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라칸 함락
 
1941년 12월 26일에 수라바야의 네덜란드 해군사령부는 필리핀 남단의 홀로에 순양함 2척, 구축함 2척 그리고 3척의 수송선이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전날 홀로를 점령한 마츠모토 지대를 싣고 온 수송선 3척과 호위를 맡은 제5급습대(경순 1척, 구축함 4척, 초계정 2척)였다.

네덜란드 해군사령부는 암본에 전개한 네덜란드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는데 당시 암본의 네덜란드군이 보유한 비행기는 버팔로 전투기 2대가 모두였다. 따라서 암본의 네덜란드 사령관은 호주군과 미군에게 홀로에 있는 일본선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공격을 요청했다. 호주군이 보유한 허드슨 폭격기 3대는 항속거리가 모자랐다. 그러나 암본에 막 도착한 미국의 제10초계비행단이 보유한 카탈리나 비행정은 충분한 항속거리를 갖고 있었으므로 비행단장 프랭크 와그너 대령은 홀로의 일본선단을 폭격하기로 결심했다. 

27일 새벽에 버든 헤이스팅스 중위의 제1소대와 존 하일랜드 중위의 제2소대 소속 6대의 카탈리나 비행정이 출격했다. 카탈리나 비행정은 27일 아침에 홀로섬 북해안에서 일본선단을 발견하고 폭격을 가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진짜 문제는 미군은 모르고 있었지만 홀로에는 이미 타이난 항공대의 제로기가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었다. 제로기 8대가 달려들어 카탈리나 4대를 격추하고 2대에 피해를 입혔다.  큰 피해를 입은 제10초계비행단은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임무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콘솔리데이티드 PBY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s://en.wikipedia.org/wiki/Consolidated_PBY_Catalina)

같은 날 오전 늦게는 타라칸에서 날아온 네덜란드 해군의 도르니에 Do-24K 비행정 1대가 홀로의 일본선단을 폭격했다. 명중탄은 없었으나 비행정은 제로의 추격을 피해 무사히 도망쳤다.

도르니에 Do-24K 비행정. https://en.wikipedia.org/wiki/Dornier_Do_24


미군은 다바오에 집결 중인 일본군에 대한 견제도 실시했다.
1942년 1월 3일에 자바의 말랑 비행장을 이륙한 B-17 폭격기 9대가 중간기착지인 보르네오의 사마린다에 착륙했다. 4일 아침에 600파운드(272kg)짜리 폭탄 4발을 장착한 B-17 폭격기 8대가 세실 컴즈 소령의 지휘 아래 사마린다를 이륙하여 오후 12시 10분에 다바오 남쪽의 말라라그만에 정박 중이던 제5전대(중순양함 묘고, 나치, 하구로)를 폭격하여 기함인 묘고에 1발을 명중시켰다. 전대사령관 다카기 다케오 소장은 사령기를 나치로 옮겨 달았으며 묘고는 일본으로 돌아가 40일간 건선거에 들어앉아 있어야 했다. B-17은 사마린다를 거쳐 5일까지 말랑으로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1월 10일에는 미국잠수함 피커렐이 다바오만 입구에서 2,929톤짜리 특설포함 칸코마루를 격침했다. 같은날 미국잠수함 스팅레이는 해남도 남쪽 해상에서 5,167톤짜리 수송선 하얼빈마루를 격침했고, 네덜란드 잠수함 O-19는 태국만에서 3,817톤짜리 병력수송선 아키타마루를 격침하고 화물선 타이류마루에 피해를 입혔다.

네덜란드가 일본에 선전포고한 지 한달도 더 지난 1942년 1월 11일에 일본은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했다. 첫 목표는 보르네오 북동쪽의 유전지대인 타라칸으로 제56혼성여단과 구레제2특별육전대로 이루어진 사카구치 지대가 맡았다. 

타라칸은 침공을 앞두고 일련의 공습을 받았다. 말레이 전투의 일환인 미리, 쿠칭 작전 도중 타라칸에서 날아온 네덜란드 항공기에게 피해를 입은 제25군은 타라칸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에 따라 미호로 항공대가 1941년 12월 26일에 육상공격기 7대, 28일에는 육상공격기 7대와 전투기 4대를 보내어 타라칸을 폭격했다. 같은 날 제1공습부대의 제3항공대에서도 제로기 7대, 육상정찰기 1대를 내보내어 공습했다.
타라칸 공습의 주역인 제2공습부대는 12월 30일부터 공습을 시작하여 31일, 1월 3일, 4일, 5일에 주로 전투기와 육상정찰기를 내보내어 공습을 실시했다. 7일에는 가오슝 항공대의 육상공격기 12대가 호로에 진출했다.

사카구치 지대를 실은 14척의 수송선은 제4수뢰전대(경순양함 나카, 구축함 12척, 구잠정 3척, 소해정 6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1월 7일 오전 8시에 다바오를 떠났다. 수상기모함 산요마루와 사누키마루 중심의 제1항공부대가 수상정찰기를 내보내어 선단의 앞길을 살폈으며 제1및 제2공습부대의 전투기들이 선단 상공을 지켰다.

네덜란드 해군은 일본선단에 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벡 소령이 지휘하는 잠수함 K-X을 파견했다. 취역한지 19년된 K-X은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1월 8일에 타라칸에 도착했을 때 엔진이 고장났다. 수리를 위하여 타라칸항에 머무르던 K-X은 10일 오전에 일본기의 공습을 받았으나 잠항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때 일본선단이 타라칸에 접근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헬프리히 제독은 K-X에게 요격 명령을 내렸다.

10일 오후 4시 30분, K-X이 타라칸항 입구의 기뢰지대를 통과할 때 일본수상정찰기 1대가 나타나서 공격을 가했다. 기뢰지대라 잠항이 불가능했으므로 K-X은 대공기총으로 반격했으나 금방 고장났다. 다행히 K-X은 재빠른 회피기동으로 일본기가 떨어뜨린 폭탄 2발을 20m 차이로 피했다. 일본기는 이어서 기총소사를 가했으나 피해는 없었으며 K-X은 기뢰지대를 빠져나와 잠항했다.

그동안 사마린다에서 이륙한 네덜란드공군의 글렌 마틴 폭격기 3대가 타라칸에 접근 중인 일본선단을 폭격하여 수송선에 폭탄 1발을 명중시켰으나 선단의 전진을 막지는 못했다. 

저녁이 되자 K-X은 부상하여 일본선단을 찾아 북상했다. 그러나 완전히 수리하지 못한 엔진이 다시 말썽을 일으키자 공격을 포기하고 수라바야로 돌아갔다.

일본선단은 10일 오후 7시에 타라칸 앞바다에 도착했다. 최초의 병력은 오후 9시 30분에 수송선을 떠나11일 0시에 타라칸섬에 상륙했다. 사카구치 지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14일 오전까지 타라칸을 완전히 점령했다.

타라칸을 지키던 네덜란드군은 1개 대대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타라칸섬 남해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카론간강 하구에 숨어있던 120mm 해안포 2문은 12일 정오 경에 일본소해정이 접근하자 포격을 가했다. 해안포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일본군은 기습을 당했으며 네덜란드 해안포대는 10분에 걸친 짧고 격렬한 포격으로 제13호 및 제14호소해정에 여러 발의 명중탄을 기록했다. 제14호소해정은 포탄에 맞아서 발생한 화재가 선체 후방의 기뢰를 유폭시키면서 순식간에 굉침당했고 허겁지겁 도망치던 제13호소해정도 여러 발의 명중탄을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이 교전으로 제11소해대 사령 야마구마 카즈요시인 중좌를 포함하여 156명이 전사했다. 소해정 2척의 승조원 209명중 생존자는 53명에 지나지 않았다.

미군도 공격을 시도했다. 1월 13일에 세실 컴즈 소령이 이끄는 B-17 폭격기 7대가  말랑 비행장을 떠나타라칸으로 향했다. 그러나 4대는 폭풍우로 인하여 도중에 돌아가고 3대만이 타라칸에 도착하여 8,800m 고도에서 일본선단에 폭격을 가했으나 명중탄을 내지 못했다.

타라칸항에 있던 네덜란드 기뢰부설함 프린스 반 오라네는 12일 저녁에 타라칸  북해안과 분유섬 사이의 수도를 따라 탈출을 시도했으나 오후 9시 57분에 부근 해상을 감시 중이던 구축함 야마카제에게 들켰다. 야마카제는 곧 추격을 시작했으며 도중에 제38호초계정이 가세했다.  야마카제의 함장 하마나카 슈이치 중좌는 자신이 쫓고 있는 함정이 아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포격명령을 내렸다. 오후 11시 22분부터 야마카제와 제38호초계정은 탐조등을 비추면서 1,800m 거리에서 포격을 퍼부어 10분 만에 프린스 반 오라네를 격침했다. 일본군에게 구조된 생존자는 5명이었다.

타라칸은 유전지대이기도 했으나 전술적으로는 비행장이 있어서 중요했다. 일본군은 타라칸 비행장을 12일 오후 3시에 점령했으며 곧 활주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13일 오후 3시 20분에 네덜란드군의 마틴글렌 폭격기 3대가 기습적으로 비행장을 폭격함으로써 활주로 정비작업 중이던 해군육전대 병력 15명을 죽이고 27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나 비행장 사용을 막지 못했다. 일본군은 활주로 정비에 박차를 가하여 14일 오후부터 제22항공전대 타이난 항공대의 제로기 9대와 육상정찰기 2대가 타라칸 비행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사카구치 지대의 타라칸 상륙과 동시에 일본해군의 공수부대인 요코스카제1특별육전대가 북부 셀레베스의 마나도를 점령했으며 이어서 사세보연합특별육전대가 마나도와 케마에 상륙했다. 이로써 일본군은 보르네오와 셀레베스 사이에 있는 마카사르 해협의 북쪽 입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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