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릭파판 해전(1) - 접근

1942년 1월 11일에 일본해군의 공수부대인 요코스카제1특별육전대가 북부 셀레베스의 마나도를 점령했으며 이어서 사세보연합특별육전대가 마나도와 케마에 상륙했다. 그러자 ABDAFLOAT 사령관 하트 제독은 일본군의 다음 목표가 셀레베스 남동부에 있는 중요한 항구인 켄다리란 걸 알고 켄다리 공격을 늦추기 위하여 케마에 집결한 일본선단을 공격하기로 했다.

하트 제독의 명령을 받은 아시아함대의 수상함정들 - 경순양함2척(보이시, 마블헤드)과 구축함 6척(존 D. 포드, 포프, 패럿, 폴존스, 필즈베리, 벌머) - 이 티모르섬 쿠팡 앞바다에 모였다. 하트 제독은 이 부대를 제5기동부대로 명명하고 윌리엄 글래스포드 소장을 사령관으로 삼았다.

글래스포드 소장의 계획은 단순했다. 케마 정박지에는 야간에 구축함 5척과 마블헤드가 돌입할 것이었다. 구축함은 일렬로 돌입하면서 한쪽 어뢰를 발사하고 돌아나오면서 반대쪽 어뢰를 발사한 다음 철수할 것이었다. 글래스포드 소장이 승좌한 마블헤드는 이어서 돌입하여 어뢰공격을 가한 다음 추격하려는 일본함정을 6인치 주포 12문으로 견제하면서 철수할 것이었다. 신형 6인치 속사포 15문을 가진 보이시는 필즈베리의 엄호를 받으면서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공격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로 했으며 만일 공격부대가 일본수상함대와 본격적인 전투에 휘말리면 달려가서 가세할 것이었다.

급유를 마친 제5기동부대는 1월 16일에 쿠팡 앞바다를 떠나 케마를 향하여 마카사르 해협을 북상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7일에  케마 지역을 정찰한 미국잠수함 파이크와 퍼밋이 일본선단이 떠났다고 보고했다. 작전은 취소되었으며 제5기동부대는 티모르 북쪽 해상으로 돌아와서 급유를 받았다. 돌아오는 도중 마블헤드의 터빈 하나가 고장나는 바람에 35노트인 최고속력이 28노트로 줄어들었으며 글래스포드 소장은 사령기를 보이시로 옮겨 달았다. 티모르 북쪽 해상의 정박지에는 구축함 존D 애드워즈와 휘플이 먼저 도착해 있었으며 이어서 중순양함 휴스턴이 구축함 알덴 및 엣솔과 함께 도착함으로써 잠시동안이나마 제5기동부대는 막강해졌다. 

그러나 함정들은 곧 흩어져야 했다. 우선 휴스턴, 존 D. 에드워즈, 휘플이 수라바야로 향하는 선단호송을 위해 떠났으며 이어서 알덴과 엣솔이 급유를 마친 급유함 트리니티를 다윈으로 호송했다. 엣솔은 다윈으로 향하던 중 1월 23일에 클라렌스 해협에서 일본잠수함 I-123에게 폭뢰공격을 가했다가 얕은 해저에서 반사된 충격파에 의하여 후방 함체와 추진기에 피해를 입었다. 이로써 속력이 떨어진 엣솔은 이후 호송임무에만 투입되었다.

1월 20일에 네덜란드군 정보기관으로부터 타라칸의 일본선단이 곧 남하할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왔다. 하트 제독은 미국잠수함 S-36, 포퍼스, 피커렐과 스터전에게 마카사르 해협으로 나아가 일본선단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S-36은 북상하다가

1월 20일에 마카사르시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타카바캉 산호초에 좌초하여 함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잠수함 스피어피시, 소리, S-40은 발릭파판으로 직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헬프리히 제독도 네덜란드잠수함 K-ⅩⅣ 와 K-ⅩⅧ 에게 발릭파판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쿠팡 앞바다에서 대기 중이던 제5기동부대도 발릭파판으로 나아가 일본선단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경순양함 2척(보이시, 마블헤드)과 구축함 6척(존D.포드, 포프, 패럿, 폴존스, 필즈베리, 벌머)으로 이루어진 제5기동부대의 공격계획은 이전과 같았다. 즉 구축함 5척과 마블헤드가 야간에 정박지에 돌입하여 어뢰공격을 가하고 보이시는 벌머와 함께 후방에서 철수를 엄호하는 것이었다.

제5기동부대의 계획은 플로렌스 해로 진입하기도 전에 어긋나기 시작했다. 동료 함정과 함께 쿠팡 앞바다를 떠나 북상하던 보이시는 1월 21일에 숨바와섬과 코모도섬 사이의 사페 해협 초입에 있는 켈라파섬 부근에서 해도에도 없는 산호에 부딪혔다. 당시 영어로 기입된 해도는 만들어진지 100년이 넘었는데 이 지역의 산호는 1년에 15cm씩 자랐다. 네덜란드해군은 정확한 해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미해군은 네덜란드어를 몰랐다. 대신 미함정이 요청하면 도선사를 파견해 주기로 했는데 이때 네덜란드해군은 도선사가 없다면서 파견을 거부했다. 하트 제독은 일부러 파견해 주지 않았다고 의심했는데 헬프리히 제독의 평소 행동을 보아 가능성은 있지만 증거는 없다.

보이시의 상태는 심각했다. 좌현 수선하 함체에 37m 에 달하는 긴 상처가 생겼고 벌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와 기계를 침수시켰으며 축전기 하나에는 산호가 들어찼다. 결국 보이시는 칠라찹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인도 봄베이의 건선거에 들어가야 했으며 최종적으로 미본토 서해안의 메어아일랜드 해군조선소에서 수리를 마치고 6월 22일에야 일선에 복귀했다.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CL-47 보이시. https://en.wikipedia.org/wiki/USS_Boise_(CL-47)

 

이로써 보이시는 동남아시아의 연합군 함정을 덮친 잔인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보이시의 탈락으로 ABDAFLOAT는 전력이 크게 감소했다. 10,000톤의 배수량을 가지고 6인치 속사포 15문을 장비한 보이시는 중순양함인 휴스턴, 엑서터와 함께 ABDAFLOAT에서 가장 강력한 함정 중 하나였으며 동남아시아의 연합군 함정 중 유일하게 수상탐색레이더를 장비한 함정이었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사령기를 마블헤드로 옮겨달았으며 다음날인 22일에 보이시는 남은 중유를 마블헤드에 급유한 다음 필즈베리의 호위를 받으면서 칠라찹으로 향했다. 

이때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마블헤드는 18일에 터빈이 고장나서 최고속력이 28노트로 줄어들었는데 터빈의 상태가 더 나빠져 최고속력이 15노트로 줄어든 것이었다. 이제 공격작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글래스포드 소장은 마블헤드에 승좌한 상태로 벌머와 함께 수라바야로 향했다. 제59구축함분대장 폴 탤벗 중령이 지휘하는 구축함 4척(존 D. 포드, 포프, 패럿, 폴존스)은 셀레베스 남서쪽의 포스틸리온 제도(오늘날 사발라나 제도)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동안 일본측에서는 발릭파판을 공격할 사카구치 지대를 실은 수송선 16척이 제1 호위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21일 오후 5시에 타라칸을 출항했다. 제1호위대는 경순양함 나카, 구축함 9척, 소해정 4척, 구잠정 3척, 초계정 3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2일 하루동안 하트 제독에게는 일본선단의 남하를 알리는 보고가 잇달아 들어왔다.  미국잠수함 파이크는 수송선 26척과 구축함 14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이 발릭파판으로 접근 중이라고 보고했다. 미국잠수함 스터전은 22일 오전에 접촉보고를 발한 후 23일 0시 5분에 일본선단에 접근하여 어뢰 4발을 발사했다. 스터전의 승조원들은 잠시 후 폭발음을 들었으며 0시 40분에 일본구축함이 달려와 폭뢰 6발을 떨어뜨렸으나 무사히 빠져나왔다. 함장 윌리엄 라이트 소령은 적의 항공모함 1척을 격침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날 일본군이 잃은 배는 없었다. 스터전이 공격한 함정은 일본구축함 우미카제였으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사총서에 따르면 스터전의 어뢰 중 3발은 우미카제의 함저를 스쳐 지나갔고 1발은 함수 쪽으로 빗나갔으며 탄두가 폭발했다는 기록은 없다.

네덜란드 공군도 공격에 나섰다. 마침 23일에는 타라칸 상공의 날씨가 나빠서 제로기가 뜨지 못하는 바람에 일본선단의 상공은 비어 있었다. 사마린다를 출격한 네덜란드군의 B-10 쌍발폭격기 3대가 23일 오전 10시 50분에 일본선단을 공습했으나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오후 12시 20분에는 제10초계비행단의 카탈리나 1대가 일본선단의 남쪽에 나타나 45분 동안 정찰하다가 사라졌다. 이 카탈리나는 수송선 9척, 순양함 4척, 구축함 14척으로 이루어진 선단이 발릭파판으로 접근 중이라고 보고했다. 오후 4시 20분에는 네덜란드군의 B-10 쌍발폭격기 9대가 일본선단을 폭격하여 탄약을 운반하던 일본해군의 운송선 타츠가미마루에 소형폭탄 1발을 명중시켰다. 사마린다를 출격한 네덜란드공군의 B-10 쌍발폭격기 9대는 오후 7시 30분에 다시 일본선단을 공습하여 제11항공함대의 운송선인 6,764톤짜리 나나마루의 후방 선체에 폭탄을 명중시켰다. 나나마루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났으며 결국 일본군은 나나마루를 포기해야 했다. 

마틴 B-10 쌍발폭격기. https://en.wikipedia.org/wiki/Martin_B-10

 

이러한 저항도 일본선단의 항진을 막지는 못했다. 별동대가 먼저 진입하여 23일 오후 10시 30분에 상륙부대를 발진시켰으며 일본선단의 주력은 23일 오후 9시부터 정박지에 진입하기 시작하여 오후 11시 30분까지 투묘를 마쳤다.

한편 하트 제독은 제5기동부대를 사용하여 발릭파판의 일본군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23일 오후 12시 5분에 발리섬의 남동쪽 해상을 항진하던 마블헤드 함상의 글래스포드 제독과 포스틸리온 제도에서 대기하던 제59구축함분대장 탤벗 중령에게 발릭파판의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하트 제독의 명령이 동시에 떨어졌다. 작전은 케마의 경우와 같았다. 구축함 4척으로 이루어진 탤벗 중령의 제59구축함분대는 야간에 일렬로 정박지에 돌입하여 어뢰공격을 가하고 빠져나올 것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속력이 떨어진 마블헤드는 정박지에 돌입하지 않고 벌머와 함께 발릭파판 남쪽 해상에서 대기하면서 제59구축함분대의 퇴각을 엄호한다는 점이었다.

 

 발릭파판해전 접근 및 철수상황. History of U.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Vol. I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April 1942 P.286

하트 제독의 명령서를 읽던 탤벗 중령은 적의 호위함정이 순양함 2척, 구축함 8척이라는 정보보고를 보자 "맙소사" 라는 말이 저절로 새어나왔으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탤벗 중령은 심한 치질로 의자에도 제대로 앉지 못하고 빈혈로 고생하고 있었으나 1898년의 미서전쟁 이후 최초로 미해군의 해상전투를 지휘하게 되자 투지를 불태웠다.

탤벗 중령의 구축함들은 낮에는 북동쪽으로 항진했다. 일본정찰기에게 들켰을 경우 셀레베스의 마나도만으로 향한다고 믿게 하려는 의도였으나 일본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23일 오후 7시 30분에 함열이 셀레베스 서해안의 만다곶에 접근하자 탤벗 중령은 침로를 310도로 바꾸어 27노트의 고속으로 발릭파판을 향했다.

존 D. 포드에 승좌한 탤벗 중령은 변침 직후 발광신호로 나머지 구축함에 명령을 내렸다.

"주무기는 어뢰다. 주표적은 수송선이다. 순양함은 임무 수행에 필요한 경우에만 공격하라. 들키기 전에 최대한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하도록 노력하라... 어뢰는 일제발사로 쏘되 1척당 1발의 어뢰가 명중하도록 각도를 조절하라.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는 교전을 회피하라... 표적을 확인한 후에는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공격하라. 어뢰를 모두 발사한 후에는 포격을 가하라. 주도권을 쥐고 단호하게 공격하라." 

잠시 후 함열은 폭풍우 속으로 뛰어들었다. 산더미같은 파도에 시달리던 함열이 폭풍우를 벗어난 것은 24일 0시가 막 지났을 때였다. 함열이 발릭파판에 접근하자 불타는 유전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해상을 뒤덮고 있었으며 멀리서 일렁이는 불빛이 발릭파판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은 불타는 나나마루의 불꽃이 낮게 깔린 구름에 반사된 것이었다. 나나마루는 뜻하지 않게 미국구축함들에게 등대 노릇을 했다.

발릭파판을 공격한 사카구치 지대의 사카구치 시즈오 소장은 석유시설을 피해없이 점령하고 싶었다. 그는 타라칸에서 포로로 잡힌 네덜란드 장교 2명에게 친서를 들려 작은 배에 태운 다음 20일 오후에 발릭파판 부근에 상륙시켰다. 발릭파판의 네덜란드군 사령관에게 보내는 친서에서 사카구치 소장은 석유관련 시설을 파괴하지 말라면서 만일 파괴하면 처형하겠다고 경고했으나 역효과만 났다. 네덜란드군은 비록 병력이 모자라고 무기도 빈약했으나 용기는 부족하지 않았다. 협박을 받은 네덜란드군 사령관은 강경한 내용의 답신을 보낸 다음 유전, 석유탱크, 정유공장 등 석유관련 시설을 모조리 파괴했으며 실제로 일본군은 발릭파판 점령 직후 78명의 네덜란드군을 처형했다. 이때 네덜란드군이 파괴한 석유시설에서 나온 연기는 바다로 30km 이상 퍼져나가 미국구축함들이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미국구축함들이 발릭파판으로 접근하는 동안 네덜란드잠수함 K-ⅩⅧ이 먼저 공격했다. 함장 카렐 반 웰 그뢴벨트 중령은 바다가 거칠어져 잠망경으로 수색이 어려워지자 대담하게 부상하여 발릭파판 정박지에 잠입했다. 폭풍우와 해상에 깔린 연기가 일본견시의 날카로운 눈으로부터 K-ⅩⅧ를 지켜주었다. 그뢴벨트 중령은 제4수뢰전대의 기함인 경순양함 나카를 발견하고 접근하여 24일 0시 40분에 어뢰 4발을 발사했다. 좌현 함수쪽에서 다가오는 어뢰의 항적을 발견한 나카가 재빨리 피하면서 어뢰는 모두 빗나갔으나 1발은 병력수송함 쓰루가마루에 명중하여 총원이 퇴거했다. 그제서야 잠수함의 존재를 알아차린 제4수뢰전대는 정박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으나 K-ⅩⅧ을 찾지 못했다. K-ⅩⅧ은 이어서 일본수송선 주카마루를 격침하고 다시 제37호초계정에 어뢰 1발을 명중시켜 대파했다. 이후 미국구축함이 정박지에  침투하자 K-ⅩⅧ은 오인사격을 피하기 위하여 활동을 멈추고 잠항한 채로 잠망경으로 미국구축함의 공격상황을 지켜보았다. K-ⅩⅧ은 24일 아침에 제12호구잠정으로부터 폭뢰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으나 무사히 탈출하여 수라바야로 돌아갔다.

잠수함이 정박지에 침투하자 제4수뢰전대사령관 니시무라 쇼지 소장은 정박지 경계 구역을 조정하여 제4수뢰전대의 담당구역을 바깥쪽으로 확대했다. 따라서 미국구축함이 정박지에 들이닥쳤을 때 경순양함 나카와 구축함 9척(유다치, 사미다레, 하루사메, 미네구모, 나츠구모, 야마카제, 스즈카제, 가와카제, 우미카제)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제4수뢰전대는 외곽 경계를 맡느라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렇게 K-ⅩⅧ은 발릭파판 해전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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