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잠작전

ABDA사령부의 보급항은 호주 북서부의 다윈항이었다. 보급품과 병력은 일단 다윈항에 도착한 후 다시 ABDA 지역으로 향했으므로 일본이 다윈항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42년 1월 11일에 미육군 수송선 리버티글로가 롬복 해협 남서쪽 16km 해역에서 일본잠수함 I-166 으로부터 뇌격을 받았다.  미국구축함 폴존스와 네덜란드구축함 반겐트가 예인했으나 결국 항구까지 가지 못하고 발리 해안에 좌초시켰다.

이어서 일본잠수함들이 기뢰를 깔기 시작했다. I-121과 I-122가 반디에멘만과 티모르해 사이를 잇는 클라렌스 해협에, 우에노 도시타케 소좌가 지휘하는 I-123이  분다스 해협에 기뢰를 깔았다.

기시가미 고이치 소좌가 지휘하는 I-124는 다윈항 바로 바깥에 기뢰를 깔았다. 1월 19일에 기시가미 소좌는 다윈항에 접근하는 소규모 선단을 발견하고 도쿄에 보고했는데 이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연합군 암호해독가들이 통신내용을 해독하여 다윈항 앞바다에 일본잠수함이 있다는 경고를 발했다.

경고를 받은 다윈항의 해군사령관 어니스트 토머스 대령은 호주 코르벳함 델로레인, 리스고우, 그리고 카툼바를 파견했다. I-124는 오후 1시 35분에 델로레인을 발견하고 어뢰를 쏘았으나 오른쪽으로 급선회하여 피했다. 델로레인은 오후 1시 43분에 소나로 I-124의 위치를 확인하고 폭뢰공격을 가했으며 5분 후에 다시 공격했다. 수심이 얕은 바다에서 폭뢰공격을 당한 I-124는 피해를 입고 바닥에 가만히 앉아 델로레인이 떠나기를 기다렸으나 델로레인은 계속 폭뢰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오후 3시에 델로레인의 폭뢰가 떨어졌으나 이미 리스고우가 현장에 도착한 이후였으며 잠시 후 카툼바가 도착했다. 이어서 미국구축함 엣솔과 알덴, 그리고 제10초계비행단의 카탈리나 2대와 랭글리의 킹피셔 수상기 1대도 사냥에 끼어들었다. 이들은 21일 오후에 해상이 거칠어져 철수할 때까지 부근 해저를 폭뢰로 도배했으며 I-124는 다시는 떠오르지 못했다. I-124는 호주해군에 의하여 격침된 최초의 일본군함이자 호주해역에서 격침된 최초의 일본함정이었다.

 

호주 코르벳함 델로레인. https://en.wikipedia.org/wiki/HMAS_Deloraine

 

영국함정도 사냥에 합세했다. 영국구축함 주피터는 1월 17일에 크라카타우 화산의 잔해인 아낙 크라카타우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해역에서 일본잠수함 I-60을 소나로 접촉한 후 폭뢰공격을 가했다. 피해를 입은 I-60이 주피터의 바로 뒤에 떠올랐는데 거리가 가까워서 주피터의 주포가 겨냥할 수 없었다. 주피터가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는 동안 I-60의 승조원이 12cm 갑판포로 주피터의 4.7인치 A연장포탑에 1발을 명중시켜  전사자 3명과 부상자 9명을 기록했다. 주피터는 20mm 기관포로 반격하면서 어뢰 2발을 쏘았으나 빗나갔다. 잠시 후 거리를 충분히 벌린 주피터의 4.7인치 주포가 불을 뿜자 I-60은 여러 발의 명중탄을 맞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피터는 달려들어 얕은 심도로 맞춘 폭뢰 1발로 숨통을 끊은 다음 수리를 위하여 수라바야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잠작전으로는 남하하는 일본군을 막기는 커녕 진격을 늦출 수도 없었다. 하트 제독은 가용한 모든 함정을 선단호송에 투입하려는 웨이벌 장군의 방침을 거부했다. 그는 선단호송을 위하여 아시아함대의 수상함정을 자바 서부나 싱가포르 방면으로 보내지 않고 자바 동부에 유지하면서 남하하는 일본선단을 요격하려 했다. 1월 20일에 일본군 침공선단이 마카사르 해협을 따라 남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어오자 하트 제독은 공격을 준비했다.

Posted by 대사(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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