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마우반 방어선(1) - 모론 공방전
제1필리핀군단이 지키는 마우반선은 동쪽의 실랑가난산 기슭에서 마우반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뻗어 서해안의 마우반에 걸쳐 있었다. 방어선의 동쪽 끝인 실랑가난산 기슭은 제1보병연대(PA)의 K 중대가 담당했다. K 중대의 동쪽은 제31사단(PA)소속의 제31포병연대가 지켰는데 보병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서쪽은 제31사단(PA)의 제3보병연대가 지켰다. 제31사단장은 피델 세군도 준장이었다.
(마우반선.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maps/USA-P-PI-12.gif P.278)
주저항선 북쪽 1.3km 에는 바얀다티부터 방어선 중앙까지 제3보병연대 병사들이 배치된 전초선이 있었다. 바얀다티 북쪽 3km 에 있는 모론과 바얀다티-모론 사이의 모래사장은 제1보병연대 I중대와 제26기병연대 G중대가 지켰다. 제1필리핀군단의 예비대는 제71사단의 전투병력을 흡수한 제91사단(PA), 제26기병연대, 그리고 제1보병연대(PA, 파견대 감편)였다.
일본제65여단장 나라 중장은 동쪽의 제2필리핀군단에 주력했기 때문에 제1필리핀군단의 방어선으로는 보병제122연대(2개 중대 감편), 야포병1개대대, 공병1개 소대, 그리고 통신1개분대로 이루어져 상대적으로 허약한 우측지대를 보냈다. 보병제122연대장 와타나베 대좌가 지휘하는 우측지대는 디날루피한을 떠나 올롱가포를 점령한 다음 남하하여 모론과 바각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측지대는 1942년 1월 9일 오후 7시에 디날루피한을 떠나 저항을 받지 않은 채 서진하여 10일 오후 2시에 비어있던 올롱가포를 점령했다. 야포는 무너진 다리와 파괴된 도로를 수리할 때까지 디날루피한에 남았다.
이틀 후인 12일에 우측지대의 일부가 제14군의 명령에 따라 현지에서 징발한 보트를 타고 수빅만의 입구에 자리한 그란데섬을 점령했다. 그란데 섬의 포트 윈트를 지키던 나폴레옹 보드로 대령은 12월 24일에 철수명령을 받고 25일까지 155mm 평사포 4문과 함께 바탄반도로 철수했다. 이때 남아있던 무기와 보급품을 제대로 파괴하지 않아서 일본군은 몇문의 대구경 고정식 해안포와 자주포, 그리고 155mm 포탄 수천발을 노획했다. 마바탕-마우반 방어선을 설정한 시점에서 포트 윈트에 대한 지원이나 보급은 불가능했지만 그렇다고 일찍 포기한 것은 큰 실수였다. 수빅만을 감제하는 포트 윈트에 수비대가 있었다면 일본군은 나중에 중요한 보급기지가 되는 올롱가포항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며 서해안 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일본군은 측면으로부터의 위협에 시달렸을 것이다.
우측지대는 14일에 올롱가포를 떠나 남하하기 시작했다. 주력은 도보로 이동하고 일부 병력은 보트에 타고 모론에 상륙하기로 했다. 보트에 탔던 병력은 지도를 잘못읽는 바람에 모론과 올롱가포의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상륙했다.
모론 북쪽에 일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은 웨인라이트 장군은 모론에 제1보병연대, 제1공병대대, 야포 2개대대를 파견했다. 일찌감치 모론에 파견되어 쉴새없이 정찰활동을 하면서 지친 제26기병연대 G중대는 같은 연대의 E-F복합중대로 교체했다. 이 병력들은 제1사단장 세군도 준장의 지휘를 받았으며 현장지휘관은 제1보병연대장 맥컬럼 소령이었다.
우측지대 주력은 모론 북쪽에서 합류한 후 남하했다. 일본군의 전진은 웨인라이트 장군의 예상보다 빨라서 우측지대의 선두는 미-필리핀군이 모론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모론 바로 북쪽에 있는 바탈란강을 건넜다. 미-필리핀군의 선두에 선 것은 에드윈 램지 중위가 지휘하는 제26기병연대 G중대의 1개 소대로서 그때까지 군마를 보유하고 있었다. 27명으로 이루어진 램지 소대는 이날 아침에 철수 명령을 받았으나 주변 지형을 잘 알던 램지 중위가 자진하여 선두를 맡은 것이었다. 모론에 진입한 램지 소대는 한발앞서 마을 중앙에 진출한 일본군 선두로부터 총격을 받았는데 램지 중위는 총격을 가하는 일본군 뒤에서 적의 주력이 바탈란강을 건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질 것을 알아차린 램지 중위는 돌격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미군의 마지막 기병돌격이 실시되었다. 27명의 기병은 굉장한 기세로 마을 중앙으로 돌격하면서 근거리에서 권총으로 일본군을 공격했다. 기습적인 돌격에 놀란 일본군은 많은 시체를 남긴 채 바탈란강을 다시 건너 북쪽으로 달아났다. 램지 소대는 직후에 도착한 E-F복합중대와 함께 방어선을 펴고 적의 공격에 맞서 모론을 지켰다. 5시간 후에 제1보병연대가 도착하여 모론을 확보했다. 이날 전투에서 램지 소대와 E-F복합중대는 박격포탄에 부상을 입은 램지 중위 자신을 포함하여 3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램지 중위는 이날의 활약으로 은성훈장을 받았다.
(은성훈장. https://en.wikipedia.org/wiki/Silver_Star)
우측지대는 17일 아침부터 모론에 공격을 가했다. 이날 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제1보병연대장 맥컬럼 소령이 머리에 부상을 입어 제3보병연대장 키어리 베리 대령이 제1보병연대장을 겸직했다. 일본군은 17일 저녁에 마침내 모론을 점령했으며 제1보병연대는 남쪽으로 2.5km 정도 물러나 언덕에 방어선을 폈다. 이 시점에서 우측지대만으로 미-필리핀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는 무리였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강력한 증원군이 달려오고 있었다.
제14군사령관 혼마 중장은 13일에 바탄 서해안을 공격하는 부대를 크게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증강된 일본군은 단지 바각까지 남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각에서 필라-바각도로를 따라 동진하여 제65여단과 싸우고 있는 제2필리핀군단을 뒤에서 공격할 것이었다.
제16사단장 모리오카 스스무 중장은 13일 오후 9시에 제16사단보병단장인 기무라 나오키 소장을 지휘관으로 하고 다수의 연대포와 속사포를 장비한 보병2개 대대 기간의 부대를 만들어 속히 서측지구로 파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명령에 따라 제16보병단사령부, 보병제20연대(1개 대대 감편), 보병제33연대의 연대포 절반과 속사포 전부로 이루어진 부대가 15일 아침에 마닐라를 떠나 그날 밤에 샌페르난도에 도착했다. 기무라 소장은 서해안에서 싸우던 우측지대의 지휘권도 장악했다. 15일 밤10시를 기하여 병력 약 5,000명으로 이루어진 기무라 지대가 편성되었다. 동시에 제65여단은 제1필리핀군단을 공격할 책임으로부터 벗어났다.
기무라 지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6보병단사령부
보병제20연대(제1대대 감편)
보병제122연대(제1대대감편)
보병제33연대연대포중대의 절반과 속사포중대
야포병제22연대제5중대
공병제16연대의 1개 중대
독립공병제21연대의 1개 소대
전신제2연대의 무선 1개 분대
독립무선제54소대의 절반
제65여단통신대의 무선 1개 분대
독립자동차 1개 소대
독립치중병제51중대
제16사단위생대의 1/6
제16사단제1야전병원의 절반
기무라 지대의 주력은 16일 저녁에 올롱가포에 도착했으며 17일 아침부터 남하를 시작하여 18일 오전 10시에는 모론에 도착했다. 기무라 소장은 휘하 부대를 3개로 나눴다. 서해안을 담당한 우익대(보병제122연대)는 서부도로를 따라 공격했다. 좌익대(보병제20연대제3대대)는 모론을 동쪽으로 우회하여 모론 남쪽의 능선을 측면에서 공격했다. 동쪽을 담당한 좌측대(보병제20연대제3대대난바중대)는 실랑가난산의 기슭을 따라 제1필리핀군단의 동쪽으로 우회하여 필라-바각도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보병제20연대제2대대는 예비대였다.
'1941년 및 그 이전 > 필리핀 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리핀 함락(41)-주전투진지 포기 (0) | 2018.05.15 |
---|---|
필리핀 함락(40)-마우반 방어선(2) (0) | 2018.05.15 |
필리핀 함락(38)-아부케이 방어선(3) (0) | 2018.05.14 |
필리핀 함락(37)-아부케이 방어선(2) (0) | 2018.05.13 |
필리핀 함락(36)-아부케이 방어선(1)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