항공대의 1개 중대도 마블헤드를 무시하고 드루이터를 폭격했다. 함장 유진 라콤블 대령은 기민한 조함으로 피했다.

11시 40분에 마지막으로 제1항공대의 96식 육상공격기들이 휴스턴 상공 4,300m 높이에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가로지르면서 폭탄을 떨어뜨려 1발을 명중시켰다. 폭탄은 메인마스트와 3번 포탑 사이에 떨어졌다. 3번 포탑이 후방을 향하고 있었으면 폭탄은 두꺼운 포탑 지붕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포탑들이 좌현으로 회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떨어졌다. 갑판에 직경 3.6m에 달하는 구멍이 뚫리면서 그 밑에 있던 후방 보수반원들이 몰살당했고, 파편이 포탑의 약한 옆면을 뚫고 들어가 포수들과 포탑 아래 조작실(handling room)의 인원들을 살상하고 장약에 불을 붙여 맹렬한 화재가 일어났다.

포술장 메이허 중령은 불붙은 3번 포탑으로 달려가 보수반원들을 이끌고 화재와 싸웠다. 3번 포탑 아래의 탄약고에서 근무하던 부사관은 폭탄이 명중하자 재빨리 부하들을 탄약고 밖으로 내보낸 다음 탄약고 문을 닫고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유폭을 막았다. 그동안 보수반원들이 무섭게 타오르던 3번 포탑의 불길을 잡는데 성공함으로써 휴스턴은 살아남았다. 휴스턴의 전사자는 48명, 부상자는 20명이었다.

이제 작전 속행은 불가능했다. 도먼 제독은 오후 12시 25분에 타격부대에게 작전을 중단하고 수라바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폭탄을 맞은 마블헤드와 휴스턴의 상황을 보고받은 도먼 제독은 오후 2시 15분에  수리를 위하여 일본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칠라찹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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