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D-5선 철수
1942년 1월 1일 아침에 남부루손군이 칼룸핏에서 팜팡가강을 건넘으로써 미-필리핀군은 마닐라를 노리는 일본군의 주공으로부터 비껴섰다. 이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산페르난도가 되었다. 칼룸핏에서 팜팡가강을 건넌 남부루손군 뿐만 아니라 D-5 선의 우익을 지키던 북부루손군의 제11사단도 산페르난도를 거쳐 7번도로를 따라 바탄으로 철수해야했다. 산페르난도를 거치지 않고 바탄으로 철수할 수 있는 부대는 D-5 선의 좌익을 지키던 제21사단뿐이었다.
1월 1일이 되자 칼룸핏에서 산페르난도를 거쳐 바탄반도에 이르는 도로는 북적거렸다. 승용차, 버스, 트럭, 자주포, 그리고 전차들이 도로를 메웠고 그 주변으로 보병과 피난민들이 걸어갔다. 어떤 지점에서는 몇km에 걸쳐 차량들이 범퍼와 범퍼를 맞대고 늘어섰다. 공습에 취약한 상황이었지만 미-필리핀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공습은 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철수 중인 병사들은 상공을 날아다니는 일본기들을 여러번 보았으나 대부분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 당시 산페르난도 부근을 날아다니던 일본제5비행집단의 경폭격기 32대는 탄약고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제14군사령관 혼마 중장은 D-5 선의 북쪽인 탈락에 있던 가미지마지대를 강화했다. 12월 31일까지 가미지마지대는 보병제9연대(완편), 가노지대(대만보병제2연대제3대대), 야전중포병제8연대(1개 대대 감편), 야전중포병제22연대의 2개 포대,그리고 산포병제48연대의 1개 대대로 강화되었다.
밤반에서 팜팡가강변의 아라얏에 걸친 D-5 선에는 제21사단과 제11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좌익을 담당한 제21사단은 밤반강 남안을 따라 잠발레스산맥부터 컨셉션-마갈랑도로까지 방어했고 제11사단이 컨셉션-마갈랑도로에서 아라얏산의 북쪽 기슭을 돌아 팜팡가강 서안의 아라얏까지 방어했다. 양 사단은 1일 밤 8시까지 D-5 선을 지킨 후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제21사단은 우익에 제22보병연대, 좌익에 제21보병연대를 배치했다. 탈락에서 내려오는 3번도로와 철도가 제21보병연대 방어선 한가운데를 통과했는데 이 도로교와 철교가 D-5선에서 공격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형지물이었다. 제21사단은 두 다리를 폭파했으나 밤반강은 이 시기에는 거의 말라있었기 때문에 보병은 물론 차량도 강바닥을 통과할 수 있었다. 제21사단은 3번도로의 도하점을 감제하기 위하여 제23보병연대 C중대를 밤반강 북안의 1번도로 서쪽 고지에 배치했다.
(바탄도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PI/USA-P-PI-12.html P.204)
D-5선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일본군은 가노지대였다. 가노지대는 불과 이틀전에 사라고사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했다. 필리핀군이 밤반강 남쪽에 있으리라고 생각한 가노지대 병사들은 정찰을 생략한 채 자전거를 타고 밤반을 지나쳐 남하했다. 1일 새벽 1시 30분에 가노지대의 선두중대가 3번도로를 따라 접근하자 매복중이던 C중대가 발포했다. 혼비백산한 일본군은 35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도망쳤다. C중대는 일본군의 자전거와 군도를 비롯한 몇몇 장비를 노획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일본군 하사관 1명을 발견했다. 병사들이 심문하려 했으나 포로는 영어를 전혀 몰랐고 C중대에는 일본어를 아는 병사가 없었다. 포로는 후송되는 도중 숨졌다.
1일 오전 9시에 가노지대 본대가 도착하여 야포의 화력지원 아래 C중대를 공격했다. C중대는 밤반강 남쪽에서 쏘아주는 미군야포의 화력지원에 힘입어 수시간의 격전을 치르면서 진지를 지켰다. 그러나 오후 4시에 가노지대에 보병제9연대가 가세하면서 압도적 열세에 몰린 C중대는 오후 5시에 진지를 포기하고 강 남쪽의 사단방어선에 복귀했다. 제22야포연대가 강을 건너 후퇴하는 C중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일본군에게 포격을 가했다. 일본군은 추격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적의 주방어선 바로 눈앞에서 포격을 받으면서 강을 건너는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제21사단은 미리 받은 명령에 따라 오후 8시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사단은 3번도로를 따라 클라크 비행장을 거쳐 앙헬레스까지 간 다음 74번도로를 따라 포락까지 남하했다.
일본군은 조심스럽게 추격했다. 선두인 가노지대가 2일 오전 11시 30분에 앙헬레스에 도착하면서 일본군은 클라크 비행장을 통제하게 되었다.
D-5선의 우익을 지키던 제11사단은 일본군과의 전투없이 1일 오후 8시가 되자 미리 받은 명령에 따라 철수했다. 제11사단은 멕시코와 산페르난도를 거쳐 2일 오전 2시에 과구아에 도착했다.
남부루손군이 팜팡가강을 건너면서 남부루손군사령부가 해체되었으며 사령관 존스 장군은 원래 직위인 제51사단장으로 돌아갔다. 팜팡가강을 건넌 직후 제71 및 제91사단, 그리고 제23보병연대제3대대가 팜팡가강 서안을 따라 방어선을 펴고 일본군의 추격을 저지했으며 산페르난도 인근에 주둔 중이던 전차단이 예비대로 대기했다.
대만보병제2연대(제3대대감편)와 산포병제48연대의 1개 대대로 이루어진 다나카부대는 조심스럽게 플라리델을 지나 1일 오전 늦게 칼룸핏에 진입했다. 다나카부대는 즉시 팜팡가강 도하를 시도했으나 물살이 거센데다가 서안에 방어병력이 있었으므로 실패했다.
팜팡가강 서안을 지키던 미-필리핀군은 1일 오후에 철수했다. 큰 피해를 입은 제71 및 제91사단은 산페르난도를 거쳐 바로 바탄으로 후퇴했다. 제23보병연대제3대대는 포락에 주둔 중이던 제21사단에 복귀했다. 2일 새벽 2시에 전차단이 유령도시처럼 텅 빈 산페르난도를 마지막으로 통과했다. 전차단은 7번도로를 따라 과구아로 남하하여 미군 방어선에 도착했다.
다나카부대는 팜팡가강 서안을 지키던 미-필리핀군이 철수하자 2일 오후 4시에 팜팡가강을 건넜으며 오후 6시 30분에 산페르난도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다나카부대는 앙헬레스에서 3번도로를 타고 남하한 가노지대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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